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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껍데기만 남은’ 총수 아들 투자사 인수한 현대해상

현대해상 콜센터가 갑자기 벤처투자사 인수한 배경은?

현대해상화재 ⓒ이승빈 기자


현대해상그룹의 100% 자회사 현대씨앤알(C&R)이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 아들 정경선 씨가 창립한 벤처투자회사 에이치지이니셔티브(HGI)를 인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대씨앤알이 사업적 연결고리가 전혀 없는 벤처투자사를 인수한데다 인수 직전 벤처투자 핵심 분야가 빠져 ‘껍데기만 남은 오너 아들 회사를 자회사가 떠맡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6일 현대해상이 공시한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현대해상의 계열사 현대씨앤알은 HGI의 지분 100%를 인수했다. 인수 대금은 222억원 규모다.

이번 인수를 통해 정경선 씨는 140억원 규모의 자금을, 정 씨 누나인 정정이 씨도 26억원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5월말 두 사람의 HGI 지분율이 각각 64%(125만3,043주), 11.89%(23만2,608주)인 것을 기준으로 추산한 것이다.

계열사의 총수 아들 회사 인수…사업적 연관성 불투명


현대씨앤알이 현재 운영하는 사업 분야와 접점이 전혀 없는 벤처투자사를 인수한 것이 가장 큰 의문점이다. 현대씨앤알은 건물관리, 콜센터 등 현대해상 계열사와 범현대가의 기업을 주요 고객으로 용역을 제공하고 돈을 버는 회사다.

HGI는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 아들 정경선 씨가 지난 2014년 창립한 벤처캐피탈 회사다. 수익을 목적으로하는 일반적 벤처캐피탈과 달리 사회적 기업을 대상으로 투자 및 컨설팅을 하는 등 수익과 함께 사회적 가치를 고려한 투자 활동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른바 '임팩트 투자'다.

현대씨앤알과 벤처투자의 사업적 연관성을 찾기는 쉽지 않다. 최근 벤처투자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인 적도 없다. 그런데 돌연 벤처투자사를 인수했고, 인수 회사는 특수관계인 소유였다.

현대씨앤알은 HGI를 인수한 배경에 대해 성장성과 ESG경영을 이유로 내세운다. 현대씨앤알 관계자는 "저희 회사가 겉에서 볼 때는 규모가 커지고 자본의 안정성이 있어 보이지만, 내부 직원들은 현대해상의 용역 회사라는 한계성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사업 방향을 고민하던 중 외부 컨설팅을 받았고, 벤처투자사를 인수하는 게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다는 것이 현대씨앤알측 설명이다. 최근 현대해상 그룹 차원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을 고려해 임팩트투자 기업 인수 방향을 설정했고, 검토 결과 HGI 인수로 이어졌다는 설명도 내놨다.

첫째, 신성장동력 확보 차원에서 벤처캐피탈 인수를 추진했고, ESG 경영 강화 트렌드에 맞춰 사회적 투자사를 사들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렇게 사들인 HGI 최근 사정을 살펴보면 모순된 부분이 여럿 발견된다.

성장성 측면에서 HGI는 사회적 기업에 주로 투자하는 만큼 수익성을 좇는 벤처캐피탈에 비해 이익이 크지 않다. 더구나 HGI는 지난해 10억원대의 적자를 내는 등 수익성에 문제가 생겼다. HGI 감사보고서를 보면 2022년 기준 10억4,752만원의 당기순손실과 16억5,004만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전자공시'(DIVA) 공시에도 HGI 2022년 매출액증가율은 -59.7%, 영업이익증가율은 -129.5%로 나타났다. 운영 중인 펀드 실적이 저조하다. '메가-HGI 더블임팩트 투자조합’ 2022년 영업이익은 -4억7,408만원, '신한-HGI 사회적기업 투자조합'은 -5,494만원, '에이치지이니셔티브 글로벌 헬스케어 펀드 1호'는 -5,830만원 등 손실을 보고 있다.

적자를 기록하는 회사를 인수하면서 성장성을 검토했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져 보인다.

에이치지이니셔티브 홈페이지에 창립자로 소개된 정경선 ⓒ에이치지이니셔티브 홈페이지


HGI, 인수 전 컨설팅 등 핵심 분야 분할...임팩트투자 껍데기만?


인수 직전 HGI가 벤처투자에 핵심적인 기능을 분리한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HGI는 지난 3월 말, 사내 컴퍼니빌딩·컨설팅 부문을 분할해 '헤렌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를 신설했다. 컴퍼니빌딩은 스타트업에 대해 단순 자금 지원을 넘어 직접 사업 경영에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경영에 참여해 회사를 직접 설립(빌딩)하는 등 적극적으로 스타트업 성장에 개입하는 것이다. HGI가 사회적 기업의 재무적 지속가능성을 컨설팅하는 회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임팩트투자’ 핵심 기능을 분리한 것으로 해석된다. HGI에서 떼어낸 핵심 부문은 정경선 씨가 지분 75.93%를 소유한 헤렌코퍼레이션의 차지가 됐다.

2022년에는 HGI에서 ESG컨설팅을 맡고 있던 자회사 'HGI파트너스'를 신설 6개월여만에 돌연 청산했다. HGI파트너스는 지난 2022년 1월 HGI의 손자회사로 설립, HGI의 ESG경영 컨설팅 부분인 임팩트본부를 2억원에 양수했다. HGI파트너스는 HGI로부터 연구용역 등을 받는 등 영업을 하다 같은 해 8월 해산을 결의했다.

결국, 현대해상 계열사는 주요 사업 부분을 떼어낸 총수 일가 회사를 200억원을 들여 사들인 셈이 됐다.

투자 활동이 정상적으로 이뤄졌는지 의구심이 드는 정황이 파악됐다.
DIVA 공시에 따르면 HGI는 지난 2018년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액셀러레이터(창업기획자) 자격을 획득했다가 2022년 말소됐다.

액셀러레이터는 전체 투자금액의 40~50% 이상을 창업 3년 이내 초기기업에 투자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다. 액셀러레이터 자격을 획득하면 개인투자조합 등을 만들 수 있고, 각종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다. HGI가 액셀러레이터 자격을 획득한 이후 의무 투자 비율을 지키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또 HGI가 중기부와 함께 진행하는 'TIPS' 운영이 지난 2021년 5월 종료됐다. TIPS(Tech Incubator Program for Startup)는 중기부가 정한 운영사가 창업기업을 발굴해 투자한 후 추천하면, 중기부가 별도 선정평가 후 기술개발(R&D), 창업 사업화 자금 등을 지원하는 벤처투자 육성 프로그램이다. HGI가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 운영이 인수 전, 이미 종료된 것이다.

다만 HGI는 중기부가 인정한 중소창업투자회사로, 위안부 할머니를 지원하는 디자인 제품 제작사 '마리몬드', 청송의 농산물 중개·유통사 '생생농업유통' 등 사회적 기업에 투자하는 등 임팩트투자 활동을 해온 것은 맞아 보인다. 투자 대상 중에는 육아 가정과 돌봄 교사를 연결해주는 아이돌봄 매칭 플랫폼 '째깍악어'가 16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하는 등 사업성을 인정받은 스타트업도 있다.

에이치지이니셔티브 홈페이지에 있는 회사 소개 ⓒ에이치지이니셔티브 홈페이지


HGI도 컴퍼니빌딩과 경영컨설팅을 더 이상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운영 중인 펀드에 집중하겠다는 것이 HGI의 설명이다. 정 씨가 HGI 설립 초기에 내세웠던 임팩트투자는 현재 운영 중인 펀드를 유지하는 정도만 남게 될 가능성이 있다.

HGI를 인수한 현대씨앤알은 ‘주요 부문을 제외한 인수’와 관련 “인수 전 논의를 마친 사항이고, 우리가 요청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략적으로 회사에 필요한 사업 영역인 임팩트투자 사업 부문만을 인수하고 싶어 했고 이에 따라 분할 가능 여부에 대해 사전 논의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현대씨앤알 관계자는 "저희가 필요한 건 창업 투자 분야였다. 그것과 연관 없는 부분은 인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고, 분할해서 매각하는 것이 가능하겠냐고 타진했다"면서 "(인수)자본 여력을 고려한 것"이라고 말했다.

인수 가격은 적정했을까


그간 한국 재벌은 총수 일가 회사 지분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방식으로 부당 지원해왔다. 더구나 비상장사는 측정 방식과 기준에 따라 기업 가치 변동폭이 크다.

현대씨앤알은 비상장사인 HGI에 대해 회계상 자산 등을 기반으로 기업 가치를 약 212억원으로 평가했다.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 약 9억원을 더 얹어 인수했다. 특수관계인 소유의 회사라는 배경이 있는 만큼 인수과정에서 HGI의 기업가치가 적정하게 평가됐는지에 대한 논란을 피해가기 힘들어 보인다.

이와 관련, 현대씨앤알은 ‘부당한 지원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정당한 사업 목적에 따라 적정한 인수대금을 치른 거래라는 것이다. 현대씨앤알 관계자는 “(부당지원)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밀어주기라고 하면 (HGI를) 비싸게 사야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세무조사에서 문제가 생길 텐데 그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말했다.

HGI 관계자도 "당사에는 특수관계인 외에 제3자인 주주들(기관 펀드)이 있었으며, 모든 주주들의 지분이 동일한 가격과 조건으로 인수됐다"고 해명했다.

정 씨가 이번 거래를 통해 확보한 자금 140억원을 어디에 썼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업계에선 그가 후계 구도를 염두에 두고 현대해상 지분 확대나 사업 자금에 투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 씨는 성인이 된 2006년 이후 현대해상 주식을 매년 1~2만주씩 매집해 오다 2018년 4만주, 2020년 8만3,500주, 2021년 5만주 등 매수량을 늘려오고 있다. 정 씨의 현대해상 지분율은 지난 2021년 3월 0.40%(35만6,600주)에서 0.45%(40만6,600주)로 소폭 상승했다. 지난 6일 현대해상 종가 30,050원 기준 122억여원 규모의 가치다.

HGI에서 손 뗀 총수 일가 아들


정경선 씨는 1986년생으로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현대가의 아산나눔재단에서 일 하다 2012년 사회적 기업 등을 후원하는 비영리 사단법인 루트임팩트를 창립하는 등 임팩트 투자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에는 HGI를 설립해 본격적인 임팩트 투자 사업을 벌였다. 6년 뒤인 2020년, 정 씨는 HGI 대표이사에서 물러나 이사회 의장으로 직함을 바꿨다. 정 씨는 이때 HGI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

HGI 설립자인 정 씨는 활동 무대를 실반그룹이 있는 싱가포르로 옮긴 상태다. 정 씨는 지난 2021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속가능한 미래 얼라이언스(SFA·Sustainable Future Alliance)’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시작할 것이라고 예고하면서 거점을 싱가포르에 둘 것이라 밝힌 바 있다.

그는 현재 싱가포르에 설립한 임팩트투자 기업 실반그룹의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업계에선 실반그룹에 대한 의문도 뒤를 잇고 있다.

[단독] 현대해상 총수 아들, 싱가포르에 ‘다단계 소유구조’ 투자사 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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