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소픽 만민보

[만민보] 덕산 어르신들의 천국 ‘파란’과 ‘수상한 청춘학교’

780번째 만민보··· 김혜란 교장과 박종임 시설장 등 5명의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가 만든 아름다운 변화

김혜란 수상한 청춘학교 교장과 박종임 파란사회서비스센터 시설장 ⓒ민중의소리

“오늘은 스마트폰으로 어떻게 알고 싶은 정보를 찾는지 배울 거예요. 옆에 화분에 꽃 보이시죠? 이 꽃 이름이 뭔지 몰라도, 검색하면 찾을 수 있어요.”

기자가 교실을 찾았을 땐 수업이 한창이었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집중한다. 수업이 시작한 뒤 도착한 지각생이 허겁지겁 자리에 앉는다. 수업 모습은 여느 교실과 다르지 않다. 다만 우리가 아는 ‘교실’에선 가르칠 것 같지 않은 ‘스마트폰 활용법’을 가르치고, 수업을 듣는 이들의 나이가 우리가 아는 ‘학생’보다 많다는 게 조금 다를 뿐이다. 이런 익숙하지만, 조금은 낯선 수업이 펼쳐지는 이곳은 충북 제천시 덕산면 도전리에 있는 ‘실버문화복합공간 수상한 청춘학교’다.

기자가 ‘수상한 청춘학교’를 방문한 지난 19일 오전 이곳에선 스마트폰 활용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수업이 끝난 뒤 한 어르신이 “다음 수업 시간엔 은행 일을 스마트폰으로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주기로 했다”며 한껏 기대에 부푼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에서 은행 지점이 있는 면내로 가는 버스는 하루에 두세번 밖에 없어 나가기가 힘다. 스마트폰으로 은행 업무를 보는 게 일상화되면서 은행 지점은 점점 사라지고,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은 점점 밀려나고 있다. 은행 업무, 기차표 예매 등 노인들을 위한 스마트폰 교육은 그들에게 꼭 필요한 ‘생존교육’일지 모른다. 평소엔 카톡이나 통화, 문자 정도만 써봤던 어르신들은 수업을 마친 뒤 삼삼오오 모여 배운 걸 서로 알려준다.

다른 건물에 있는 강의실에선 ‘텅드럼’ 악기 수업이 펼쳐졌다. 드럼에 쓰인 숫자로 보며 음계를 찾아 ‘캐논’을 연주한다. 리듬을 연주하고, 화음도 넣는다. 얼마 전엔 큰 행사에서 무대에 올라 연주했다. 누군가의 연주가 제 속도보다 조금 빨라지면 어느새 자연스럽게 다른 이들도 그 속도에 맞춰가며 실수를 덮어준다. 연주 내내 웃음이 넘쳤고, 어르신들의 표정엔 행복이 가득했다.

“이곳에 오면 너무 행복해요
저한텐 이곳이 천국이에요”


어르신들이 모여 공부하고, 음악과 그림을 배우고, 함께 식사하며 생활한다. 어르신들은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도시엔 있지만, 이곳에선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문화센터’에서나 할 법한 교육을 받는다는 건 상상조차 못 해 봤다고 한다. 이런 꿈만 같던 일들이 이뤄지게 된 건 사회적협동조합파란이 세워지고, 이를 통해 어르신들을 방문해 요양을 돕는 ‘파란사회서비스센터’와 ‘수상한 청춘학교’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수상한 청춘학교 스마트폰 활용 교육 모습 ⓒ민중의소리


“여기 와서 댄스도 배우고, 음악도 배우고, 그림도 배우고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집에 있으면 맨날 누워서 TV만 보는데 이곳에 오면 너무 행복해요. 저한텐 이곳이 천국이에요.” 한 어르신의 말처럼 ‘천국’ 같은 이곳은 2명의 사회복지사와 3명의 방문 요양보호사들의 맘과 뜻이 모여 세워졌다. 그 힘겨웠지만, 즐겁고 보람찼던 이들의 지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수상한 청춘학교’ 김혜란 교장과 파란사회서비스센터 박종임 시설장을 만났다.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방문 요양’
“막상 일해보니 복지라기보다는
영리사업이었어요”


“경기도에서 아동복지기관과 자활기관 등 비영리 사회복지기관에서 10년 넘게 일했어요. 그러다 충북 제천으로 내려와 방문요양센터에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근데 막상 일해보니 복지라기보다는 영리사업이었어요. 저는 사회복지 분야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수익을 사업자 개인이 몽땅 챙겨가는 구조더라고요.”

사회복지사로 일하던 김혜란 교장은 충북 제천에 있는 방문요양센터에서 일하면서 ‘사회복지’가 ‘돈벌이’ 수단으로 변해버린 모습에 놀랐다고 한다. 실제로 포털 사이트에 ‘방문요양’을 검색하면 100개가 훌쩍 넘는 광고가 뜨고, 심지어 언론에 유망한 창업 업종으로 소개될 정도다.

이런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방문요양 서비스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아야 한다. 방문요양은 노인장기요양 등급을 받은 65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제공되는 사회복지 서비스다. 요양보호사가 직접 대상자들의 집을 방문해 식사, 청소, 세탁, 외출 동행 등 일상생활 지원과 세면 도움, 구강 관리 등 신체 활동 지원과 말벗, 생활 상담 등 정서 지원을 한다. 대체로 하루 3시간 정도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국가 지원으로 비용의 85%를 지원하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들은 15%만 부담하면 된다. 등급에 따라 지원금이 달라지고, 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 본인부담금이 면제된다. 비용 대부분이 건강보험의 장기요양보험금 재정에서 지급되는 공적인 서비스다.

“영리를 목적으로 운영되다 보니
심지어 어르신 한 명당 얼마씩
가격이 책정돼 센터가
통째로 거래되기도 해요”


이런 사회복지 서비스는 흔히 ‘센터’라 불리는 장기요양기관을 통해 제공된다. 요양기관엔 방문요양 업무를 담당하는 요양보호사와 어르신 방문상담, 수가청구, 요양보호사 스케줄 관리 등 업무를 담당하는 사회복지사가 일한다. 서비스 인원과 시간에 따라 정해진 비용이 들어오고, 요양보호사·사회복지사 급여와 사무실 운영 비용이 지출된다. 법적으로 요양보호사와 사회복지사 고용 인원에 관한 규정도 있다.

“인원을 늘리려고, 법적으로 보장된 본인부담금을 센터와 요양보호사가 반반씩 부담하기도 해요. 서비스 질은 나빠지고, 요양보호사도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게 돼요. 법적으로 보장된 초과 근무 수당도 제대로 주지 않고, 심지어 가짜로 센터 운영자 가족을 근무자로 올려서 월급을 빼내기도 합니다. 일하는 사람들의 업무는 가중되고, 그렇게 요양보호사와 사회복지사를 쥐어짠 돈은 개인 수익이 돼요.”

사회적 협동조합을 준비하며 함께 논의하고 있는 모습 ⓒ파란 제공

김혜란 교장보다 2년 먼저 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를 시작한 박종임 시설장은 방문요양센터의 열악한 현실을 이렇게 토로했다. 김혜란 교장은 “영리를 목적으로 운영되다 보니 심지어 어르신 한 명당 얼마씩 가격이 책정돼 센터가 통째로 거래되기도 해요”라고 덧붙였다. 일하면 일할수록 이래도 되는 건지 의문은 커졌다. 센터 운영자 딸의 상담일지를 대필하는 등 말도 안 되는 현실은 그를 힘들게 했다.

이런 현실을 바꾸려다 부당해고
우리가 직접 센터를 만들자며
2명의 사회복지사와
3명의 요양보호사가 의기투합


이런 현실을 바꾸는 건 쉽지 않았다. 부당한 운영과 관련해 신고가 들어가 업무정지가 내려져도, 센터에선 행정심판을 제기해 시간을 번다. 그렇게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가족 또는 친척 명의로 센터를 하나 더 개설한다. 재판이 벌어지는 동안 그곳으로 수급자 어르신들을 하나둘 옮긴다. 행정처분이 내려질 때쯤엔 업무정지를 내려도 소용이 없게 된다. 이를 이쪽 업계에선 ‘모자 바꿔쓰기’라고 부른다. 일을 시작한 지 8개월쯤 지나 이런 문제들을 바꿔보기 위해 김혜란 교장은 회의 시간에 문제를 지적했지만, 그에게 돌아온 건 ‘따돌림’과 ‘부당해고’ 통보뿐이었다.

“2020년 4월에 해고됐어요. 부당해고를 두고 법적으로 다투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하지만, 못했습니다. 당시 귀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지역에서 큰 소리 내며 싸우는 게 부담스러웠거든요.”

억울했지만, 소리 내며 싸울 수 없었던 그의 하소연을 박종임 시설장과 당시 10년 넘게 방문요양 현장에서 일했던 ‘맏언니’ 서건성 파란사회서비스센터 대표, 그리고 김은정·최석순 요양보호사가 함께 나눴다. 그렇게 2020년 5월부터 모임을 함께했고, 그해 여름부턴 본격적으로 고민을 나누기 시작했다. 사회복지사업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복지 서비스의 질적 향상보다는 양적 확대에만 신경 쓰는 현실이 싫었다. 시간제로 근무하며 이동시간 포함 하루 10시간을 꼬박 일해도 연장 근로 수당은 없었다. 그렇게 일해도 겨우 200만 원 남짓의 월급을 가져가는 요양보호사들은 센터의 여러 요구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어르신이나 본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요양보호사들은 이집 저집 옮겨 다닐 수밖에 없다. 일하는 사람은 물론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들에게도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이들이 내린 결론은 일하는 우리가 직접 ‘센터’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우리가 하면 어떻게 해도 지금보단 나을 거 같았어요.”

자신감은 충만했다. 하지만, 현실은 자신감만으로 돌파하기엔 녹록하지 않았다. 해직돼 시간이 많았던 김혜란 교장이 이것저것 정보를 찾아 발제하고, 함께 세미나를 통해 하나하나 배워나갔다. 시쳇말로 ‘맨땅에 헤딩’인 상황이었다. 이렇게 직접 부딪히며 그들이 처음 내린 결론은 방문요양센터를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일하는 이들이 직접 출자해서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면
자기 일처럼 잘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어요”


“돌봄의 질을 어떻게 하면 보장할 수 있는지를 많이 고민했어요. 어르신들 집에 방문해 일대일로 서비스가 제공되기 때문에 돌봄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거든요. 제대로 돌봄을 제공하기 위해선 일하는 이가 주인이 되는 구조를 만드는 게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어요. 일하는 이들이 직접 출자해서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면, 자기 일처럼 잘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어요.”

왼쪽부터 차례로 최석순,김혜란,서건성,김은정,박종임 ⓒ파란 제공


‘사회적 협동조합’을 갈 방향으로 정한 그들은 자신들보다 앞서 방문요양서비스를 하고 있던 전북 완주의 ‘사회적협동조합 드림사회서비스센터’를 알게 됐고, 벤치마킹했다. 2020년 9월 드림사회서비스센터를 직접 방문해 많은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이들은 드림사회서비스센터에서 자신들이 일하던 곳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박종임 시설장은 자신이 생각했던 이상으로 행복함이 느껴졌던 일터였다고 고백했다.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방문했어요. 그곳은 지역 자활센터로 시작해 이후 주간보호센터가 들어왔고,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어 방문요양센터까지 운영하고 있었어요, 요양보호사가 100명이 넘었고, 이분들이 완주군 전체를 담당하고 있었어요. 당시 저는 이쪽 일을 한 지 3년이 지났는데, 제가 일하던 환경이랑 너무 달라서 놀랐어요. 무엇보다 센터가 크고, 시설이 좋더라고요. 전에 일하던 곳은 사무실이 4평 남짓이어서 요양보호사들이 쉴 곳이 마땅치 않았거든요. 근로체계와 급여체계가 굉장히 잘 짜여 있었고, 일하는 분들을 짜내려고 하지 않았어요. 노동법에 맞춰서 권리를 보장하고, 임금도 제대로 챙겨줬어요. 같은 지역을 맡은 분들끼리 팀을 짜서 지역 문제도 찾아 해결책을 마련하고, 어르신도 발굴하더라고요. 가장 좋았던 건 센터장님이 위압적이지 않고, 일하는 분들과 모든 걸 함께 논의하고 고민하는 모습이었어요.”

사실 방문요양센터 가운데 상당수는 요양보호사가 모이는 걸 싫어한다. 모이다 보면 불만이 나오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무실이 좁은 건 그런 이유도 있다. 이런 현실을 생각할 때 요양보호사들이 팀을 꾸려 활동하고, 센터장과 함께 사업을 논의한다는 건 정말이지 꿈같은 이야기로 들렸다. 김혜란 교장은 “성과급도 직원들과 나누셨어요.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이조차도 함께 나눈 거죠. 또 봉사단을 조직해서 어르신들에게 뭐가 필요한지 찾아내고, 지원하는 게 너무 인상적이었어요”라고 덧붙였다.

시행착오가 발목을 잡다
우여곡절 끝에 2021년 세워진
파란사회서비스센터


방향은 확실해졌지만, 처음 가는 길이다 보니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제천여성새로일하기센터를 통해 교육비와 강사를 지원받아 컨설팅도 받았다. ‘사회적 협동조합은 설립이 힘들다’며 절차가 간단한 협동조합을 설립한 뒤 ‘사회적 기업’을 신청하는 게 좋겠다는 전문가의 조언이 있었다. 이런 조언에 맞춰 설립 준비를 진행했다. 하지만, 설립 신고를 앞둔 마지막 순간에서야 이런 방식으론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오랜 시간 공들였던 준비가 무위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설립 준비를 도맡아 하던 김혜란 교장은 이런 소식을 동료들에게 어떻게 전할지 고민이 컸다.

“추석 연휴가 지나고 워크숍을 갔어요. 모두 기대에 부풀어 있는데 이런 사실을 전해야 한다니 너무 힘들었어요. 워크숍을 하면서 이야기를 꺼내지 않다가 마지막 날에 알렸어요. 비싼 수업료를 낸 셈이죠. 우리가 고민했던 게 있는데 전문가에게만 너무 의지하려 했던 거 같아요. 힘들지만, 처음부터 다시 할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 생계도 걸려 있기에, 당장 다음 해 1월 1일엔 센터를 시작해야 했는데 시간이 없었어요. 드림사회서비스센터를 통해 행정사를 소개받았어요. 돈은 없었지만, 거금 160만 원을 들여 사회적 협동조합 설립 서류 준비를 행정사에게 맡기고 우리는 충북사화적경제센터 ‘사람과경제’의 지원을 받아 협동조합 기본 교육부터 다시 받았어요. 사회적 협동조합은 무엇인지, 어떤 운영가치를 지켜야 하는지 배우며 결속을 다졌어요.”

2021년 1월 문을 연 파란사회서비스센터 ⓒ파란 제공

우여곡절 끝에 2020년 11월 보건복지부로부터 사회적협동조합파란 설립 인가를 받았다. 통상 인가에 3개월이 걸리는데 설립 신청 2주 만에 인가가 나왔다. 김혜란 교장은 “당시 보건복지부에서 복지의 공공성을 많이 강조하던 분위기와 맞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적협동조합파란은 법인의 첫 번째 사업으로 방문요양 재가센터를 설립하기로 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설립 인가는 빨랐지만, 제천시에 제출한 재가센터 신고는 처리가 늦어졌다.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어 센터를 설립하는 게 제천시에선 처음이어서 그렇기도 했지만, 기존에 운영되던 센터들의 견제도 있었을 것이라고 이들은 추측했다. 힘들었지만, 그해 12월 말에 제천시로부터 설립 인가를 받았고, 2021년 1월 드디어 덕산에 파란사회서비스센터를 열었다.

“솔직히 많이 망설였어요
우리 돈을 출자금으로 넣었는데
망하면 어떡하지 걱정도 됐어요”


사실 덕산에 센터를 열기 위해 이들은 백방으로 뛰어야 했다. 그곳은 그들이 전에 일하던 센터에서 담당했던 지역이고, 한 지역에서 나고 자란 인연으로 인맥이 엮여 있다 보니 이들에게 사무실 공간을 내주길 꺼렸던 분위기도 있었다. 김혜란 교장은 “그래도 우리가 활동했던 덕산을 떠날 순 없었어요. 오히려 덕산에서 제대로 된 센터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또 저희가 제천 간디학교 학부모인데, 관련 공동체가 인근에 있어서 이곳을 떠날 순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서건성 대표는 5명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았다. 그는 “내 노후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는 생각”과 “좀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라고 했다. 김혜란 교장은 “솔직히 많이 망설였어요. 우리 돈을 출자금으로 넣었는데, 망하면 어떡할지 걱정도 됐어요. 그때마다 대표님이 ‘내가 책임지니 무조건 가자’며 이끌었어요”라고 당시를 돌아봤다.

흔들릴 때마다 마음을 다잡으며 위기를 헤쳐 나갔다. 지역주민들의 도움도 있었다. “나중에 나이 들면 파란에 의탁해야 한다”며 후원 물품을 보내 주는 등 십시일반으로 나섰다. 사무실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그들에게 지역 주민이 좋은 일을 한다며 주택을 무상으로 임대해줬고, 그곳을 개조해 사용할 수 있었다. 그곳은 ‘꿈의 공간’이었다. 전에 일하던 센터에서 하지 못했던 일들이 이곳에선 가능했다고 김혜란 교장은 말했다.

수상한 학교 어르신들이 수업을 마친 뒤 족욕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족욕 공간도 어르신간에 대화가 가능하게 마주보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민중의소리

“전에 일하던 곳은 공간이 작았고, 같이 모여 쉬거나 식사할 곳도 없었어요, 그런데 25평 남짓한 공간이지만, 일하는 분들이 함께 쉬고, 밥 먹을 공간이 있다는 게 너무 좋았어요. 요양보호사들이 3시간마다 이동하는데, 전에 일하던 곳에선 식사도 알아서 해결했는데, 언제든 들려서 식사할 수 있어요. 모여서 술도 같이하고,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요. 직원회의실이 있어서 함께 논의할 공간도 있고요. 마당이 있어 그곳에서 어르신들 도시락 봉사를 위해 반찬도 함께 만들고, 의료와 미용 봉사도 그곳에서 했어요.”

“거창한 걸 하자는 게 아니라
근로기준법을 비롯해 법을
지키자는 생각이었어요”


방문요양센터를 열며 이들이 가장 먼저 신경 쓴 것은 요양보호사들의 처우 개선이다. 박종임 시설장은 “요양보호사에게 ‘봉사’라는 명분을 내세워 저임금 등 노동자에게 불리한 노동계약을 강요하는 센터가 많다”고 말했다. 방문요양센터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들은 고용형태가 매우 불안정하다. 시간제로 계산되는 급여도 거의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러 있다. 고령의 여성 노동자가 많아 근로기준법이 뭔지, 노동자의 권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이들이 많았다. 퇴직금을 제대로 정산받지 못하거나, 연장수당, 연차수당 등도 근로기준법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요양보호사에겐 ‘봉사’를 강요하며 줘야 할 걸 주지 않고, 센터장들은 뒤로 수익을 챙겨가는 모순된 구조였다. 이들은 이런 현실을 우선 바꾸고 싶었다.

김혜란 교장은 “거창한 걸 하자는 게 아니라 근로기준법을 비롯해 법을 지키자는 생각이었어요”라고 말했다. 파란은 개원 후 지금까지 재정이 마이너스가 되지 않는 선에서 요양보호사들의 처우나 급여를 현실에 맞게 보장하고 있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근로기준법에 맞게 운영하고 있다.

우선 공휴일유급휴가 수당을 도입했다. 2022년부터 5인 이상 사업장은 공휴일유급휴가를 실시하도록 법이 바뀌었지만, 재가센터들은 대부분 공휴일에 ‘근로가 예정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공휴일유급휴가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더구나 이와 관련한 예산을 책정해야 하는 정부와 장기요양보험공단도 외면하고 있다. 정부와 공단이 나서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지만, 파란은 이사회 결정으로 도입했다.

아울러 이동 거리에 비례해 요양보호사들에게 주유비도 지급하고 있다. 농촌 지역에선 요양보호사들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통상 요양보호사들이 하루에 3시간 어르신 3명을 돌보면 하루 이동 거리가 40km를 훌쩍 넘기기는 경우도 많다. 장기요양보험공단에서도 이동 거리를 고려해 교통비가 나오지만, 실제 비용에 미치지 못하고, 지급 규정도 까다로워서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파란은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이동 거리에 따라 주유비를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텅 드럼 수업을 받고 있는 어르신들 ⓒ민중의소리

또한, 연장가산수당도 법에 맞춰 지급하도록 했다. 하루 8시간, 주당 40시간으로 규정된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로 시간에 대해선 통상임금의 50%를 더해 임금을 지급하게 되어 있지만, 방문요양센터들은 각종 편법을 동원해 이를 피해 간다. 김혜란 교장은 “꼼수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재가센터 개설이 쉽다 보니 다른 가족 명의로 센터를 만들어서 피해 가요. 요양보호사가 3명의 어르신을 돌본다면 2명은 엄마가 운영하는 센터에, 1명은 딸이 운영하는 센터와 계약하는 식이에요 요양보호사가 두 센터에서 번갈아 일하도록 해서 연장가산수당을 피하는 거죠. 기가 막힌 현실인데 방문요양 업계에선 당연하다고 느낄 정도예요”라고 말했다.

“지금의 방문요양 현장은
돌봄 노동자도, 돌봄을 받는 이들도
행복하지 못한 시스템이에요
노동자가 행복하게 일해야
돌봄을 받는 이들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파란은 더 나아가 노동자들의 정서와 감정에 대해서도 신경을 쓰고 있다. 방문요양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육체노동이면서 동시에 감정 소비가 심한 노동이다. 파란은 이런 부분을 고려해 일 년에 두 번 야유회와 ‘힐링 워크숍’ 등을 통해 노동자들의 정서 소진을 예방해 양질의 노동을 제공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김혜란 교장은 “지금의 방문요양 현장은 돌봄 노동자도, 돌봄을 받는 이들도 행복하지 못한 시스템이에요. 노동자가 행복하게 일해야 돌봄을 받는 이들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이 처음엔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지연과 학연으로 이어진 지역사회에서 원래 이곳에 살지 않던 이들의 도전은 그것이 아무리 정당하고 의미 있어도 ‘굴러온 돌’ 또는 ‘모난 돌’ 취급을 받기 쉽다. “빨갱이”라는 험한 말도 들어야 했다. 서건성 대표는 “더불어 잘살자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인데 이런 험한 말까지 듣게 될 줄은 몰랐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지난 2022년 12월 열린 수상한 청춘학교 개관식을 마친 뒤 함께 사진을 찍은 파란 식구들. 왼쪽부터 최석순, 김은정, 서건성, 박종임, 김혜란 ⓒ파란 제공

어려움은 있었지만, 끝내 진심은 통했다. 설립 3년 차에 접어든 지금 파란의 급여체계와 시스템은 입소문을 타고 있다. 알음알음으로 어르신들 사이에도 믿을만한 센터로 인정받고 있다. 얼마 전엔 파란 소속 요양보호사들과 지역의 요양보호사들을 대상으로 노동법 강의를 열기도 했다. 이들은 이런 파란의 좋은 근무환경이 방문 요양 업계 전체로 퍼져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혜란 교장은 “사실 파란이 문을 열 때만 해도 그렇게 요양보호사들에 주다 보면 3년을 못 버티고 문을 닫을 거라고 했어요. 3년 안에 안 망하면 손에 장을 지진다는 말까지 했을 정도예요. 하지만, 요양보호사들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면서도 이렇게 잘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수상한 청춘학교’를 통해
‘가장 꿈같은 날’을 보내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은발의 학생들을 보며
매일매일 가슴이 벅차고
보람을 느낍니다”


이들에게 파란사회서비스센터를 운영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물었다. 김혜란 교장은 집에서 임종을 맞았던 한 어르신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지금은 대부분 자신이 살던 집에서 임종을 맞는 경우가 드물어요. 병원이나 요양원에 오래 입원해 있다가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아요. 근데 이 어르신은 파란이 만들어지면서 모시기 시작한 어르신이었는데, 지역에 응급의학 의사 선생님이 계셔서 수시로 상태를 점검해 주셨어요. 의료 행위를 할 순 없지만, 병이나 욕창이 심각해지는 걸 막을 수 있었고,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센터에서도 신경을 쓰면서 마지막 가시는 길을 조금은 평안하도록 도울 수 있었어요. 흔히 아이를 키우려면 한 마을이 필요하다고들 하는데, 노인을 돌보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마을과 함께 파란과 같은 방문요양센터가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파란은 이렇게 마을에 녹아들며 센터를 유지하는 차원을 넘어 자신들의 역할을 더욱 키워나갔다. 센터를 설립한 지 1년 정도 지났을 무렵 그들의 눈에 들어온 건 지역 어르신들의 정서적 고립이었다. 3시간 정도 요양보호사가 다녀가고 나면 나머지 시간은 대부분 혼자 지내는 어르신들이 많았다. 이런 어르신들을 위해 주간보호 시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비용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마침 수자원공사 충주권지사에서 수몰지역 주민들을 위한 복지사업으로 ‘실버유치원’ 사업 위탁 공모를 했고, 여기에 지원해 2022년 11월 ‘수상한 청춘학교’가 만들어지게 됐다.

이 과정에서 단순한 주간보호 시설이 아닌 실버문화복합공간으로 구상이 발전됐다. 덕산면 도전리에 있는 신학교 부속 건물을 빌려 다양한 문화예술강좌, 심리상담을 포함은 정서 지원, 건강 유지를 위한 체육활동 강좌 등이 열리는, 어르신들을 위한 쉼터이자 교육의 장인 ‘수상한 청춘학교’가 개원할 수 있었다. 보통의 주간보호 시설은 장기요양 등급자만 이용할 수 있지만, 이곳은 65세 이상이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김혜란 교장은 “돌봄보다는 배움이 주목적인 공간이에요. 배우고, 어르신들끼리 정서적으로 소통할 수 있게 돕고 있어요. TV는 일부러 놓지 않았고, 족욕 시설 등 공간 대부분을 서로 마주 볼 수 있게 만들어 소통할 수 있도록 했어요”라고 말했다.

“어느 어르신은 첫 등교 날 평생 누군가가 해주는 밥을 처음으로 먹었다고 말씀하셨어요, 이분들은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분들도 많고, 평생을 가족을 돌보고 일하느라 챙겨주는 밥을 먹은 경험도 많지 않거든요. ‘수상한 청춘학교’를 통해 ‘가장 꿈같은 날’을 보내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은발의 학생들을 보며 매일매일 가슴이 벅차고 보람을 느낍니다.”

나이 지긋한 지역주민과
이곳에 새롭게 들어와 사는 귀촌인
지역 청소년들이 세대를 넘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인
‘수상한 청춘학교’


‘수상한 청춘학교’는 올해부터 새로운 시도도 하고 있다. 평생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지 배우지 못했던 어르신들에게 ‘선배시민교육’을 비롯해 환경, 성평등 교육 등 다양한 인문학 강좌를 개설했다. 이를 통해 노인과 노년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인생 2막을 어떻게 의미 있게 만들어 갈 것인지 함께 고민하고 있다.

지역 어르신들에게 미용 봉사를 하고 있는 모습 ⓒ파란 제공

아울러 ‘수상한 청춘학교’는 나이 지한 지역주민과 이곳에 새롭게 들어와 사는 귀촌인, 그리고 제천간디학교 학생들을 비롯한 청소년들이 세대를 넘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도기리 주민인 황대권 ‘야생초 편지’ 저자가 ‘기후 위기’를 강연자로 나서고, 도전리 주민이자 응급의학과 의사인 이상래 씨가 건강 관련 강의를 하는 등 덕산에 사는 주민이 직접 강사로 나선다. 지역 청소년들이 봉사단을 꾸려 어르신들을 만난다.

이곳 덕산에 파란사회서비스센터가 생겨난 지 3년이 지났고, 수상한 청춘학교가 세워진 지는 1년이 지났다. 현재 방문요양 서비스를 받는 어르신이 45분이고, 그동안 100여 분이 방문요양 서비스를 이용했고, 요양보호사와 사회복지사 등 30여 명이 일하고 있다. 수상한 청춘학교는 기수별로 운영되는 데 현재 3기 수업이 진행 중이고, 120여 명이 등록해 수업받고 있다. 65세 미만도 들을 수 있는 오픈 강좌를 포함하면 150여 명이 수업을 받고 있고, 그동안 수강생은 300여 명에 이른다.

파란은 사회복지 서비스가 ‘영리’가 아닌 ‘사람’에 주목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어려움이 많다. 이들이 전에 소속돼 일했던 방문요양센터에서 소송을 걸어와 3년째 법적 다툼도 벌이고 있다. 김혜란 교장, 박종임 시설장 등이 겸업을 금지하는 조항을 위배했고, 센터에 입사할 때 100km 이내에 센터 개설을 금지하는 조항에 서명했음에도 파란을 개업해 손해를 입었다면서 민사소송을 낸 것이다. 부당한 근로계약이어서 지킬 의무가 없음에도 1심에선 일부 손해를 인정해 김혜란 교장과 박종임 시설장에게 각 2천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김혜란 교장은 “항소해서 현재 2심을 앞두고 있어요. 이 판결이 확정되면 사실상 현재 운영되는 지역의 방문요양센터에 독점권을 주는 거나 마찬가지 않아요. 우리들은 같은 지역에 센터를 세울 수 없는데, 전에 있던 곳 센터장의 딸은 바로 인근에 세워도 무방하다니 부당하잖아요. 개인 소송이 아닌 일종의 공익 소송이란 생각으로 끝까지 싸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수상한 청춘학교 건강증진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어르신들 ⓒ민중의소리


이런 법적 다툼에 더해 정치적 현실도 이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1월 18일 서울 영등포구 사회복지사협회에서 가진 사회복지사들과의 간담회에서 “안전이나 돌봄에 대해서 보편 서비스로 나아가게 되면 그 안에서도 노하우가 축적되고 전문가들이 나오게 되고 어느 정도 민간화를 시켜나가면서 적절한 경쟁도 필요하지 않겠냐. 그렇게 해야 거기에 따라서 인센티브가 들어가서 할 수 있다”며 “적절한 효율성 제고하기 위한 정도의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사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지난 9월 15일엔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비서관이 “요양과 돌봄, 교육 등 복지 분야를 민간 주도로 고도화하겠다”고 발표해 돌봄 민영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김혜란 교장은 “영리로 가면 절대 안 돼요. 국가 직영 혹은 비영리 법인으로 돌봄이 이뤄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죽을 때까지 친구 동료들과
함께하다가 가는 게 우리들의 꿈이고
우리가 만들고 싶은 세상이에요”


시절은 녹록하지 않지만, 파란은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 농촌 지역에선 병원에 가는 것조차 힘겨운 상황이다. 대중교통도 불편해서 어르신들의 병원에 가려면 도시에 있는 가족들이 시간일 내 찾아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파란은 어르신을 병원에 데려다주는 동행서비스를 구상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조금 더 큰 꿈도 꾸고 있다. 자신들도 나이를 들어가고 있는 만큼 나이 들어 요양원에서 낯선 이들과 생을 마감하는 게 아닌 다른 대안을 찾고 있다. 그래서 파란은 노년공동체, 돌봄공동체를 꿈꾼다. 현재의 요양시설과는 다른 대안적인 시설. 개인의 삶과 존엄이 보장되고, 마지막까지 함께 어울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 그곳은 먼 곳이 아니라 지금 내가 사는 이곳이어야 하고, 치매 어르신도 일반인들과 어울려 일상을 즐길 수 있는 곳을 돌봄의 새로운 모델로 꿈꾸고 있다. 이런 미래가 무모해 보일지 모르지만, 이들에겐 강한 확신이 느껴졌다.

“죽을 때까지 친구 동료들과 함께하다가 가는 게 우리들의 꿈이고, 우리가 만들고 싶은 세상이에요.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꿈만 같지만, 파란사회서비스센터를 만들고, 수상한 학교를 만들 때 그랬던 것처럼 고민하고, 함께하다 보면 길이 생길 거라고 믿어요.”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