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광장에서 마무리한 ‘핵오염수 반대’ 예술인들의 여정

[핵오염수 방류 중단 예술로 걷기 5·6·7일 차] 거제에서 광양과 순천을 거쳐 여수까지

다섯째 날 10월 8일 해가 없어 바닷바람 시원한 날
[거제] 매미성-옥포항-지세포항


지역마다 핵오염수를 대하는 다른 모습


어젯밤 거제로 들어와 오늘 새벽 출정지인 매미성 앞에서 잠을 청했다. 이곳 매미성에서 출정식을 겸해서 예술행동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매미성은 바다의 자연재해를 막기 위해 개인이 쌓아 올린 벽이 유럽의 성 같다 해서 유명해진 곳이다. 다시 말해 사유지가 관광지가 된 곳이다.

매미성 앞으로 경남지역 예술가들이 아침부터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리고 예술행동을 위해 막 플랑을 펼칠 때였다. “나쁜 놈들아. 여기 어디 오염수가 있다고 와서 행패야”라며 어떤 아저씨 한 분이 소리를 지르면서 난입을 했다. 지역 주민이라고 한다. 난데없는 행동에 당황했고 준비 중인 한 분과 큰소리가 오가더니 분위기가 심각해 지려 했다. “난 이곳 이장인데 여기는 개인 사유지이니까. 여기서 이러지 말고 저기 바다로 내려가서 하시죠. 그리고 사진이나 영상에 여기가 나오면 안 됩니다. 바다만 나오게만 찍으시죠”라고 했다. 바다는 자갈 해변이다. 춤을 추고 해야 하는데. “아니 우리 다 망하게 하려고 그러는 거지 나쁜 놈들” 옆에서 계속 고함 질이다.“ 민예총 이사장이 이장에게 가서 저기가 밑으로 가서 하고 사진에 안 나오게 할테니 저분 좀 자제시켜 달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시작이 북춤이라 북춤을 추고 다음으로 해변으로 내려갔다. 톱 연주로 ”찔레꽃“이 울려 퍼졌다. 요란하던 분도 조용히 우리의 모습을 지켜봤다. 아침부터 관광객이 한명 두명 모여든다. 다음으로 경남 이사장님의 무용이 이어졌다. 자갈들을 밟고서 한 바퀴씩 돌며 뛰어다니면서 춤을 춘다. 마지막으로 시낭송이 이어졌다. 그리고 다 같이 모여서 외쳤다.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 중단 촉구 예술로 걷기 5일차 거제 1구간 출발!!“

핵오염수 방류 중단 예술로 걷기 5일 차 ⓒ한국 민예총

“핵오염수 때문에 수산물 못 먹겠다는 사람 있지만 나는 앞으로도 계속 먹을 것”이라고 말하던 이장님도 소리치던 분도 “이해해 줘서 고맙다. 이제 보니까 저희가 잘 못 생각한 것 같다”고 말해 주시고 악수를 청했다. “앞으로도 잘 지켜봐 주세요”라고 말한 뒤 헤어졌다. 우리는 여기에 싸우려고 온 것이 아니다. 이장님같이 자신이 생각해 오던 것을 한 번 더 다르게 느끼게 할 수 있다면 좋다. 거제는 아름다운 섬이다. 하지만 여기는 옥포 조선소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미 거제에서도 다르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 함께 걷는 분들도 거제뿐 아니라 창원, 진해, 마산, 통영 등에서 오셨다. 멀리서 보면 같아 보이지만 가까이 보면 다른 지역이다. 저마다의 자기 사는 방법이 있고 그 역사가 있다. 존중되고 인정되어야 한다. 핵오염수에 대한 생각도 느낌도 같을 수 없으며 달라야 한다. 똑같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거다. 오늘도 출발이 좋다.

다양성과 핵오염수


“지방을 무시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래서 우리도 서울처럼 잘사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하며 중앙의 지원을 많이 받기를 원한다. 이렇게 지방과 중앙을 구분하는 수직적인 형태는 발전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요즘은 지역이라는 말을 쓴다. 로컬이라고 해서 지역의 정신과 문화를 인정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서울처럼 잘사는 곳이 아니라 그곳에 맞게 서울보다 살기 좋은 곳이 되어야하는 것이다. 사람이 모두 똑같을 수 없고 똑같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며 사회는 발전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역이 똑같을 수 없고 똑같지 않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그 나라 전체가 발전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도 일방적인 강요로 바꾸어서 모두 똑같은 모습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권위적이고 제국주의적이다. 핵오염수를 보더라도 권력자가 안전하다고 믿으라고 말하면 안전한가 보다 해야 하는가. 일본의 문명이 한국보다 뛰어나니 모두가 일본인이 되라는 말을 받아들여야 했는가. 진정 안전하고 뛰어난 문명이라고 한다면 왜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을 불령선인, 공산 국가 전복세력이라 낙인찍고 찍어 누르기를 하면서 탄압을 했는가.

‘아름다운 포구를 널리 알린다’는 뜻의 지세포항을 바라보면서 다 같이 작게 제를 올리는 의식을 진행했다. 남해 용왕님 핵오염수 막아내겠습니다. 개발이라는 이름 하에 여느 항구와 비슷하게 변해가는 지세포항에 네온이 반짝인다.

여섯째 날 10월 9일 맑은 하늘에 이쁜 구름
[광양] 백운쇼핑센터-광양제철남초등학교-무지개다리-중마버스터미널-23호광장
[순천] 순천만국가정원 동문주차장-서문삼거리-오천광장 입구-건강보험공단 주차장


한글날 걷는 뜻은


전라도 권역으로 넘어왔다. 남해바다는 고요하게 언제나 거기 있음을 알린다. 동해와 부산과 남해의 차이는 사람들의 사투리 변화만큼 같음과 다름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동안 동해안 물결처럼 큰 보폭으로 걷기를 해왔다면 오늘은 남해바다처럼 잔잔한 걸음을 보이는 일정이다. 남해안 앞바다는 예로부터 왜구들의 침입이 잦았다. 후쿠시마의 오염수가 옛 왜구들처럼 우리들의 바다로 스며든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 광양에서는 옛날 왜구들의 침입에 일어났던 광양의 의병들처럼 지역의 많은 분이 한글날 휴일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중단을 위해 시간을 만들어 주셨다.

핵오염수 방류 중단 예술로 걷기 6일 차 ⓒ한국 민예총

그리고 예술행동도 여느 때와는 다르게 점심에 도심에서 이루어졌다. 양향진 광양민예총 준비위 대표의 환영인사로 시작하였다. 박현덕 경주준비위원장님이 창작탈춤을 선보이며 광양시민들의 박수를 받았다, 백영국 광양환경운동사무처장과 주연미 참교육학부모회 과양시지회장님의 발언이 이어지고 이성호 한국민예총 풍물위원장의 진도북놀이 공연이 있었다. 이성호 위원장은 수원에서 예술로 걷기 응원차 달려와 공연을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광양벅구놀이 풍물공연으로 신명난 한판이 만들어졌다. 점심을 먹고 순천만 국가 정원을 한 바퀴 걷는 것으로 오늘의 일정은 정리되었다.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예술로 걷기 일행이 와주어서 시작이라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래 시작하면 된다. 무엇이든 처음이 중요한 거다.

통일과 오염수


걷다가 보면 이번 행사가 민예총 통일위원회 주최로 되어 있는데 왜 통일위원회가 후쿠시마 핵오염수 문제에 나서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후쿠시마 핵 오염수 문제가 사람을 가려야하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굳이 간단히 이야기를 해보자는 이렇다. 통일의 이야기를 이념의 영역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통일 이야기를 하면 빨갱이로 취급하여왔던 분단체제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이다. 한민족이니까 통일해야 한다는 옛날식 ‘당위론’이 아니어도 통일은 전쟁이라는 대결에서 희생되어야 하는 것들을 없애고 실제로 큰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평화를 추구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꿈꾼다. 마찬가지이다. 후쿠시마 핵오염수는 일본과 한국간의 민족적인 갈등이 더욱 부각 되는 측면이 있지만 결국은 핵오염수로 인하여 발생할 엄청난 손실과 한반도의 인간을 포함한 수많은 생명 파괴라는 더 큰 비극을 초래할 우려이기 때문이며 이런 심각한 상황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실행하는 폭력에 반대하는 것이다.

핵오염수 방류 중단 예술로 걷기 6일 차 ⓒ한국 민예총

그리고 한국정부가 미국과 일본의 편에 서서 북을 적이라고 하고 분단체제를 더욱 공고해서 대결을 부추겨 한국을 전쟁의 공포로 몰아넣고 있듯이 후쿠시마 핵오염수도 일본의 편에 서서 홍보하고 이를 의심하는 이들을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국가전복세력이라고 때려잡는 공포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것이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후쿠시마 핵오염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지금 시행되고 있는 굴욕적이고 전혀 동북아의 평화에 도움이 안 되는 한미일 동맹을 흔드는 시작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내일은 이순신 장군과 함께 예술로 걷기 마지막 여정을 정리하고자 한다. 마지막이 아쉽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건 또 뭘까?

일곱째 날 10월 10일 청명한 하늘 좋은 날
[여수] 소호요트장-웅천대교-웅천공원-한국화약 입구-국동-돌산대교 입구-여객선터미널-이순신광장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마지막 날이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너무 금방 지나간 것 같기도 하고 시작한 날이 아득하기도 한 느낌이다. 동해에서부터 시작된 여정으로 본 우리나라의 해변은 그야말로 경탄할 만큼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바다를 의지해 혹은 바다와 함께 사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의 걱정과 분노를 보았다. 전라쪽으로 오면서 우리 걷기 행렬을 보는 시각이 많이 호의적으로 변한 걸 느낀다. 고생이 많다고 격려해 주시는 분들도 있고 차로 응원의 엄지를 내밀고 지나가시는 분들도 있다. 마지막 날이 쌓인 피로를 끌고 힘겨운 걸음이기보다 오히려 가벼운 발걸음이 되었다.

핵오염수 방류 중단 예술로 걷기 7일 차 ⓒ한국 민예총

그렇게 우리의 여정은 이순신광장에서 끝이 났다. 이곳은 임지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좌수영이 있던 곳이다.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내려다 보이 곳에서 전국의 예술인들이 한명 두명 모여들었다. 마지막 피날레는 전국 예술인들의 행동이다. 여수민예총에서 지전무를 시작으로 제정화 여수민예총이사장의 환영의 말씀과 액맥이 타령으로 이제까지의 모든 액을 핵오염수의 액을 물리치는 기운을 불러들였다. 다음으로 내가 짧게 그동안의 경과를 여수시민들에게 알려드리면서 아직 늦지 않았다고 우리에게 아직 시간이 있다. 예술인들이 계속 싸울 테니 함께하여 달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김평수 한국민예총 이사장의 현대무용이 이어졌다. 어디서나 사람들을 붙드는 힘이 있는 공연이다. 작음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대단하다. 다음 손병휘 서울민예총 이사장은 앞서 무용을 칭찬하면서 경쾌하고 맑은 목소리로 노래로 자작곡과 “사랑으로”를 불러 주었다. 홍성민예총의 윤해경 님의 우리바다에 들어오는 핵오염수를 씻는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광주민예총 내벗소리예술단의 젊은 국악인들의 거문고 연주와 가야금 병창으로 예술행동의 공연은 절정에 다달았다.

거대한 기가 들어온다. 더 넓은 이순신광장을 가득 메울 정도의 깃발이다. 힘찬 풍물가락과 함께 휘날리는 기수놀이를 보면서 우리 예술인들의 행군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알리는 진군의 나팔소리라 느껴졌다. 이순신 장군께서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다고 하신 것처럼 지나온 예술인들의 모습에서 새로운 각오들이 만들어졌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난중일기를 끝내며


그동안 함께 해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린다. 펀딩 참여와 함께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신 많은 이들 덕분에 지치지 않고 모든 일정을 완수할 수 있었다. 예술로 걷기 난중일기는 여기까지이다. 난중일기를 통해서 예술로 걷기를 하면서 들었던 화두들을 하나씩 던져보았다. 물론 더 많은 화두가 지금도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예술로 걷기가 우리의 해변을 걸으면서 거기서 만나는 모든 것들을 직접 다시 느껴보고 새롭게 보고 지역민의 현재 정서를 느껴보면서 예술의 접점들을 만들어 보려는 의도였기에 가능한 생각들이었다. 우리의 의도와 맞지 않게 약간의 오해가 만들어진 것들도 있지만 (너무 자기희생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인데 그렇게 비친점이 있다면 양해를 구합니다.) 대부분 지역에서 만족해하시고 성과적으로 보아주셨다. 나 또한 더 다양하게 예술창작 행위가 결합한 걷기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여 본다. 이사장님은 세련되고 조직적인 방법으로 발전시켜서 매년 예술로 걷기를 진행하여 보자고 욕심을 낸다. 아무쪼록 우리의 작은 걸음이 우리를 지켜본 이들에게 새로운 출발의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을 것 같다. 핵오염수가 방류가 중단되고 우리의 바다가 다시 깨끗해지는 그날까지 모든 분들의 건승을 빈다.

핵오염수 방류 중단 예술로 걷기 7일 차 ⓒ한국 민예총


핵오염수 방류 중단 예술로 걷기 7일 차 ⓒ한국 민예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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