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와 빈곤이 동시에 시작되다 _ 산업혁명

[연재] 설 연휴에 만나는 재미있는 경제역사 ②

*편집자 주 - 지난 추석에 이어 설 명절을 맞아 경제역사에서 벌어졌던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사건들을 소개하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연휴 기간 동안 모두 다섯 건의 경제역사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① 무역 적자를 만회하는 제국주의의 가장 비열한 방법 _ 아편 전쟁
② 풍요와 빈곤이 동시에 시작되다 _ 산업혁명
③ 구 제국주의와 신 제국주의의 코미디 같은 대리전 _ 바나나 전쟁
④ 이스라엘의 탐욕이 초래한 나비효과 _ 석유파동
⑤ 미국, 소련 경제의 아킬레스건을 노리다 _ 소련 경제 붕괴 작전


“새벽 5시에 공장에 나가서 밤 9시까지 꼬박 일을 해요. 하루에 밥 먹을 시간 20분만 쉴 수 있습니다. 일을 하다가 졸면 관리자들이 가죽 채찍으로 등을 때려요. 힘들지만 돈을 벌어야 하니 할 수 없어요. 일이 너무 힘들어서 동생이 저를 도와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생은 사장님이 고용한 것이 아니니 돈을 받지 못해요. 동생은 이제 겨우 일곱 살이랍니다.”

지금부터 불과 180년 전, 영국의 11세 소년 토마스 클라크의 증언이다. 19세기 초반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씨앗이 된 산업혁명이 활짝 꽃피웠던 시기다. 숨 쉴 틈 없이 공장이 들어섰고, 갖가지 진귀하고 새로운 물건이 쏟아졌다. 바야흐로 인류의 생산 기반이 농업에서 공업으로 바뀌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클라크의 증언처럼 ‘위대한 산업혁명’의 실제 모습은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도시로 내몰린 노동자들이 하루 14~16시간씩 꼬박 일하고 받은 일당은 요즘 돈으로 1,000원도 채 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주로 합숙소에서 지냈는데, 자그마한 방에는 남녀 가릴 것 없이 20여 명씩 뒤엉켜 살아야 했다. 쓰레기 더미에서 먹을 것을 뒤지는 노동자들이 넘쳐났다. 런던 하늘은 공장에서 뿜어 대는 매연으로 시커멓게 변했고, 물은 오염될 대로 오염됐다. 콜레라와 장티푸스가 순식간에 퍼져 도시 곳곳에는 사람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 문호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는 1838년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를 통해 산업혁명 시대 런던의 어두운 모습을 상세하게 묘사한다. 구빈소(救貧所)에서 자란 올리버는 갖은 고생 끝에 런던에 도달해 소매치기가 된다.

당시 영국에서는 1834년 신빈민구제법(The New Poor Low)이라는 것을 만들고 거지 없는 거리를 조성하겠다며 도시마다 ‘구빈소’라는 것을 지었다. 그런데 이 구빈소는 그야말로 감옥 같은 곳이었다. 구빈소에 들어간 도시 빈민들은 머리를 밀고 죄수처럼 제복을 입었다.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의 무대는 크게 두 곳이다. 소설 전반부는 바로 이곳 구빈소의 처참한 생활을 묘사한다. 후반부는 산업혁명 시대 런던의 처참한 현실을 그린다. 산업혁명은 인류 역사에서 경제를 가장 비약적으로 성장시킨 부(釜)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올리버 트위스트』가 묘사하는 것과 같이 인류 역사상 가장 극심한 빈곤을 만들어냈던 처참한 사건이기도 했다.

증기기관과 석탄, 그리고 철도


18세기 말 이후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19세기 그 꽃을 활짝 피운 것으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흔히 산업혁명을 가능케 한 계기로 증기기관의 발명을 꼽는다. 제임스 와트(James Watt, 1736~1819)가 증기기관을 발명하면서 공장이 자동화된 것이 대량생산의 토대가 됐다는 이야기다.

“아니, 고작 증기기관 하나 만들었다고 세상이 그렇게 변했단 말이야?”라는 의문이 충분히 생길만하다. 하지만 증기기관은 분명히 세상을 어마어마하게 변화시켰다.

하나의 산업이 발전한다는 이야기는 그 산업 혼자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연관 산업이 함께 발전한다는 것을 뜻한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핵심 산업과 전방(前方)산업, 그리고 후방(後方)산업과의 연관성’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전방산업은 핵심 산업의 앞 단계 산업을 말하고, 후방산업은 핵심 산업의 뒤 단계 산업을 뜻한다.

자동차 관련 산업을 예로 들어보자. 이 경우 자동차를 생산하는 산업이 핵심 산업이 된다. 그리고 자동차의 앞 단계 산업, 예를 들어 자동차에 사용되는 철판을 만드는 철강산업이 전방산업이다. 반면 자동차가 다 만들어져 판매된 뒤 이를 관리해주는 자동차 수리업이나 자동차 보험업 등은 후방산업이다.

증기기관이 가장 먼저 변화시킨 것은 당연히 물건을 만드는 제조업이었다. 하지만 증기기관이 발전시킨 것은 제조업만이 아니었다. 증기기관은 물을 끓여서 움직인다. 물을 끓이기 위해서는 당연히 연료가 필요하다. 증기기관이 확산되면서 전방산업 격인 석탄 채굴업이 크게 발달한 이유다.

또 공장이 자동화되면서 물건이 산더미처럼 쏟아지자 물건을 원활하게 팔기 위한 교통시설이 필요했다. 이 때문에 물품을 운반하는 후방산업 격인 철도가 발달했다. 때마침 조지 스티븐슨(George Stephenson, 1781~1848)이 증기기관차를 만들었다. 1830년 리버풀에서 맨체스터까지 승객과 상품을 함께 운송하는 철도가 세계 최초로 뚫리면서 마침내 인류는 ‘철도의 시대’를 맞는다.

철도가 개통되자 런던에서 생산된 제품은 신속하게 전국 각지로 옮겨졌다. 그리고 마침내 유럽 전 대륙까지 퍼져 나갔다. 19세기 중반 영국은 전 세계 석탄의 3분의 2를 생산했고, 전 세계 면제품의 절반가량을 만들 정도로 막강한 경제력을 과시했다. 이 시기 영국의 별명은 ‘세계의 공장’이었다.

영국의 발전에 자극을 받은 독일은 정부가 직접 나서 대규모 공장을 지었다. 미국도 노예 해방 이후 공장이 크게 확대되면서 1869년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 철도를 지었다. 제조업의 발달이 광산업과 교통산업의 도약까지 이끌면서 마침내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이다.

대량생산을 위한 두 가지 조건


그런데 풍요롭게만 보이는 이 산업혁명이라는 사건을 좀 다른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보통 역사책에는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으로 ‘넓은 시장과 풍부한 노동력’을 꼽는다.

경제라는 녀석은 ‘물건을 많이 만들 능력을 갖췄다’는 것만으로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물건을 많이 만들려면 기계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기계를 돌릴 수많은 노동자들이 필요하다. 즉, 노동자들의 숫자가 충분해야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또 ‘물건을 많이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 물건을 누군가 사 줘야 공장도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산업혁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물건을 팔 드넓은 시장’이 필요했다.

산업혁명이 성공한 이유는 분명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두 가지 조건이 민중들의 삶을 최악의 빈곤으로 몰아넣는 방식으로 진행됐다는 점이다.

노동자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인구가 갑자기 비약적으로 늘지 않는 한, 부족한 일손은 어디선가 끌어들여야 한다. 19세기 영국의 산업혁명 때 부족한 공장 일손을 메워준 사람들은 대부분 농민들이었다.

산업혁명 당시 모습 ⓒ기타

자기 땅에서 평화롭게 농사짓던 농민들이 왜 도시의 공장으로 몰려들었을까? 이는 바로 18세기 후반부터 본격화된 ‘2차 엔클로저 운동(enclosure movement)’ 때문이었다. 영국 정부는 모직물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자 멀쩡한 농토를 양을 기르는 목초지로 둔갑시킨 뒤 울타리를 쳐서 농민들을 도시로 몰아냈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 농민들은 런던으로 몰려들었고, 이들은 어쩔 수 없이 하루 일당 1,000원을 받으며 처참한 노동 환경에서 공장 노동자로 일해야 했다. 일을 하지 않으면 굶어죽는 사람들이 도시에 널려 있으니, 자본가들은 이들에게 최소한의 돈만 지불하고 마음껏 부려먹을 수 있었다. 즉 ‘풍부한 노동자 숫자’란 결국 굶어죽기 직전까지 몰린 도시 빈곤층이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는 이야기였다.

‘물건을 팔 드넓은 시장’이라는 개념도 비슷하다. 평소에 한 개 만들던 물건의 생산량이 다섯 개쯤으로 늘었다면, 새로운 물건을 사고 싶어 하는 이런저런 사람들이 모여 그 다섯 개가 전부 팔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팔아야 할 물건 숫자가 갑자기 100개로 늘어났다면? 이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아무리 팔고 싶어도 그 막대한 물건을 국내에서 다 팔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제국주의다. 19세기 영국을 필두로 한 유럽 국가들은 세계 곳곳을 식민지로 만들었고, 자기들이 대량생산한 공산품을 식민지 국가에 비싸게 팔아치웠다. 결국 산업혁명의 배경이 된 ‘물건을 팔 드넓은 시장’이란 제국주의의 악랄한 식민지 수탈을 뜻하는 것이었다. 산업혁명으로 자본가 계급은 막대한 돈을 거머쥐었지만, 노동자들과 식민지 지배를 받는 민중들은 참혹한 빈곤을 경험하기 시작한 셈이다.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산업혁명


산업혁명은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이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물건은 많이 갖고 있지 않았지만, 가족끼리 모여 농사를 지으며 오순도순 살아갔다. 사회의 중심이 농업이어서, 도시에서 일하고자 하는 노동자 숫자가 많지 않았다. 이처럼 농업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회를 중세 봉건사회라고 부른다.

그런데 산업혁명은 이 중세 봉건사회를 완전히 박살냈다. 산업의 중심은 농업에서 도시의 공장 제조업으로 빠른 속도로 이동한 것이다.

중세 봉건사회에서 가장 막강한 계급은 땅을 많이 갖고 있었던 지주들이었다. 이들은 스스로를 귀족이라 칭하며 세상을 지배했다. 하지만 공장의 발전은 지배계급의 구도를 뒤흔들었다. 주로 평민 출신이었던 공장 주인들은 스스로 벌어들인 막대한 돈을 바탕으로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떠올랐다. 자본가 계급의 등장이었다. 중세 봉건사회가 마침내 막을 내리고,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가 시작된 것이다.

산업혁명은 실로 많은 것을 바꿔놓았지만 그 변화에는 긍정적인 요소도, 부정적인 요소도 모두 존재한다. 일단 산업혁명이 촉발한 빈부격차는 자본주의가 발달하며 더 심해져 지금은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가 됐다.

게다가 인류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대신 역사상 그 어느 시대보다도 일에 쫓기며 살아가게 됐다. 인류는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이전, ‘8시 17분’이나 ‘9시 6분’ 같은 분 단위의 시간 개념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바쁜 일이 있다고 분 단위까지 챙겨야 한단 말인가?

인류가 분 단위의 시간을 지키기 시작한 때가 바로 산업혁명으로 철도가 발달한 이후부터다. 열차를 제 시각에 출발시키기 위해 인류는 ‘분 단위’의 바쁜 삶을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산업혁명은 인류의 삶을 긍정적으로건 부정적으로건, 혁명적으로 바꿔놓은 일대의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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