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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퍼 뿌리내린 그곳, 척박한 경차 시장

[광주형 일자리를 말한다 ②] 경차 내수 시장 활성화하고 수출 가능성도 전망…시장 축소·공급 과잉은 숙제

광주형 일자리로 탄생한 광주글로벌모터스(글로벌모터스)의 첫 모델 캐스퍼가 출시 초기 인기를 끌고 있다. 현대자동차 역대 사전계약 첫날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하루 만에 올해 생산 목표치를 달성했다. 만드는 족족 재고 없이 팔린다.

경차 시장이 정체돼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새로운 경차 시장을 창출하지 못한다면 제로섬 게임이 될 공산이 크다. 정부 주도 일자리 정책이 기존 민간 일자리를 잠식하는 셈이다.

현대자동차 경형 SUV 캐스퍼ⓒ현대자동차

캐스퍼, 쪼그라드는 경차 시장 ‘메기’ 될 수 있을까

한국에서 경차는 인기가 없다. 국내 경차 3종 총 판매량은 9만 7천대로 준중형 세단 아반떼 한 종 판매량(8만7천대)과 엇비슷하다. 2008년 이후 처음으로 10만대 선이 무너졌다. 경차 전성기이던 2012년엔 20만 2천대가 팔렸다. 불과 10년 만에 판매량은 반 토막이 났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비슷한 논쟁이 경차 시장에도 있다. 소비자가 경차를 외면한 것인지, 완성차 기업이 경차 수요를 축소시킨 것인지 알쏭달쏭이다.

완성차 업체가 소비자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건 분명하다. 판매 모델이 적다. 선택지가 기아 모닝·레이, 한국GM 스파크 3종뿐이다.

새로움을 찾아볼 수 없다. 캐스퍼 이전 출시된 경차는 레이가 마지막이다. 10년 전 출시된 모델이다. 2018년 한 번의 부분변경(페이스 리프트)이 있었을 뿐, 10년이 되도록 완전변경(풀체인지)이 없다. 모닝과 스파크는 각각 2004년, 2009년 나왔다. 완전변경은 모닝이 2017년, 스파크가 2015년이다. 소비자가 고를 수 있는 경차는 4~10년 된 노후 모델이 전부다.

캐스퍼가 국내에서 목표 생산량을 채우려면 시장 점유율 70% 이상을 차지해야 한다. 지난해 기준 경차 모델별 판매량은 모닝(3만 9천대), 스파크(2만 9천대), 레이(2만 9천대)순이다. 1·2위 물량을 모두 가져와야 하는 셈이다. 쉽지 않은 도전이다.

쉐보레 스파크ⓒ한국지엠

가능성은 있다. 이웃 나라 일본은 완성차 30% 이상이 경차다. 모델은 50종 이상이다. 완성차 기업의 적극적인 신차 개발이 시장 확대 요인으로 작용했다. 다양한 모델로 수요를 불러일으키고, 수요가 늘면서 기업이 투자를 늘리는 선순환 구조다.

캐스퍼가 경차 선순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까. 기존 10만대 경차 시장에서 싸우는 게 아니라, 새로운 수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다. 캐스퍼는 한국에 없던 모델이다. 경형 SUV다. SUV를 엔트리카(생애 첫 차)로 확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경차 혜택을 받는 SUV는 소득이 아직 부족한 MZ세대에겐 매력적이다. 고속도로 통행료와 공영 주차장 할인, 개별소비세 면제 등 경차 혜택은 차량 구입을 망설이는 젊은 층의 고민을 덜어 줄 수 있다. 광주시는 캐스퍼에 대한 취득세 완전 면제도 추진 중이다. 취득세는 자동차 취득가액의 4%가 부과된다. 경차는 50만원 한도에서 감면되는데 광주시가 조례를 마련해 50만원을 초과한 취득세를 모두 부담하는 방안이 논의 중이다. 광주시민은 캐스퍼를 살 때 5만∼35만원의 비용 부담을 추가로 덜어낸다.

10년 전 출시된 레이는 시장을 경차 시장을 넓혔다. 2011년 12월 출시 이후 이듬해 4만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경쟁 모델 스파크 판매량은 같은 기간 소폭 늘었다. 모닝은 물량이 줄긴 했지만, 감소폭은 2만대로 레이가 늘린 경차 판매량의 절반에 불과했다. 레이는 기존 경차 물량을 뺏어왔지만, 시장 자체를 확대한 것이다.

당시 레이 흥행 요인은 디자인이었다. 해치백 디자인으로 비슷비슷했던 경차들 사이에서 레이는 박스형이라는 ‘신박한 디자인’으로 구매 심리를 자극했다.

캐스퍼는 SUV 디자인으로 승부를 걸었다. 꾸준한 SUV 인기 여세를 몰아 소형 SUV 구매를 고려하는 소비자를 공략할 수 있다. 국내 소형 SUV 시장 규모는 20만대를 웃돈다. 최근 몇 년 새 신차가 쏟아지면서 10종가량의 모델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2019년 출시된 셀토스가 4만 9천대로 1위를 기록한 가운데, XM3(2020년) 트레일블레이저(2020년), 베뉴(2019년) 등이 포진해 있다. 다양성 측면에서 경차와 사뭇 다른 모습이다.

캐스퍼가 이들 소형 SUV 수요를 일부 흡수 할 수 있다. 소형 SUV 가격은 비교적 넓게 분포되는데, 1천만원 중후반대에서 시작해 트림·옵션 따라 3천만원선까지 올라간다. 차체는 작지만, 저렴하면서도 운전자보조시스템을 갖춘 차량을 찾는 소비자에게 캐스퍼는 합리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인기 차종인 기아 셀토스는 1,900만원대에서 시작한다. 여기에 주행보조 옵션을 추가하면 2천만원이 넘어간다. 캐스퍼는 중위 트림에 비슷한 옵션을 추가해도 1,600만원대다.

기아는 지난 10월 5일 모닝과 레이에 소비자 선호 사양을 기본 적용한 신규 트림 ‘베스트 셀렉션’을 출시했다.ⓒ기아

내수 시장으로는 한계…공급 과잉 우려도

내수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해도, 캐스퍼의 목표 판매량 달성을 위해서는 수출 시장 진출이 필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수출 시장은 규모가 크다. 모닝은 외국에서 ‘피칸토’라는 이름으로 팔린다. 지난해와 2019년 수출 물량이 각각 9만 6천대, 14만 6천대로, 내수 시장 대비 3배가량의 실적을 올렸다. 최근 수치가 다소 떨어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10만대에 달하는 상당한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유럽에서만 5만대 이상이 팔렸다. 중남미(1만 5천대), 중동(1만대), 아프리카(8천대)도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다. 스파크도 지난해 내수 시장의 두 배에 가까운 5만 8천대가 수출됐다. 2019년 수출 규모는 10만대가 넘는다.

피칸토 실적에서 알 수 있듯, 유럽은 경차 비중이 크다. 완성차 판매량 가운데 경차 비중이 국가별 평균 40%에 이른다. 이탈리아는 45% 수준이다. 지난해 한국의 경차 수출 대상국 순위를 보면, 스페인·독일·이탈리아·프랑스·영국 1위부터 5위까지 모두 유럽 국가다.

모닝은 내수뿐 아니라 수출 물량도 전량 한국 공장에서 생산 된다. 충남 서산 소재 동희오토 공장이다. 동희오토는 기아가 지분 35.1%를 출자해 설립됐다. 모닝과 레이를 위탁생산한다. 글로벌모터스가 현대차 투자를 받아 캐스퍼를 만드는 것과 비슷한 형태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당장은 경차 내수 시장을 활성화해 파이를 키우는 게 중요하지만, 향후 수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며 “글로벌모터스가 수출 측면에서도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유럽 경형 전기차 시장 확대 추이ⓒ한국자동차연구원/SNE리서치

캐스퍼가 새로운 경차 시장을 창출하지 못하면 공급 과잉 상태가 발생한다. 캐스퍼 판매량이 모닝·레이 판매량을 잠식하면 같은 글로벌모터스와 유사한 기아차 위탁생산업체 동희오토가 곤란해질 수 있다.

모닝·레이는 동희오토가 생산한다. 동희오토는 이미 경차 시장 축소로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동희오토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276억원, 26억원으로 집계됐다. 레이 출시 직후인 2012년부터 2015년까지 60억~70억원대 영업이익이 나왔지만 이후 하향 곡선이다.

모닝과 레이 내수 판매량이 10만대를 밑돌았다. 모닝 수출 물량도 20만대 중후반~30만대 초반에서 20만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지난해에는 모닝과 레이 내수 판매량이 6만 7천대, 모닝 수출 물량이 16만대 수준으로 더 축소됐다. 캐스퍼가 모닝·레이 판매량을 잠식하면, 동희오토의 수익성은 또 한 번 된서리를 맞을 수 있다. 경차 공급이 포화 상태이고, 글로벌모터스의 등장이 제 살 깎기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캐스퍼가 기존 경차를 위협하면 동희오토 입지가 위축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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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철·조한무 기자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