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소 빈땅에서 꾸는 뉴욕 ‘배터리파크시티’ 드림

[2022 더 왼쪽으로] 토지임대부주택 확대를 부지 일부 팔아야 원가 회수 한다는 SH SH 토지임대부 사업 방식 전환…무주택자에게 이득 뉴욕 맨하탄 토지임대부 신도시 배터리파크시티는 매년 수천억 영업이익

강남 구치소 빈땅과 아파트…욕망에 흔들리는 정치
② 구치소 빈땅에서 꾸는 뉴욕 ‘배터리파크시티’ 드림


성동구치소 부지에 토지임대부주택을 짓기 위해서는 또다른 장벽을 넘어야 한다. 재정이라는 복잡한 함수를 풀어야 한다.

SH 같은 개발공기업은 싼 값에 땅을 수용한다. 수용한 땅은 네모 반듯한 택지로 조성한다. 조성한 택지는 민간 건설사에 비싸게 판매한다. 원가(수용 및 조성비용)와 판매가 차액이 SH 영업이익이 된다.

토지임대부주택은 기존 개발과 잘 들어 맞지 않는다.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 택지 팔아 마련하는 목돈의 꿈은 사라진다. 대신, 임대료 한 푼, 두 푼 모아 장기간 비용을 회수해야 한다.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하다.

“일부는 팔아야 남는 게 있다”는 SH



지난해 9월 20일, 송파구민회관 소강당에서 주민설명회가 열렸다. 송파구, 서울시, SH공사 관계자들이 옛 성동구치소 개발계획을 주민들에게 소개했다.

부지 30%에는 주민센터나 체육시설, 청소년 복합 교육 시설이 들어선다. 나머지 2/3에 아파트 1,300세대를 짓는다. 1,300세대 중, 600세대는 신혼희망타운으로 조성하고, 나머지 700세대 부지는 민간에 매각한다는 계획이었다. 주민들이 추진을 요구하는 개발계획 원안이 바로 이것이다.

주목할 것은 700세대 부지를 민간에 매각하는 이유다. 당시 SH공사가 작성한 ‘옛 성동구치소 부지 지구단위계획 구역 및 계획 결정(안)’에는 매각 이유를 ‘선 투입비용 일부 회수를 위함’이라고 적혀있다.

SH가 주민들에게 설명한 옛 성동구치소 토지이용계획(안). 빨간 박스 안에 ‘선 투입비용 일부 회수를 위한 매각 결정’이라고 적혀 있다.


SH가 말하는 ‘선 투입비용’이란 옛 성동구치소 매입 비용이다. 애초 법무부 땅이었던 구치소 부지를 SH공사가 매입했다. SH는 문정동에 새로운 구치소를 지어줬다. 새로운 구치소를 주고, 예전 구치소 부지를 받았다. 자산교환 방식이다.

두 기관은 2017년, 새 구치소와 옛 구치소 가치를 평가했다. 평가 결과 SH가 새로 지은 구치소는 5,600억원으로 추산됐다. 법무부의 옛 구치소 부지는 5,670억원으로 평가됐다. SH공사는 차액 70억원을 법무부에 현금으로 지급하고 옛 구치소 소유권을 넘겨받았다.

SH는 5,670억원을 구치소 부지 개발사업으로 회수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2017년 당시 SH 사장 변창흠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공사가 그간 5천억원을 넘게 투자했다. 직접(아파트를) 지으면 3~4년간 막대한 금액이 묶이는 것이기에 내년 상반기(2018년) 중 매각 예정”이라고 말했다.

개발로 조성한 택지를 팔고, 비용을 회수하는 기존 방식을 반복하겠다는 뜻이다.

SH가 건설해 법무부로 이전한 서울동부구치소(좌)는 5,600억원으로 평가됐다. 법무부가 넘겨준 옛 성동구치소 부지(우)는 5,670억원으로 평가됐다.


SH가 1천억원 이상 영업이익 남기는 수법



SH는 구치소 부지 일부를 민간 건설사에 팔고, 나머지 부지엔 직접 아파트를 건설해 분양한다는 계획이다. 계획대로 추진하면 매출액은 얼마가 될까.

민간 건설사 매각 이익을 주정해 볼 수 있다. SH는 총 2만3천평 부지의 33%(8,025평)를 매각할 계획이다. 2017년 법무부와 자산 교환 당시 평당 단가는 2천3백여만원이었다. 교환 원가로 민간에 매각하면 1,906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원가 항목은 더 있다. 구치소 철거비용, 택지 조성비용, SH공사 적정 이윤 등이 원가에 더해진다. 가장 중요한 항목은 사업성이다. 민간 건설사가 공사로부터 택지를 매입해 아파트를 짓고, 분양했을 때 받는 적정 분양가를 추산한다. 추산한 사업성 결과를 원가에 반영한다. 사업성을 원가에 포함하면 민간 매각가는 평당 최소 3천만원 이상이 될 공산이 크다. 평당 3천만원에 매각하면 매출액은 2천400억원으로 교환 원가 매출액 1,906억원 보다 500억원 늘어난다.

사업성을 보다 현실적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분양가 시세를 고려하면 된다. 구치소 부지에서 직선거리로 172m 떨어진 곳에 오금동 아남아파트가 있다. 최근 리모델링에 착공했다. 공사를 마치면 299세대가 328세대로 늘어난다. 늘어난 29세대는 내년초 분양을 목표로한다. 아남아파트리모델링 추진위원회에 따르면 30평형(85㎡) 기준 평당 분양가는 5,200만원이다.

만약 SH가 아남아파트 분양가를 기초로 사업성을 추산한다면, 민간에 매각하는 가격은 평당 4천만원까지 상승할 수 있다. 실제 지난 10월, SH와 서울시가 실시한 구치소 부지 감정평가액은 평당 4천200만원이었다. 민간 건설사 매각 비용을 평당 4천만원으로 추산하면 SH는 3,21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나머지 부지에는 아파트를 직접 지어 분양한다. ‘신혼희망타운’이라 불리는 공공분양 아파트다. SH가 분양가를 얼마로 할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대신, 3기 신도시에서 공급되는 ‘신혼희망타운’과 비교해 짐작할 수 있다.

3기 신도시 중 평당 분양가가 가장 높은 곳이 성남 복정1지구다.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에 있다. 위례신도시에 붙어 있어 분당이나 판교보다 ‘강남 접근성’이 높아 주목 받는 곳이다. 복정1지구 신혼희망타운 분양가는 20평형(55㎡) 기준 2,569만원이다. 입지 차이를 감안하면, 구치소 신혼희망타운 분양가는 복정1지구보다 높아질 공산이 크다. 매우 보수적으로 추정해 구치소 신혼희망타운 분양가를 평당 3천만원으로 계산하면, 600세대 분양매출(55㎡ 기준)은 2,988억원 규모다.

SH는 민간 건설사 매각과 신혼희망타운 분양으로 구치소 매입 원가 5,670억원을 넉넉히 회수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익성 추정에 따라 최대 1천억원 이상 매출을 더 올릴 수 있다.

SH는 좋겠지만, 시민들은 손해다. 1편에서 살펴본대로, 매각 이후 들어설 민간 건설사 아파트 700세대는 85㎡ 기준, 분양가 12억원의 고가 단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나머지 600세대 역시 공공분양 신혼희망타운이라고 하지만 분양가는 6억원(55㎡ 기준 )을 넘어선다. SH가 매각·분양으로 원가를 회수한 대신, 시민들은 ‘강남 3억원 토지임대부 아파트’ 입주 기회를 잃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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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 포기한 기회비용, 대신 시민이 웃는 이유



오세훈 시장이 계획하고 있는 토지임대부주택은 매각을 전제 하지 않는다. 부지는 SH공사가 계속 보유하고, 건물만 분양한다. 구치소 부지에 짓는 아파트는 모두 1,300세대다. 모든 물량을 분양가 3억원 토지임대부주택으로 공급하면 SH 매출은 3,900억원이 된다. 5,670억원에 부지를 매입했으니 1,770억원을 회수하지 못하는 셈이다. 미회수금 1,770억원은 분양 받은 사람에게 토지임대료를 거둬 장기적으로 회수한다.

토지임대료를 어떻게 산정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토지임대료는 토지비에 시중금리를 곱해 산정한다. 현행 대통령령은 시중금리를 ‘은행의 3년 만기 정기예금 평균 이자율’로 규정한다. 현재 은행의 3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1.3% 수준이다.

토지비는 법무부와 자산 교환 당시 적용했던 평당 금액(2,375만원)으로 결정할 수 있다. 30평형(85㎡, 25.7평)기준, 토지비는 25.7평에 평당 2,375만원을 곱한 금액, 6억1천만원이 된다. 6억1천만원짜리 토지에 은행 평균 정기 예금금리(1.3%)를 곱하면 임대료가 나온다. 연 793만원, 월 66만이다. ‘강남 30평대 아파트’를 3억에 분양받고 토지임대료로 매달 66만원을 지급하는 것이다.

토지임대부 수분양자가 매달 토지임대료로 66만원을 내면 SH는 한해 임대료 매출로 86억원을 거둬들인다. SH가 회수하지 못하는 비용이 1,770억원이었으니 임대료로 비용을 모두 회수하는데에는 17년이 걸린다.

토지임대부를 공급하면 SH는 구치소 부지를 팔거나 분양해 수백억원대 이익을 남기지 못한다. 비용 회수에만 최소 17년이 걸린다. 1,770억원에 대한 이자를 감안하면 회수 완료 시점은 더 늦어진다. SH로선 결코 내키지 않을 테지만, 시민은 이득이다. 10억대 고가 아파트 대신, ‘강남 30평대 아파트’를 3억원에 얻을 수 있다.

토지임대료를 월세라고 생각하면 더 유리하다. 토지임대료는 월세 시세 절반도 안된다. 구치소 부지 바로 옆에 래미안파크팰리스가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이 단지 30평형 11층 월세는 보증금 3억원에 월세 148만원에 계약됐다. 토지임대부주택 임대료의 2.2배에 달한다.

박배곤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는 “공기업 입장에선 사업 비용에 대한 고민이 있겠지만, 단기간에 높은 수익을 올렸던 기존 모델을 버리고 공공디벨로퍼에 걸맞는 새로운 사업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토지임대부주택 확대 금융 지속가능성에 대하여



토지임대부주택 공급은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공기업이 개발한 택지를 민간에 매각하지 않고 임대하는 사업방식의 대전환이다. 전환이 시스템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지속가능성 검토가 중요하다.

SH는 구치소 부지를 매각하지 않고 임대할 수 있을까. 구치소 이외에도 100여개에 육박하는 공공택지 사업을 토지임대부로 공급할 수 있을까. 불가능해 보이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가능할 뿐더러, 향후 재정에 더 큰 보탬이 된다.

금리 환경이 좋다. 저금리 시대에 자금 조달 비용이 대폭 축소했다. SH는 지난해와 올해 모두 6차례 공사채를 발행했다. 조달금액은 총 2,129억원 규모였고, 공사채 평균 이자율은 1.12%에 불과했다. 토지임대부 임대료 1.3%보다 낮은 수준이다. SH는 1.12%에 자금을 끌어와 임대료 1.3%를 받고 0.18%의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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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채는 시장 금리에 따라 변동한다. 부지 사업성이나 상환 위험도에 따라 금리가 오르내린다. 주택도시기금에서 자금을 지원 받으면 보다 안정적이다. 기금은 국민들이 낸 청약통장 부금 등으로 조성된 기금이다. 지난해 기준 100조원 이상 조성돼 있다. 이중 4조2천억원 가량을 공공분양주택 자금으로 대출했다. 정부가 결정하면 공공분양 자금을 토지임대부 자금으로 돌릴 수 있다. 금리를 하향 조정한다면 토지임대부주택의 대규모 확대도 가능하다.

남기업 토지+자유 연구소 소장은 “지금도 채권이자보다 토지임대료가 높다. 토지임대부 주택을 공급하더라도 채권 이자를 내고 원금 상환이 가능하다는 뜻”이라며 “시간이 지날수록 토지임대료는 증가하므로 재정수입에도 보탬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욕 맨하탄에 토지임대부 미니 신도시 ‘배터리파크시티’
매년 2천억원씩 수익내는 효자 공기업



토지임대부주택은 여러 형태로 공급할 수 있다. 구치소 처럼 저가형 토지임대부 주택을 공급할 수 있고, 입지에 따라 ‘시장 임대료’를 받을 수 있다. 최근 택지개발 부지로 주목받는 용산 정비창은 최적의 입지다. 고층 오피스텔이나 고급 아파트로 개발이 가능하다.

미국에선 1979년 토지임대부 미니 신도시를 개발해 지금도 운영중이다. 뉴욕 맨하탄에 있는 배터리 파크 시티다. 맨하탄 서측 허드슨강 유역 11만3천평(옛 성동구치소 부지 5배 규모)을 매립해 미니 신도시 부지를 마련했다. 여기에 고층 빌딩과 1만4천여 세대 아파트를 토지임대부 방식으로 공급했다. 지금은 브룩필드 플레이스(옛 세계금융센터) 등 고층 복합쇼핑몰과 고급 아파트들이 줄지어 들어선 곳이다.

미국은 개발업자에게 토지를 임대하고, 개발업자가 건물을 짓고 일반인에게 임대하는 방식으로 배터리파크시티를 개발했다. 초기 자금은 2천억원(1979년 당시) 규모의 장기 채권을 발행해 조달했다. 대신 토지임대료를 시장가격으로 거둬 비용을 충당했다.

2000년 336억원(2,800백만 달러) 수준이었던 토지 기본 임대료(base rent)는 2020년 현재 757억원(6,310만 달러) 수준으로 올라섰다. 시장 가격에 따라 임대료가 상승하면서 조달한 금융 비용을 순차적으로 회수한 것이다. 뉴욕시는 여기에 더해 배터리파크시티개발위원회(Battery Park City Authority)가 입주 기업 등에게 재산세를 직접 거둬 재정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재산세를 뉴욕시에 내는 대신 개발위원회가 거둬 운용함으로서 투자 원금을 갚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배터리파크시티 안내 인포그래픽


2020년 개발위원회 감사보고서(2020 annual report)를 보면 2020년 배터리파크시티 영업이익은 총 2,700억원(2억2,980만 달러) 규모였다. 이중 80.5%(2,220억원, 1억8,500만 달러)는 뉴욕시 일반 기금으로 전입됐다. 보고서는 “2020년 기준 배터리파크시티는 뉴욕시 이익을 위해 4조5,600억원(38억 달러)의 누적 초과 수익을 창출했다(has cumulatively produced excess revenues)”고 강조하고 있다. 1979년 장기채권을 발행해 개발한 토지임대부 미니 신도시가 42년 뒤 매년 수천억원 이익을 뉴욕시에 제공하는 효자 공기업이 된 셈이다.

임재만 세종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배터리파크시티나 싱가폴처럼 택지는 물론 상업 용지 역시 토지임대부로 공급할 수 있다. 용산 정비창이나 여의도 같은 곳에 토지 임대료를 4%(주택용 토지임대료 1.3%의 3.1배)씩 받는 수익형 모델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적정 수준의 임대료 책정과 새로운 형태의 자금조달 방식, 부채비율 중심의 공기업 평가기준 개선 등 정책 전환을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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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선거가 4개월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누가 돼야 한다’는 이유보다 ‘누가 돼서는 안 된다’는 이유가 유독 넘쳐나는 요즘이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 등으로 평가절하 된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국가의 운명과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민중의소리는 이번 대선이 한국 사회가 더 진보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믿는다.

‘2022 더 왼쪽으로’는 대선에서 주목할 만한 진보적 대안을 조명해보는 기획이다. 연말까지 몇 차례에 걸쳐 독자들에게 전할 의제와 주장에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린다.

세번째 기획으로 ‘토지임대부주택’ 시리즈를 2개의 기사로 보도한다.

① 강남 구치소 빈땅과 아파트…욕망에 흔들리는 정치
② 구치소 빈땅에서 꾸는 뉴욕 ‘배터리파크시티’ 드림
[표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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