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소픽 인터뷰

[인터뷰] 지몽 스님 “눈은 참 평등하다, 차별금지법과 닮았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장 지몽 스님 ⓒ김세운 기자


차별금지법 제정이 15년째 보류 중이다. 이 과정에서 작년 초에만 세 명의 성소수자가 연달아 목숨을 잃었다. 한 사람의 존재에 대해 누군가의 합의는 필요 없다. 존재만으로 가치 있고 귀한 것이다. 그리고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아픔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위에 10만 시민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동의 표를 눌렀다. 그럼에도 차별금지법 제정은 요원한 상황이다.

여기에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이하 사노위)가 나섰다. 사노위 스님들은 종교가 교리 속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아픈 자, 힘든 자, 소외된 자 곁에 있어 주는 것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지난해 초 취임한 조계종 사회노동위원장 지몽 스님은 현재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유세단에도 함께 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8월 지몽 스님은 오체투지(30km)를 한 적도 있다.

10만 시민의 동의와 각계각층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는 꿈쩍하지 않고 있다. 정의당을 제외한 나머지 대선 후보들 역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보류적인 입장과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몽 스님은 이런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스님은 "무엇보다 정부의 의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가장 낮은 곳으로 걸어 들어가는 지몽 스님을 만나 성소수자들을 위한 종교계의 움직임,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조계종 사노위의 행동,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 차기 대통령과 정부에게 바라는 점 등을 들어봤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장 지몽 스님 ⓒ김세운 기자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오체투지·유세단 활동
2년 전 종교계 최초로 '무기한 기도회' 시작한 조계종


지난 11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유세'를 시작했다. 서울(25개 자치구)과 수도권을 돌며, 동네 구석구석에 차별금지법을 알려 나가는 행동이다. 이 행동에 사노위 스님들도 함께하고 있다. 지몽 스님은 유세단과 용산구 일대를 돌았던 기억을 꺼냈다.

"그날 하필 눈이 많이 왔습니다. 눈이 많이 와서 유세단 활동이 진행이 안 될까 했었는데 일단 진행됐습니다. 눈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눈은 참 평등하다, 차별금지법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은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골고루 내리잖아요. 또한, 내리면서 사람의 마음을 맑고 밝게 만들어 주는 역할도 하지요. 평등법도 그렇지 않나 생각합니다. (법이 제정되면)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사회도 가정도 나도 그렇게 밝아지고 맑아지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앞서 지난해 8월에도 지몽 스님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함께 오체투지를 진행했다. 열흘간 30km에 달하는 거리였다. 경유지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무실이나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들이었다. 도착지는 법을 제정하는 공간인 국회였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회원들이 지난해 9월 7일 오전 서울 동작구 한국한부모연합에서 출발해 김용균재단 방향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뉴시스

딱딱한 바닥에 자신의 몸을 연신 낮추며 스님들은 기도했다. 누군가의 존재가 지워지지 않고 그대로 존중되고 지켜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한땀 한땀 오체투지로 기도를 채워가는 과정에서 스님은 기억에 남는 경험을 떠올렸다. 그는 힘을 불어넣기 위해 찾아온 성소수자 커플, 장애인 등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횡단보도에선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오체투지를 진행한 사람들을 보호해 주기도 했단다.

"오체투지를 하면서 저는 오히려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 전엔 시혜 같은 느낌이 많았잖습니까. 온정주의, 그런 개념으로 접근하면 안 되겠구나 느꼈습니다. 평등하게 접근해야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분들도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 거죠. 이 밖에 농성장 갈 때도 항상 배운다고 생각하고 나갑니다. 그 자리는 법문을 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고, 종교인과 대화하는 자리도 아니니까요. 다양한 종교가 섞여 있거나 종교가 없으신 분도 있으니까요."

2007년 발의된 차별금지법 제정 역사는 상당히 길다. 하지만 종교계가 차별금지법을 위해 직접적으로 행동하고 목소리를 낸 역사는 없거나 길지 않다. 지몽 스님에 따르면 2년 전 조계종 사노위는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를 위한 무기한 기도회를 열었다. 종교계에선 '처음'이라고 했다. 처음엔 한 달에 두 번씩 기도회를 열었다가, 현재는 코로나19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정도 하고 있다고 했다. 지몽 스님은 "기독교하고 천주교 분들도 나서지는 않지만, 요즘에는 찬성의 목소리를 많이 내고 계신다"고 설명했다.

2012년 출범한 사노위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행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14년부터였다. 당시 서울시민인권헌장이 폐기된 사태와 관련해 성소수자 단체 무지개행동이 농성을 했다. 이때 사노위가 함께 했다. 이를 계기로 사노위 역시 성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갖고 차별금지제정연대와 연대하며 활동했다.

"사노위 자체가 부처님의 자비와 평등사상을 기본으로 하거든요. 그걸 가지고 약자, 소외된 자들에게 다가가서 함께 아픔을 나누고 해결 방안을 찾는 그런 순수한 단체입니다. 종단에 사회부 소속으로 되어 있는데, 조금 독립적이에요. 다른 종단에 휩쓸리지 않고 순수하게 노동이나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인권시민사회단체·정당 관계자 등 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가 2일 오전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퀴어퍼레이드 행진 신고 금지를 통고한 경찰을 규탄하고 퀴어문화축제의 안전한 개최와 성소수자들의 평화로운 행진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2015.06.02. ⓒ김철수 기자

차별금지법 반대자들...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연기(緣起)'가 필요하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유독 '성소수자' 혹은 '성적 지향' 등의 주제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은 그것만 담은 법이 아니다. 차별금지법은 우리 모두를 위한 법이다. 차별금지법 속 차별은 성별, 인종, 장애, 외모, 출신지, 국적, 가족 형태, 성적 지향, 학력, 종교 등을 모두 포함한다. 즉, 우리 역시 차별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반대세력이 항상 있는 것 같아요. 합리적인 반대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논의와 토론은 될 수 있어요. 근데 선정적인 문구를 써서, 그 자체를 보지 않으려는, 그런 분들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가령, 차별금지법은 동성애 결혼법이 아니거든요. 그게 아닌데 그것과 결부시킵니다. '남자 며느리' 같은 말을 쓰면서 말이죠. 그런 사람들은 기승전결이 없고 기승전성소수자로 가버립니다. 차별금지법이 논의되려면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바른 도리)적인 접근을 해야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차별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성차별이 그렇다. 이것은 조직, 회사, 가정, 모임 등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 과거에 비해 어느 정도 개선됐다고 하지만 성차별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뿌리 깊게 잔존해 있다. '불교계 종단에서도 남녀차별이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차별금지법이 이런 문제에 관해 새롭게 접근할 계기가 될 것 같다'는 질문에 지몽 스님은 이와 같이 답했다.

"승가에도 법이 있고 사회에도 사회법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승가법이 사회법보다 우선했는데요. 사회에 밀착해서 살다 보니 사회법도 무시를 못 합니다. 승가가 사회법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그런 시대가 된 것 같아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조금 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승가 내에서도 비구니의 불평등에 대해 분명히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합니다." 

지몽 스님은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연기(緣起)'가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란, 모든 것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뜻한다. 모든 것들은 홀로 독립되어 있지 않고 이어져 있기 때문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뜻이다. 지몽 스님은 앞에 놓인 종이를 가리키며 이렇게 설명했다.

"종이가 눈앞에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나무 만이 아닙니다. 깊게 들여다보면 햇빛, 비, 땅, 거름, 나무 자르는 사람, 공장도 있어야 해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을 움직이려면 음식도 있어야 하죠. 종이 하나에 온갖 것이 다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게 바로 연기적 사유입니다. 이원적으로 보지 말고 깊게 들여다보면 이 안에 우주가 들어있단 걸 알 수 있어요. 그게 불교에서 말하는 '일미진중함시방 (一微塵中含十方)'입니다. '먼지 안에 우주가 들어있다'라는 인식의 전환이죠."

스님은 무엇보다 10대 성소수자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스님은 "성소수자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있었듯 우리 일상에 존재하는 이웃입니다. 이제는 인정해야 하는 거죠. 실제 존재하는 사람들인데, 이때까지 우리는 안 보이는 괴물 취급을 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10대 성소수자 자살률이 엄청 높아요. 일반 청소년들하고 비교가 안 돼요. 엄청나죠. 그분들이 겪는 공포나 불안을 우리가 어떻게 감히 표현할 수 있겠나 싶어요. 없는 존재로 여겨지니까. 얼마 전에 부산에서도 학생인권조례, 그것이 난관에 부딪혔어요. 서울 학생인권조례도 2011년도에 굉장한 저항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성소수자 학생들이 서울시 로비를 점거해서 통과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게 그대로 부산에서 재현되고 있는 거예요. 세월이 1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변하지 않는다는 거죠. 반대하는 문구도 그대로 변하지 않았어요."

왼쪽부터 이재명, 심상정, 윤석열, 안철수 대선 후보 ⓒ뉴시스

차기 대통령에게 바란다


오는 3월 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열린다. 지몽 스님은 차기 대통령과 정부에게 부탁의 말을 전했다. 바로, 초중고 교육과정에 인권과 민주주의 교육을 만들어 넣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몽 스님은 "아이들에게 인권과 민주주의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교과목이 없어요. 그게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라며 "교육으로 사고를 바꾸지 않는 한,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도 대립은 계속 반복될 뿐입니다"라고 우려했다.

"차별에 대한 문제 만이 아니라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을 바꿀 수 있는 민주주의·인권 교육이 한국엔 없다는 거죠. 기본적인 바탕이 없다는 말입니다. 학생들에게 그런 교육이 바탕이 돼야 의식이 확장될 수 있어요. 차별금지법은 인권에 속하잖아요. 분명히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아이들도 있을 거예요. (아이들이 인권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에선) 무작정 차별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어요. 그래서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해선 따로 교육이 필요한 겁니다. 그것이 먼저 돼야 합니다."

지몽 스님은 민주주의·인권 교육이 정립된 후에 '보이텔스바흐 합의(Beutelsbacher Konsens)를 교실로 들여오면 좋을 것 같다고도 제안했다.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독일에서 정치교육을 할 때 빠질 수 없는 원칙 중 하나다. 이 합의는 진보와 보수가 함께 합의를 보고 하나의 교육 메뉴얼을 만든 것이다. 참여연대가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보이텔스바흐 합의'엔 '아무리 바람직한 견해라도 교사가 그것을 학생들에게 강요하여 독자적인 판단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정치와 학문에서 논쟁적인 것은 수업에서도 논쟁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학생들은 자신의 정치적 상황과 독자적인 이해관계의 실태를 분석하고, 당면한 정치적 문제에 대하여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통해서 아이들은 다양한 의견 차이를 경험하게 되고 이를 존중하게 되며,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다양성에 대해서 경험하게 된다. 물론 그 경험 기저엔 타인의 인권과 존중이 깔려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가 지난해 3월 1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기도회를 마친 뒤 국회 담장을 따라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행진을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지몽 스님은 최근 한 토론회에서 정치인들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적은 것이라며 보여줬다. 마이크 프리어 영국 국제통상부 부장관 겸 평등 담당 부장관이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었다. 지난 11월 한겨레 인터뷰에서 프리어 부장관은 "정치인은 인기를 얻는 일뿐 아니라, 옳은 일을 해야 합니다. 평등이 사회에 가져다줄 이득을 국민에게 설명해 나가는 것이 정치인이 해야 하는 옳은 일입니다. 평등법 제정 노력에 장벽이 나타나더라도 한국의 정치인들이 단념하지 않기를 바랍니다"라고 독려했다.

"결국, 정부의 의지예요. 어떤 땐 국민이 할 수 있고, 정부가 끌고 나가는 것도 있는데, 차별금지법은 정부가 호응해서 정책을 수립해야죠. 차별금지법과 더불어서 교육적 측면도 분명히 함께 가야 해요. 그래야지 차별금지법 제정에 큰 의미를 도출할 수 있어요. 도덕과 인성이 모인 사회에서 왜 차별하면 안 되는지, 한 인간이 한 인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것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아까 말했듯, 평등권은 비나 눈과 같아요.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권입니다. 한 인간으로서 말이죠."

사노위는 앞으로도 약자와 소외된 자들 곁에 서 있을 예정이다. 오는 2월 25일까지 진행되는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유세'에도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물론 불도를 수행하는 수행자의 위치에서 그 과정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지몽 스님은 농성 현장에서 갈등의 실마리를 풀리게 만들 수 있는 설득자로서 역할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은 옆에 있는 사람들이 (노사 혹은 갈등 당사자) 양쪽을 조율 해주고 설득시켜주는 게 있어야 합니다. 그런 역량을 키우고 싶습니다. 쉽지 않죠"라며 "저에게 그런 역량이 생기길, 그런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지몽 스님은 '부처님이 살아 계신다면,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이야기 했을 것 같냐'는 질문에 이와 같이 답했다. "부처님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평등이 주는 서로의 이익에 대해 이야기하고 설득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반대하는 사람들의 말도 존중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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