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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밥신세에서 필수노동자로④] 이승윤 교수 “보이지 않는 ‘그림자 노동’ 존중해야 ‘진짜 노동존중’”

■취재 최지현·남소연·이승훈, 사진 김철수, 일러스트레이션 신지현

코로나19 이후 재난상황에서도 노동을 멈출 수 없는, 멈춰서는 안 되는 필수노동자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부각됐습니다. 필수노동자의 개념부터 필수노동자의 현실, 지원과 보호를 위한 우리 국회와 정부 및 지자체의 노력,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필수노동자 관련 연구보고서를 작성한 전문가의 의견까지 소개해드립니다.

① 마스크 쓰고 필수업무하는 노동자의 재발견
② 필수노동자라지만, 노동자도 되지 못하는 이들
③ 정부도, 지자체도, 국회도 팔 걷어붙였지만…갈 길은 멀다
④ 이승윤 교수 “보이지 않는 ‘그림자 노동’ 존중해야 ‘진짜 노동존중’”

코로나19를 계기로 전 세계에서 필수노동자 논의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이 불씨를 댕긴 것은 서울시 성동구라고 볼 수 있다. 성동구의회는 지난해 9월 ‘필수노동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고, 이를 바탕으로 성동구청은 올해 2월 ‘성동구 필수노동자 실태조사 및 지원 정책 수립에 관한 연구’ 결과 보고서를 냈다.

이 연구의 책임자는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다. “사회복지의 핵심은 노동”이라고 생각하며 ‘불안정 노동’에 관한 연구를 해오던 이 교수에게 성동구가 필수노동자 지원에 관한 연구를 의뢰했던 것이다. 이 교수는 “코로나19가 발생하게 되면서 정부 차원에서 누구를 지원해야 하냐는 논의를 하게 됐다”며 “그런 기능적인 측면에서 필수노동자를 정리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연구하면서 놀랐던 점은 이전에 필수노동자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너도나도 앞다퉈 ‘필수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정작 필수노동자 개념조차 명확히 정리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성동구가 사실상 첫발을 뗀 셈이다. 그는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필수노동자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며 “국제연구들도 살펴봤는데 필수노동자에 대한 연구는 아직 이뤄진 게 없었다”고 말했다.

체계적인 분석이 없다 보니 필수노동자 지원·보호 대책 역시 현실과 거리가 있었다. 이 교수가 필수노동자를 연구하다가 마주한 우리나라의 노동 문제는 그동안 나온 대책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가 ‘노동 존중’을 바탕에 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배경이다. 이 교수는 지난달 30일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통해 연구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전염병이 퍼지고 나서야 비로소 보인 노동자들

이 교수가 진행한 연구의 목적은 필수노동자 연구를 체계화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 방안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재난 상황에서 필수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과 제도가 미비한 상황에서 작은 기초단체가 먼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나선 것인데, 결과적으로 중앙정부의 역할까지 제안하게 됐다. 중앙정부에서 먼저 필수업종을 포괄적으로 지정하고, 그에 따라 지방정부가 지역 상황 등을 고려해 정책적 지원대상의 우선순위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연구는 필수노동자 정의조차 구체적이고 과학적으로 규정되지 못한 현실에서 기인했다. 현재 중앙정부도 지방정부와 함께 필수노동자 보호 정책을 논의하고 있는데, “사실 개념화가 제대로 되지 않고 막 이뤄지고 있다. 일관된 기준이 있진 않은 것 같다”는 게 이 교수의 평가다. 이 교수가 연구 결과 ‘필수노동자에 대한 개념화의 필요성’을 우선 제안한 이유다.

우선 연구는 필수노동자 정의를 두고 대체로 공유하는 핵심적 개념속성이 ‘노동현장에서 물리적으로 나타나야만 하는 노동자’ 혹은 ‘코로나19 감염 위험의 최전방에서 종사하는 노동자’로 수렴된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재밌는 건 사회구조에 따라 필수노동의 정의도 좀 달라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심리상담가나 헬스장 직원이 필수노동자로 꼽히는 나라가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우리나라에선 대표적인 필수노동자로 꼽히는 배달 노동자가 다른 나라에선 필수노동자로 불리지 않는다. 국가별 상황이나 문화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의미다.

이에 이 교수는 “우리나라의 필수노동자를 정의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필수노동자는 과연 누구일까. 연구는 ‘필수성’과 ‘대면노동이 불가피성’을 기준으로 필수노동자를 정의할 것을 제안했다. 이를 바탕으로 꼽힌 필수노동자는 돌봄노동자, 간호사, 버스기사, 공동주택관리원, 청소원 및 환경미화원, 택배 및 배달업 종사자 등이다.

이 교수는 “필수업종인데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업군이 있는 반면, 재택근무가 불가능해서 반드시 물리적으로 일터에 나와야 하는 직업군이 있다”며 “대면이 꼭 필요한 노동을 들여다봤더니 이미 우리 사회에서 저평가되고 있던 노동이었다”고 분석했다. 사회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노동임에도 늘 우리 곁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인식하지 못했던 노동자들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부가가치를 생산해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득수준이 낮거나 고용이 불안정한 상태였다. 특히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 확산 시에는 노동자의 건강도 직접적인 위협을 받는다는 게 문제다.

이 교수에 따르면 필수노동자의 경우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대면노동의 불가피성이 모두 높았다. 다만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급휴가 사용 정도가 낮았다. 그러다보니 열이 조금 나더라도 쉬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또 재가요양보호사 같은 비상용직이 상용직보다 실직을 경험한 비율이 높았음에도 대부분 실업급여를 받지 못했다. 이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해 노동시간이 감소해 소득이 감소하더라도 실업급여 체계가 부실해 소득보전을 받기 어려운 게 우리나라”라고 꼬집었다.

이런 차원에서 ‘의사’는 필수노동을 하고 있지만 필수노동자 보호 대책 대상에는 포함되기 어렵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이들에게도 보호가 더 필요한가”라고 반문하면서다.

또한 그는 “위기가 올 때마다 타격을 받는 업종이 달라질 수 있지 않나”라며 그때마다 “이 사회와 공동체를 위해 꼭 필요한 노동인데도 시장성이 낮아 소멸되거나 불안정해질 경우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의 안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보호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는 노동자가 ‘필수노동자’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이 교수는 “저도 이렇게 말하기는 싫다”고 토로했다.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이미 하고 있는 노동자임에도 자본주의 시장 원리에 따라 저평가됐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는 “필수노동자들은 목소리가 작아서 주목을 받기도 어려웠다”며 “그런데 이 사람들을 보호하지 않으면 공동체가 위험해진다고 하니까 (비로소) 정책이 탄력을 받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와 관련한 사례로, 이 교수는 지난해 발생한 ‘쿠팡 물류센터 집단감염 사태’를 들었다.

“전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서 상병수당 없는 나라가 한국과 미국밖에 없다. 만약 열이 좀 난다면 쉴 수 있어야 하는데 하루하루 소득이 너무 중요한 사람들은 상병수당이 없으면 열이 나도 쉴 수가 없다. 그때 쿠팡에서도 열이 나도 일하러 나갔던 분이 감염돼 확산된 게 아닌가. 그제야 상병수당 만들자고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모순적인 측면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필수노동자 논의가 확대되어서 이런 노동자들이 보호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승윤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가 30일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교수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3.30ⓒ김철수 기자

“보이지 않는 ‘그림자 노동’을 존중해야 ‘진짜 노동존중’”

그러나 이 교수는 “지금까지 나온 정책들을 보면 이게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게 실행될 수 있을지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려되는 지점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이 분명하게 분담되고 문제 인식에 따라 체계적으로 이뤄지기보다는, 재난이 닥쳐 어려운 사람들이 생기니 ‘누가 더 어려운지’를 찾아 미봉책으로 급하게 지원하려고 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게 가지고 있는 최대 단점은 ‘누가 더 불안정한지’ 불안정한 사람들끼리 경쟁하게 만든다는 것”이라며 “궁극적으로는 이들의 연대를 해친다”고 꼬집었다. 실제 성동구 실태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사례도 있었다.

이 교수는 “이렇게 ‘누가 더 위험한가’를 걸러내는 방식으로 필수노동자를 활용할 게 아니라 일단 정부 차원에서는 우리 사회의 유지, 공동체 일상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업종은 무엇인지 먼저 개념화하고 지정해야 한다”며 “이 중에서도 그동안 저평가되어 근로환경이 좋지 않은 분들이 누군지를 찾아내야 한다. 이어 각 지방정부에서 이들의 생활 안정과 직군 유지를 위해 개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를 들어 전국민고용보험, 실업급여 확대는 지자체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중앙정부에서 제도화로 빠르게 개선해야 할 것들”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이 교수는 노동 정책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선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노동인데 그동안 저평가된 노동이 많았다는 인식이 전 국민에게 확산돼야 한다”며 “소득이 많은 사람만이 꼭 필수적인 노동을 하는 게 아니지 않나”라고 역설했다.

특히 “복지국가처럼 전반적으로 노동자의 삶이 안정된 경우에는 필수노동자 논의가 거의 없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큰 함의”라며 “정부는 사회안전망을 확보하고, ‘나쁜 일자리’ 자체를 없애려는 노력을 같이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를 거쳐 내년에 치러질 대선과 지방선거가 어쩌면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이 교수는 “(필수노동자가) 어떤 선거용으로 반짝 사용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론 유권자들이 선거를 계기로 좋은 정책들이 실행될 수 있도록 힘을 몰아주면 (열악한 노동현실이) 상향평준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겠나 하는 기대가 있다”며 “저평가된 노동을 다시 제대로 평가하고 인정해주자는 논의에 필수노동자가 지렛대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나아가 그는 “(문재인 정부가) 노동존중 정부라고 하는데 막연하게 존중하는 게 아니라, 중요한 노동인데도 우리 사회에서 저평가됐던 노동, 보이지 않는 ‘그림자 노동’을 존중해야 ‘진짜 노동존중’”이라며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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