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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성서 때문에 동성애가 죄라면 ‘노예제’는?” 이동환 목사가 성탄에 던진 질문

“성소수자들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인데 그 자체로 존중 받아야”

이동환 목사(영광제일교회, 큐엔에이 사무국장)가 19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12.19 ⓒ민중의소리

“그날엔 모든 사랑이 숨김없이 당당할 것이며 모든 정체성의 퀴어들이 그 모습 그대로 아낌없이 존중받게 될 것입니다. 끝끝내 사랑이 이길 것이기에 그 사랑이 온 세상에 봄꽃처럼 만발하는 날을 기대하며 우리의 우애를 돈독히 하여 이 겨울을 버텨 낼 것입니다.”

지난 10월 20일 오후 서울 광화문 감리교본부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총회2020총재일07 동성애찬성및동조 상소)에서 자격정지 2년 확정판결을 받은 뒤 이동환 목사(영광감리교회)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 2019년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축복식을 집례해 ‘마약법 위반, 도박 및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하였을 때 정직, 면직 출교에 처할 수 있다’는 교리와 장정 3조 8항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3년 가까이 교회재판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이 판결은 이동환 목사에게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지금은 커다란 벽을 만나 잠시 좌절했지만, 끝내 사랑이 이길 그날이 오면 “혐오의 목소리를 높이고 차별에 앞장선 이들은 자신의 과거를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며, 우리는 더 이상 이전의 야만적인 세상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이 목사는 강조했다.

“동성애 관련 처벌 조항을 만들고,
결국 그 조항으로 저를 처벌하는
현실이 서글펐어요.
‘감리교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끝끝내 사랑이 이길 그날을 위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하지만, 이 목사는 그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 믿는다. 이 목사는 재판이 끝난 뒤 자신의 이런 각오를 구약성서 잠언 3장 18~19절을 인용해 전했다.

“너희는 지나간 일을 기억하려고 하지 말며, 옛일을 생각하지 말아라. 내가 이제 새 일을 하려고 한다. 이 일이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내가 광야에 길을 내겠으며, 사막에 강을 내겠다.”

2020년 6월 24일 서울 광화문 감리교본부 앞에서 열린 기소규탄 기자회견 모습 ⓒ이동환 목사 제공

성탄을 일주일 여 앞둔 지난 19일, 이 목사를 서울 종로5가 한국기독교회관에서 만났다. 예수 탄생을 기다리는 교회 절기인 대림절(待臨節) 마지막 주간에 이뤄진 이번 인터뷰는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2천 년 전 아기 예수 탄생을 가장 먼저 알고 전한 건 베들레햄의 목동들이었다. 가난하고, 고통받고 소외된 민중들에게 예수 탄생 소식은 그야말로 기쁜 소식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오늘 예수 탄생의 기쁜 소식을 기다리는 이들은 누구일까? 이 목사는 이 땅에서 차별받고, 외면받는 성소수자들도 그들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들을 죄인이라 몰아세우는 이들도 많지만, 그 누구보다 예수 탄생의 기쁜 소식을 기다리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라고 이 목사는 믿는다.

이런 믿음이 있기에 그는 항소심 판결을 앞두고 조금의 기대감이 있었다고 한다. 주변에선 대부분 기대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래도 감리교 총회 재판인데 조금은 합리적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재판 내용을 살펴봐도 유죄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이런 기대와 믿음을 져버렸다.

재판 결과를 들으며 이 목사는 ‘서글픔’을 느꼈다고 했다. “저는 감리교에 속해 있는 걸 자랑스러워했어요, 1980년대와 1990년대 감신(감리교신학대)의 신학은 진보적이었고, 사회 참여를 강조하는 등의 활동을 해왔고, 그런 부분이 제겐 큰 자부심이었어요. 2003년 감신대에 입학하면서도 그런 자부심을 느꼈다. 그런데 그러했던 감리교가 2016년 우리나라 개신교단들 가운데 가장 처음으로 동성애 관련 처벌 조항을 만들고, 결국엔 그 조항으로 저를 처벌하는 현실이 서글펐어요. ‘감리교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판결은 정치적 판결”
판결로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전통과 질서가 유지된다는 재판위

감리교 ‘교리와 장정’ 3조 8항은 동성애를 마약, 도박 등 명백한 실정법 위반인 행위와 동일시하고 있다. 이 목사가 총회 재판 과정에서 계속해서 받은 질문은 “동성애에 찬성하냐? 반대하냐?”였다. 하지만 이 목사는 동성애는 찬반으로 나눠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동성애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재판 내내 물었지만, 저는 찬성하지도 않고 반대하지도 않는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비겁하게 피해 가려 하냐’며 의견을 밝히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범죄는 명백하게 반대해요. 예를 들면 마약, 도박은 반대합니다. 하지만, 동성애는 성격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이건 사람이 가진 성적 지향이잖아요. 취사 선택할 수 있는 취향이 아닌 지향인데, 이런 성적 지향과 정체성은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는 성소수자도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있는 그대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앙적으로 얘기하자면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인데 성소수자도 그 자체로 당연히 존중받고 인정받아야 한다고 믿어요. 자신의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으로 인해 신앙생활에 있어 어떤 차별이나 배제도 있어선 안 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하지만, 재판 결과는 그런 그의 생각과 믿음과는 달랐다. 재판위원회는 “퀴어 문화 축제에 참여하여 행한 축복식은 죄지은 자도 사랑하고 회개하면 용서하는 기독교의 사랑이라고 못 볼 바는 아니다”라고 하면서도 “감리회 교리상 동성애자 등 성소수자 앞에서 성의를 입고 기도한다는 것은 그들의 행위를 옹호하고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측면 역시 존재한다는 양면이 있다”면서 정직 2년을 확정했다.

2021년 감리교회관 앞에서 항의 농성을 하고 있는 이동환 목사 ⓒ이동환 목사 제공

이 목사는 이번 판결이 감리교의 권위를 지키기 위한 정치적 판결이라고 꼬집었다. 재판위는 “정직 2년이 이동환 목사 개인에게 과한 징계일 수 있어도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전통과 질서가 유지된다는 점을 들어 과한 처사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번 판결의 목적이 ‘전통과 질서’를 수호하는 의미였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고, 아울러 감리교 소속 목사들에게 동성애와 관련한 그 어떤 목소리도 내지 말라고 하는 공개 경고이기도 했다.

2개월에 끝날 재판, 3년 넘게 걸려
눈덩이처럼 불어난 재판 비용
1·2심 합쳐 1,800만 원 넘게 청구


‘전통과 질서’라는 무거운 경고와 함께 이 목사에게 날아든 건 재판비용 청구서였다. 재판위원회는 2심 재판에 들어간 비용이 1,137만 2,025원이라며 이미 이 목사가 낸 기탁금 700만 원을 제외하고 437만 2,025원을 더 내라고 통보했다. 1심 재판 뒤에 청구받았던 704만 7,250원을 합치면 재판비용으로 감리교단에 낸 돈만 1,800만 원을 훌쩍 넘는다.

재판이 2년 넘게 걸리면서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감리교 ‘교리와 장정’엔 2개월 이내에 판결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코로나19 등을 핑계로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2심이 진행되는 동안 정직 2년 징계가 끝나버렸다. 이 목사는 재판이 길어진 데엔 의도가 있다고 추측했다. 재판을 고의로 지연한 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재판 규정에 공개 재판을 받을 권리가 명시돼 있는데, 비공개 재판을 결정해 재판부 회피를 신청해 교체하는 일이 있었어요, 저를 고발한 당사자가 재판위원장이 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져서 교체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고발인이 재판에 출석하지 않아 재판이 연기되고, 고발인은 오지 않고 변호인만 와서 연기되는 등 그렇게 2년이 넘게 흘렀어요. 그렇게 연기된 재판에도 재판위원들은 참석했고, 이들의 교통비와 식비가 나가게 된 거예요. 그 비용이 저에게 청구된 거죠.”

벌금이라고 명시는 안 됐지만, 재판 지연은 이 목사에게 경제적 타격을 입혔다. 감리교 재판 기탁금 700만 원은 다른 교단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많다. 자신의 억울함을 밝히고 싶어도 돈이 없으면 재판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목사는 “작은 교회 목사인 저에게 1,800만 원이 넘는 재판비용은 큰돈이에요. 이 돈은 결국 여러 뜻있는 분들의 후원으로 마련했어요. 5천 원, 1만 원, 5만 원 등 조금씩 보탠 정성들이 어떻게 마련된 돈인지 알기에, 그 돈을 재판위원들의 식비와 교통비로 써버렸다고 생각하니깐 속이 상했어요”라고 말했다.

성서가 동성애를 금지한다고?
“시대적 변화 무시하고,
고대 인식과 율법을
그대로 받아들여 적용하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다”


1,800만 원이 넘는 돈을 들여 3년 가까이 재판을 진행한 근거는 동성애 관련 감리교 규정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론 성서에 등장하는 동성애 관련 구절들에 있다. “너는 여자와 교합함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라는 레위기 18장 22절 등을 인용해 “성서가 동성애를 금지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동환 목사(영광제일교회, 큐엔에이 사무국장)가 19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12.19 ⓒ민중의소리

하지만, 성서가 쓰일 당시는 ‘동성애’라는 개념이 없던 고대 사회였던 만큼 시대적 배경을 무시한 채 이들 구절을 무조건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신학자들이 많다. 해외에선 성소수자 성직자와 신자들을 인정하는 개신교 교단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 동성애는 절대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교단이 대다수다. 이 목사는 “우리나라는 유독 동성애 이슈에 있어서 굉장히 보수적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개신교가 동성애 이슈와 관련해 이렇게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는 건 ‘기독교 근본주의’와 관련이 깊다. 근대 미국 기독교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기독교 근본주의’는 유럽에서 다양한 학문적 성과와 연구를 바탕으로 성서를 비평하고 해석하는 새로운 흐름인 이른바 ‘자유주의 신학’이 시작되자 여기에 반발하며 생겨났다.

이들은 성서는 하나님이 글자 하나까지 지정해 쓰인 책이라는 축자영감설(逐字靈感說)’을 신봉한다. 그렇게 쓰인 책이기 때문에 성서엔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다는 ‘성서무오설(聖書無誤說)’을 믿고, 성서에 나온 대로 믿고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기독교 근본주의는 우리나라에 파송된 미국 출신의 선교사들과 초기 우리나라 개신교 지도자들을 거쳐 한국 개신교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이 목사를 공격했던 사람들도 이런 근본주의적 성서 해석을 근거로 들었다. 이 목사는 “보수적인 개신교인들, 특히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의 논리는 성경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어서 그대로 다 믿고 따라야 하는데 동성애 관련 구절을 네가 위배한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동성애와 관련한 이들의 이런 논리는 성서의 다른 금지 규정엔 예외가 된다. 이 목사는 “성서 레위기를 그대로 따르자면 돼지고기, 오징어도 먹으면 안 돼요. 옷감을 직조할 때도 두 개 이상을 섞으면 안 되니깐 면 100%만 입어야 하죠. 형이 죽은 뒤에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함께 사는 혼인 제도인 ‘형사취수(兄死娶嫂)’도 성서를 그대로 따르자면 해야 하는 거고, 노예제도 또한 성서를 따르자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제도가 됩니다. 하지만, 아무도 이런 구절은 따라야 한다고 주장 안 하잖아요?”라고 반문하며 “시대적 변화를 무시하고, 고대의 인식과 율법을 오늘날 그대로 받아들여 적용하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종교 간 대화 시도하다
감리교에서 출교당했던
고 변선환 전 감신대 학장 사건과
닮아 있는 이동환 목사 재판


이 목사의 재판은 지난 1992년 다른 종교와 대화를 시도하다 재판을 받은 고 변선환 전 감리교신학대 학장을 떠올리게 한다. 1992년 5월 7일, 감리교 서울연회 재판위원회는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부인했다”며 변선환 당시 감신대 학장에게 감리교회법상 최고형인 ‘출교’ 형을 내렸다. 이 목사의 재판을 앞두고 감리교바로세우기연대, 웨슬리안 운동본부 등 감리교 일부 신자와 목회자들로 구성된 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러 이 목사의 출교를 촉구하기도 했다.

“제가 감신대에 다닐 때 일은 아니지만, 재판받을 때 변선환 선생의 재판을 경험한 분들이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종교 권력이 얼마나 강고하고, 개인을 얼마나 잔인하게 찍어낼 수 있는지 아시니까요. 제가 감히 변선환 선생과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런 일들을 떠올리며 출교를 각오할 수밖에 없었어요.”

한국 개신교는 동성애나 다른 종교와 대화하고 소통하는 데 대해 병적으로 예민하다. 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정직 2년을 선고받은 이 목사 이외에도 지난 2018년엔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날’을 맞아 무지개 퍼포먼스를 했다는 이유로 장로회신학대학교 학생들이 징계받았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대전서노회는 ‘동성애는 죄인가’라는 책을 출간해 성소수자 주제를 이슈로 제기했던 허호익 교수(대전신학대학교 퇴임)의 목사직을 면직하고 출교 처분을 내렸다.

교회에서 예배를 인도하고 있는 이동환 목사 ⓒ이동환 목사 제공

사찰에서 스님과 불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성탄절에 설교하고, 개신교 신자가 불상을 훼손한 것을 대신 사과하기 위해 모금했다는 이유로 파면당했다가 복직 판결을 받은 손원영 서울기독대 교수, 절을 찾아 인사하며 불상에 절을 했다는 이유로 해직당했다가 복직한 이찬수 강남대 교수 사례처럼 다른 종교에 배타적인 개신교의 모습도 자주 만나게 된다.

“저도 사실 동성애에 대해서
굉장히 보수적 생각을 지니고 있었어요
제가 다니던 교회 분위기도 그랬고요”


이런 현실을 생각할 때, 개신교 내부에선 동성애, 성소수자와 관련해 합리적 토론을 제안하거나 다른 종교와 대화를 시도하려 하면, 출교와 파면, 해직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목사는 “종교다원주의와 동성애를 보수적인 개신교인은 가장 예민하게 여긴다. 이는 저들의 역린을 건드리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지난 10월 28일 열린 감리교 총회에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세계교회협의회(WCC) 탈퇴 안건이 올라왔다가 격렬한 찬반 토론 끝에 가까스로 부결됐다. 당시 ‘동성애를 옹호하는 차별금지법을 지지하고 종교다원주의를 추구하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탈퇴 근거로 제시됐다.

이런 개신교 내부 분위기에 대해 이 목사는 “대형교회 목사들과 장로들의 목소리가 과대 대표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기사연)이 지난 2월 3일 발표한 개신교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개신교인 가운데 42.4%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했고, 반대한다는 응답은 31.5%에 그쳤다. 이 목사는 “교회가 전부 그런 건 아니라는 거잖아요. 보수적인 분위기를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교회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은 이 목사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이 목사는 “저도 사실은 동성애에 대해서 굉장히 보수적 생각을 지니고 있었어요. 제가 다니던 교회의 분위기도 그랬고요. 청년 시절 교회에 저와 몇 살 차이 안 나는 남성인데 여성 옷을 입는 ‘크로스드레서(Cross dresser)’ 분이 있었어요. 직접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고, 저도 그분을 꺼렸거든요. 그런데 다른 신자들에게 따돌림을 받다 결국 도둑으로 몰려 교회에서 쫓겨났어요. 그런 사건을 겪으면서도 저 역시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했던 사람”이라고 고백했다.

부흥사를 꿈꾸던 신학생이
노동현장과 연대하는
목회자가 된 까닭은?

이 목사는 아주 어린 시절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부모님을 따라, 친구들을 따라 평범하게 신앙생활을 하던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참석했던 수련회 후 변화가 생겼다고 했다. 이 목사는 “수련회에서 뜨거움을 느꼈어요. 그런 경험 이후 교회 생활도 열심히 했고요. 신학교까지 가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후 그에게 교회와 종교심과 신앙은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됐다. 그에겐 교회가 삶이었고, 위안이었다. 그리고 감신대에 입학했던 당시 그는 부흥사를 꿈꿨다고 했다. “제가 다니던 교회는 성령 운동이 활발해 방언하는 은사를 중시했어요. 그래서 신학교에 갈 때 부흥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지원했어요. 신학을 공부하면 선교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기도하면서 아프리카에서 선교하는 환상도 봤어요”

그러던 그는 감신대를 졸업하고, 30대가 되면서 삶과 신앙생활에 변화를 만나게 됐다. 선배와 여러 동료와 함께 기도하고, 책 모임을 하면서 공부했다. 그리고, 선배를 따라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현장에서 열린 기도회에 함께했다. 처음 간 노동현장 기도회에서 만난 어느 노동자와 나눈 이야기가 그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현장에 계신 노동자께서 기도회에 온 저를 보고 ‘어떻게 오셨냐?’고 물어봤어요. 저는 ‘힘드실 것 같아서 도와주러 왔어요’라고 했어요. 그렇게 말했다가 크게 혼났어요. ‘도와주려고 왔으면 가라. 이게 이건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의 문제고, 너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이야기하셨어요. 그 이야기가 저에겐 큰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파인텍 투쟁 당시 농성장에서 열린 현장 예배를 인도하는 이동환 목사 ⓒ이동환 목사 제공

이후 재능교육, 동양시멘트, 파인텍, 콜트콜텍, 아시아나 케이오 등 각종 장기 투쟁 현장을 돌며 열린 기도회에 함께한 건 “너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노동자의 이야기를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그는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목회 활동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성애 관련 교회재판을 받으면서 이제 성소수자를 위한 활동이 자신의 새 사명이라고 여기게 됐다. 이 목사는 “신앙적 표현으로 고백하자면, 하나님이 제 자리를 옮기셨고 이쪽 길을 열어주셨다고 생각해요”라고 밝혔다.

“목사로서 그리스도를 따르며 산다는 걸 제 삶의 화두로 가지고 있다. 제가 할 수 있는 한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려고 해요. 예수는 늘 사회적 약자와 차별받는 이들의 곁이 되어주시고, 그들과 함께 사신 분이잖아요. 예수의 뒤를 따른 따른다는 마음은 지금도 노동자들과 함께 기도회를 하던 당시와 변함이 없어요.”

목회 활동의 전환점이 된
2019년 인천퀴어문화축제
“축복식 참석 제안받았을 땐
이렇게 일이 커질 지 생각 못 했어요”


지난 2019년 8월 31일 열린 인천퀴어문화축제는 이렇게 그의 삶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하지만, 행사에 초청받아 ‘함께 하는 축복식’에 참여할 때만 해도 이 목사는 일이 이렇게 커질 것이란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했다.

“당시 아내를 통해서 대회 주최 측에서 연락이 왔어요. 축복식을 하는 데 목회자가 한 명 필요하다고 해서 큰 고민 없이 수락했어요. 아내가 저보다 먼저 성소수자 활동을 하고 관심도 많았거든요. 동성애 관련 규정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 법으로 처벌받은 사람도 없었고, 목사로서 성소수자에게 축복기도를 하는 게 동성애 찬성 동조라고 생각하진 않았거든요. 더구나 서울에서 열리는 행사도 아니고, 인천에서 1천 명 정도 모이는 지역 행사여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어요.”

이 목사는 축복식에 참여하며 성소수자 행사인 만큼, 소속을 담임을 맡은 ‘영광제일교회’가 아니라 당시 소속돼 활동하던 단체명인 ‘감리교퀴어함께’로 적었다. 그런데, ‘감리교퀴어함께’라는 이름이 담긴 행사 포스터가 퍼지며 뜻하지 않게 주목을 받게 됐다. 결국, 인천건강한사회를위한목회자모임(대표 성중경 목사)과 충청연회 동성애대책위원회(위원장 이구일 목사)가 이 목사를 감리교 경기연회에 고발했다. 이후 감리교 내·외부에 반동성애 단체가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져, 이 목사를 출교해야 한다는 여론전을 펼쳤다.

“우리는 혐오가 아닌 사랑,
차별이 아닌 자비,
배제가 아닌 가능성과 희망이
가득한 세계를 꿈꿉니다”


이런 반동성애 광풍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이 목사와 그를 지지하는 이들이 만든 구호가 바로 “축복은 죄가 아니다”였다. 주장을 좀 더 확실하게 드러내려면 “동성애는 죄가 아니다”라고 외쳐야 하겠지만, 신자들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구호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만든 구호였다. 그렇게 만든 “축복은 죄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는 대중적인 구호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2019년 8월31일 인천 부평역 광장에서 열린 제2회 인천퀴어문화축제 중 ‘함께하는 축복식’에서 이동환 목사가 꽃잎을 뿌리고 있다. ⓒ인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이 목사가 성소수자들에게 꽃을 뿌리며 하나님의 축복을 전하고, “축복은 죄가 아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된 건 지난 몇 년의 동안 이뤄진 변화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변화는 2014년 아주 우연한, 그러면서도 의미 있는 누군가의 고백으로부터 시작됐다.

“우리 교회 성도 한 분이 신앙생활 하시다가 본인이 성소수자라고 커밍아웃하셨어요. 그때 처음 성소수자와 동성애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해보게 됐어요. 의학계와 심리학계의 자료도 찾아보고, 성서도 뒤져가며 공부했습니다. 2015년 제가 이번에 처벌받은 동성애 찬성과 동조 처벌 규정을 만들려는 시도가 벌어지면서, 몇몇 감리교 목회자가 반대하며 나섰는데, 그때 잘 모르지만 저도 함께했어요. 그 규정을 보면서 ‘이 규정에 따르면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그 교인은 불법적인 교인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점차 책을 찾아보고, 퀴어문화축제 현장도 찾아다니며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런 배움의 발걸음이 2019년 인천퀴어문화축제로까지 이어졌다. 당시 이 목사는 성소수자를 축복하며 “우리는 혐오가 아닌 사랑, 차별이 아닌 자비, 배제가 아닌 가능성과 희망이 가득한 세계를 꿈꿉니다. 이 자리에 모인 우리, 이제 서로의 기도가 되어 용기를 가지고 꿈꾸는 세상을 변화시켜 갑시다. 우리가 발견할 또 다른 나를 사랑합니다. 우리, 서로에게 축복이 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라고 호소했다.

“기독교가 이 땅에 처음 들어올 때
평등의 가치를 강조했어요
절대 어울릴 수 없었던 양반과 노비가
같은 공간에서 예배를 드리는
혁명적인 일이 교회서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교회가
기득권과 돈을 가지게 되며 변했어요”


혐오가 아닌 사랑, 차별이 아닌 자비는 기독교(개신교·천주교)의 가장 크고 중요한 가치다. 기독교는 양반도, 노비도, 백정도 평등한 차별 없는 종교로 이 땅 민중들에게 전해졌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라디아서 3장 28절)라는 성서의 가르침을 실천하던 기독교(특히 개신교)가 이젠 이주노동자, 여성,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에 앞장서고 있다.

“기독교가 처음 들어올 때는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평등의 가치를 강조했어요. 그래서 그 전엔 절대 같이 어울릴 수 없었던 양반과 노비가 같은 공간에서 예배를 드리는, 그 당시로는 굉장히 혁명적인 일이 교회에서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가 기득권과 돈을 가지게 되면서 변했어요. 이런 문제들이 교회가 급성장할 때는 잘 드러나지 않았는데, 2000년대 이후 성장을 멈추면서 드러나기 시작했어요. 인구가 줄어들기도 했지만, 교회에 실망한 신자들이 떠나게 된 거죠. 교회가 자정 능력이 있다면 이런 현실을 바꾸려고 노력했을 것인데 이 땅의 권력자들이 했던 방법, 바로 외부의 적을 만드는 방식으로 내부를 단속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교회를 무너뜨리는 외부의 적으로 상정된 것이 바로 동성애, 종교다원주의, 이슬람 등이다. 그는 “이렇게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부의 불만을 잠재우려는 것은 보수 정권이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며 민주화 운동을 막아왔던 과거와 닮아 있어요”라며 “이런 목회자의 선동에 많은 신자가 영향을 받아요. 지금은 성소수자를 주로 희생양으로 삼고 있지만, 그다음은 장애인이 될 수 있고, 이주노동자가 될 수도 있어요”라고 꼬집었다.

이동환 목사(영광제일교회, 큐엔에이 사무국장)가 19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12.19 ⓒ민중의소리

이 목사는 이렇게 외부의 적을 만들고, 누군가를 배제하면서 점점 예수의 가르침은 사라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목사는 “예수께서는 낮은 자리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된 사람들과 차별당하는 사람, 배제당하는 사람의 친구가 되셨어요. 그런 예수의 삶을 따라야 하는 교회의 본모습은 사라지고, 자기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교회의 몸부림만 남았어요. 누군가를 죽여가면서, 누군가를 차별해가면서, 누군가를 배제해가면서 기득권을 지키려는 몸부림은 예수께서 비판했던 바리새인들과 위선자의 모습을 닮았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성소수자, 이슬람, 종교다원주의 
외부의 적 찾아 내부 모순 감추는
보수화된 교회들


성소수자를 희생양 삼아 내부의 불만을 잠재우려는 시도는 교회를 보수화시키고 있다. 과거 교회 주일학교, 학생회, 청년회 등에선 동성애 관련한 교육이 없었지만, 지금은 공공연히 동성애 혐오 교육을 하는 곳이 많다. 특히 신학교에서 반동성애 교육이 강화되는 건 매우 우려스럽다.

이 목사는 “에브리타임 등 익명게시판의 신학대학 커뮤니티에 성소수자들을 비롯해 우리 사회 소수자들을 향한 혐오성 발언들이 끊이지 않는데요. 제가 아는 신학생은 이런 글을 볼 때마다 ‘너무 무섭다’고 해요. 더구나 대학 분위기도 교수들이 자신들의 생각과 발언을 검열하고, 성소수자들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 ‘퀴어신학’을 가르쳤다가 교수가 학생들에게 고발당하기도 하고, 이런 이유로 교수의 수업이 박탈되기도 하면서 점점 더 이야기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요”라고 지적했다.

이런 신학교의 현실은 반동성애 성향의 목회자 배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 목사는 이런 상황과 관련해 “목회자의 말이 마치 하나님의 말씀처럼 받아들이는 우리나라 교회 현실에서 신학교에서 반동성애 교육을 받은 목회자가 배출되는 건 심각한 위기”라고 꼬집었다.

진지한 토론과 신학적 고민은 사라지고 동성애와 관련한 자극적인 이야기들만 난무하면서 교회가 ‘게토화’되는 건 아닌지 이 목사는 우려했다. 그는 “사회적으로 동성애와 관련해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이를 주제로 한 영화, 드라마, 연극, 음악 등이 쏟아져 나오고, 많은 국민이 동성애에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교회가 이런 사회적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면 점점 더 고립될 거예요. 그러다 보면 신자들도 줄어들 거고, 또 그런 상황을 두고 ‘동성애 때문에 교회가 망한다’는 주장이 나올 거”라면서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면 고립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번 재판이 이동환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큐앤에이’
성소수자들과 예배하며 한국교회 바꾼다


이런 교회의 현실을 생각하면 미래는 막막해 보인다. 사방은 짙은 어둠이 가득하다. 이 목사와 인터뷰를 마치고 내용을 정리하며 동지(冬至)를 맞았다. 일 년 가운데 밤이 가장 긴 그날은 낮이 다시 길어지는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 어둠이 짙어지면 새벽이 가까운 것이고, 밤의 끝에선 낮이 시작된다. 이 목사는 자신에게 정직 2년을 확정한 감리교 재판위 판결 속에서도 세상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란 조그마한 희망을 보았다.

신학생 시절 교회 아이들과 함께 있는 이동환 목사 ⓒ이동환 목사 제공

“총회 재판 당시 판결을 두고 의견 일치가 안 돼서 표결했다고 들었어요. 제가 알기론 한 명이 기권하고 찬성 4, 반대 2로 통과됐다고 해요. 그래도 두 명은 성소수자를 축복하는 게 죄가 될 수 있냐면서 무죄에 손을 들었다는 거잖아요. 그 이야기를 듣고 그래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에 위로받았어요.”

조금의 희망과 자그마한 위로는 그를 새롭게 일으켰다. 이 목사 재판을 계기로 지난 4월 성소수자에 차별적인 한국 개신교회의 현실을 바꾸기 위한 ‘큐앤에이’라는 단체가 출범했고, 그는 사무국장을 맡았다. 큐앤에이(Q&A)는 말 그대로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는 의미와 함께, 퀴어(Queer)와 엘라이(Ally)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큐엔에이는 성소수자 당사자와 이들에 연대하는 다양한 이들이 함께 한국교회를 바꾸겠다는 다짐으로 ‘한국교회를 향한 퀴어한 질문’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출범했다.

이 목사는 ‘큐앤에이’에 대해 “이번 재판이 이동환 개인의 불행한 사건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단체예요. 이것이 개인의 문제라면 정직 기간이 끝나고 교회로 돌아가 목회를 다시 하면 되는 것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나 하나의 문제가 아니고 감리교 또는 한국교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라는 생각으로 만든 단체”라고 설명했다.

각종 연구에 따르면, 인구의 1%에서 최대 10%가 성소수자라고 한다. 하지만, 이들을 일상에서 만나는 건 어렵다. 존재 그 자체를 부정당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니 동성애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교회 현실을 생각하면 성소수자 신자들은 자신의 존재를 숨기거나, 또 교회를 떠날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이번 재판을 통해 한국교회가 성소수자에게 얼마나 차별적인지 몸서리치면서 깨달았어요. 사실 얼굴을 드러내놓고 이런 현실을 바꾸자고 운동을 벌이는 것도 힘들어요. 단순히 무지개색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학생이 징계받고, 동성애를 연구했다는 이유로 면직 출교되는 상황이니까요. 저는 어차피 모두에게 얼굴이 알려진 만큼 오히려 홀가분하게 나설 수 있었어요. 교회를 바꾸는 게 결국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성소수자의 숙원이라고 할 수 있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지난 2007년부터 보수 개신교의 조직적 반대로 번번이 무산된 역사를 돌아보면 “교회를 바꾸는 게 결국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는 이 목사의 발언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큐앤에이는 그 첫 시작으로 성소수자 당사자, 특히 기독교인 성소수자 지원 사업에 우선 힘을 쏟고 있다.

“작지만, 의미 있는 과정에서
희망을 봤으면 합니다
저 역시 그런 희망을 믿고
끝까지 노력할 생각입니다”


성소수자 당사자 운동과 함께 교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일에도 힘을 쏟고 있다. 우선 감리교 권리와 장정 3조 8항 등 각 교단 헌법 등에 담긴 동성애 차별 조항을 바꾸는 캠페인을 벌일 계획이라고 그는 전했다. 이를 위해 목회자를 조직하고, 관련한 간담회도 기획하는 등 꾸준히 이슈화하고, 성소수자 환대 목회도 연구해나갈 계획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노력도 이어갈 생각이다. 개신교계가 차별금지법 저지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평신도 가운데엔 지지하는 이들도 많은 만큼 연대를 조직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있다.

지난 2021년 열린 규앤에이 모임 모습 ⓒ이동환 목사 제공

이 목사는 당장엔 큰 변화가 없지만, 긴 호흡을 가지고 노력할 생각이다. 기독교 운동단체를 표방하고 있지만, 교회들의 후원을 받기 어려운 만큼 십시일반 소액 후원으로 꾸려가야 해 쉬운 길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30년이 넘게 걸릴 긴 싸움이라고 그는 예상했다. 그의 예상을 증명이라도 하듯 교회재판이 마무리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조만간 다시 교회재판을 받아야 할 수 있다고 이 목사는 말했다.

“재판이 마무리되고, 추가고발이 또 들어 왔어요. 2019년 축복식 사건 이후 재판 과정에서 제가 한 인터뷰와 큐앤에이 활동 등을 모아 추가고발 한 거예요. 10명이 고발을 했다고 하는데, 조만간 출두 명령이 올 것으로 보입니다. 또, 이번 정직 2년 판결과 관련해 징계 무효 소송을 일반 법원에 내는 것도 논의 중이에요.”

힘겨웠던 재판을 끝내고, 비록 징계 확정판결을 받았지만, 웃으며 “끝끝내 사랑이 이길 것이기에 그 사랑이 온 세상에 봄꽃처럼 만발하는 날을 기대하며 우리의 우애를 돈독히 하여 이 겨울을 버텨 낼 것”이라고 말했던 이 목사. 그는 사랑은 혐오보다 힘이 세고, 그러기에 끝끝내 사랑이 이길 것이라고 강하게 믿는다. 끝으로 그런 믿음으로 사랑으로 교회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함께 나서자고 이 목사는 호소했다.

“재판 과정에서 저를 응원해준 이들도, 재판받은 저 자신도, 이 재판을 멀리서 바라봤던 성소수자 교인들도 모두 실망하지 않았으면 해요. 시련을 겪으며 감리교 내부에도 비록 아직 그 힘은 미약하지만, 성소수자를 위한 목소리가 드디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거든요. ‘차별을 넘어서는 감리회모임’도 만들어졌고요. 이런 작지만, 의미 있는 과정에서 희망을 봤으면 합니다. 저 역시 그런 희망을 믿고 끝까지 노력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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