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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반올림 활동가 이종란 노무사 “삼성과 싸움 이끈 건 노동자와 그 가족”

황유미의 죽음으로 시작된 16년의 투쟁 “모든 죽음 막을 순 없었지만, 더 큰 피해 막아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가 29일 서울 금천구 반올림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3.29 ⓒ민중의소리

“삼성전자 베트남 협력회사에서 37명이 메탄올 중독 판정을 받았어요. 한 명이 죽었고, 여러 노동자가 위독해요. 또 실명 등 더 많은 피해자가 나올 수 있는 심각한 사고예요. 2016년 경기 부천의 삼성전자 협력회사에서 메탄올 중독사고로 6명의 20~30대 노동자가 실명한 적이 있어요. 그 때 삼성이 이런 사고가 안 나도록 협력사를 관리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또 이런 사고가 벌어진 겁니다. 그런데, 삼성은 관리 책임을 지진 않고 ‘우리도 몰랐다’고 해, ‘삼성은 사기 피해자’라는 식으로 기사가 도배됐어요.”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상임활동가 이종란 노무사는 인터뷰를 시작하기도 전 이날(29일) 오전 삼성본관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 협력업체 메탄올 중독 사망사고 규탄 기자회견’ 이야기부터 꺼냈다. 삼성전자는 과거 국내 협력회사에서 메탄올 사고가 벌어지자 협력업체들도 관리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똑같은 사고가 베트남에서 또 일어난 것이다. 그는 “삼성은 자신들도 피해자라며 발뺌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반올림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의 “삼성은 메탄올 실명사고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요구하자, 업계 관계자라는 익명의 인물이 등장해 삼성은 메탄올을 에탄올로 속여 판 사기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베트남 메탄올 사고에 애꿎은 삼성전자 ‘불똥’… ‘직접 관련 없는 업체’”라는 투의 보도가 여러 매체를 통해 나왔다.

이런 언론 보도와 삼성의 대응은 이 노무사를 비롯한 반올림 활동가들에겐 익숙하다. 삼성과 반도체공장 노동자의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두고 10년 넘게 이어진, 그리고 아직 완전하게 마무리되지 않은 그 싸움 내내 삼성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반올림 상근활동가로 삼성을 상대로 한 쉽지 않은 싸움에 함께해 온 그와 긴 이야기를 나눴다. 

그를 반올림 활동에 발 담그게 한 건, 
고 황유미 씨 아버지 황상기 씨와의 만남


이 노무사가 반올림 활동을 시작한 건 지난 2007년이었다. 그해 3월 스물세 살 황유미 씨가 급성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황유미 씨는 고3 졸업반이던 2003년 10월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공장에 입사해 반도체 세척업무를 담당했다. 화학약품이 담겨있는 바구니에 반도체를 넣다 뺐다 하는 수작업이었다. 그렇게 일한 지 2년도 채 지나지 않은 2005년 5월부터 유미 씨는 각종 증상에 시달렸다. 피부에 멍이 생기고 구토와 피로, 어지럼증을 느꼈다. 몇 개월 뒤엔 ‘급성 골수성 백혈병 M2’라는 진단을 받았다. 골수 이식 수술을 했지만 백혈병은 재발했고, 이후 1년 5개월을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

지난 2014년 삼성반도체 피해자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관람하기 위해 영화관을 찾아 황유미씨의 유품을 꺼내 설명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는 딸의 죽음에 삼성의 책임이 있음을 알리기 위해 이때부터 동분서주했다. 시민사회단체, 언론사, 정당 등을 찾아다니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비극은 계속됐다. 손녀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황상기 씨의 어머니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고, 부인은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다. 황상기 씨는 그 같은 어려움 속에서 운명처럼 이 노무사를 만났다.

당시 이 노무사는 수원에 있던 민주노총 경기법률원에서 일하고 있었다. 1999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2002년 노무사 자격증을 땄다. 그가 대학에 다닐 때 한국엔 신자유주의 광풍이 몰아쳐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파견제 근로’ 등 생소한 단어의 등장과 함께 불안정 노동 상태로 서서히 빠져들었다. 1996년 노동법 날치기로 정리해고제가 도입되고, IMF 구제 금융 시기를 지나며 대량 해고가 난무했다.

그는 경영학과를 나왔지만, 경영자의 관점이 아닌 노동자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졸업 뒤 친구의 소개로 노무사가 됐다. 노무사 자격을 딴 지 5년 정도 됐던 2007년,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던 다산인권센터를 통해 “삼성과 싸우는 이들을 만나고 싶다”는 황상기 씨의 호소를 듣게 된 것이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선 화학물질로 하는 부품 세척 작업을 2인 1조로 했어요. 황유미 씨와 같이 일하던 동료 이숙영 씨도 백혈병으로 사망했다는 거예요. 황상기 씨가 딸이 투병하는 동안 수소문해보니 두 사람 외에도 백혈병에 걸린 사람이 몇 사람 더 있었다고 합니다. 산업재해가 분명해 보였지만, 회사에 산재 처리를 이야기했더니 산재가 아닌 개인 질병이라며 남은 치료비 지원을 약속했데요. 당시 남은 치료비가 4천만 원가량 됐다고 합니다요. 그런데 나중엔 약속을 어기고 500만 원 정도를 주고 사건을 덮으려고 했답니다. 황상기 씨는 만약 삼성에 노동조합이 있었더라면 화학약품이 안전한지 확인을 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딸은 죽지 않았을 거라면서 ‘노동조합이 없어 내 딸이 죽은 것일 수도 있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삼성을 상대로 싸우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으셨던 겁니다.”

서슬 퍼런 권력 ‘삼성공화국’과 싸우다
“사실 그때는 앞이 보이지 않았어요”


황상기 씨의 간절한 호소에 이 노무사는 기꺼이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다. 민주노총 경기법률원과 다산인권센터는 여러 단체에 대책위원회를 꾸리자고 제안했다. 이런 호소에 많은 단체가 뜻을 같이 해 2007년 11월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2008년 3월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으로 변경)가 꾸려졌다. ‘삼성’을 상대로 하는 힘든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이종란 노무사(사진 제일 오른쪽)의 대학시절 모습. 같은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 ⓒ이종란 노무사 제공

같이 일하던 젊은 두 노동자가 백혈병으로 사망했다는 사실 자체만 가지고 싸움을 시작했다. 다른 피해자 유가족은 만나보지도 못한 상태였다. 더구나 이 시절 삼성은 ‘입법’, ‘사법’, ‘행정’, 그리고 ‘언론’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 전반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 ‘삼성 공화국’이란 말이 있을 정도였다. 지금도 그 권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당시는 더욱 서슬이 퍼랬다.

이 노무사는 그런 상황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는 2004년 경기일반노조에서 활동했을 당시 삼성 관계사인 신세계 이마트에서 캐셔 노동자들과 노조를 만들려다 해고됐다. 2006년부터 민주노총 경기법률원에서 활동하면서는 경기 지역 삼성전자 노동자들을 상담하는 과정에서 악명높은 그들의 노무관리 실체도 보았다. ‘무노조 경영’을 표방하는 삼성은 노조를 결성하려는 노동자들을 사찰하는 등 불법을 저질러 수차례 논란을 일으킨 바 있었고, 관련해 재판에서 유죄를 받기도 했다.

“처음엔 ‘삼성 공화국’ 하에서 우리의 싸움이 실패하더라도 산재를 주장하는 것만으로노동자들의 건강권과 인권에 보탬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어요. 그래도 사건의 진상은 규명해야 하는데, 사실 그때는 앞이 보이지 않았어요. 반도체 공장에서 사고가 일어났는데, 사고가 난 작업장은 물론 작업에 사용된 화학물질 정보도 ‘영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진상을 규명할 증거를 찾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어요.”

대책위 출범 기자회견에서
기자 사칭하며 사찰한 삼성 직원
삼성 반도체의 진실이 드러나자
하나 둘 모인 피해자들


삼성의 거대한 벽을 뚫을 수 있는 수단은 많지 않았다. 일단 사실을 알리는 게 첫 번째였다. 다산인권센터, 민주노동당 경기도당 등 대책위에 소속된 시민사회단체와 진보정당이 모여, 2007년 11월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공장 정문 앞에서 대책위 발족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날 삼성 직원이 언론사 기자를 사칭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사진을 열심히 찍는 사람이 있어서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뉴시스 소속 객원기자’라고 했어요. 근데 현장엔 뉴시스 기자가 와 있었거든요. 그분이 ‘우리 소속 기자가 아니다’라고 해 추궁하니깐 삼성 직원이었던 겁니다. 이게 보도되면서 정말 뜻하지 않게 사건이 알려지게 된 거예요. 기사가 나간 뒤 삼성반도체 산재 피해자들이 연락을 해왔어요.”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가 29일 서울 금천구 반올림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3.29 ⓒ민중의소리

사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거나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일을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상당히 위험한 작업이지만, 삼성전자는 그 작업이 위험하다고 알리지 않았다. 위험한 화학물질을 다루는데도, 안전 교육은 이뤄지지 않았다. 심지어 당시 삼성전자는 기흥 반도체공장이 1991년 11월부터 1998년 8월까지 104개월간 재해가 단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아 ‘세계 최고의 안전사업장’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고 대대적으로 홍보까지 했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자신이 아픈 것은 개인의 불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건이 알려지자 이들은 용기를 냈다. 혹시나 하고 의심은 했지만, 나서지 못했던 이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현직의 노동자는 물론 퇴사한 지 얼마 안 되는 노동자, 투병하고 있는 노동자,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노동자의 유가족까지 많은 이들이 함께했다. 그런 힘들이 모여 한 걸음이 내딛어 졌다. 2008년 4월 투병 중인 노동자와 사망 노동자의 유가족 등 4명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한 것이다. 이는 2007년 6월엔 황상기 씨가 근로복지공단에 ‘유족 급여’를 신청한 데 이어 두 번째였다. 2008년 10월엔 삼성전자 온양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악성림프종이 발병해 투병 중이던 노동자도 산재를 신청했다.

“노동자들이 모이기 시작하니깐 삼성은 싸움에 함께 한 시민단체 등을 거의 간첩 수준의 ‘불순 세력’으로 몰아갔어요. 민주노총 등 외부 불순 세력들이 사실을 왜곡해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고, 내부 방송·교육에서 이야기했다고 하더라고요. 노동자들을 통해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처음엔 산재 관련 제보를 하라는 선전물을 받는 이들이 별로 없었어요. 심지어 퇴직 노동자들조차도 삼성을 두려워하며 제보를 꺼렸어요. 나중엔 고생한다는 이들이 조금씩 생겼지만, 처음엔 분위기가 냉랭했어요”

2년 끌다 나온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인정
“삼성에겐 면죄부, 피해 노동자와 가족에겐 피눈물”


어렵게 산재 신청을 했지만, 싸움은 순조롭지 않았다. 산재임을 밝히는 역학조사부터 난항이었다. 첫 역학조사는 2007년 7~11월 동안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했다. 황상기 씨가 신청한 유족 급여 심사를 위해 근로복지공단이 역학조사를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황유미 씨가 일하던 때와 공장의 환경이 달라져 있었다. 조사단도 환경이 달라져 정확한 조사가 어렵다면서 전체 반도체 노동자의 암 발생 위험도를 평가하는 역학조사 뒤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2008년 12월 29일 삼성반도체 등 6개 회사 9개 반도체 사업장 전·현직 근로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반도체 제조공정근로자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반도체 공장 여성 근로자의 비호지킨림프종 암 발생률이 일반인을 1로 봤을 때 2.67을 기록해, 2배 이상 높았다. 특히 조립공정의 생산직 여성노동자들의 경우엔 5.16배에 달했다. 하지만, 백혈병의 발생과 사망 위험은 일반인과 비교했을 때 통계학적으로 유의한 증가는 없는 걸로 나타났다고 안전보건공단은 밝혔다.

지난 2016년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 있던 반올림 농성장에 함께하고 있는 이종란 노무사 ⓒ민중의소리

근로복지공단은 2009년 5월 피해 노동자들의 발병과 삼성 반도체 공장의 연관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산재를 신청한 지 1~2년이 지난 때였다. 힘겨운 싸움을 이어온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당시 반올림은 성명을 통해 “삼성에게 면죄부를 주고, 육체적 경제적 정신적 고통 속에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피해노동자와 그 가족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노동부 근로복지공단의 불승인 결정을 어찌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동안 우리는 삼성반도체 백혈병이 직업병임을 입증할 증거들을 역학조사 담당기관인 산업안전보건공단과 산재 결정 기관인 근로복지공단에 수 차례 제출해 왔다. 또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역학조사에 많은 문제점이 있음은 분명하지만, 적어도 법적으로 업무 관련성을 인정할 수 있는 증거들은 충분히 확인되었다”면서 근로복지공단의 결정을 비판했다.

새하얀 방진복과 마스크에 가려진 진실
‘클린룸’은 노동자들에게 ‘클린’하지 않았다


근로복지공단이 나서서 삼성에게 면죄부를 주는 ‘삼성 공화국’의 위력은 피해 노동자들과 가족들을 힘겹게 했다. 그외에도 반도체 산업의 위험성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반도체 공장 노동자가 세척 작업을 하는 그곳은 ‘클린룸’이라 불린다. 밀폐된 공간에서 노동자들이 새하얀 방진복를 입고 마스크를 낀 채 눈만 내놓고 일하는 모습은 말 그대로 ‘클린’해 보였기 때문이다.

삼성은 이런 이미지를 노동자들의 산재 피해를 감추는 데 활용했다. 이들은 산재 논란이 커지자 2010년 4월 내외신 기자 100여 명을 골라 기흥공장 내부를 취재하게 했고, 이후 ‘클린룸엔 티끌도 못 들어가게 통제하고 있다’는 식의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입은 방진복은 노동자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제품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클린’하지 않은 환경에서 노동자들은 화학물질과 방사선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제철소에선 쇳가루가 날리고, 탄광에선 석탄 분진이 눈에 보이게 쌓이지만, 반도체 공장에선 그런 게 눈에 안 보여요. 방진복이나 마스크가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거든요. 반올림 투쟁하면서 알게 된 건데 노동자들이 부품 세척 작업을 할 때 사실은 ‘방독 마스크’를 착용했어야 한데요. 황유미 씨는 그렇지 못했어요.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다곤 하지만, 이번에 베트남에서 일어난 사고처럼 위험은 외주화되고 있어요. 외주기업에선 지금도 제대로 된 안전장치 없이 저임금 노동에 내몰리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민주노총이 2015년 7월 15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연 노동자 서민살리기 총파업대회에서 반도체 노동자들이 방진복을 입은채 율동하고 있다. 방진복은 반도체 노동자들의 상징으로 매우 안전해 보이지만, 이 복장은 사실 노동자들이 아닌 제품을 보호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졌다. ⓒ민중의소리

삼성이 가진 돈의 위력도 엄청났다. 산재를 신청하고, 재해 판정에 시간이 걸리면서 삼성은 피해노동자와 가족들을 상대로 회유를 시도했다. 산재 신청을 한 피해자 어머니에게 산재 판정 후 받을 수 있는 금액 이상을 주겠다며 ‘반올림’과의 관계를 끊으라고 했다고 한다. 산재판정을 받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기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황유미 씨 아버지 황상기 씨를 향해서도 회유를 시도했다.

“그분들은 회유와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으셨어요. 반도체 노동자들의 투쟁을 이끌어 온 건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이었습니다. 당사자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투쟁이었습니다”

찾을 수 없을 것 같던 증거가 나오다
서울대 “위험성 평가” 문건 공개

피해자와 가족들은 소송에 나섰다. 2010년 1월 서울행정법원에 유족 급여 신청과 요양 신청을 반려한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 달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선 반도체 작업장에 독성 물질이 있음을 증명해야 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조금씩 증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해 9월 참여연대는 기자회견을 통해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의 노출평가 부문 자문 보고서’(이하 보고서) 전문을 공개했다. 공개된 보고서는 삼성, 하이닉스, 엠코 코리아 반도체 3사가 공동으로 2009년 서울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이뤄진 역학조사 결과 가운데 일부였다.

중국 시안에 위치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내부 모습(자료사진) ⓒ제공 : 뉴시스

공개된 보고서에 따르면 기흥공장(5라인)에서는 총 99종의 화학물질 제품을 사용하고 있었으나 이 중 자체적으로 성분을 확인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노동자들이 유기화학물질에 노출될 위험성이 상당했을 것으로 보였다. 아울러 기흥공장 5 라인의 경우, 작업환경측정을 통해 노출 수준을 관리하는 물질이 단일화학물질 83종 중 24종(28.9%)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지는 등 삼성전자의 관리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또 보고서는 “반도체 공정 근로자는 매우 다양한 독성수준과 노출수준, 측정 및 분석 방법 유무 등의 특성이 다른 많은 유해인자에 복합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며 “생물학적 모니터링을 가능한 자주하여 노출수준을 점검하고 노출을 가능하면 억제하기 위한 공학적인 대책과 보호장치 착용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보고서 내용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다가 제보를 통해 극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이 보고서는 후일 재판에 증거로 제출됐다. 그리고, 2011년 6월 서울행정법원은 산재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소송에 참여한 5명 중 2인 1조로 같이 일하다 사망한 황유미 씨와 이숙영 씨 유족에겐 “반도체 공장에서 세척 작업을 해서 유해 화학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승소 판결 했다. 하지만, 도금 공정 등에서 일했던 나머지 원고 3명에 대해서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 연구 기관 분석 결과 내놓은 삼성
노동자들 백혈병과 근무 환경 무관함 주장


“당시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 인정을 요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었어요. 항소하지 말라고 정말 간절하게 외쳤어요. 우리가 다 승리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사망한 두 가족은 산재를 인정받았으니 항소하지 말라고 그랬죠. 그런데 결국 2011년 7월 14일 항소했어요. 더 황당했던 건 근로복지공단이 항소한 날 삼성전자의 의뢰를 받은 미국 안전보건 컨설팅 회사인 인바이론이 삼성 반도체 사업장 조사결과를 발표했어요.”

인바이론은 2011년 7월 14일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사업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전자 의뢰로 지난해 7월부터 1년간 반도체 생산라인의 근무환경을 조사한 결과라며 “백혈병 발병과 근무환경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같은 날 근로복지공단은 항소에 나섰다.

피해자 가족들이 ‘근로복지공단’을 ‘삼성복지공단’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마치 삼성을 변호하는 변호사 같았다. 이 노무사는 “삼성은 행정소송에 보조참가인 자격으로 함께 해 실질적으로 재판을 주도하다시피 했어요. 말만 행정소송이지, 사실은 삼성이 고용한 대형 로펌 변호사들이 나선 민사재판이었어요”라고 회상했다. 언론도 거들고 나섰다. 인바이론의 조사결과를 전하며 재판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고 보도했다.

반도체노동자의 날이었던 2013년 10월 28일 오전 서울 영등포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반올림)과 피해자들이 기자회견을 마치고 이재갑 이사장과 면담을 하러 공단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 제일 왼쪽이 이종란 노무사. ⓒ김철수 기자

근로복지공단 항소로 싸움은 계속됐지만, 1심 승소판결만으로도 삼성은 긴장했다. 의외의 결과로 받아들인 것이다. 결국, 꿈쩍도 하지 않던 삼성은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이던 2012년, 협상 이야기를 꺼냈다. 법원 판결까지 가지 말고, 조정을 거쳐 해결하자는 게 삼성의 생각이었다. 이 노무사는 이런 제안이 “법정에서 업무와 질병 간의 인과관계가 있는지를 판단하지 말고, 화해라는 방식으로 보상하고 끝내자는 것”이었다고 평했다.

연이은 산재판정에 삼성, 협상에 나서다

피해자 가족들은 이를 거부했다. 판결을 통해 산재 인정을 받아 역사에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법정 조정이 아닌 법정 바깥에서의 대화는 가능하다는 입장을 2013년 1월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다. 이후 양측의 협상이 시작됐다. 2012년 4월과 12월,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온양공장에서 일하다 재생불량성 빈혈 판정을 받은 노동자와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유방암으로 사망한 노동자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이 산재판정을 내린 것도 사측이 협상에 나서게 된 요인이었다.

협상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13년 3월, LG반도체 청주공장에서 일하다 ‘만성골수단핵구성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노동자가 산재판정을 받았다.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노동자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이 처음으로 산재를 인정한 것이다. 그러면서 협상은 본격화됐다.

그럼에도 삼성은 한편에서 피해자 가족들을 상대로 갈라치기에 나섰다. ‘왜 반올림 활동가들의 말에 휘둘리냐?’, ‘반올림은 피해자들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식의 주장을 쏟아냈다고 이 노무사는 전했다. 반올림은 백혈병 등 일부 질병만이 아니라 다른 희귀질환 피해자들도 보상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삼성은 계속 피해자들을 흔들며 이런 주장을 막으려 애썼다고 한다. 결국, 반올림엔 황상기 씨를 비롯해 두 가족만 남게 됐고, 나머지 피해자 가족들은 별도의 가족대책위를 꾸렸다.

“그때 많이 힘들었어요. 삼성 입장에선 자신들이 뜻하는 대로 상황이 흘러간 셈이에요. 그렇게 되면서 반올림 활동을 비난하는 투의 보도도 늘어났어요.”

협상은 난항을 겪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삼성전자 반도체 등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가 꾸려졌다.

힘이 된 대법과 고법 판결, 
‘발병 경로가 의학적 입증 안 되도 
업무와 발병 연관성을 추단 가능’

이즈음 피해자 가족들의 산재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1심에서 패소했던 가족들은 항소심에서도 산재를 인정받지 못했지만, 황유미 씨 가족 등 두 가족은 승소했다. 2014년 8월 서울고등법원은 피해자들이 “업무 과정에서 벤젠과 전리 방사선 같은 발암물질에 노출됐을 개연성이 있다”며 백혈병 발병과 업무의 연관성을 인정했다. 이어 “발병 경로가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되지 않았더라도 업무와 백혈병 발병 사이 연관성을 추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판결은 근로복지공단이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으면서 확정됐다.

2017년 8월엔 삼성전자 LCD공장 노동자의 다발성경화증을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질병과 업무의 연관성이 의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다면서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대법원은 “발병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희귀질환이더라도 여러 유해 요인이 복합적·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 등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 인과관계를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2016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국정조사 1차 청문회에 출석하기 위해 본청 민원실에 들어서자 삼성전자 반도체 직업병 피해 인권단체 ‘반올림’ 회원들이 손펼침막을 펼치며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두 판결은 이후 산재 인정에 중요한 기준이 됐다. 이 노무사는 “반도체와 같은 첨단 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희귀질환이 발병했을 때,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인과관계를 규명하지 못했을 지라도 첨단 산업의 발전 속도가 워낙 빠른 만큼 아직 규명 못했을 뿐이지 인과관계가 없다고 단정할 순 없다는 거예요”라고 판결의 의미를 짚었다. 이어 두 판결이 “명확하게 (원인이) 뭔가 밝혀지지 않은 질병에 관한 산재에 대해, 추정 원칙을 적용해 산재를 인정해주는 중요한 근거가 되고 지금까지 반올림이 계속 싸우는 무기가 되고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2015년 7월. ‘삼성전자 반도체 등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가 조정권고안을 발표했다. ▲삼성전자(한국반도체산업협회 포함)의 기부 ▲조정권고안을 실행할 공익법인 설립이 주요 내용이었다. 당시 반올림은 아쉬운 부분이 없진 않다면서도 조정안을 수용했다.

황유미 씨 죽음 이후
11년 만에 나온 삼성의 공식 사과


그러나 삼성전자는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두 달 뒤 기습적으로 ‘보상위원회’를 만들어 자체 보상절차를 시작했다. 반올림 등에 따르면 보상위원회는 그동안 산재 인정 판결을 받은 ‘난소암’과 ‘다발성경화증’의 경우 치료비에도 못 미치는 낮은 수준의 보상을 받는 내용을 제시했다. 또 근로복지공단이 잇따라 산재로 인정한 ‘폐암’과 ‘불임’을 보상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이 노무사는 “겉으론 마치 조정권고안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하고 뒤로는 자체 보상을 들고 나왔어요. 그런데도 삼성전자의 ‘언론 플레이’ 때문인지 피해자 보상이 시작됐고, 삼성 백혈병 논란이 종지부를 찍었다는 식의 보도가 쏟아졌어요”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삼성이 하겠다는 보상은 제한적이고, 제대로 된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도 없었다. 이 같은 태도를 마주한 반올림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당시는 박근혜 정부 시절이었고, 정권과 삼성의 관계 등을 따져볼 때 막막한 상황이었다. 결국 2015년 10월 반올림은 피해자 가족들과 함께 삼성전자 서초 사옥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그 농성은 3년 후인 2018년 7월까지 이어졌다. 그 기간 박근혜 탄핵 촛불이 타올랐고, 반올림과 피해자 가족들은 삼성 반도체 백혈병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반올림과 삼성전자는 2017년 5월 대화를 재개했다. 1년 넘게 9차에 걸친 조정회의를 거쳐 2018년 10월 말 공식적인 사과, 보상, 재발방지책이 담긴 중재안을 완성됐고, 반올림과 삼성전자가 수용 의사를 밝혔다. 2018년 11월 23일 삼성전자와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대표단체 ‘반올림’은 중재안 이행 협약서에 서명했고 이날 삼성전자는 “그동안 반도체 및 LCD 사업장에서 건강유해인자에 의한 위험에 대해 충분하고 완전하게 관리하지 못했다”면서 “병으로 고통받은 근로자와 그 가족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황유미 씨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지 11년 만에 삼성이 공식 사과를 한 것이다.

2018년 11월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반올림 중재판정 이행합의 협약식에서 김기남 삼성전자 사장(왼쪽부터),a 김지형 조정위원장, 황상기 반올림 대표가 협약서에 서명한 뒤 손을 잡고 있다. ⓒ김철수 기자

11년을 어렵게 이어온 싸움이었던 만큼 아픔도 컸다. 피해자들과 피해자 가족들의 상처와 아픔이 컸지만, 이들과 연대하며 함께한 이 노무사를 비롯한 여러 활동가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함께 싸웠던 이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이어온 싸움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가장 첫 피해자였다고 할 수 있는 황유미 씨를 저는 직접 만난 적이 없어요. 그렇지만, 황유미 씨로 인해 시작된 산재 싸움 과정에서 또 다른 ‘황유미’들을 만났어요. 싸움이 이어지면서 같이 싸운 피해자들이 계속 돌아가셨어요. 아파할 새도 없이 누군가를 떠나보냈지만, 또 계속 싸워야 했어요.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힘들었어요. 힘들었지만, 그래도 죽지 않게 하려면 싸워야 한다고 다그치며 견뎌왔습니다.”

피해 노동자들 자녀까지 이어지는 직업병
“반도체 공장에서 사용하는
많은 물질엔 생식 독성 있다”


이 노무사를 비롯한 반올림 활동가들과 피해자 가족들은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노동자의 산재 인정 활동과 함께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피해자 상담 및 산재 지원, 연구, 국내 외 연대, 제도개선 등 여러 활동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반도체 산업 노동자 자녀들의 직업병 문제를 위한 활동도 그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10월엔 관련 사례와 노동자들의 증언 등을 담아 책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책은 직업병의 피해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의 자녀들에게도 나타나고 있음을 고발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자녀들은 이들이 수정란, 정자, 태아와 같은 상태로 존재할 때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쓰이는 화학물질과 방사선에 노출됐다. 그들은 선천성 식도폐쇄, 콩팥무발생증, 방광요관역류, IgA신증 등 여러 질병을 얻게 됐다.

“문제는 오래 전부터 있었어요. 반도체 노동자들이 유산하고, 또 아픈 자녀들이 있다는 제보가 많이 들어왔어요. 하지만 이 문제를 수면 위로 띄우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피해자들이 밝히기를 꺼렸거든요. 그러다 용기를 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문제가 알려지기 시작한 겁니다. 반도체 공장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이 800~1200종에 이른다고 해요. 그 가운데 많은 물질이 생식독성 물질입니다. 규제 없이 사용하다 뒤늦게 피해가 드러난 거예요. 용기 있게 나서는 피해자들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산업재해와 관련한 제도개선에도 힘을 쏟고 있다. 지난 3월 9일엔 국회에서 우원식 의원과 직업성암찾기 119와 반올림이 함께 ‘산재 처리 지연 대책 및 직업성암 산재인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참석자들은 산재 처리에 몇 년이 걸리니 회사에 종용당해 ‘울며 겨자 먹기’로 합의하는 등 문제가 크다면서 △180일 역학조사 기한을 넘는 경우, 국가가 책임지고 산재 ‘선보장’ △‘추정의 원칙’ 확대로 역학조사 생략 및 신속 산재 인정 △산재 신청만으로 국민연금(유족연금) 50% 감액 지급 문제 해결 등을 촉구했다.

“어느 정도의 개연성이 있으면 추정을 해서 산재를 인정해야 합니다. 왜냐면 산재보험을 만들어 가입하게 한 취지가 그런 데 있거든요. 산재보험 취지대로 빠르게 산재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인데, 근로복지공단은 아무래도 노동자들보다는 산재 보험료를 내는 사용자쪽에 기울어있는 것 같아요.”

“주간 최대 69시간 노동이라는
발상이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겠다
현장에서 노동자들은 강도 높게 일해”


지난 3월 6일 황유미 씨 16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16년 동안 황유미 씨 아버지 황상기 씨를 비롯한 피해자 가족들과 반올림이 함께 벌인 투쟁으로 세상이 조금이나마 바뀌었다. 이 노무사는 “모든 죽음을 막을 수는 없어도, 더 큰 피해를 막아내는 싸움을 해왔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일하고, 그러다 병에 걸려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수준의 야만은 개선됐지만, 이제 교묘하게 위험을 외주화해 책임을 피하려 하고 있어요.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어요”라고 덧붙였다.

1991년 신문에 실린 삼성전자 광고 ⓒ민중의소리 자료

삼성전자 베트남 협력회사에서 일어난 메탄올 중독 사건에서 알 수 있듯, 위험은 여전하고 이를 막을 대책은 아직 부족하다.  현재 윤석열 정부는 반도체 수출을 기치로 내걸고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고 있다. 지난 3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은 “300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민간 투자를 바탕으로 수도권에 세계 최대 규모의 신규 첨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예상이라도 한 듯 반올림은 황유미 씨 16주기를 맞아 낸 성명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정부는 첨단산업의 중요성만 강조할 뿐, 일하는 노동자들의 건강에는 관심이 없다. 첨단기술 보호라는 장벽 앞에서 위험에 대한 알권리는 계속 훼손되고 있다. 첨단산업의 변화하는 위험을 파악하는 데에도, 산재노동자를 위한 제도개선에도 한없이 굼뜨기만 하다. 그 피해는 오롯이 직업병 피해자들이 감당하고 있다.”

더구나 윤석열 정부는 화물연대, 건설노조 등 노동조합을 전방위적으로 공격하고 있고, 노동시간 제도를 개편해 최대 주 69시간 노동을 하게 하려는 등 노동조건 악화 시도를 하고 있다. 반면 사용자 책임을 강화하는 제도인 ‘중대재해처벌법’은 무력화하려 하고 있어, 야간 노동을 하며 교대 근무로 공장을 가동하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더욱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다.

“주간 최대 69시간 노동이라는 발상이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현장에서 설렁설렁 일하는 노동자들은 없거든요. 반도체 공장도 그렇고 강도 높게 일해요. 주 40시간 노동에 당사 합의로 12시간 추가 근무가 가능한 지금의 제도에서도 과로사가 속출하고 있어요. 그런데 거기서 더 늘린다니, 윤 대통령이 탐욕스러운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자처한 것 같아요. 법을 공부하고, 검사로 일한 사람이 어떻게 근로기준법의 정신을 이렇게 훼손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일 시키면, 노동자들은 죽을 수밖에”

장시간 노동과 야간 노동은 산업재해 위험성을 높인다. 이 노무사는 “이렇게 일을 시키면 노동자들은 죽을 수밖에 없어요. 근로시간 중간에 1시간 휴게시간이 법적으로 보장되지만, 현장에선 이마저도 제대로 안 지켜지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게 일하다가 과로로 이어지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지난해 경향신문이 우원식 의원실과 함께 최근 5년여 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소속 기업의 사업장에서 발생한 질병 산재 현황을 바탕으로 냈던 분석 기사는 이런 현실을 잘 보여준다. 당시 공개된 통계에 따르면 질병 산재의 13.8%(43건)가 과로와 연관 있는 뇌출혈과 심근경색이었고 이 중 25건이 사망으로 이어졌다.

1991년 삼성전자는 ‘새벽 3시 커피타임’이라는 기업 홍보 광고를 낸 적이 있다. 새벽까지 일하던 반도체 연구원이 아이디어가 떠올라 동료들을 불러 새벽 3시에 커피를 마시며 회의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비슷한 시기 이건희 회장은 ‘신경영’을 선언하면서 자신은 3~4시간만 자고 일하고 있다고 밝혔고, 7시에 출근해 4시에 퇴근하는 ‘7-4 근무’를 시행했다. 잠을 줄여가며 일찍 출근한 노동자들의 4시 퇴근은 보장되지 않았고, 수면 부족과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졌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가 29일 서울 금천구 반올림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3.29 ⓒ민중의소리


“그렇게 일한 노동자들은 지금 과연 어떤 상태일까요? 아마 많은 노동자가 질환에 시달릴 겁니다. 이건희가 ‘신 경영’을 외치던 시절 식당에서 쓰러진 노동자가 있었는데, 우울증이었다고 해요. 1990년대 후반에 그렇게 되신 뒤 지금까지 제대로 일을 못 하고 계신데요. 이런 피해자가 한둘이 아닐 겁니다. 반도체 산업 부흥을 명목으로 희생되는 노동자들이 다시 나오면 안 됩니다.”

반도체 노동자들의 또 다른 희생을 막기 위해 반올림은 지금도 싸우고 있다. 노동자들의 산재 인정 투쟁, 산재보험 제도 개혁을 위한 투쟁,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 연장과 중대재해처벌법 개악에 맞선 투쟁 등 여러 현안에 연대하고 있다.

끝으로 이 노무사는 이런 활동에 반올림이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다짐을 전하며 시민들의 연대와 협조를 부탁했다. “반올림 운동이 한고비를 넘었지만, 여전히 싸움은 계속되고 있어요. 할 일이 많은 데 늘 재정 상황이 문제에요. 국가와 기업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활동을 위해선 노동자들과 시민들의 후원이 필요해요. 많은 분이 함께해주시길 호소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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