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련 경제의 아킬레스건을 노리다 _ 소련 경제 붕괴 작전

[연재] 설 연휴에 만나는 재미있는 경제역사 ⑤

*편집자 주 - 지난 추석에 이어 설 명절을 맞아 경제역사에서 벌어졌던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사건들을 소개하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연휴 기간 동안 모두 다섯 건의 경제역사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① 무역 적자를 만회하는 제국주의의 가장 비열한 방법 _ 아편 전쟁
② 풍요와 빈곤이 동시에 시작되다 _ 산업혁명
③ 구 제국주의와 신 제국주의의 코미디 같은 대리전 _ 바나나 전쟁
④ 이스라엘의 탐욕이 초래한 나비효과 _ 석유파동
⑤ 미국, 소련 경제의 아킬레스건을 노리다 _ 소련 경제 붕괴 작전


현대 경제사에서 소련만큼 극적인 경제적 부침을 겪은 나라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1919년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이었던 러시아 혁명이 벌어졌던 당시, 러시아는 땅만 넓었지 유럽에서도 별 볼일 없는 농업 중심의 후진국이었다.

그런 러시아가 사회주의의 맹주 소련으로 변모한 이후 보여준 경제적 성장은 실로 놀라웠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압도적 최강자였던 미국과 단번에 자웅을 겨룰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하나를 꼽으라면 그것은 단연 석유였다. 1948년 러시아 북서부 볼가-우랄 분지(Volga-Ural Basin)의 대평원인 로마쉬키노 평원(Romashkino Field)에서 유전이 발견됐다. 그런데 이 유전이 상상을 초월한 대박이었다. 개발에 나선 소련이 1950년대 들어 이곳에서 자이언트급 유전을 세 개나 잇따라 발견한 것이다.

이곳에서 터진 유전으로 소련은 1961년 단번에 세계 2위의 산유국으로 발돋움했다. 그런데 ‘뛰는 놈, 나는 놈 위에 운 좋은 놈’이라고 소련의 행운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석유 수출이 소련의 주요 산업으로 떠올랐을 무렵, 1970년대 뜻밖의 석유파동이 터진 것이다.

석유는 소련의 약점이기도 했다


1, 2차 석유파동이 세계 경제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친 반면 소련 경제에는 상상을 초월한 노다지를 안겨줬다. 볼가-우랄 지역 유전 발견으로 세계적인 산유국 반열에 오른 소련은 가만히 있어도 유가가 몇 배씩 뛰는 상황이 벌어지자 그야말로 앉아서 돈을 긁어모았다.

게다가 석유파동을 일으킨 아랍 국가들은 친(親)소련 경향을 보이기까지 했다. 1, 2차 석유파동을 주도한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알 카다피(Muammar al-Gaddafi, 1942~2011)는 “우리가 왜 소련에 가까워져야 하는가? 그것은 미국이 주로 이스라엘을 응원하며 우리 아랍을 적대적으로 대했기 때문이다.”라며 노골적으로 소련을 지지했다. 실로 여러 면에서 석유파동은 소련에 엄청난 행운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런 호황 속에는 엄청난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소련이 유가 급등으로 흥청거리는 동안 내부적으로는 사회주의 경제의 비효율이 높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소련이 이때 석유를 통해 얻은 이익을 바탕으로 국가 경제의 재정비에 돌입했다면 1980년대 소련 경제가 그토록 쉽게 몰락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 자원의 저주에 걸린 나라들이 그렇듯 소련은 치솟는 유가로 얻은 소중한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소련은 석유로 번 돈의 대부분을 국방 예산에 쏟아 부었다. 1970년대 말 소련의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의 6분의 1에 머물렀지만, 국방 예산은 미국의 3배에 달했다. 치솟는 군비를 마련하기 위해 소련 경제는 석유 수출에 더욱 의지해야 했다.

이 와중에 1980년 미국에서는 로널드 레이건(Ronald Wilson Reagan, 1911~2004)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레이건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Let's 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구호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 동서냉전 시대의 초강경파였다.

‘위대한 미국’을 앞세워 대통령에 당선된 레이건의 당면 목표는 당연히 숙적 소련의 무릎을 꿇리는 일이었다. 그리고 레이건 행정부는 소련 경제의 약점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었다. 그 약점은 바로 석유였다.

당시 소련 경제는 수출의 60% 이상을 원유에 의존할 정도로 석유에 목숨을 걸고 있었다. 이 말은, 석유만 제대로 공략한다면 소련 경제는 한 번에 곤두박질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기도 했다. 1970년대 소련 경제를 흥하게 했던 석유는 어느덧 소련 경제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으로 바뀌고 있었다.

소련 경제 붕괴 작전


1982년 11월 29일, 레이건이 ‘NSDD-66’으로 불리는 서류에 직접 서명을 했다. NSDD란 국가안보결정지침(National Security Decision Directives)의 줄임말로 레이건이 국가 안보에 관해 내린 여러 결정들을 뜻한다. 레이건은 8년의 집권 기간 동안 모두 325회의 NSDD를 내렸는데, 그 중 NSDD-66은 소련 경제 붕괴를 위한 비밀 경제 작전이었다.

미국 레이건 대통령 ⓒ기타

이 문서의 핵심은 “소련 경제의 결정적인 요소를 공격함으로써 소련 경제를 파탄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소련 경제의 결정적인 요소는 당연히 석유였다. 미국은 이 지침을 근거로 서구 자유진영 국가들과 연대해 소련의 석유와 천연가스 수입을 줄여 나갔다. 서방 국가들의 불편을 없애기 위해 노르웨이의 북해산 유전을 활용키로 하는 등 대안도 마련했다.

미국은 또 친(親)미국 성향의 사우디아라비아를 부추겨 대대적인 석유 증산에 나서게 만들었다. 1985년 세계 최대 산유국 중 하나였던 사우디아라비아가 본격적인 증산에 나서자 석유 시장에서 주도권을 빼앗길 것을 우려한 이웃 중동 산유국들도 너도나도 증산에 나섰다.

게다가 1980년대 중반은 1970년대 1, 2차 석유파동 여파로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져들어 석유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 상황이었다. 이런 판국에 주요 산유국들이 석유를 과거보다 몇 배씩 증산을 하고 나서니 석유 가격이 버틸 리가 없었다.

1985년 배럴당 28달러였던 국제유가는 6개월 만에 10달러 선으로 폭락했다. 소련은 급락한 유가로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었다. 석유를 공략해 소련 경제를 붕괴시키려 했던 미국의 전략이 멋지게(!) 성공을 한 셈이었다.

러시아 행정부에서 총리 대행과 경제부 장관을 지낸 예고르 가이다르(Yegor Gaidar, 1956~2009)는 2006년 미국 기업연구소를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소련 붕괴의 시작점은 1985년 9월 1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정책을 급선회하기로 결정했다고 선언한 바로 그날이다. 그 후 6개월 동안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생산량은 네 배 증가했고, 석유 가격도 실질가격 기준으로 4분의 1로 폭락했다. 그 결과 소련은 연간 약 200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그 돈이 없으면 소련은 살아남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가이다르의 말처럼 소련은 당시 입은 내상을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붕괴됐다. 1922년 12월 30일에 건국된 소련은 건국 69주년을 4일 앞둔 1991년 12월 26일, 마침내 해체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유전 발굴과 두 차례에 걸친 석유파동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은 소련이, 바로 그 석유를 집중 공략한 미국의 전략에 대응하지 못하고 패배한 것이다.

이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며 다시 한 번 곱씹어본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볼가-우랄 분지에서 발견된 거대한 유전은 과연 소련에게 축복이었을까? 아니면 소련의 몰락을 부추긴 재앙의 씨앗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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