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소픽 인터뷰

코로나 팬데믹 2년, 예술노동자가 말하는 무대와 삶

‘노동가Ⅱ’ 배우들에게 들어보는 팬데믹 2년 그리고 ‘위드 코로나’ 속에서 함께 살아갈 지혜와 가치

(맨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양예석, 서제광, 강현우, 전정훈, 정보람, 박시호, 강민규 배우


코로나 팬데믹 2년. 상상하지도 못했던 재앙 속에서 거의 730일이라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유례없던 바이러스의 폭력 앞에서 우리는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이미 흘러간 시간을 복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잃어버린 시간을 복기하는 일은 상당히 중요하다. 우리 사회의 구조를 확인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년간 우리는 안전한 일터에서 일했을까. 그리고 우리의 일상은 흔들림이 없었을까. 서로 미워하고 벽을 세웠던 것은 아닐까.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물음, 우리는 무엇을 잃었을까. 코로나19로 우리가 잃은 것 앞에서 자연스럽게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결국, 2년이란 시간을 들춰내는 일은 '위드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제시해 준다. 그 방향은 코로나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에게 따뜻하고 따끔한 조언이 될 수 있다.

지난 11월 일상적 단계회복으로의 '위드 코로나'가 시작됐던 무렵, 일본인 연출가 쯔카구치 토모는 코로나 팬데믹 광풍 속에서 살아내야 했던 예술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아 무대에 올렸다. 예술노동자들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작품 '노동가Ⅱ'였다.

강민규 배우는 전화 상담원으로 일했던 기억을 꺼내놨고, 강현우 배우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했던 경험을 털어놨다. 양예석 배우는 연기에 대한 열정을 잠시 접고 배달 노동자로 일했다고 했다. 박시호 배우는 코로나 팬데믹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홍콩 민주화 시위에 대한 기억을 꺼내놨다. 정보람 배우는 서점에서 발견한 책 '4285km, 이것은 누구나의 삶이자 희망의 기록이다'를 통해서 자신의 일상과 바람을 이야기했다. 전정훈 배우는 외국인 친구와 백신을 맞기 위해 돌아다녔던 기억을 말했고, 서제광 배우는 세상을 먼저 떠난 이를 떠올렸다.

각양각색의 주제와 결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는 모자이크처럼 흩어졌다 모이길 반복하며 잃어버린 2년의 한국 사회를 그려냈다. 변해 버린 한국 사회와 우리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와중에 변해선 안 될 가치도 보였다. '노동가Ⅱ' 배우들에게 예술노동자로서 코로나 2년을 살아낸 이야기를 들어봤다.

(왼쪽부터) 강현우, 박시호, 강민규, 전정훈, 서제광, 양예석, 정보람 배우


2020년 팬데믹 시작, 배우들의 심경
그리고 공연계 내 터진 구조적 문제


공연장. 코로나 팬데믹이 터진 후, 어떤 분야나 장르보다 가장 먼저 문을 닫은 장소였다. 극장이 문을 닫는다는 것은 다양한 의미를 가졌다. 어떤 관객은 영혼을 나눌 장소를 잃었고, 어떤 배우들은 직업을 잃었다. 어떤 배우는 당장 먹고 살길을 찾았고, 어떤 배우는 연극의 본질에 대해서 고민했다. 어떤 배우는 과부하에서 벗어나기도 했으며, 어떤 배우는 비대면 면접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접했다.

배우들의 삶의 형태가 다르듯, 배우들은 새롭게 등장한 코로나19의 얼굴을 다르게 그렸다. 다만, 분명하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있었다. 바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드러난 공연계 내 구조적인 문제였다. 초창기 팬데믹으로 극장이 문을 닫고 관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받은 지원금을 무조건 써야 했던 구조, 위기 상황 속에서 계속 변하는 지침과 정책의 부재, 특수고용직 지원금과 관련해 배우로서 (공적서류 등) 증빙이 어려운 구조 등이었다.

제광=특수고용직에 대해서도 배우들에게 손실 보상하겠다고 해서 나오는 안들이 있었다. 그 전해 같은 기간에 연극을 해서 벌어들인 수익에 비해서 줄어든 거에 대해서 보상을 해주는 것이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1년 전에 공연을 못 했던 배우들은 단 한 푼도 못 받게 되어 있는 거다. 그런 구조적 문제 때문에 1년 내내 뮤지컬 앙상블로 춤추고 있던 배우들은 1년에 2~3편 정도 하면서 매달 받던 게 있으니까, 직전 같은 동기대비 수입이 정확히 잡히고 이번 해(코로나 기간) 공연이 없어졌기 때문에 지원금을 탈 수 있는 구조였다.
하지만 사실 실질적으로 무대 배우들은 탄 사람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택배 기사라든지 이런 분들은 손실 감소분을 증명할 수 있다. 하지만 배우는 비교 분기와 대비해서 내가 코로나 때문에 수입이 감소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그 전해 같은 분기에 공연이 없어서 수입이 없었던 사람은 유령이 되는 거다. 손실 보상이 이 제도 취지엔 맞는 건데, 제대로 된 피해 보상을 받을 방법이 없었던 거다. 어떤 마음으로 그 제도를 만든진 알겠지만, 꼼꼼하게 잘 따져서 만들려면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민규=처음엔 한때 지나가는 전염병이겠구나 했다. 진짜 실감이 안 됐다. 잠깐 쉬면 되지 했다. 그런데 3월이 지났는데 공연이 엎어지고 계속 그러다 보니까 화가 많이 났다. 형님들이 구조적 정책이라든지 예술인지원사업 이런 거 말씀하셨는데, 사실상 작년도에 공연한다고 해서 수입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페이를 많이 받는 게 아니니까. 혹은 무 페이로 할 때도 있다. 뭐 이런 식이니까. 그러면 작년과 올해의 수입을 비교해서 '이만큼 퍼센티지(%)로 떨어졌다, 그러면 지원금을 주겠다' 하는데 받은 게 없는데, 비교할 게 없는데, 그러면 공연도 하지 말래, 돈도 못 준대, 그러면 어떻게 살라는 거야 생각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운용됐던 지원금 및 정책은 사실 공연계 생태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상황으로 이뤄졌다. 배우들의 현실적인 상황과 공연이 올라가는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실제 지난해 만난 공연계 관계자들 역시 받은 지원금을 토해내거나 연기할 수 없어서 관객이 없는 상황에서도 공연을 올려야 했다고 상황을 설명한 바 있다.

배우들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 대해서 이어서 설명했다.

‘노동가Ⅱ’


민규=다른 지원금이 또 있는데, 그건 코로나19 때문에 공연을 못 하게 됐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거였다. 예를 들어 지원금을 받으려면 대관 계약서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보통 공연을 시작하지 않았는데 대관을 엄청나게 빨리 잡거나 계약서를 미리 쓰지 않는다. '아 우리 이제 공연을 할 거예요' 했는데 대관은 안 잡았고, 이걸 증명할 방법이 없다. 그러니까 '공연하기로 했는데 못 해요' 하는 공식적인 걸 제출 할 수 없는 거다.

정훈=공연이 취소됐는데 연습하다가 취소됐고 그걸 증명해야 하는데, 증명한 팀은 여태까지 들어간 돈은 지원해주기로 한 것은 지원해준다는 거다. 근데 사실상 (공적서류 같은) 그런 걸 증명하는 게 힘들다.

시호=애초에 연습비라는 개념이 공연예술계에 잘 없고, 그래서 결국 공연이 올라가야 공연을 한 것에 대해 페이를 받는 거다. 공연 전날까지 연습했다고 하더라도 리허설비 조차 없으니까. 이를테면 확진자가 갑자기 나와서 공연 전날에 공연을 못 올리게 된 경우, 이들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는 그런 구조다. 공연을 올리지 않았기 때문에 공연 페이를 받을 수 없고 연습한 두 달은 그냥 우리의 노력인 것으로 되는 게 초반에 많아서 예술계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공연을 올리지 말라고 해놓고, 지원금을 쓰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양예석 배우는 2018년과 2019년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다고 했다. 2019년 하반기에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연기에 대한 갈증이 더 많이 생겼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막 코로나19가 시작될 시기였지만, 그는 2020년 상반기까지 공연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더는 어려워졌다. 하반기에 있던 거리공연이 모두 취소됐던 것이다. 그는 "공연이 계속 취소되면서 코로나가 좀 오래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배우로서 힘든 게 당연히 있었지만 크게 욕심부리지 않았다. 오디션도 없고 작업도 없으니까, 저는 생계에 좀 더 집중하자 해서 배달일도 처음 하게 됐다"고 말했다.

예석=아까 예술인지원에 대해서 조금 아쉬운 것들이 실적을 항상 대비를 시킨다. 그전에 작업했던 것과 현재의 소득 수준을 말이다. 저 같은 경우 파트타임을 편의점에서 일주일에 두 번, 15시간만 해도 고용보험을 들어야 한다. 고용보험 가입자는 특수고용 지원금 이런 거 절대 못 받는다. 프리랜서여도 파트타임으로 편의점에서 일한다고 해도 고용보험 가입이 의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지원 대상이 안 되더라. 제가 소득이 없어도, 제가 파트타임으로 버는 것 이외에 지원금을 못 받더라. 그건 좀 어쩔 수 없는 피해 아닌 피해, 받을 수 있는데 못 받는, 그런 게 좀 많이 아쉬웠다.

보람=저도 카페가 문을 닫아서 일자리를 잃었다. 연기 자체로 밥 벌어 먹고살 생각을 안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도 않았고. 그래서 이걸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지금 당장 나는 모든 게 다 끊겼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게 제일 패닉이었다. 그래도 연기를 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만족감이 있지 않나. 그것 때문에 이런 삶을 유지하면서 살아온 것인데 이 만족감조차 느낄 수 없으면 뭘 보고 살아야 하지, 뭐 때문에 이 짓을 했지, 차라리 다른 사람처럼 취업할 걸 그랬나 생각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올지 아무도 몰랐으니까. 어느 나라로든 도망갈 수도 없었다.

시호=저는 연극이 이렇게 위험한 장르였나 하고 처음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왜냐면 식당도 약간 오픈, 어디도 제한적 오픈인데 여전히 공연 무대는 당시 너무 닫혀 있었다. 지금이야 조금씩 오픈되고 그렇지만, 초반에는 제일 먼저 차단됐던 게 연극이었다. 그래서 '아 우리가 그렇게 위험한 존재였어? 관객 앞에서 침 튀기면서 연극하는 게 위험천만한 것이었나?' 그리고 '아니야, 우리 그렇게 위험하지 않아, 그리고 유익한 것도 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연극예술인이 고군분투를 했다.
근데 증명하기 너무 어려웠다. 계속해서 우리의 효용을 증명해야 하는 일들이 연극배우로 하여금 '이거 근데 효용이 있긴 했었나? 그냥 내가 좋아서 한 건가?' 하면서 이렇게 민낯으로 나와보니, '누굴 위한 것이긴 했나' 하면서 자성을 하게 된 거다. 근데 그게 건강하게 흐르는 자성이면 좋은데 점점 '뭔가 아닌 것 같아, 쓸데없는 짓 한 것 아닐까' 하면서 더 이상 연극을 안 하게 된 동료도 있었다. 아마 경제 활동과도 직결될 것 같다. 계속 이럴 것 같고, 원래 힘들었던 것, 이참에 좋은 은퇴의 이유가 될 것 같다고 그만둔 사람도 있었다. 소위 현타라는 시간을 굉장히 세게 겪은 것 같다.

‘노동가Ⅱ’ 전정훈 배우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친구들, 제리드와 프랜시스. 특히, 프랜시스는 정훈 배우와 한국에서 백신을 맞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우리 삶에서
가장 크게 바꾼 것은?


쯔카구치 토모의 연극 '노동가Ⅱ'는 우리다. 배우들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노동가Ⅱ'의 내용은 예술노동가들의 아주 사적인 이야기지만, 보편의 정서로 우리의 공감을 흔들어 깨운다. 그래서 '노동가Ⅱ'를 보는 시간이자 배우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팬데믹 속 나의 모습'을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의 모습은 애처롭고 무섭고 불쌍하고 조금은 숨통이 트여 보인다. 배우들에게 코로나19가 우리 삶에서 가장 크게 바꾼 것은 무엇인 것 같냐고 물었다.

제광=제 장면에선 결국 고인이 된 형에 관해서 대화하다가 마지막에 반전으로 '죽은 사람이구나' 하고 나오는 씬이었다. 코로나 기간 동안 사람들을 못 만나게 됐다. 그 형을 같이 추억하는 사람들과 만났다면 또 한 번쯤 형에 대해서 이야기 했을 것이고, 그 순간 그 사람이 살아나는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이 다 사라져 버린, 감정의 교류에 의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지점을 잃어버린 것 같다.

정훈=예전에는 다 친구인 줄 알았던 누군가가 친구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이 기간을 통해서 진정한 친구들, 앞으로 평생 같이 갈 동료들, 벗이 누군지 알게 됐다. 사람이 같이 만나지 못하니까, '밥 한번 합시다' 했던 허례허식이 누가 진짜고 가짠지 밝혀져 버린 거다. 그래서 저는 나름대로 인간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계기가 됐다.

현우=사람들이 공감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 무기력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도 그렇고 다른 사람도 그렇고. 해외여행도 못 가고. 사람들이 한때 재택 하면서 핸드폰만 하고 넷플릭스는 모르는 사람도 다 볼 정도였다. 지하철을 타도 똑같은 마스크를 쓰고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무기력하고 활력이 없다고 느낀다. 요즘엔 더 느끼는 것 같다. 금방 사라지겠지 했는데 오미크론이 나오고 하니까. 제가 활발하고 그런 성격이 아닌데, 어젠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 빨리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서 활력을 찾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다 같이 지하로 끌려들어 가는 그런 기분이 든다.

시호=사람이 살면서 표현을 한다는 게 너무 중요한 것이구나 하고 느꼈다. 마스크를 쓰면서부터 소통이 예전만큼 안 되는 것 같고, 말도 예전보다 20%는 잘 못 알아듣게 되는 것 같다. 뮤지컬을 보러 갔는데 '와!' 못 하고 박수만 치면서 감동 내지는 다른 것들이 눌러지고 있으니까, 어딘가로 발산을 해야 하는데, 그게 화로 뿜어져 나가는 것 같다. 그러면 술자리를 갖지 못하면서 우리는 왜 우울해지는가 했을 때, 한국 사람은 그 자리에서 굉장히 많이 표출했던 것이다. 술 먹고 풀어지면서 고민했던 많은 것이 해제되면서 '와!' 하면서 발산됐는데, '술자리 안 돼' 하니까, 쌓이고 쌓여서 그런 쪽으로 가게 된 게 아닐까 싶다. 살면서 기쁨과 슬픔을 표현하는 게 되게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보람=좋고 나쁜 게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 개인 시간이 많이 생긴 것, 꿈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 시간이 생겨서 자기 발전을 고민할 수 있는 것, 쓸데없이 잦은 음주를 하지 않고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폭음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것 같다. 인류애가 사라지면서 사람들이 서로 더 화를 내고 있는데 그 와중에 동물이나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진 것 같다.

예석=예전에 일본 도쿄를 여러 번 갔는데, 거기서 사람들이 외로워 보인다고 느꼈다. 왜 그랬나 싶었는데 거기 사람들이 평상시에 마스크를 많이 쓰더라. 패션도 되고, 개인주의도 있다 보니까 그랬던 것 같다. 저는 그 이미지가 되게 컸다. 일본은 너무 좋은데, 살기엔 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컸다. 그러다가 한국에서 제가 감기 걸렸을 때 가끔 마스크를 썼는데 진짜 이거 한 번 썼다고 세상과 되게 단절된 느낌이 들었다. 되게 편하기도 하고, '나 건들지 마세요' 이런 느낌도 들고, 세상에 나 혼자 딱 독립돼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근데 이제 코로나19로 이걸 같이 쓰게 됐다. 저는 마스크 때문에 모든 게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만약 마스크를 벗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 과거로 복귀될지, 다른 상황이 될지 궁금하다.

민규=비슷하게 생각한다. 익명성이 너무 보장되는 것 같다. 말 그대로 개인주의가 좀 더 많이 생긴 것 같고, 홀로 떨어져 있는 기분도 많이 들고 그런다. 원래 말 좀 하면서 풀어야 하지 않나. 누군가를 만나든 악수를 하든 포옹을 하든 그러면서 감정이 풀어지는 것인데 그런 게 단절되다 보니까 내 안에 있는 스트레스나 화를 풀어내는 방식들이 너무 많이 변한 것 같다.

지난달 19일부터 28일까지 나온씨어터 무대에 올랐던 '노동가Ⅱ' 무대엔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가 등장했다. 컨베이어 벨트는 물리적으로나 내용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컨베이어는 뱅글뱅글 도는 인생 같기도 했고, 붙잡을 수 없는 시간 같기도 했다. 또한, 노동자들의 노동 현장 같기도 했고, 벗어날 수 없는 굴레 같기도 했다. 해석은 관객 몫이었다.

‘노동가Ⅱ’


이 컨베이어 벨트에서 배우들은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증언들을 내뱉었다.

카페 아르바이트생은 자신에게 반말하는 손님에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자신의 변화를 감지했다. 콜센터 직원은 고객의 폭언을 견디지 못해 '상담원 케어 버튼'을 눌렀다가 자신을 둘러싼 공기가 미묘하게 바뀜을 인지하게 됐다. 콜센터 직원은 자신이 낙오자가 됐음을 깨닫게 됐다. 배달 중 교통사고를 당한 아르바이트생이 자신의 몸이 아닌 음식을 먼저 걱정하기도 했고, 외국인 친구와 함께 백신을 맞으러 다니면서 경험하게 된 일화도 등장했다. 코로나19로 여행을 못 가고 있다가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한 책 '4285km, 이것은 누구나의 삶이자 희망의 기록이다'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다. 코로나19 발발 전인 2019년 10월 'APP CAMP'를 통해 홍콩에 다녀온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일곱 가지 에피소드는 소재도 주제도 각양각색이다. 말하는 방법과 무대 스타일이 제각각이다. 하지만 배우들의 증언들은 일곱 가지 색깔의 무지개가 되어 코로나 팬데믹을 그린다. 자신의 장면을 통해서 관객과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지 물었다.

현우=지인들이 또래다 보니까 제 에피소드 보고 다 그러더라. '반말하는 손님이 많다, 약간 힘들다' 하는 경우가 많더라. 제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인류애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일방적으로 반말하는 타인의 인류애가 사라지고 있다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혐오하는 나도 인류애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정훈=아마 토모가 이방인으로서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을 넣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도 다 나름의 필드에서 이방인일 것이다. 가족에게서도 이방인일 것이다. 아마 연기한다고 버티고 있고, 이런 거 한다고 '집안에 이런 거 한 사람이 없는데 넌 왜 그런 걸 하고 있니' 하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제 장면은 한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지 말하고 싶었다.

제광=제가 생각했던 현대인의 자화상은 '괜찮다' 스스로 다짐하고 되뇌고 세뇌하고 그러면서 힘겹게 버티고 견디는 사람들이었다. 어쩌면 한순간 그냥 무너지기 일보 직전에 위태로움을 감추고 괜찮은 척 가장하면서 사는 우리들. 그리고 마치 그것이 당연히 미덕인 것처럼 여기는 현대인들. 많은 사람들이 '나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지 않나. 힘들다는 이야기를 불편해하는 것 같다.
어디에 토로할 수 없는 정도를 넘어서 힘듦을 이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내가 만약에 내 경험에서 꺼내어 내서 객석에 공감과 보편성을 끌어낼 수 있다면, 누군가 힘든 얘기를 용기 있게 꺼냄으로써, 그걸 듣는 것만으로도 공감, 위로, 위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목표로 토모랑 대본을 수정해 가면서 작업을 했다.

민규=콜센터 장면을 하면서 '콜센터가 힘들어요' 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진 않았다. 그것보다 코로나 때문인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스트레스가 많이 쌓인 것 같다, 그러다 보니까 문의도 많아지고 저런 문의도 많아지고 그런 짜증과 불만을 우린 다 듣고 있어야 한다,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인지 몰라도 사람들이 그런 순간이 더 많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이야기를 좀 더 하고 싶었다.

예석=제 장면은 그냥 코로나 시국에 배달하는 사람의 에피소드라고 생각한다. 실제 제가 한 경험들이다. 거기 담긴 에피소드들은 다 사실이다. 배달 일을 하면서 사람들이 정말 많이 시켜 먹는다는 것을 알았다. 배달하는 사람도 있지만, 주문만 하지 배달이 어떻게 오고, 다른 데 갔다가 오는지 모르는 분들이 정말 많더라. 배달 일 해본 사람은 다 그 시스템을 아는데 모르는 사람은 또 모르고 그런 것들을 좀 얘기해 보면 재밌겠다 해서 그런 경험을 토대로 에피소드를 만들어 봤다. 그런 것들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보람=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 책 첫 장에 쓰여 있는 말인 것 같다. '누구나 한 번은 길을 잃고 누구나 한 번은 길을 만든다'라는 말. 그 말부터 제가 이 장면을 시작했다. 그런 말이 있지 않나. 신은 사람에게 견딜 수 있을 만한 시련만 준다고. 신이 사람을 다 무슨 슈퍼맨으로 보는 건지, 인생이 게임 스테이지면 만랩이 없고 계속 갱신인 것인지 그런 느낌이 들더라. 매번 그 시련을 이겨내고 겪어 내야지 사람이 고이지 않고 갇히지 않고 또 새로운 밝음을 찾아서 살 수 있는 것 같더라. 그래서 그런 혼란스러움, 슬픔 이런 것을 다 이겨내고 방향을 잘 찾아서 길을 걸어내면 그게 각자가 만들어낸 길인 것 같다.

시호=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선행 내지는 어떤 좋은 의미로 사람들에게 보여지기 위해 찍혀지는 사진이 정말 선한 의도로 찍혀지는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홍콩에 가서 정말 많은 것을 찍고 비디오로 남기면서, 나중에 그 생각을 했다. 지우고 난 다음에 아까울 이유가 없지 않나? 나는 그 현장에 있었고 내가 무언가를 느꼈다면 그걸로 된 건데, 사진을 지운 다음에 왜 아까워야 하는 거지? 이게 남아 있어야 하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보여져야 하고, '좋아요'를 받아야 하고, 되게 괜찮은 거리라는 게 사라지니까, 그것에 대한 속상함이 컸던 것 같다. 나는 뭘 그렇게 많이 찍고 있는지 스스로 가끔 생각해본다. 먹는 사진들, 근데 먹는 건 왜 찍는 건지, 수많은 사진과 기록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공연을 만들면서 매일 생각해보게 되더라.

‘노동가Ⅱ’


'위드 코로나'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다시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음을 말이다. 이제는 함께 가야 하는 시기가 정말 왔다. 실제 지난 11월 단계적 일상회복을 위한 '위드 코로나'가 시작됐다. 하지만,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다시금 약간의 제약들이 생겼다. 쌓인 피로감과 그리운 인간관계. 우리는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우리의 노동가가 비탄의 노동가가 아닌 더 나은 노동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훈=모든 사람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관심, 그리고 연대인 것 같다. 예술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따뜻한 말, 관심, 연대.

현우=조금 내려놓고 인내하면서 자기 생각을 좀 정리할 시기가 아닌가 하는 주관적인 생각이 든다.

제광=자본주의가 불안을 조장하지 않나. 소비의 근간도 그것이고. 불안의 그물에서 뛰쳐나올 수 있는 자유로움을 각자 챙겼으면 좋겠다. 두 번째는 타인과 나를 비교하면서 거기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철저하게 자기 자신에게 시선을 돌려서 그 안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았으면 좋겠다. 이런 평범한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 전제하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연극배우로서, 아니면 매체를 할지라도, 배우로서 조금 더 장인 정신을 가다듬고 유지하고 장인의 좋은 습관을 계속 개발해 나가면서 성실하게 작업해 나가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민규='인생은 혼자야'라는 말이 있지 않나. 누구나 그것을 마음에 담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코로나19를 겪으면서 혼자 지내는 순간이 힘든 순간인 거다. 그러지 않았을까. 항상 누군가가 곁에 있었고 항상 누군가와 함께 지냈던 우리인데, 코로나 때문에 개개인이 돼버린 우리들이 지금에서야 다른 사람들을 좀 더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혼자일 수가 없었다. 그런 느낌이 든다.

예석=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잘해야 한다는 것은 코로나 이전부터 생각했다. 일단 각자 건강을 잘 지키면서 하고자 하는 걸 잘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저는 올해 실행한 게 있었는데 뭐든 일단 해보자였다. 안 먹는 것, 안 입는 것, 안 하는 것들을 경험해 보려고 했다. 코시국에 뭐든지 해보면서 느낀 것들? 그런 것들이 제겐 굉장히 좋았다.

보람=생각해보면 모르는 사람이 길을 물었을 때 '뭐라고요? 데려다줄까요?' 한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 친절한 사람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서로 엄청 폭력적인 사람으로 생각했을까. 왜 그렇게 느꼈을까. 지하철에 좁게 앉으면 다 같이 불편한 거 알지 않나. 근데 일 대 다수로 생각해서, 아 진짜 이 사람들 이렇고 저렇고, 아 빨리 내렸으면 좋겠고, 그렇게만 생각한다. 뭔가 이 사람을 이 사람으로 안 보고 그런 게 부족해지는 것 같다. 내가 개인인 만큼 이 사람도 개인이고, 이 사람도 사랑이 있는 사람이고 이런 걸 많이 깨달았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이해하려면 뭔가 정확히 봐야 하지 않을까. '저 사람도 사람이야' 이런 게 부족해져 가는 것 같다.

시호=비슷하게 이어지는 이야기인 것 같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요새 들어 더 많이 든다. 서로 '아 쟤는 나랑 달라'라고 인지했을 때, '아 별로네, 다른 사람은 뭔가 이상한 것 같아, 그거 틀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코로나 시대에 와서도 그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왜 기침하지?' 하고 확 피하고, 뭔가 좀 다른 행동을 하면 도태되거나 멀어지거나 밀어내짐 당하는 사람들이 이제는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럴 때 이 집단이 굉장히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한 명 한 명의 속도를 기다려 주지 않는구나, 인내하고 봐주지 않는구나 싶다. 다 같은 속도로 걸어갈 때 내가 같은 속도로 걸어가지 않으면, '너 느려, 너 느려 터졌어'라고 말하는 것. 학교든, 직장이든, '나이 서른인데 왜 취직 안 하고 있어?'라고 한다. 그것은 자기 속도다. 근데 그것에 대해서 결혼해야 할 때, 취직할 때, 아이 낳아야 할 때, 사람들의 속도를 평준화시켜서 계속해서 그 속도에 못 따라가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 거 안 따지고 각자의 삶의 속도를 인정하면 좋을 것 같다. 큰바람이다.

‘노동가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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