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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대타협 손익 계산서

[광주형 일자리를 말한다 ④] 현대차·노동자·광주시…누가 얼마나 양보했나

[광주형일자리를 말한다 ④]

“어떤 일을 서로 양보하여 협의함”

타협의 사전적 정의다. 타당할 타(妥)와 화합할 협(協)을 쓴다. 한자로 직역하면 타당한 만큼 화합한다는 뜻이 된다. 문재인 정부 내내 언급됐던 사회적 대타협의 산물, 완성차 위탁 생산업체 광주글로벌모터스가 생산을 시작했다. 기업·노동자·정부. 각각 조금씩 양보해 일자리를 만들었다.

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한 지금, 1차 계산서를 뽑아 볼 시점이 왔다. 누가 더 양보하고, 누가 더 이익을 가져갔을까. 양보와 이익을 정확히 개량할 순 없다. 다만, 어림짐작으로 따져볼 수 있다. 향후 글로벌모터스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서라도, 각각 손익을 뽑아볼 필요는 있어 보인다. 진정한 타협은 양보의 평등한 분배에서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4월 29일 광주글로벌모터스 공장에서 열린 준공 기념행사. 행사장 중앙에 행사에 ‘여럿이 함께가면 험한길도 즐거워라’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행사엔 문재인 대통령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광주시장, 글로벌모터스 노동자들이 참석했다.ⓒ제공 : 뉴시스

연 68만대 생산하는 인도 공장 놔두고...
광주에 경차 위탁공장 만든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는 수익을 양보했다. 대신, 계산 불가능한 이득을 챙긴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23년 만에 국내에 생산기지를 건설했다. 라인업에 경차를 추가했다. 글로벌 완성차 기업으로 성장한 현대차에 국내 생산시설은 작지 않은 핸디캡이다. 현대차는 1990년대 후반, 인도 첸나이 지역에 대규모 공장을 지었다. 이곳에선 주로 경차를 생산했다. 첸나이 공장에서 생산한 경차 쌍트로(SANTRO)는 최근까지 ‘인도의 국민차’라 불렸다. 출시 이후 130만대 이상 팔린 스테디셀러다. 첸나이에서 생산한 쌍트로는 중동과 아프리카로도 수출된다.

첸나이 공장은 신차 개발 역량을 갖추고 있다. 현지 전략 모델 개발을 위한 연구소, 도로 주행 시험장을 보유하고 있다. 엔진·변속기도 자체 생산한다. 만약 현대차가 글로벌 라인업에 경차를 추가하고 싶었다면 인도 공장에서 생산할 수 있었다.

수익성도 첸나이 공장이 월등하다. 이미 규모의 경제를 갖췄다. 첸나이는 연 68만대를 생산한다. 광주글로벌모터스는 현실적으로 연 7만대 가량 생산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선 연간 생산 10만대를 넘기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수익성 면에서 중요하다고 본다. 10만대를 넘어서면 규모의 경제가 작동한다. 10만대 생산은 5만대에 비해 원가 30%가 줄어든다. 5만대 생산에 대당 천만원이 든다면, 10만대 생산은 700만원이 들어가는 식이다. 인도 생산이 수익성 면에선 광주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인도의 국민차’ 쌍트로는 800만원 중반대에 팔린다. 캐스퍼 절반 가격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대차 입장에서 글로벌모터스는 수익성을 고려하는 생산기지가 아니다. 일자리 창출 정책을 뒷받침하는 정치적 고려가 더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수익성 포기하고 기대감을 얻었다. 속으론 ‘경영권 세습을 앞둔 정의선 부회장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했을지 모를 일이다. 문재인 정부 첫 번째 공정위원장에 취임한 김상조 위원장은 “현대차가 지배구조 개편에 자발적으로 나설 것이라 믿는다”고 압박했다. 공교롭게도 광주형 일자리 본격 추진 이후, 잠잠해졌다. 김 위원장은 청와대 비서실 정책실장으로 영전한 뒤에도 현대차 지배구조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현대자동차 인도 첸나이 공장(위), 첸나이 공장에서 생산하는 경차 쌍트로(아래)ⓒ제공 : 뉴시스

설계보다 낮은 임금, 법적 권리도 포기
어차피 최대 희생자는 노동자?!

노동자가 가장 크게 양보했다. 낮은 임금을 수용했고 법적 권리를 유보했다.

노동자들은 계획보다 낮은 임금을 받아들였다. 광주형 일자리는 당초 주 44시간 근무에 평균 연봉 3천5백만원을 구상하고 시작됐다. 결과는 계획에 미치지 못했다. 평균에 함정이 있었다. 생산직과 사무직, 관리직을 모두 합해 평균 임금을 산정했다.

총 고용 530여명 중 2/3를 차지하는 생산직(70.6%, 380명) 임금은 3천만원에 미치지 못한다. 생산직은 주 44시간 근무 시 연봉이 2천6백만원 수준으로 떨어진다. 법정 최대 노동 시간인 52시간을 꽉 채워야 3천만원을 간신히 넘어선다. 광주시가 지원하는 190만원 가량 주거비를 받아도 목표인 3천5백만원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계획보다 낮아진 임금이 저임금인지, 적정임금인지에 대한 판단은 시각에 따라 다르다. 중요한 것은 취업자 만족도다. 글로벌모터스에 따르면 최근 1년간 퇴사자는 30여명이다. 이직률은 6.6% 수준으로 2017년 기준, 200인 이상 생산직 평균 이직률 11%의 절반에 불과하다.

노동자는 임금 인상에 대한 법적 권한도 양보했다. 일반 기업에선 노동조합과 회사가 교섭으로 임금을 정한다. 임금 교섭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노동자는 파업을 통해 요구 사항을 관철할 법적 권리가 있다. 글로벌모터스는 이 권리를 사실상 제약한다. 향후 5년간 ‘무파업’을 선언했다.

노동계가 광주형일자리를 ‘노동권의 위법한 후퇴’라고 비판하는 근거다. 민주노총은 이 부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보고 애초부터 대화에 참여하지 않았고, 한국노총 역시 여러 차례 대화 중단과 복귀를 거듭하며 진통을 겪었다.

글로벌모터스는 파업권이 있는 노동조합 대신, 노사협의회가 임금 구조를 주도한다. 파업권 유보로 약해진 노동자의 교섭력은 지방정부와 시민사회가 보강한다. 사업자가 노동조건을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하도록 중재하는 방식이다. 앞서 살펴본 대로, 임금 구조 첫 단추는 잘못 끼워졌다. 계획보다 낮은 임금으로 출발했다.

시민사회와 지방정부의 교섭력이 얼마나 발휘됐는지 미지수다. 글로벌모터스 최대주주(21%)는 광주시다. 표면적으론 이사회에서 광주시가 절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2대 주주 현대자동차(19%)의 입김이 현실에선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모터스의 목줄은 수탁업체인 현대차에 달려있다.

매년 파행을 거듭하는 최저임금위원회가 떠오른다. 사용자는 대개 동결을 주장하고, 노동자는 2천원 이상 인상을 요구한다. 격차가 크다. 최저임금위원회 안에는 양측 주장 중 누구의 말이 옳은지 연구·검증하는 산하 위원회가 있다. 위원회 산하 생계비·임금수준 전문위는 각각 근거에 따라 적정 인상률을 산출한다.

하지만 이 제안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정을 반박할 근거는 노사 모두 차고 넘친다. 결국, 한쪽이 반발해 퇴장하면, 정부가 선임한 공익위원이(사실상 정부가) 판단해 인상 폭을 결정하는 흑역사가 반복됐다.

글로벌모터스 임금 결정구조도 최저임금과 비슷하다. 노사협의회가 있고, 이들을 뒷받침하는 상생일자리재단이 구성됐다. 재단은 노사 입장 차이를 좁힐 근거를 만든다. 그 근거가 양측 양보를 끌어내 ‘임금 인상 대타협’을 이룬다는 구상이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정부 역할을 하는 광주시 입장이 중요하다. 향후 임금인상률에 따라 ‘친기업 반기업’ 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합의된 임금은 ‘적정임금’이라고 부르고, 적정임금에 따라 적정한 노동시간을 추구하며, 독단적 기업 운영이 아닌 노사 상생 문화를 실현한다. 이렇게 형성된 적정임금·노동시간·노사 상생 문화를 하청기업까지 확장하는 것이 광주형 일자리의 ‘4대 핵심과제’다.

지금과 같은 논의 구조를 기획한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기존 기업의 노사협의회와 기업별 노조 관계는 유기적이지 못했다. 서로 겉돌거나 배치되는 게 현실”이라며 “글로벌모터스가 새로운 노사관계의 대안이자 상생형일자리의 모델이 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광주글로벌모터스 공장이 지난 4월 29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빛그린 국가산업단지 내에 준공돼 각종 설비가 설치돼 있다. 2021.04.29.ⓒ뉴시스

글로벌모터스에게도 리스크 있을까
광주 다른 공단에선 불평등 불만

광주시와 중앙정부는 리스크를 짊어졌다. 광주시는 광주글로벌모터스에 493억원을 출자한 최대주주(21%)다. 글로벌모터스가 문을 닫으면 혈세 483억원은 돌려받지 못한다. 모든 기업은 소비자에게 외면받으면 생존할 수 없다. 당장 캐스퍼가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지만, 제2, 제3의 위탁차종이 히트를 이어나가리란 보장은 없다. 광주시는 상생형 일자리 창출을 위해 안전한 정책을 양보하고 리스크를 떠안은 셈이다.

다만, 일반 기업과 글로벌모터스를 동일시하기엔 무리가 있다. 냉혹한 경쟁에 내몰린 사기업이기도 하지만, 정치적 영향력 아래에 있는 공기업적 측면이 있다. 광주시는 글로벌모터스 실패를 두고 볼 수 없다. ‘글로벌모터스 파산’이 가져올 정치적 파장은 감당하기 힘들다. 실패해도 성공해야 하는 아이러니다. 중앙정부도 한배를 탔다. 여당의 정치적 고향, 광주의 상생형 일자리가 흔들리는 것은 집권 기반이 흔들린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야당이라고 다를까. 정권 교체를 이뤘다고 ‘광주형 일자리’를 없애고‘대구형 일자리’를 만들 순 없는 노릇이다. 박병규 전 광주광역시 부시장은 “지금 리스크를 걱정할 단계는 아니”라며 말을 아꼈다.

지엽적이긴 하지만, 광주시는 기회비용을 양보했다. 지역 내 전체 중소기업에 돌아갈 수 있는 예산을 광주형일자리에 집중했다. 공장이 들어설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그 안에 주거·교육·교통·보육 등 공동복지 프로그램을 조성한다. 이렇게 들어가는 예산이 1,744억원 규모다. 중앙정부가 66%(1,155억원)를 부담하고 광주시가 24%, 430억원을 책임진다. 광주시가 지난해 중소기업지원에 사용한 전체 예산이 586억원 규모임을 고려하면 결코 작지 않은 예산을 광주형일자리에 투입하고 있는 셈이다.

광주시 여타 산업단지에서는 “왜 우리는 지원하지 않느냐”고 볼멘소리가 나오지만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그만큼 짙어지는 법’이라는 식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새로운 일자리를 위해 기존 업체들은 불평등을 감내, 즉 양보하라는 뜻이다. 사회적 대타협의 또 다른 그림자다.

광주글로벌모터스 공장이 지난 4월 29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빛그린 국가산업단지 내에 준공돼 각종 설비가 설치돼 있다. 2021.04.29.ⓒ뉴시스

00형 일자리 연이은 확산…
추진중 7곳 살펴보니 ‘한국판 리쇼어링’이란 말 무색

글로벌모터스는 한국판 리쇼어링(reshoring, 해외 생산 기지의 국내 복귀) 물꼬를 틀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이용섭 광주시장,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그렇게 믿고 싶은 듯하다. 문 대통령은 글로벌모터스를 두고 “23년 만에 국내에 완성차 공장이 지어졌다”고 의미를 부여했고, 이용섭 시장은 “광주형 일자리 확대로 해외로 떠난 국내 기업을 되돌리겠다”고 야심 찬 구상을 밝혔다.

하지만 이들의 바람은 정치적 구호에 머물 공산이 크다. 저임금·저세율, 낮은 환경규제로 안락(?)한 둥지를 제공하는 데다 소비 시장이 확대되고, 원재료 매장량도 세계 수위를 다투는 동남아에서 한국의 대기업이 철수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아메리칸 퍼스트’를 외치며 중국과 자국 기업 멱살을 잡아끌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테슬라의 유럽·중국 대규모 투자를 막지 못했다. 애플과 포드 등 일부 기업이 미국 내 공장을 증설했지만, 이는 리쇼어링보다는 자사 첨단기술 보호를 위한 설비 증설(애플)이거나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한 생산 공정 확장(포드) 측면이 더 크다.

광주형 일자리를 시작으로 연이어 추진되고 있는 이른바 ‘상생형 일자리’ 현황을 보면 이런 경향은 더 두드러진다. 해외 산업의 리쇼어링보다는 지자체의 중소기업 유치에 가깝다.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에 따르면 광주를 시작으로 횡성, 밀양, 군산, 부산 등 4곳이 ‘상생형일자리’ 추진 지역으로 선정됐고, 구미, 대구, 신안 등이 협약을 체결하고 사업을 타진 중이다. 8곳 중 구미시와 LG화학이 추진 중인 배터리 양극재 생산 공장 한 곳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지자체 지원을 바라는 중소기업과의 협업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은 00형일자리 사업 이전에도 유턴법(해외 사업장을 축소하고 국내 사업장을 늘리면 세금감면·자금지원 등 각종 혜택 제공하는 법)이나 ‘제조업 르네상스’ 등을 통해 리쇼어링을 추진했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민혁기 한국산업연구원은 “적극적인 리쇼어링 정책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리쇼어링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비즈니스 요인”이라며 “정부는 여러 정책수단으로 국내 복귀 기업 확대를 추진해왔지만 성과는 예상보다 저조했다”고 말했다.

광주글로벌모터스 공장이 지난 4월 29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빛그린 국가산업단지 내에 준공돼 각종 설비가 설치돼 있다. 2021.04.29.ⓒ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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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철·조한무 기자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