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의 국회 사용법, 예산 선물 보따리엔 뭐가 들었나

[이젠 기재부 해체다①] 회계적으로 부풀린 예산, 국회는 감액하고 자기사업 증액…최종 결재권자는 기재부

604조원. 2022년 한국 예산 규모다. 예산은 기획재정부가 짜고, 국회는 심의를 거처 최종 확정한다.

예산엔 기재부가 숨겨둔 것으로 의심받는 ‘국회용 선물’이 담겨있다. 전문가의 교묘한 숫자놀음으로, 국민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국회는 기재부가 준 선물 보따리에서 지역구 예산을 주섬주섬 챙긴다. 기재부는 국민 세금으로 마련한 예산 선물에 생색을 낸다. ‘OK 그 선물은 가져가시고, 요건 안되니 내려 놓으세요’라는 식이다.

표현이 다소 거칠어 보이지만 사실이다. 믿지 못하겠다면 다음 내용을 천천히, 그리고 꼼꼼히 읽어볼 필요가 있다. 국민의 무관심 속에, 기재부는 매년 수백조원 짜리 판을 벌이고 ‘첫판부터 장난질’을 쳐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기획재정부 차관들과 함께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자료사진)


기재부가 국회에 준 선물 보따리
해마다 부풀린 수상한 예산들



예산안은 18개 부, 5개 처, 18개 청, 17개 광역단체 등이 다음 해 진행하는 8천여개 사업에 쓸 돈의 총합이다. 기재부는 8천여개 사업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1번 사업은 늘리고 2번 사업은 줄여’라고 참견한다. 참견은 ‘예산 협의’라는 이름으로 연초부터 12월까지 사실상 1년 내내 이어진다.

9월경, 기재부와 협의를 마친 정부 예산안은 국회에 전달된다. 국회는 정부 예산을 심의한다. 국민이 낸 혈세를 정부가 허투루 쓰지 않도록 감시한다. 다소 과도한 예산이 있다면 삭감한다. 헌법이 부여한 권한이다.

‘국회의원은 놀고먹는 직업’이라는 편견이 만연해 있지만, 예산 심의 국면에선 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국회의원 300명이 정부가 제출한 8천여개 사업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적게는 수천만원, 많게는 수백억원 예산을 삭감한다. 의원 중에서 엄선된 15명은 중요한 사업 수백개 예산을 또 한 번 분석한다. 예산 삭감 작업은 보통 한 달가량 걸리고, 막판 1주일 동안엔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14시간 넘는 마라톤 심의 강행군이 이어진다.

8천개 사업 중 눈여겨봐야 할 예산이 몇 가지 있다. 기재부가 매년 엇비슷한 규모로 예측한 사업을 국회가 엇비슷한 규모로 삭감하는 예산이다.

‘국채이자상환’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국채를 발행해 자금을 빌려온다, 빌려온 자금에 따라 그에 맞는 이자를 줘야 하고 필요한 예산을 이자상환 사업에 배정한다. 기획재정부 담당이다. 서민들이 주택담보대출 받을 때 매월 이자를 계산해 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관건은 이율이 몇 %냐다. 아직 빌리지 않은(내년에 빌릴) 돈(예산)이기 때문에, 이자를 얼마로 잡아야 할지 확정하지 못한다. 기재부가 2.5% 이율을 예상하면, 1.5%로 가정할 때보다 많은 돈을 내년 예산에 이자 비용으로 잡아야 한다.

예측의 영역이다. 시기 각각 변하는 금리에 대한 전망은 시각에 따라 달라진다. 2022년 11월 금리가 몇% 일지 누가 정확히 예측할 수 있을까. 기재부 예상 이자율보다 국회 예상 이자율이 낮다면, 국채이자상환 예산은 삭감된다.

최근 10년간 기재부가 제출한 ‘국채이자상환’ 예산과 국회가 감액한 규모를 살펴보면 수상한 패턴이 발견된다. 감액 비율이 매년 비슷비슷하다. 국회는 기재부 제출 예산을 평균 6%씩 깎았다. 해마다 미세한 차이는 있지만, 지난 10년간 감액 비율은 최소 4%에서 최대 9% 사이를 오갔다. 문재인 정부 3년 동안은 매해 5%로 동일했다. 감액 액수까지 9천억원으로 똑같다.

약속이나 한 듯 반복된다. 확인된 것만 10년째다. 이 수상한 비율을 계산한 정의당 용해인 의원은 “추계가 어려워 생기는 오차라면 한해도 빠짐없이 일정한 비율이 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계속되는 예산 과다는 실수가 아니라 고의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고의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받는 예산은 더 있다. 국민연금급여지급액이 대표적이다. 국민연금은 지급 대상이 되는 가입자에 정해진 금액을 지급하는 사업이다. ‘국채 이자’ 보다 쉽게 예측이 가능한 구조다. 매년 대상자가 되는 연령대 인구가 정해져 있고, 연금 가입자가 낸 돈에 따라 연금액은 자동 계산된다. 하지만 최근 3년간 정부가 제출한 국민연금 예산은 매년 평균 3,360억원 가량 감액됐다. 정부가 과도하게 예상하고, 국회가 감액하는 과정이 반복됐다. 공무원연금 퇴직급여·수당 예산처럼 예측 가능한 사업도 정부는 부풀려 제출했고, 국회는 기다렸다는 듯 삭감했다. 이렇게 삭감한 ‘수상한 예산’은 2021년 기준 2조4,500억원에 달한다.

정부와 국회의 예산 증·감 문제점을 수년째 제기하고 있는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회계적으로 감액된 예산은 사실상 기재부가 국회에 주는 선물 보따리다. 기재부가 국민을 상대로 거대한 예산 감액 쇼를 벌이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본회의장(자료사진)


기재부가 감액하라고 준 예산
의원들 민원 사업 증액



기재부가 준 감액 선물 예산은 국회의원들의 민원사업 증액에 쓰인다. 기재부가 예산 감액쇼의 주범이라면, 국회는 공범이다.

총 감액 규모가 결정되면, 감액한 만큼 다른 사업 예산 증액 논의가 시작된다. 지난해 기준, 감액된 예산은 9조원이었다. 감액 예산 9조원은 의석수 비율대로 여야에 각각 배정된다. 국회의원 정원의 57%를 차지하는 여당은 5조원을, 34%를 차지하는 국민의힘은 3조원을 챙겨가는 식이다.

각 당에 배정된 예산 중 일부는 각자 집중하는 정책 사업 증액에 우선 배정된다. 남은 예산은 의원들 민원성 사업 증액에 쓰인다. 대표나 정책위의장처럼 실세 의원이거나, 예산 심사에 직접 참여한 의원 지역구 사업은 일반 국회의원 지역구 사업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증액된다.

2019년 예산심의 담당 위원회 위원장이었던 한국당 안상수 의원 지역구 예산은 46억원 넘게 늘어났고, 여당 간사였던 조정식 의원은 20억원, 야당 간사인 장제원 의원은 80억원 규모로 지역구 예산을 증액했다. 이해찬 당시 여당 대표는 국립세종수목원 예산이 대폭 증액되면서 200억원대 지역구 예산이 늘었다.

예산 심의에 직접 참여한 의원들을 중심으로 지역 안배가 진행된다. 참여 의원 지역구가 충청도면 충청도를 지역구로 둔 의원과 광역단체 사업을 형평에 맞게 증액하는 것이다.

2019년 국회에서 증액된 사업 상위 목록을 살펴보면 상당 부분이 지역 토목사업이다. 전남(보성-임성리), 경남(포항-삼척), 경기(서해선), 충청(도담-영천)에 건설되는 철도·전철 사업 예산이 똑같은 금액으로 증액됐다. 애초 정부가 제시한 예산 규모는 각기 달랐다. 전남 철도 예산은 2,600억원이었고, 경남 철도는 1,200억원, 경기도 복선 전철화 5,800억원, 충청 3,300억원이었다. 하지만 국회 증액 과정에서 이들 예산은 1천억원씩 나란히 증액됐다. 사업마다 공사 진행률이 다르고, 때문에 필요 예산이 달라지는 것이 상식적이지만, 늘어난 공사 예산은 약속이나 한 듯 모두 같았다. 합리적 심의 없이 지역 안배 차원의 예산 배분 정황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기재부가 의도적으로 부풀린 것으로 의심받는 예산을 국회가 삭감하고, 이렇게 삭감된 예산은 국회의원 민원성 예산 증액에 사용되는 것이다.

국회의원 민원사업, 최종 결재권자는 기재부



각 당 예산 배분 과정에도 기재부는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다. 증액 총액을 최종 결정하는 것이 기재부다. 2021년 예산안 국회 총 감액 규모는 9조원이었지만 증액 예산은 이보다 1조2천억원 적은 7조8천억원이었다. 9조원을 모두 증액할 것인지, 얼마나 줄일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기재부 고위 관료와 경제부총리다.

청와대와 여당이 핵심 사업 몇백개는 직접 개입해 연초 계획 단계에서 증액할 수 있지만, 8천개가 넘는 사업 전체 사업을 입맛에 맞게 컨트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사각지대로 남은 대부분의 예산은 기재부가 결정하는 구조다.

감액 규모가 확정되면 국회 예산을 심의하는 여야 간사는 소속 당, 의원들이 요구하는 증액 사업 리스트를 만든다. 리스트 작업에는 기재부 예산실장 등 고위 관료가 함께하는 것이 관례다. 어떤 사업을 증액할지 검토하는 것이다.

예산 심사 과정을 잘 아는 국회 관계자에 따르면, 각 당이 요구하는 증액 사업 리스트가 담긴 파일은 기재부로 넘어간다. 파일을 받은 기재부는 해당 사업마다 X표시 1개, X표시 2개, X표시 3개로 증액 의사를 국회에 전달한다. 이 관계자는 “X표시 한 개는 증액 가능성이 매우 높은 사업이고, X표시 2개는 불확실, 3개는 증액 불가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국회가 헌법상 감액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정부, 즉 기재부는 헌법상 국회 예산 증액 동의권을 갖고 있다. 국회가 특정 사업을 아무리 증액을 하고 싶어도 기재부가 동의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구조다.

결국, 기재부는 국회에 예산을 부풀려 선물을 주고, 그 선물을 받은 의원들 사업도 최종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것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기획재정부 관계자들과 확대간부회의를 진행하고 있다.(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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