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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에너지 빠진 반도체 클러스터, 윤석열 정부는 ‘속전속결’ 강행

RE100 확산으로 산업 경쟁력 위축 우려…입지 재검토 필요성에도 예타 면제 추진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 예정지인 경기도 용인시 남사읍. 2023.03.15. ⓒ뉴시스

윤석열 정부의 역점 사업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둘러싸고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다. 탄소중립이 기업 경영의 핵심 사안으로 대두되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공급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 가면 삼성전자가 반도체를 만들어도 팔 수 없다는 위기감이 감돈다. 애초 전력 수요가 초과 상태인 수도권에 대규모 산업단지를 조성한다는 구상이 섣부르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부는 사업 추진 과정에서 거쳐야 할 검토 절차까지 면제하면서 서두르고 있어 우려를 키운다.

1일 정부와 국회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LNG 발전소 6기를 신설해 전력을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가첨단산업 육성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710만㎡(215만평) 규모로 조성된다. 삼성전자가 2042년까지 300조원을 투자해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장 5개를 구축한다. 소재·부품·장비와 팹리스(설계) 업체 150개가 입주할 예정이다.

정부의 LNG 발전소 신설 방안으로 반도체 수출 경쟁력이 저해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공장에서 쓰는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100% 대체하는 RE100에 역행한다는 것이다. 파운드리는 대표적인 수주 산업이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고객사인 애플은 자사뿐 아니라 협력사도 RE100을 준수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기한으로는 2030년을 제시했다. 이후에는 재생에너지로 만든 부품만 납품받겠다는 얘기다.

RE100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삼성전자의 차량용 반도체 수요처인 GM과 BMW도 RE100 회원사다. 이산화탄소를 뿜어내는 LNG 발전소로 가동되는 공장에서 생산되는 반도체는 점점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삼성전자도 지난해 9월 RE100에 가입했다. 오는 2027년까지 외국 사업장에서 재생에너지 전환을 완료하고, 2050년부터는 한국 공장 전력도 재생에너지로 전부 전환할 계획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공급 계획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탄소중립위원회는 최근 기자회견을 열어, 클러스터 내 LNG 발전소 신설 계획을 취소하고 RE100을 고려해 재생에너지 공급 계획을 수립하라고 요구했다. 위원회는 “세계적 흐름에 동참하지 못하고 재생에너지 사용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한국 반도체 기업은 가격경쟁력과 거래처를 잃거나 결국 생산 기지의 외국 이전이 불 보듯 뻔하다”면서 “한국 반도체 기업이 RE100에 참여하지 않으면 반도체 제품의 수출액이 31% 감소할 것이라는 분석도 보고되고 있다”고 했다.

애플이 구축한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애플

RE100 거스르는 정부…“대기업 공장 외국으로 나갈 것” 경고

산업단지에 태양광 발전 설비를 구축해 RE100에 대응할 수 있다. 공장 지붕과 주차장 등 유휴부지를 활용할 수 있다. 일례로 한국산업단지공단은 김해 골든루트 산업단지 입주기업의 건물 지붕에 태양광 설비를 설치하도록 했다. 지자체 단위에서도 태양광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경기도는 ‘산업단지 RE100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도내 193개 산업단지에 설치 가능한 태양광 잠재량은 7.6GW로 추산되는데, 이 중 2.8GW를 2026년까지 보급할 계획이다. 경기연구원도 정부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공급 방안에 대해 신규 LNG 발전소 비중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를 서둘러 설치할 것을 제언한 바 있다.

태양광 설치 구축을 위해 제도적인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다예 녹색연합 활동가는 최근 관련 토론회에서 산업단지와 입주기업을 대상으로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를 제안했다.

산업단지에서 쓰는 모든 전력을 단지 내 태양광 발전으로 충당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기업이 RE100을 달성하려면 산업단지 외부에서 재생에너지를 끌어와야 한다. 문제는 끌어올 재생에너지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8%를 밑돈다. 산업단지 조성과 입주기업 투자가 마무리되는 2050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서 발생하는 전력 수요는 10GW로 예상된다. 수도권 전력 수요의 25%에 달하는 규모다.

재생에너지 설비 확충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정부는 거꾸로 간다. 지난 1월 확정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2~2036년)에 따르면,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21.6%를 목표로 한다. 전 정부 계획은 30.6%로, 윤석열 정부 들어 오히려 8.6%포인트(P) 떨어졌다. 파운드리 1위 기업 TSMC를 보유한 대만은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20% 달성 시점을 한국보다 5년 빠른 2025년으로 잡고 있다. 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지원해야 할 정부 정책마저 경쟁국에 뒤처지는 실정이다.

정부는 재생에너지에 대한 지원도 축소하고 있다. 산업부의 재생에너지 지원 항목 예산을 올해 약 9,300억원에서 내년 5,700억원으로 3,600억원(38%) 감액했다. 구체적으로는 신재생에너지 보급 지원 사업 예산을 약 900억원(35%), 신재생에너지 금융 지원 사업 예산을 1,300억원(27%) 깎았다. 신재생에너지 발전 차액 지원 사업은 1,400억원(65%)이 삭감됐다.

정부가 탄소중립 기류에 역행하면서 국가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주요 기업 공장이 재생에너지 인프라가 구축된 외국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 기업은 국제적인 경영 환경을 고려해 공장입지와 가동률 등을 결정한다. 실제 미국이 자국산 제품을 우대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시행하면서 한국의 반도체와 완성차, 배터리 기업이 미국 현지 투자를 늘리고 있다. 한국에서 RE100 달성이 어려워지면, 삼성전자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공장을 축소하고, 대신 외국에 투자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임재민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은 “대기업은 한국에서 RE100 여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외국에 공장을 지으면 된다”면서 “한국에서 제품을 만드는 데 대한 압박이 심해지면, 국내 공장 가동률을 줄이고 외국 공장 가동률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급망 하위 부분에 위치한 중소·중견기업은 외국으로의 공장 이전도 쉽지 않아 여파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RE100 여건이 조성되지 않을 때 실질적인 피해는 지역 경제과 노동자들이 보게 된다”고 경고했다.

지역별 누적 태양광 설비 용량 현황 ⓒ한국에너지공단

여당도 입지 문제 삼는데, 정부는 예타 면제 추진

이미 전력 수요가 많은 수도권에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데 대해,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산업단지 입지를 선정할 때는 인력 수급과 관련 산업 공급망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게 되는데, 반도체 공장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게 전력망이다. 천영길 산업부 에너지정책실장은 최근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공급 방안 간담회에서 “반도체 산업은 우리 경제의 핵심 전략산업이고 그 필수 조건이 안정적 전력공급”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안정적 전력공급 측면에서 용인은 불리하다. 현재 주요 전력원인 석탄화력 발전소와 원자력 발전소는 해안가에 몰려 있다. 재생에너지는 호남 지역 비중이 높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전북·전남·광주 지역의 태양광 발전 설비 용량은 약 9.3GW 규모로, 전국 22.1GW의 42%를 차지한다.

용인에 추가적인 전력망을 구축하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인근에 전력 수요를 채워줄 발전소를 세우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비수도권 지역에서 전력을 끌어와야 한다. 정부는 강원·경북·호남 지역 발전소와 반도체 클러스터를 잇는 송전선로를 깔아 전력을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송·변전 설비 구축이 수반되는 전력망 구축은 소요 시간이 길고, 주민 반발도 극심하다.

산업부와 여당도 주요 산업단지가 수도권에 집중돼 발생하는 전력망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지난 6월 국회를 통과해 오는 2024년 시행되는 분산에너지 특별법은 전력 수요지 인근에 위치한 발전소에서 만든 전력을 해당 지역에 공급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력수급 안정성을 높이는 한편, 국가균형발전에 대한 고민도 담긴 법안이다.

지난 4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장영진 산업부 1차관은 법 제정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전력 수요가 몰린 수도권에 전력계통을 설치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규모 전력 수요시설들이 수도권이 아니라 발전원 인근으로 분산되는 효과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고 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언급되기도 했다. 전력망에 대한 고려가 미흡했던 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민의힘 중진으로 법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도읍 의원은 ‘반도체 클러스터를 충청도·호남·부산에 배치할 생각은 안 했느냐’는 취지로 따져 물었다. “결국 지방시대는 구호에만 그치는 것이냐”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장 차관은 “업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인력”이라면서 “반도체 산업단지를 인력 수급이 어려운 비수도권 지역으로 하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무리가 따른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장기적으로는 이런 제도를 통해 산업시설이 지역으로 분산되고, 관련 대학을 활용해 인력을 양성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전력망과 국가균형발전 측면에서 문제가 있지만, 인력 수급이 원활한 수도권에 공장을 지어야 한다는 기업들 요구에 따라 결정된 셈이다.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의 타당성을 면밀히 따져봐야 하는 와중에, 정부는 속전속결로 사업을 진행하려고 한다. 지난 18일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대한 공공기관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시행을 맡고 총사업비가 2천억원 이상으로, 공공기관 예타 대상이다. 공공기관 예타 일반지침에 따르면, 산업단지 조성 사업의 적절성을 검토할 때 입지 선정과 기반시설 계획을 고려하게 돼 있다. 기반시설 계획에는 전력공급과 용수시설 등이 포함된다. 또한 공사비와 운영비를 추정할 때도 기반시설 설치 비용을 반영해야 한다.

앞서 지난해 말, 국회에서 예타 면제 대상을 확대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기존 국가첨단전략산업법상 예타 면제 대상은 전략산업 관련 연구개발(R&D) 사업으로 제한됐는데, 법 개정을 통해 산업단지 조성 사업으로 확대됐다.

김정호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예타 면제와 관련해 “대통령실 옮기듯 주먹구구식으로 추진하는 모양새”라며 “민간 투자라고 해도 300조원이면 정부 예산의 절반 규모에 해당하는데, 제대로 된 검토와 조율 과정 없이 추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근본적으로 입지 타당성을 다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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