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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이제는 박종철·이한열 열사에게서 ‘관련자’ 꼬리표를 뗄 때입니다”

772번째 만민보··· 한현우 상황실장, 열사 유가족들과 민주유공자법 만들기 위해 1년 넘게 농성

한현우 민주유공자법 제정추진단 상황실장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민주유공자법 제정 촉구 농성장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10.21 ⓒ민중의소리

국회 앞은 자신들의 절박함을 알리려는 이들로 항상 북적인다. 끊임없이 농성이 이어지고, 온갖 구호를 들고 1인 시위에 나선 이들로 가득하다. 기자가 국회 앞을 찾은 지난 10월 21일에도 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들과 파업을 이유로 사측이 손해배상 소송을 하는 걸 제한하는 ‘노란봉투법’ 제정을 촉구하는 민주노총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장애인 관련 예산을 삭감한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에 항의하며 ‘장애인권리예산·권리입법쟁취 한국판 T4 철폐 농성’을 벌이고 있는 장애인들을 볼 수 있었다.

국회 앞에 농성장을 차린 이들 가운데는 거의 매년 이곳을 찾는 이들도 있다. 바로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며 농성하는 민주화운동 열사들의 유가족들이다. 기자가 농성장을 찾은 날은 유가족들이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380일째였고, 릴레이 1인 시위를 시작한 지 499일째였다. 농성장에서 한현우 민주유공자법 제정추진단 상황실장을 만났다. 그는 유가족은 아니지만, 고등학생 시절 또래였던 김철수 열사의 죽음을 접한 뒤 김철수추모사업회 회장을 맡아 활동해왔고, ‘민족민주열사·희생자 추모단체 연대회의(추모연대)’에서 활동해온 그는 24년 동안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위해 거리에서 싸우고 있다.

“결국, 아무것도 나아진 게 없이 시간만 흐르고 있어요”
1998년 이후 24년째 이어지고 있는
열사 유가족들의 ‘민주유공자법 제정’ 투쟁


거리의 싸움은 고달프다. 거리에 천막을 치고 기약 없는 싸움을 이어가는 건 힘들다. 올해로 쉰 살인 한현우 상황실장에게도 이런 싸움은 힘겹기만 하다. 하지만, 팔순을 훌쩍 넘긴 열사들의 아버님과 어머님들이 함께 농성장을 지키며 힘들다는 내색하기조차 힘들다. 그렇게 묵묵히 견디던 그도 최근 들어 건강이 좋지 않다. 이번 인터뷰도 우여곡절 끝에 이뤄졌다. 인터뷰를 약속한 날 그의 건강이 갑자기 안 좋아지면서 인터뷰를 한 주 미룰 수밖에 없었다. 지친 모습이었지만, 막상 인터뷰를 시작하니 지친 목소리도 점점 커졌다.

김윤기 열사 어머님이 지난 6월 10일 제35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이 열린 서울시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앞에서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원분들이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장현구 열사 부친인 장남수 유가협 회장을 비롯해 권희정 열사 모친, 김윤기 열사 모친, 강상철 열사 부친, 김학수 열사 부친, 박종철 열사 형 박종부 씨, 박종만 열사 부인 등 유가족 7명이 삭발을 했다. 2022.6.10 ⓒ민중의소리

“지난해 6월 21일부터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어요. 천막농성은 10월 7일부터 시작했구요. 국회에서 법안이 발의되면서 기대가 컸지만, 결국, 아무것도 나아진 게 없이 시간만 흐르고 있어요.”

민주유공자법을 만들기 위한 유가족과 시민단체의 싸움은 거의 매년 반복되고 있고, 기대와 아쉬움이 교차하는 시간이 24년째 이어지고 있다. 열사 유가족들과 시민단체가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명예회복을 위한 싸움에 나선 건 지난 1998년이었다. 1997년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고 배은심 여사가 유가협 회장을 맡으며 이듬해부터 의문사 진상규명과 민주화운동 배상을 위한 싸움에 나선 것이다. 1998년 4월부터 법 제정을 위한 대국민 캠페인을 벌였다. 정치권의 응답이 없자 그해 11월 4일 박종철 열사 아버지 등과 함께 국회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했다. 이후 422일간 삭발과 단식 투쟁을 벌이며 싸웠고, 결국 1999년 12월 28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과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민주화운동 특별법이 제정됐지만,
민주화운동 열사들에게 붙은 ‘관련자’ 꼬리표
번번이 국회에서 좌절된 ‘민주유공자법’


하지만, 국가의 위법을 인정하는 ‘배상’이 아니라,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보상’이었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공로가 인정됐다기보다는 이들의 활동이 ‘빨갱이’ 또는 위법했던 것이 아니라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것이라고 인정하는 수준의 법안이었다. ‘민주유공자법’은 이런 이전 법안이 가진 한계를 넘어 민주화운동으로 희생당한 당사자와 유족 등에게 합당한 대우를 하자는 취지로 제안됐다.

한현우 민주유공자법 제정추진단 상황실장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민주유공자법 제정 촉구 농성장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10.21 ⓒ민중의소리

“이미 우리 법률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이들을 ‘유공자’로 인정하고 있어요. 4.19혁명 사망자, 부상자, 공로자를 ‘국가유공자’로, 5.18민주화운동 관련 사망 및 행불자, 부상자 등을 ‘민주유공자’로 예우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알고,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한열·박종철 열사는 ‘민주유공자’가 아니에요, 아직 ‘민주화운동 관련자’라는 꼬리표가 달려있습니다.”

이후 유가족들은 끊임없이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계속 요구해왔다. 국회에서 10번 넘게 발의됐지만, 신한국당, 한나라당, 미래한국당 등 보수정당의 반대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대 국회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2020년 9월 22일 우원식 의원을 비롯해 의원 20명이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사망 또는 행방불명, 상이를 입은 사람으로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심의·결정된 사람(민주유공자)’을 예우 대상자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법안은 처리되지 못했다

“지난해 7월 우 의원 등이 법안을 제출하고, 12월 국회 정무위 여야 간사가 ‘민주유공자법 안건 소위 상정’을 합의했지만, 소위원회 회의가 열리기 직전 당시 당대표 권한대행이던 김기현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당 지도부의 지시로 상정이 무산됐어요. 당시 상정됐으면, 국회 법사위까지는 올라갈 수 있었는데 너무 아쉬워요. 그 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대선이 급하다면서 법 제정을 좀 더 기다려 달라고 했어요.”

“민주당은 늘 국민의힘 핑계만 대요
그렇게 따지면 할 수 있는 게 뭘까요?
통과시키려고 노력하고
이를 위해 싸워야 하는데 너무 소극적이에요”


다음 해 또다시 법안이 제출됐지만, 이번엔 보수적 여론을 의식해 자진 철회하는 일이 벌어졌다. 2021년 3월 26일 설훈 의원이 동료의원 72명과 함께 다시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전 우 의원 대표 발의 법안과 차이는 예우 대상자에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사망 또는 행방불명, 상이를 입은 사람’과 함께 ‘민주화운동을 이유로 유죄판결·해직 또는 퇴학처분을 받은 사람’을 추가한 것이다. 당시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운동권 셀프 특혜’라는 비판이 나왔고, 4월 7일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여론의 역풍이 불 것을 우려한 설훈 의원 등이 불과 4일 만에 법안을 자친 철회했다.

한현우 민주유공자법 제정추진단 상황실장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민주유공자법 제정 촉구 농성장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10.21 ⓒ민중의소리

대선, 재보궐 선거 등 정치적 이슈가 나올 때마다 ‘민주유공자법’은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그 사이 대통령이 바뀌었다. 윤석열 대통령 시대가 오면서 민주유공자법과 관련한 전망은 더욱 어두운 상황이다. 하지만, 상황도 상황이지만, 결국은 의지의 문제라며 한현우 상황실장은 더불어민주당의 소극적 태도를 비판했다.

“민주당은 늘 국민의힘 핑계만 대요. 그렇게 따지면 할 수 있는 게 뭘까요? 통과시키려고 노력하고, 이를 위해 싸워야 하는데 너무 소극적이에요. 거의 매년 정기국회마다 법안 상정과 철회를 반복해왔습니다. 결국, 유가족들은 싸웠지만, 정치권의 의지가 부족했던 거예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는 스스로 ‘진보’, ‘민주’라고 말한 정권인데도 아무것도 못 했어요. 특히 문재인 정부 당시엔 민주당이 의회와 정부 모두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못했어요. 진보적 정부라고, 민주화운동을 계승한 정부라고 이야기는 했지만, 의지와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에 법안을 처리하지 못한 거예요.”

민주유공자법이 ‘운동권 셀프 특혜’라는 국민의힘

올해 정기국회를 앞두고도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는 주장이 국회에서 나왔다. 이번에는 통과시킬 수 있을까? 지난 7월 20일 우원식 의원을 비롯해 민주당과 정의당 등 소속 의원 175명은 ‘민주유공자법’ 처리 의지를 밝혔다. 당시 우 의원 등은 “부마민주항쟁 유공자 예우법과 동시에 추진하자”고 제안하기도 했지만, 국민의힘 등 보수세력은 이번에도 ‘셀프 특혜’라는 주장을 내세우며 반대했다. 한 상황실장은 “매번 보수정당과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특혜 논란을 일으키며 법안이 무산돼왔어요”라며 아쉬워했다.

2011년 7월 26일 민주화운동정신계승 국민연대 회원들이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 국가보훈처 앞에서 민주화 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제정 촉구 집회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국민의힘과 보수 매체들은 민주유공자와 유족, 또는 가족에 대한 혜택을 특혜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다른 국가유공자들에게 그동안 주어졌던 것과 다르지 않다. 우 의원 등은 지난 7월 20일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며 “불의에 맞서 싸우다 희생당한 분들을 ‘민주유공자’로서 제도적·법적으로 예우하는 것은 단지 개인의 명예의 문제를 넘어 민주화운동의 제도적 가치 인정을 통해 민주주의를 더욱 단단하게 뿌리내리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7월 22일 권성동 의원(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은 “민주당이 운동권 셀프 특혜법안을 또다시 들고나왔다. 민주당은 입으로는 민생을 구한다고 하면서 손으로는 특혜법안 연판장을 돌렸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는 “입법의 혜택을 입법 당사자의 자녀가 얻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예우와 특혜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예우는 국민적 합의의 결과이고, 특혜는 국민적 합의의 결핍”이라며 “불법 특혜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아예 특혜를 법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기득권을 편법으로 사용하는 것을 넘어 법으로 만들어 세습하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열사들은 이른 나이에 돌아가셔서,
배우자도 없고, 자식도 없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부모님 같은 경우도
다른 여든 살이 넘은 고령이어서
취업, 대부, 의료, 교통 등 유공자 혜택 가운데
받을 수 있는 것도 별로 없고,
받을 시간도 얼마 없어요”


하지만, 한 상황실장은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우원식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에 따르면 예우 대상자는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사망 또는 행방불명, 상이를 입은 사람’으로 규정돼 있다. 이미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은 분들이 대상으로 사망자 136명과 부상자 693명 등 총 829명이다. 한 상황실장은 “사망자 가운데 결혼하신 분은 10여 분도 채 안 돼요. 열사들은 이른 나이에 돌아가셔서, 배우자도 없고, 자식도 없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부모님 같은 경우도 다른 여든 살이 넘은 고령이어서 취업, 대부, 의료, 교통 등 유공자 혜택 가운데 받을 수 있는 것도 별로 없고, 받을 시간도 얼마 없어요”라고 꼬집었다.

2019년 6월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열린 제32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서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고 배은심 여사가 ‘광야에서’를 부르고 있다. 2019.06.10 ⓒ김철수 기자

사실 유가협 등이 처음 법안을 제안했던 1998년 당시만 해도 민주유공자법 대상자는 사망 부상자뿐 아니라 민주화운동으로 인한 해직, 유죄판결, 퇴학 등도 예우 대상자에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대상을 두고 논란이 일자 유가협 등은 우선 사망 부상자만이라도 민주유공자법 대상으로 포함하고, 이후 차츰 범위를 늘려가자고 제안했다. 우 의원이 발의한 법안도 그런 뜻이 담겼다. 한 상황실장은 자칫 이런 의견이 해직 또는 유죄판결을 받은 다른 민주화운동가들을 배제하려는 뜻으로 비치는 것을 우려했다.

“사실, 유공자법 예우 범위를 두고 고민이 많아요. 통과시키기 어려운 지금 상황을 생각해 단계적으로 대상자를 늘리자는 것이 농성단의 생각인데, 자칫 다른 분들을 배제하려는 생각으로 비칠까 조심스러워요.”

‘민주유공자법’의 핵심은 ‘혜택’이 아니라
민주를 위해 싸운 그들의 공로를 국가가 인정하는 것


예우 대상과 혜택의 범위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지만, 사실 ‘민주유공자법’의 핵심은 ‘혜택’이 아니다. 자신의 목숨을 던지면서까지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열사들이 희생한 공로가 있음을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해주는 것이다. 이런 날을 기다리며 열사들의 부모들은 수십 년을 싸워왔다. 한 상황실장은 “먼저 간 자식이 가슴 아파서 속 시원하게 웃지도 못하고, 좋은 옷 입지 못하고, 아직 슬픈 눈망울로 살고 계세요”라며 “이분들이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도와드리려면 민주유공자법이 꼭 만들어져야 해요. 이건 우리들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슬픈 눈망울로 거리에서 싸우던 부모님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 지난해 아픈 몸을 이끌고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위해 국회 앞 농성장을 찾았던 배은심 어머니는 지난 1월 9일 돌아가셨다. 윤석열 대통령도 대선후보 시절 배은심 어머니의 빈소를 찾았지만, 민주유공자법 제정과 관련한 질문을 기자들이 하자 아는 게 없다고 둘러댔다. 그리고, 윤 대통령은 지금까지 민주유공자법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1년
같은 나이였던 김철수 열사의 분신으로 달라진 삶
열사들을 위한 추모사업에 평생을 바치다

한 상황실장은 추모연대를 비롯해 열사 추모사업에 평생을 바쳤다. 그는 “그동안 열사 부모님들과 함께 싸우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너무 컸어요. 검은 머리가 흰머리로 바뀌고, 꼿꼿하던 허리가 굽을 정도로 오랜 시간이었어요”라고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그가 열사들을 위한 추모 활동에 나선 건 1991년 “군사정권 퇴진”을 외치며 분신한 김철수 열사 때문이었다. 당시 김철수 열사는 보성고 3학년에 재학 중이었고, 열사와 같은 나이였던 그에겐 큰 충격이었다.

광주지역 고등학생 300백여명은 21일 오후 3시 30분 조선대학교 민주로에 모여 '보성고 김철수군 분신에 따른 광주고교생 결의대회'를 갖고 입시위주 교육개선과 참교육 실현 등을 촉구했다. 이들 고교생들은 집회가 끝난 뒤 전남대병원 앞에서 일린 박승희 추모집회에 참석했다. 김철수 군은 분신 15일 만인 6월 2일 숨졌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같은 학교는 아니었지만, 저도 당시 같은 학년이었어요. 2학년 때부터 운동에 나섰는데 당시 김철수 열사가 분신한 뒤에 광주는 물론 전남 일대 중고등학생들이 모여 장례위원회를 꾸렸어요. 이들이 중심이 돼 입관, 운구, 보성고 및 망월동 노제까지 다 치렀어요. 그리고, 다음 해인 1992년에 ‘참교육의 불꽃 김철수 열사 추모사업회’가 조선대에서 발족식을 열고 출범했어요. 이후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1991년 봄 많은 청년이 죽었다. 죽음은 늘 우리 주변에 도사리고 있었고, 살아남는다는 것이 죄스러울 정도로 많은 선배, 후배, 친구들이 떠나갔다. 수많은 죽음에도 당시 정권은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을 통해 운동세력을 패륜 집단으로 몰았다. 박홍 신부는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김지하 시인은 ‘죽음의 굿판 당장 걷어치워라’라는 기고를 조선일보에 실으며 몰아세웠다. 정권의 운동세력에 대한 탄압은 극에 달했다. 누군가는 1987년 유월항쟁으로 민주화가 완성됐다고 말했지만, 그를 비롯한 당시 청년들의 생각은 달랐다.

주사파 운운하며 공격에 나선 윤석열 대통령
“이런 발언은 민주유공자법 농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봐요
특정한 열사들의 과거 발언이나 행적을 문제 삼아
민주유공자법을 향한 색깔론 공격도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그는 1991년 고등학교를 그만뒀다. 이후 열사 추모사업에 계속 힘을 보태고 있다. 한때는 ‘집행위원장’이 그의 직함이자 별명일 정도로 광주는 물론 여러 투쟁의 집행위원장을 맡아 활동했다. 박창수 열사, 장준하 열사 등 의문사로 돌아가신 열사들을 위한 진상규명 투쟁을 비롯해 도가니 사건으로 알려진 광주인화학교 투쟁, FTA반대 투쟁, 국가인권위 설치 촉구 투쟁 등 거리에서 보낸 시간만 해도 한 세대에 이른다. 18세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거리에서 싸우는 것도 민주화와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은 지금도 계속돼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싸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든다.

“1991년을 지나며 운동세력에겐 ‘패륜’, ‘과격’의 낙인이 찍혔어요. 그러면서 운동세력은 위축됐고, 지금까지 그 영향이 이어지고 있다고 봐요. 누군가는 민주화가 다 이뤄졌는데, 무슨 투쟁이냐고 말하지만, 역사는 끝이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민주화는 계속돼야 해요. 노동자들이 여전히 죽어가고 있잖아요.”

한현우 민주유공자법 제정추진단 상황실장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민주유공자법 제정 촉구 농성장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10.21 ⓒ민중의소리

민주화운동세력에게 ‘종북’, ‘빨갱이’ 등의 낙인을 찍어 공격하던 현실은 지금도 계속된다. 민주유공자법을 두고 권성동 의원이 “운동권 자녀들 요람에서 무덤까지 지원하겠다는 건가”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도 그런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김문수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김일성주의자, 또는 총살감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윤석열 대통령도 “자유 민주주의에 공감하면 진보든 좌파든 협치하고 타협할 수 있지만, 북한을 따르는 주사파는 진보도 좌파도 아니다. 적대적 반국가 세력과는 협치가 불가능하다”면서 색깔론을 들고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의 ‘주사파’ 발언은 오히려 매우 정직한 발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색깔론으로 재미를 봐왔던 사람들이니까요. 색깔론을 이용해 자신들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려는 거겠죠. 사실 이런 발언은 민주유공자법 농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봐요. 특정한 열사들의 과거 발언이나 행적을 문제 삼아 민주유공자법을 향한 색깔론 공격도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농성장의 열사 부모님들은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어요
꼭 민주유공자법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세요”


상황은 어렵지만, 농성단은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12월 법안 심사를 앞두고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각오다. 한 상황실장은 “연내에 본회의 통과는 아니어도 상임위는 통과시켜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매일 농성과 1인 시위, 그리고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찾아 설득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끝으로 이런 바람을 전했다.

“민주유공자법이 통과돼서 우리 열사 부모님들의 소원이 이뤄졌으면 해요. 오늘까지 흘리고 있는 슬픔의 눈물이 기쁨의 눈물로 바뀌었으면 합니다. 민주유공자법 제정과 함께 우리 민주열사들이 시민과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사업을 해보고 싶어요.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열사들의 삶과 뜻을 기억하고, 함께할 수 있는 사업을 펼쳤으면 합니다. 날이 추워지고 있는데, 농성장의 열사 부모님들은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어요. 꼭 민주유공자법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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