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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함운경? 저님이 진짜 미쳤나 싶다

살면서 너무 창피해서 이불킥을 할 때가 서, 너 차례 있었는데, 지금 내 심경이 딱 그렇다. 이래서 뭘 잘 알지도 못하면 절대 나대지를 말아야 한다.

2018년인가? 알고 지내던 한 인생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 선배는 오랫동안 노동운동을 하신, 삶의 궤적으로 보나 인품으로 보나 진짜로 존경할 만한 선배였다. 그 선배 말씀이 오랜 운동권 동지였던 함운경이 군산에서 수산물 가게를 열었다는 거다.

당시는 내가 페이스북을 할 때였고 페친 숫자도 꽤 많은 편이었다. 그 선배의 부탁은 페이스북을 통해서라도 함운경의 수산물 가게를 좀 홍보해 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까지 함운경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명성은 족히 듣고 있었다. 삼민투 위원장으로 1985년 미국문화원 점거 농성의 선봉에 섰던 인물. 그 전설의 투사 함운경을 어찌 모를 수가 있단 말인가?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이후 함운경은 몇 차례 선거에서 낙방한 뒤 칩거 중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함운경이 수산물 가게를 열었다니 내 마음이 어찌 짠하지 않을 수 있으랴.

나는 정말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존경심을 담아 그의 가게를 홍보했다. 내 기억에 수십 명의 페친들이 그의 가게에서 수산물을 주문해 주었다. 그게 우리 민중들의 연대 방식이라고 믿었다. 나는 그 따뜻한 연대에 하나하나 댓글을 달아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했다.

함운경은 당시 나에게 꽤 긴 글로 감사의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또 엄청 공손한 말투로 “선배님이 걸어온 어려운 길들을 후배들이 잘 이어받지 못해 죄송합니다. 선배님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랬던 함운경이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출마를 한단다. 그러면서 나온 기사 제목이 <한동훈이 선택한 함운경 “낮은 출산율, 운동권 탓”(24일 한겨레신문)>이다. 살다살다 이런 개소리까지 듣는 날이 올 줄은 정말 몰랐다.

2018년 어느 날 잘 알지도 못하고 나댄 나의 경솔함 탓에 함운경의 수산물 가게에서 물건을 구입한 페친들에게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속된 말로 쪽이 팔린다는 게 어떤 것인지 진짜 제대로 느꼈다. 거듭 죄송할 뿐이다.

이제 와서 운동권이 쓰레기?

문화일보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바른언론시민행동, 민주화운동 동지회 등이 공동개최한 ‘운동권 정치세력의 역사적 평가’ 토론회에서 함운경이 “타락한 운동권 세력의 가장 문제점은 시대적 지진아라는 점”이라고 했단다. 그러면서 함운경은 스스로를 ‘운동권 청소부’라고 자처한단다.

우선 나는 청소노동자를 청소부라고 부르지 않지만, 네가 운동권 청소부를 하건 운동권 청소노동자를 하건 뭘 청소하고 싶은 욕망에 가득 찼다는 건 알겠다. 그런데 네가? 뭘 청소할 자격은 되고?

자, 운동권을 청소하겠다면 최소한 자기는 운동권이 아니어야 한다. 이건 뭐 함운경 스스로가 요즘 온갖 매체에서 운동권 욕을 하고 다닌다니 그런 줄 알겠다. 그런데 그 시기와 기간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운동권을 청소하겠다는 것은 운동권을 쓰레기쯤으로 여긴다는 뜻일 텐데, 쓰레기를 치우려면 내가 쓰레기가 아닌 최소한의 상식적인 정화 기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제까지 쓰레기였는데 오늘 갑자기 “난 청정구역이에요” 이러면 사람들이 “어이구, 정말 깨끗하시군요” 잘도 이러겠다.

그러면 함운경이 언제 쓰레기로부터 벗어났는지를 살펴보자. 1985년 삼민투 위원장으로 미문화원을 점거했던 이 운동권(쓰레기)은 이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에서 10년 동안이나 재야 운동을 하면서 전문 재야 쓰레기의 길을 걸었다.

함운경 ⓒ뉴시스

그러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서울 관악구에 출마해 제도권 쓰레기의 길을 추구했다. 이게 왜 제도권 쓰레기의 길이냐면 그 출마가 그냥 무소속 출마가 아니라 당시 최대 재야 조직이었던 전국연합 소속의 출마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운동권 출마였다는 이야기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발탁으로 386 정치인들이 대거 원내에 진출할 때 함운경도 주변을 기웃거리다 민주당 소속 군산 출마를 선언했다. 그런데 그는 민주당 공천을 못 받았다.

내가 보기에 함운경이 그토록 쓰레기라고 비난하는 민주당 86 정치인들과 함운경의 차이는, 다른 이들은 그때 국회의원이 됐고 함운경은 그때 공천을 못 받았다는 것뿐이다. 장담하는데 그때 함운경이 민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이 됐으면 지금쯤 “운동권이 왜 쓰레기냐” 이러면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하고 엄청 싸우고 있었을 거다. 아니냐?

그때라도 민주당을 박차고 나와 “운동권 쓰레기” 운운했으면 정화 기간을 인정해주겠다. 그런데 함운경은 이후에도 매우 오랫동안 쓰레기 주변에서 얼쩡거리며 뭐 주워 먹을 게 없는지 기웃거렸다.

2004년 함운경은 또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공천을 신청했다가 떨어졌다. 2006년에는 마침내 열린우리당 후보 공천을 받아 군산시장 선거에 출마했는데 이때는 본 선거에서 낙선했다. 심지어 열린우리당 시절에는 청년 몫으로 배당된 중앙위원까지 지냈다. 열린정책연구원 교육연구센터 소장으로도 일했다.

함운경 같은 자의 일관성

함운경은 2015년에야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안철수의 국민의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그런데 거기서도 공천을 못 받고 2016년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종합해보면 아무리 짧게 봐줘도 그의 쓰레기 기간은 2015년까지 이어졌다. 더 길게 보면 2018년 내가 그의 수산물 가게를 홍보할 때까지도 그는 쓰레기 주변에 있었다. 아니냐? 아니면 답해보라.

2018년 명백히 운동권이었던 내가 그 가게를 홍보해 줄 때 그건 또 왜 고마워했냐? 쓰레기가 홍보해준다며 걷어찼어야지! 아, 아무리 쓰레기의 홍보라도 당신 돈 버는 데 도움이 되면 그 냄새는 또 참아줄 만한가? 2018년이면 그의 나이가 50대 중반이다. 좋게 봐주려고 해도 너무 쓰레기였던 기간이 길었던 것 아니냐?

심리학과 행동경제학에서는 “인간은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는 동물”이라고 정의한다. 이걸 입증하는 수많은 실험들도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가 한 번 뱉은 말, 자기가 한 번 정한 스탠스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 일을 쭉 지속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일관성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함운경 같은 자들이 보여주는 저런 극적인 배신은 매우 드문 행동이다. 2015년까지 열린민주당에서 기웃거리다가, 2018년까지 운동권 동지들에게 손을 내민다. 그런데 불과 5년 뒤인 2023년에 운동권을 쓰레기라 부르며 국회의원에 출마한다. 이게 얼마나 드문 행동이면 위대한 시인 단테가 신곡에서 지옥 가장 밑바닥은 배신자들의 차지라고 묘사했겠나?

지금 생각해보니 그의 일관성은 다른 방면에서 분명했다. 그는 그냥 출세를 하고 싶었던 거다. 운동권 타이틀 달고 국회의원도 하고, 사람들 앞에서 거들먹도 거리고 싶었던 게 그의 일관성이었다. 그러니 50대 중반까지 쓰레기 주변에서 계속 출마를 반복하다가 이제 와서 반대쪽에서 먹이 좀 던져준다니 냉큼 그쪽에 붙는다. 와, 진짜 다른 관점에서 일관성 하나는 끝내준다.

2023년 함운경이 국민의힘 의원 공부모임에 참가해 그 자리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 “쟤가 미쳤나 싶었다”라고 발언했단다. 그 발언을 그대로 돌려준다. 지금 내 심경이 딱 그렇다. 함운경, 쟤가 진짜 미쳤나 싶다. 쟤라니! 선배보고 어디 불경하게! 그런가? 그러면 존칭으로 바꿔주겠다. 저분이 진짜 미쳤나? 아니면 저님이 진짜 미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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