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노동] 돌봄노동자는 때리면 맞고, 성폭력도 참아야 합니까?

민중의소리-국민입법센터 공동기획 코로나 시대의 노동 돌봄정책 어디로 가야하나⑤ 위험에 노출된 돌봄노동자

돌봄 노동자가 병들고 있다. 영유아, 노인, 장애인 등의 손발이 돼 그들의 일상을 꾸리는 동안 손목, 어깨, 허리, 무릎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다. 이년 저년은 일상이고 머리채 잡히기도 일쑤다. 불쑥 성적인 요구를 하거나 몸을 더듬기라도 하면 단전부터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상시적인 해고 위험에 저임금, 임금 착복까지 한국사회 노동 문제가 총집합 됐다는 돌봄 노동 현장에 산재와 각종 폭력 문제까지 더해지면서 정점을 찍었다.

“아동학대, 노인학대, 장애인 학대는 뉴스에 많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아프고 폭행당하는 건 아무도 관심 안 가져요.” <민중의소리>가 만난 9명의 돌봄 노동자들은 ‘진짜 사장’인 정부가 돌봄 노동자를 학대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 요양사들이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일대에서 열린 3.25 요양노동자 하루멈춤 집단행동 처우개선과 고용안정 보장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03.25 ⓒ김철수 기자

직종 가리지 않고 가시지 않는 파스냄새 

돌봄 노동자들은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린다. 혼자 움직이거나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영유아, 노인, 장애인 등의 신체 활동을 돕는 업무 특성 때문이다.

거동이 불편한 65세 이상 노인들이 주로 생활하는 요양시설이 대표적이다. 시설 요양보호사는 물 마시기, 머리 빗기부터 목욕하기, 기저귀 갈기까지 일거수일투족 돌봐야 한다. 욕창이 생길까 봐 수시로 체위를 변경하거나 침대에서 휠체어에 앉히는 등 이동시킬 때 큰 힘이 든다. 몸이 뻣뻣하게 굳은 노인의 옷을 갈아입히면 요양보호사 둘이 달라붙어도 땀을 뻘뻘 흘린다.

야간 당직 때 혼자 노인 24명의 기저귀를 갈 때 울고 싶었다고 시설 요양보호사 강신승 씨는 말했다. “1시간에 열 분씩 대변을 봐요. 기저귀를 갈 때 순순히 응하는 어르신은 10%도 안 돼요. 못하게 버티거나 요양보호사를 때리세요. 더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죠.”

근골격계 질환은 산재 신청을 해도 인정받기 쉽지 않다. 중장년층 여성 노동자가 90%인 상황에서 퇴행성 관절염이라고 의심받는 경우가 다반사다. 일하다 얻은 병이 아니라 나이들어 아프다는 거다.

안 그래도 적은 인력으로 다수의 이용자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동료에게 미안해서 산재 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박선옥 민주노총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 광주지부 사무국장은 말했다. 무급으로 쉬어야 하니 치료도 못 한다.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 요양사들이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일대에서 열린 3.25 요양노동자 하루멈춤 집단행동을 통해 처우개선과 고용안정 보장을 촉구하며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2021.03.25 ⓒ김철수 기자

혼자 움직일 수 없는 노인, 장애인을 집에서 돌보는 일도 쉽지 않다. 의료용 침대도 없고 휠체어를 둘 수도 없는 환경에 재가 요양보호사와 장애인활동지원사가 오롯이 몸으로 지탱해야 한다.

영유아를 집에서 종일 돌보는 아이돌보미 역시 안 아픈 곳이 없다. “기본적으로 아이를 안고 있어요. 어떤 이용자는 8시간 근무하는 내내 안아주라고 요구해요. 진짜 견디기 힘들 정도로 힘든 일이에요. 아이를 안고 들고 목욕하는 일도 보통이 아니죠.” 아이돌보미 배민주(공공연대노조 아이돌봄 분과부분과장) 씨가 말했다.

대개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자면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의사가 아닌 노동자가 인과관계를 입증하기란 쉽지 않다. 다행히 2018년부터는 근골격계 질환에 대해서는 일정 업무에 종사한 것만 인정되면 업무상 질병으로 보는 ‘추정의 원칙’이 적용됐다. 문제는 이 원칙이 5년 이상 같은 일에 종사하는 등 상당한 기간이 될 때만 인정된다는 점이다. 돌봄노동자의 경우 이 기간을 크게 줄일 필요가 있다.

근골격계 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설비의 도입도 필요하다. 2017년 서울, 경기지역 조사에 따르면, 요양보호사가 노인을 이동시키는 방법(복수응답)은 ‘직원 2명이서 한다’가 72.5%, ‘자신의 손으로 한다’가 71.8%인 반면, ‘리프트를 사용한다’는 18.2%뿐이었다. 늘 둘이서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적절한 설비의 도입이 절실하다. 노인이라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몸무게는 40kg이 넘는다. 

아이들이 때리면 안 아플까요?

신체 활동을 지원할 때 이용자들이 얌전하겠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시설요양보호사들의 말을 들어보자. “맨날 뜯기고 맞고 꼬집히고…이년 저년은 애교에요.”(박선옥 사무국장) “저뿐만 아니라 ‘니 자식들이 차에 치여 다 죽어야 한다’는 등 언어폭력은 자장가 같아요.”(강신승 씨)

“머리채를 잡으면 놓질 않으세요. 가격해서 갈비뼈 세 개에 실금이 간 적도 있어요. 현장에서 119에 실려가는 일도 있었죠.”(강신승 씨) “남자 어르신이 니킥으로 차버리니까 그대로 떨어져 나간 요양보호사도 있어요.”(박선화 전국요양서비스노조 광주지부장)

어르신에게 물려 상처를 입은 요양 보호사.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


장애인활동지원사의 경우 다양한 장애 유형에 대비할 수 없어 폭력에 더 쉽게 노출된다. 60시간 교육 이수만 하면 누구나 장애인활동지원을 할 수 있다. 무조건 현장에 투입돼 처음 보는 장애 유형에 적응해야 한다.

“문 열고 들어가면 칼이 날아다닐 때도 있어요. 장애인 돌발이 어디서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데 노동자들 스스로 감당하라는 거죠. 장애인이 폭행당하는 건 이슈화되지만, 우리가 폭행당하는 건 아무도 관심 없어요. 우린 사람도 아닌가 봐요.” 장애인활동지원사 김후남(공공연대노조 인천본부 장애인활동지원사 지부장) 씨가 말했다.

열악한 노동조건보다 더 무서운 성폭력의 공포  

여성이 90%인 돌봄 노동자들은 상시 성폭력 피해에 두려워해야 한다. 아무렇지 않게 성적인 요구를 하거나 정신을 잃은 척하고 몸을 더듬기도 한다. 특히 이용자의 집으로 찾아가는 방문재가 돌봄 노동자의 경우 폐쇄적인 공간 때문에 더 위험하다.

“목욕시킬 때 사고가 나요. 보호자가 집에 있는데도 그래요. 나중엔 남자 어르신 가까이 가는 게 무섭더라고요. 집에 (남자 어르신) 혼자 있는데 들어가는 것 자체가 두려워졌어요. 그래서 방문재가는 못 하겠더라고요.” 전지현 요양서비스노조 사무처장이 말했다.

노인장기요양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노인인권 보장, 장기요양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정책요구행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07.15 ⓒ김철수 기자
 
전문성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어떠한 보호장치도 없기 때문이다. 이용자 선택에 따라 해고되는 고용불안에서 피해를 말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이용자 잡기에 바쁜 센터는 다른 요양보호사로 교체하면 그만이다. 아무 정보 없이 들어간 다음 요양보호사는 똑같은 일을 겪는다.

센터의 입장에서 이용자는 곧 ‘돈’이다. 여하한 이유로건 이용자가 돌봄서비스의 수급을 중단하면 센터 입장에선 곧바로 매출이 줄어드는 결과가 빚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건 ‘수급자를 잘 제어하지 못하는 무능력’으로 간주되기 쉽다. 그러다보니 예방은커녕 사후조치에도 소극적이다.

2017년의 조사에 따르면 폭력피해를 겪은 노동자들은 이직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직이 자신을 가치있게 여기고 직원들의 복지에 관심이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돌봄노동자가 피해를 입을 경우 이들을 도울 수 있는 1차적 주체는 공급기관이다. 이용자를 연결하는 센터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만약 공급기관이 이에 소극적이라면 서비스 제공을 총괄하는 국가기관, 이를테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성희롱 피해를 예방하고 재발방지조치에 나설 필요가 있다.

이용자들에게 사전에 인권교육을 이수하도록 하고, 문제가 발생한 경우에 피해구제를 규정한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를 현장의 기관에 떠넘겨선 안 된다. 돌봄노동자의 임금은 사실상 국가에서 나온다. 국가가 ‘진짜 사장’이라면 사장으로서의 의무도 다 해야 한다. 

코로나시대의 노동


코로나19 펜데믹은 한국사회의 노동을 둘러싼 불평등을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아프면 쉬세요’ 캠페인이 진행됐지만 현행 법에 유급병가와 상병수당은 보장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유급병가를 쓰지 못하는 노동자는 가족을 돌보기 위해 일자리를 그만 둬야 했습니다. 그렇게 맞벌이 가정의 수입이 줄자, 물류센터로 투잡을 나서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심야노동에 대한 제한이 없는 물류센터는 죽음의 현장이었습니다. 펜데믹은 또 돌봄과 돌봄노동자를 둘러싼 불평등도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민중의소리는 코로나 시대 노동의 불평등 문제를 현장과 전문가들을 광범위하게 취재하고, 국민입법센터와 함께 법제도적 대안을 찾아봤습니다. 이번 시리즈 기사는 현장의 현실을 잘 드러내는 것과 함께 구체적인 ‘법 개정안’ ‘법 제정안’을 제시함으로써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해법’을 도출하는 데 나아갔습니다.

총 5분야, 10개의 기사로 구성된 이 시리즈는 4개 분야는 하나의 기사로 갈음하고,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 사회의 주요 문제로 떠오른 ‘돌봄’에 집중해 시리즈 내의 시리즈로 6개의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병가제도와 상병수당 : 아프면 쉬어라? 아프면 쉬어라? 한국인만 아파도 출근한다
정리해고자 재고용권 : ‘정리해고자’ 성기훈은 456억에 목숨 걸지 않을 수 있었다
야간노동 제한 : 새벽배송 경쟁시대, 야간노동 ‘헬게이트’ 열고 있다
④돌봄국가책임제와 돌봄노동
④-1 이용자도 돌봄노동자도 우울한 돌봄 현장
④-2 요양시설 3년 운영하면 건물이 뚝딱 생긴다?
④-3 돌봄노동자의 현실 1 : 최저임금마저도 빼앗기는 돌봄노동자
④-4 돌봄노동자의 현실 2 : 휴게시간 보장으로 임금을 빼앗았다
④-5 돌봄노동자의 현실 3 : 폭력에 노출돼 있는 위험한 현장
④-6 돌봄기본법과 돌봄노동자기본법이 필요하다
노동자성과 사용자의 확대, 새로운 교섭의 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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