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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재용 불법승계 없었다니, 그럼 뇌물은 왜 준 건가

제일모직과 (구)삼성물산의 '부당합병' 의혹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1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이 회장이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력 강화를 위해 각종 부정 거래와 시세 조종, 분식 회계에 관여했고, 그 결과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합병 작업을 실행했다고 봤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검찰이 기소한 혐의 모두를, 그리고 공범으로 기소된 그룹 관계자 모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가 무죄 판결을 내린 전제는 두 회사 합병에서 이 회장의 지배력 강화가 유일한 목적은 아니었다는 데 있다. 이른바 승계 목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구)삼성물산의 경영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경영진의 판단으로 합병이 추진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합병은 부당하지 않고,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 증거도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2012년 작성한 이른바 '프로젝트-G' 문건에 대해서도 삼성의 사전승계 문건으로 볼 수 없으며, 결국 합병은 양사의 이사회가 사업적 목적으로 추진한 것일 뿐이라는 게 재판부의 결론이다.

1심 재판부의 판단은 이 회장을 무죄로 방면하기 위한 억지 논리에 불과하다. 제일모직과 (구)삼성물산의 합병은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한참 전부터 경영권 승계가 핵심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뤘고, 실제 합병 과정에서는 불법행위까지 동반됐다. 이 회장은 (구)삼성물산의 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최순실에게 뇌물을 줬고, 이 때문에 대법원에서 2년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양사의 합병이 정상적이라는 1심 재판부의 논리대로라면 이 회장은 아무 필요도 없는 뇌물을 바친 꼴이 아닌가.

양사 이사회가 그룹 미래전략실의 문서를 '아이디어' 수준으로 받아들였다는 판단도 황당하다. 재벌의 현실, 특히 삼성그룹의 의사결정을 지켜봐 온 사람이라면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제일모직의 이사회나 (구)삼성물산의 이사회 모두 그룹의 지배하에 있고, 미래전략실에서 추진하는 사업에 대해 '노(No)'를 할 수 없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이처럼 대법원 판결에서도 확인된 사실조차 1심 재판부는 억지로 외면했다.

(구)삼성물산의 주주들이 손해를 입지 않았다는 논리도 어색하다. 이미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의 재판에서 주주들의 피해가 있었다는 판단이 나왔고, 합병에 반대했던 엘리엇매니지먼트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해 1300억원 배상 판결을 받아낸 바 있다.

1심 재판부의 판결은 결국 '유전무죄(有錢無罪)'라는 세간의 탄식으로 이어진다. 화려한 논리로 포장되어 있지만 결국 사회적 계급에 따라 다른 처벌을 받는 것일 뿐이다. 이렇게 돈이 있는 이에게 처벌을 면해주거나 줄여주는 건 민주주의와 사회정의의 토대를 갉아먹는 위험천만한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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