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싸움의 내막] 중간에 끼인 ‘대리점’, 알고 보면 대리점도 ‘을’

“고충도 참고 버티는 게 일상” 권한 가진 택배사에 목소리 내야

편집자주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 소장 사망 사건 이후 택배노조에 대한 악의적인 언론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대리점 소장과 노동자를 싸움 붙이는 격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속 택배기사의 과로사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결집력을 높이고 있는 택배노조는 보수언론에 의해 어느새 ‘조폭’이 되어 있다. 문제 해결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택배사 대신 부담을 떠안고 있는 대리점은 택배노조라는 ‘조폭’의 피해자로만 왜곡돼 비춰지고 있다. 이처럼 ‘갑’은 쏙 빠지고 ‘을’들만 전쟁터에 내몰린 현실을 다각도로 접근해 본질을 파헤친다.

무법천지 택배현장에 노조가 결성된 이후
② 중간에 끼인 ‘대리점’, 알고 보면 대리점도 ‘을’
③ 택배기사 과로사에 침묵하던 조선일보, 노조 때리기만



택배 분류작업이 한창인 서브터미널 모습 자료사진


지난달 30일 발생한 경기도 김포에 있는 CJ대한통운 대리점 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시작으로 대리점주들과 택배기사들간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사망한 대리점 소장은 노조원들 때문에 고충을 겪었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노조는 이 같은 사실을 일부 인정하고 빠르게 사과했다. 하지만 양측의 갈등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이후 CJ대한통운 소속 대리점들로 구성된 대리점연합은 일부 수익이 많은 택배기사의 급여를 공개하며 택배노조의 수수료 인상 요구가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노조는 택배업계 내에서 택배대리점들의 갑질이 더 심각하다는 내용의 택배기사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해 맞불을 놨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리점과 택배기사간의 갈등은 더욱 깊어지는 모양새다.

택배기사-대리점 갈등 증폭, ‘어부지리’는 택배사에게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 택배업계의 진짜 ‘갑’인 택배사만 쏙 빠져있다는 점이다. 원만한 운영을 위해 나설 법도 하지만, CJ대한통운은 이와 관련해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대리점과 택배기사들의 싸움이 택배사로선 손해볼 게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택배업계에서는 노조와 대리점이 정당한 요구를 해야 할 대상이 택배사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 상황에서 ‘을’의 위치에 있는 대리점과 ‘병’의 위치에 있는 택배기사들의 갈등은 ‘갑’인 택배사에게만 득이 될 뿐이다.

지난 2017년 특수고용직(특고)임에도 합법적으로 노조설립 권한을 인정받은 택배노조는 소비자와 국민들의 지지가 큰 힘이 됐다. 지난해 노조는 택배사와 대리점을 상대로 지난 28년간 ‘공짜노동’으로 택배기사가 떠안았던 ‘분류작업’에 대한 개선을 요구했다. 택배기사들은 그동안 하루 평균 6시간 이상 분류작업에 매달리며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감내해 왔고 하소연했다. 지난해에만 16명의 택배기사가 과로사로 사망했을 정도다. 결국 노조는 국민적 지지를 받으며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 분류작업을 택배사 업무로 규정하는 과로사 방지대책을 마련할 수 있었다.

소비자와 국민들은 ‘늦어도 괜찮아’, ‘택배 없는 날’ 등의 캠페인에 적극 동참하며 노조에 힘을 실어줬다. 이는 택배사가 사회적 합의에 응하도록 하는 압력으로 작용했다. 이처럼 노조의 투쟁과 성장에 ‘국민의 지지’는 필수적이었다. 역으로 최근 보수언론의 잇따른 택배노조 때리기, 대리점과의 갈등 부추기기는 노조에 큰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대리점 역시 마찬가지다. 원청 사용자도 택배사이고, 노조의 요구를 들어줄 권한이 있는 것도 택배사인데 노조와 싸움에 억지로 등장한 셈이다. 택배사 눈치를 보면서도 현실적으로는 노조와 ‘밀당’하며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데 정면충돌을 부추기는 자극적인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한 택배업계 관계자는 “택배사들은 택배기사와 대리점의 갈등 국면을 오히려 호재로 보고 있는 것 같다”면서 “자칫 회사 운영에 지장이 생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모든 택배사가 한발 물러서 지켜만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태원 전국택배노조 수석부위원장이 서울 서대문구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에서 김포 대리점 소장 사망에 대한 노조 차원의 조사결과를 발표하기 앞서 고인을 애도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택배사와 노조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대리점’



대리점은 택배사와 노조사이에서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한 CJ대한통운 대리점 소장은 “본사(택배사)가 계약을 해지할 경우 생계를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대리점은 택배사의 요구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게다가 노조를 만든 택배기사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그들의 요구를 대리점 자체적으로 수용하기도 버거운 게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택배사와 계약을 맺는 대리점은 2년마다 재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예를 들어 택배업계 1위(시장점유율 60%)인 CJ대한통운의 경우 공개입찰을 통해 대리점을 선정한 뒤, 2년마다 재계약을 하는 식이다.

택배사는 구역별로 대리점을 두고, 대리점이 택배기사를 고용해 택배 배송 업무를 전담한다. 이로 인해 택배산업엔 택배사, 대리점, 택배기사간 갑·을·병의 구도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택배노조가 만들어지면서 택배기사들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대리점으로선 한목소리를 내는 노조와의 관계가 버거워진 것이다.

대리점을 향한 택배사의 압박도 커졌다. 평소 택배사는 대리점을 상대로 매출과 서비스지표 등을 평가한다. 배송출발이나 배송완료, 당일집하 비율, 여신상환 비율 등에 대한 평가는 재계약을 해야 하는 대리점으로서는 압박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택배사가 대리점 소장을 통해 노조를 압박하는 수법을 자주 이용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노조가 반발할 가능성이 큰 사안을 대리점에 떠넘긴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리점 소장은 “보통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재계약을 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면서도 “회사(택배사)가 재계약을 해주지 않는 대리점을 보면 노조가 가입된 곳들이 많다. 회사는 노조에 뭐라고 말은 못 하면서, 대리점 소장들에게 ‘너희가 관리해야 하는 사람들인데 관리를 못 했다’며 수시로 소장들을 압박한다”고 하소연했다.

반면 택배사들은 실제 계약 중인 대리점들 가운데 재계약이 이뤄지는 비율에 대해선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택배사 관계자는 “해당 내용은 경영 관련 사항으로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택배기사들의 배송 및 집하 수수료에서 다시 수수료를 떼가는 대리점에 대해 택배기사들의 고혈을 짜 수익을 올린다는 비판적인 시각이 나온다. 물론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일부 대리점의 경우 수십명의 택배기사를 고용해 높은 수수료로 수익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상당수의 대리점은 그 규모가 2~10명 남짓으로, 대리점주가 택배기사 업무를 병행하며, 대리점을 운영한다.

한 택배업계 관계자는 “일부 대리점의 경우 택배기사들에게 높은 수수료를 떼 많은 수익을 올리는 악덕소장이 있는 반면 전체 대리점의 60~70% 정도는 대리점 소장이 택배기사 일을 하지 않으면 수익을 남기기 어려울 정도로 영세하다”고 말했다.

명절 시기 급증한 택배 물량 자료사진


알고보면 대리점도 ‘을’... “고충도 참고 버티는 게 일상”



택배사와 택배기사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해야 하는 대리점이지만 본사와 제대로 된 소통창구조차 없는 실정이다. 통상 대리점들의 문제 제기는 각 서브터미널의 운영자인 지사장들을 통해 택배사로 보고된다. 하지만 대리점의 요청 대부분이 지사장 선에서 막히거나, 본사로 보고되더라도 제대로 된 답변이나 해결방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는 게 택배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실제 CJ대한통운 소속으로 대리점을 운영 중인 A소장은 최근 추석 명절로 택배 물량이 급증하면서 당일 들어온 물량을 바로 발송하기 어려워지는 ‘잔류’ 문제에 대해 택배사에 문제개선을 요청했다. 시간이 지나서도 답변을 들을 수 없어 재차 문의했지만, 본사 주재원으로부터 “택배 일을 하루 이틀 하느냐”는 말을 들었다.

A소장은 “택배 일을 하다 보면 회사가 나서 해결해 줘야 할 일들이 발생하지만, 실제 회사에 요청해도 답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면서 “대부분의 대리점 소장들은 아예 포기했다. 고충이 있더라도 참고 버티는 게 일상”이라고 한탄했다.

물론 택배대리점연합(대리점연합)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는 방법도 있다. CJ대한통운의 경우 2017년 12월 대리점연합이 설립돼 활동을 시작했다.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지는 3년 남짓 됐다. 최근 택배사와 대리점간에 중요한 문제를 결정지을 때마다 대리점연합이 참여해 논의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대리점연합에 대해 아쉬운 목소리도 나온다. CJ대한통운 전체 1,950여개의 대리점 중 850개 대리점이 소속돼 있는 대리점연합이 나머지 대리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CJ대한통운 대리점 소장은 “대리점연합 소속이 아닌 대리점들의 경우 본사와 대리점연합간의 논의 내용을 뒤늦게 통보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논의를 통해 결정된 내용 중 상당수는 대리점 소장으로써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연합 정종철 회장은 “전국 8개 지역에 있는 지부장과 대의원들을 통해 연합회 소속 대리점들의 의견을 취합하는 시스템”이라며 “대리점연합 소속이 아닌 대리점의 경우 아직 별도로 의견을 취합하는 시스템을 갖추진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 회장은 “대리점연합이 생김으로써 예전처럼 회사가 권위적이거나 일방적으로 결정하던 것들은 많이 개선됐다”면서 “대부분의 문제에 대해 회사가 대리점연합회와 논의해 결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국택배노동조합 조합원들이 8일 오전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앙노동위 부당노동행위 인정에 따른 교섭과 비리대리점 퇴출을 촉구하고 있다. 2021.07.08.


택배기사-대리점 갈등 원인은 ‘침묵하는 택배사’... “끊임없는 노노갈등 유발할 것”



학계에서는 대리점과 택배기사간의 갈등이 깊어진 원인으로 택배사들의 불성실한 교섭 태도를 꼽았다. 택배사들은 택배노조가 고용노동부로부터 노조설립신고증을 받았음에도 교섭에 응하지 않고 있다. 택배사가 대화에 응하지 않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현장에서 부딪히는 노조와 대리점의 갈등이 격화됐다는 지적이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택배노조가 설립됐지만, 아직 단체교섭은 안정화되지 못했다. 언제든지 힘의 관계에 따라 결정되는 불안정한 상황”이라며 “현장의 권력관계로부터 안정적인 교섭구조가 도출될 수 있기 때문에 끊임없는 갈등이 야기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또 “(이런 대리점과 택배기사간 갈등이)택배사 입장에선 당장 손해가 없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끊임없는 갈등의 씨앗이 밑바탕에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현장은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면서 “택배사가 직접 나서 제도를 안정화하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일은 반복될 수 밖에 없고, 결국 택배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택배산업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강경우 한양대 물류공학과 교수는 “대기업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피해 가는 수단으로 대리점을 운영하는 것이 업계의 나쁜 관행처럼 이용되고 있다”면서 “택배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노갈등(대리점과 택배기사) 역시 대리점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한발 물러서 침묵하는 대기업의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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