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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사공이 들려주는 다른 태도의 표현 [30]

사공 미니앨범 '30' ⓒ서울모처층간소음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사공이 새 EP를 발표했다. 음반 제목은 [30]. 왠지 자신의 나이가 서른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음반의 제목으로 삼은 듯한 느낌이다. 사공 역시 아직은 여느 인디 싱어송라이터가 그러하듯 사공을 아는 이보다는 모르는 이가 훨씬 많다. 그것이 나의 의문이기도 하다. 2020년 즈음부터 활동을 시작한 사공은 그동안 꾸준히 싱글, EP, 정규 음반을 발표하고 있다. 들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의 곡 대부분 좋은 멜로디와 사운드를 가진 완성도 높은 곡이다. 누구라도 사로잡을만한 곡이다. 그럼에도 사공의 음악이 충분히 알려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대형 음반사/연예기획사 소속이 아니어서 일까. 그러다보니 방송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충분히 알려지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의 노래가 통속적인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지 않기 때문일까. 노래를 잘한다 싶게 고음을 내지르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네 곡의 새 노래를 담은 EP [30]은 여전히 사공다운 사운드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포크와 록 사이에 걸쳐져 있는 사공의 음악은 한국적이라기보다 영미권 음악에 가깝게 들리고, 리얼하게 들리기보다 몽환적으로 들린다. 컨트리와 사이키델릭 포크의 자장이 느껴지는 사공의 음악은 지금 한국대중음악에 깃들어 있는 시간과 공간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사공의 음악이 낯설거나 어려울 거라고 지레짐작할 필요는 없다. EP [30]에 담은 노래들은 직관적으로 간명한 훅을 앞세우고 다가온다. 좋은 곡은 좋은 멜로디를 가지고 있는 곡이다. 멜로디가 음악의 전부는 아니지만, 좋은 멜로디가 없이는 음악의 서사를 단단하게 구축하지 못해 듣는 이를 뒤흔들기 어렵다. ‘해야’, ‘버드나무’, ‘동경’, ‘Minnow’로 이어지는 곡에서 사공은 금세 빠져들게 하면서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선율을 제시한다. 여기에 곡마다 다르게 활용하는 악기가 곡마다 다른 서사의 정취를 완성한다.

사공 (Sagong) - 30 앨범 전곡 듣기

[30] 음반의 서사는 누군가에게 안부를 전할 바람을 찾다 지쳐 해에게 태우려 하는 이야기이고, “버드나무 지붕 밑에 / 우리 마음들을 새겨놓고서 / 다시 찾은 우리 집엔 / 고여있는 나의 눈물뿐이네”라고 탄식하는 이야기이다. “한 평생 너를 동경하다 죽어가겠지”라는 노랫말의 절망감이나, ‘Minnow’(피라미)라는 제목에 이르면 사공의 노래는 자신감과 욕망이 넘치는 세계의 반대편에 속해 있음을 인정할 수 있다.

사공은 이처럼 쓸쓸한 이야기를 펼치면서 감정을 분출하는데 집중하지 않는다. 대신 노래 속 주체에게 찾아온 감정의 배경이 되는 시공간을 담담하게 서술하며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사공은 해, 바람, 새, 비, 땅, 나뭇잎, 물방울, 버드나무, 집, 물안개, 산, 샛바람, 불빛, 울타리, 별들을 호출하고, 그 대상들은 노래마다 예스럽고 부드러운 온기와 여백을 불어넣는다.

연주 또한 감정을 증폭하지 않는다. 타이틀곡인 ‘버드나무’에서 활용한 어쿠스틱/클래식 기타 연주와 샘플링한 차임벨 등의 협연은 노래 속 감정을 아련하게 다듬어내고 따스한 질감을 유지한다. 사공의 재능을 확신하게 되는 이유는 다른 곡에서도 이 같은 소리를 직조해낼 줄 아는 음악가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공의 노래는 노래 속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려주면서 간결하고 소박하게 마침표를 찍는다. 음악을 통해 자신의 슬픔을 증폭 체험해 신화화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껴질지 모르지만, 넘치는 과시적 표현과 자기애가 부담스러운 이들에게는 충분히 담백하고 성숙하게 느껴질 작법이다.

모든 예술 작품이 작품 속 주체의 감정을 절절하게 대변해야 할 필요는 없다. 예술은 자기 위로의 방식이기도 하지만, 자기 성찰을 위한 직시의 방식이기도 하다. 삶에는 깊이 들여다보는 순간이 필요한 만큼 한 발 떨어져 바라보는 순간 역시 필요하다. 어쩌면 사공이 음반 제목을 [30]이라고 정한 것은 비로소 서른이 되어서야 이러한 태도를 갖게 되었고, 그 변화를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공은 “하늘에 놓여진 / 별들이 다리 되어 / 데려가 줄 거”라고 했는데, 음악 역시 우리를 다른 세계로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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