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일째 수입 ‘0원’인 택배 기사들…크라우드 펀딩으로 돌파구 만든다

파업 택배 기사들, 돈 빌리거나 배달 아르바이트로 생계 자금 마련해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CJ대한통운 점거농성장 앞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한 택배노조원들 ⓒ민중의소리

이배성(60·가명)씨 이마의 주름이 더 깊어졌다. 어젯밤까지 농성을 함께 했던 아들 승진(25·가명)씨가 황급히 경기도 이천시 집으로 돌아갔다. 그의 두살배기 딸아이가 갑자기 고열에 시달렸다. ‘코로나 시국’에 어린 손녀가 덜컥 큰일을 당할까 싶어 노심초사다.

이씨와 그의 둘째 아들 승진씨는 이천에서 택배일을 하는 택배 기사 부자다. 17일 아침, 서울 소공동 CJ대한통운 본사 앞 농성장에서 마주친 이씨는 “못난 부모 만나 애들 도와주지도 못하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CJ대한통운 택배 기사 파업이 52일차를 맞았다. 파업이 시작되자 회사는 참가자 ID(SM코드)부터 잘랐다.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 1월이야 12월에 일한 돈이 들어와 버텼다지만, 이달부터 큰일이다. 수입이 ‘0’원이다. 2월이 중순을 훌쩍 넘었으니, 다음달이 더 걱정이다.

이씨 아들은 얼마 전부터 배달 일을 나간다. CJ대한통운 택배 기사가 ‘배민 라이더’ 알바로 생계를 이으며 파업에 동참하고 있는 셈이다. 이씨는 “애들 분윳값이라도 벌겠다는 건데…한 달 벌어 한 달 사는게 택배 기사들이다. 여유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며 혀를 찼다. 

전국택배노동조합과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관계자들이 12일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열린 '과로사대책 사회적합의 이행, CJ대한통운 대화 촉구, 조속한 해결을 위한 108배'를 진행하고 있다. 2022.2.12 ⓒ민중의소리

‘민중의소리’와 만난 택배 기사 형편은 엇비슷했다. 모아둔 돈을 아껴 쓰거나, ‘자영업자 대출’을 받는다. 이도저도 안되면 주변 지인들에게 급전을 융통한다. 가족들과 함께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을 메우기 위해서다.

경기도 수원 영통구 소속 이모 씨(53)는 초등학교 5학년 딸과 맞벌이 하는 배우자가 있다. 배우자 수입 만으로는 세 식구가 생활하기 턱없이 부족하다. 일단 동네 지인들에게 300만원을 꿨다. 집세와 통신비, 보험료, 식비를 빼고는 최대한 아껴쓰고 있다. 그는 “그래도 어쩌겠나, 끝까지 가야한다. 사회적 대타협 이전으로 돌아갈 순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좋지 않지만, 이탈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노조에 따르면 쟁의권을 가진 1800여명의 조합원 대부분이 50여일째 파업에 동참중이다. 진경호 택배연대노조 위원장은 “조합원 대부분운 파업이 길어질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노조는 장기화 대책 중 하나로 ‘택배 기사 군자금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중이다. 지난 13일 ‘투쟁 채권’ 발행을 결정했다. 한 구좌에 50만원짜리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모은다. 모은 돈은 상황이 어려운 조합원에게 무이자로 지급한다. 지급 받은 조합원은 파업 종료 후 3개월 이내에 상환해야 한다.

아직 초기라 모금액은 미미하다. 300여명 가량이 채권 구입에 동참해 1억5천여 만원이 모였다. 택배 노조 관계자는 “CJ대한통운을 포함해 전체 택배 노조 조합원만 7천명 정도다. 민주노총 등 상급 단체가 채권 매입을 타진중이다. 시민들의 동참도 기대하고 있다. 더이상 택배기사가 과로로 숨지지 않도록 힘을 보태달라”고 말했다.

노조는 채권 발행으로 20억원 이상 자금 조달을 목표로 하고 있다. 채권 구입 신청은 [email protected]으로 하면 된다. 

투쟁채권 사진 ⓒ전국택배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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