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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열전⑧] 김명임 요양보호사 “동료 해고에 눈 뜬 새로운 삶, 정년이 끝은 아닙니다”

동료의 부당해고에 노조 만들어 함께 싸운 열혈 분회장… “남의 일 같지 않았어요”

“아줌마 NO! 요양보호사!”

출근길 버스터미널에서 광고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붙인 요양보호사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한 공익광고다. 그날따라 그 광고가 눈에 들어온 건 마침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노동자와의 인터뷰가 있었기 때문이다. 공익광고에선 ‘요양보호사’가 국가자격증을 취득한 전문가라고 강조했다. 요양보호사 공익광고는 영상으로도 제작돼 지난해 말부터 TV, 라디오, 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되고 있다고 한다. 요양보호사가 전문가임을 강조하는 광고까지 나온 건 요양보호사를 개인 가정부나 파출부처럼 여기는 일부의 시선 때문이다. 구립중구노인요양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김명임 요양보호사는 2010년 요양보호사 국가공인 자격 도입 첫해에 제2회 자격시험을 통해 요양보호사가 된 뒤 10년 가까이 일해왔다. 지난 9일 그를 만났다.

“오전 9시에 출근하면 밤에 근무한 요양보호사들에게 인수인계를 받아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르신들 상태가 어떤지 보고를 받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합니다. 처음에 위생관리 차원에서 기저귀 케어를 하고, 식사를 드려요. 제가 일하는 층은 ‘비위관 경관식’을 하는 어르신이 많은데, 많을 때는 일곱 분 정도 계시고, 지금은 다섯 분이 계세요. 그리고, 일반 어르신들이 일곱 분 계십니다. ‘비위관 경관식’을 10시에서 10시 반 사이에 드려요. 청소하다가 식사가 다 들어가면 피딩백을 씻고, 어르신들 손을 살피며 케어를 해요. 그리고, 의사소통이 되는 분들하고는 대화도 합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일반 어르신들을 식당으로 데리고 가서 식사하고, 방으로 모셔요. 그리고, 이것저것 치우고, 앞치마도 빨고, 요양보호사들이 식사해요, 그리고, 잠깐 쉬다가 어르신들 목욕을 시켜요. 둘이서 4명을 시킵니다. 침대에 목욕통을 올려서 직접 씻겨요. 무거운 걸 들고, 어르신들도 돌봐야 하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에요. 그리고, 업무시간 중간중간에 욕창이 생길 수 있으니 어르신들 자세도 수시로 바꿔드려야 해요.”

“처음 일하는 분들은
세 달이 지나도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아요.
힘만으로 되는 게 아니고,
요령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경력이 중요해요.”

“요양보호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명임 요양보호사는 자신이 하는 일을 줄줄이 읊어댔다. 5분 넘게 자신의 업무를 말했지만, 업무시간 기준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하루 업무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업무는 저녁까지 빠듯하게 이어진다. 2교대로 근무하기 때문에 한 달 가운데 10일 정도는 주간, 10일 정도는 야간에 근무한다. 어르신들을 돌보는 업무 하나하나는 배움과 경험이 필요하다. 김명임 요양보호사는 “처음 일하는 분들은 세 달이 지나도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아요. 힘만으로 되는 게 아니고, 요령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경력이 중요해요. 어르신들을 옮기다 보면 침대 모서리 등에 부딪혀 다치는 경우도 많아요.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조심해야 해요”라고 말했다.

어르신들 앞에서 레크레이션을 하고 있는 김명임 분회장ⓒ김명임 분회장 제공

주야 근무가 교대로 이뤄지는 만큼 노동강도도 만만치 않다. 주간 근무의 경우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어르신들을 돌보는 업무가 빠듯하게 이어진다. 야간 근무는 오후 6시부터 아침 9시까지 15시간을 일한다. 하지만, 주간 근무의 경우 점심시간 1시간이 빠지고, 야간 근무의 경우 식사시간과 휴식 시간으로 5시간을 제외한 10시간 임금만 받는다. 김명임 요양보호사는 “주간 근무할 때 식사시간 1시간을 온전히 지키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일이 많아요. 야간 근무는 중간에 잔다고 4시간을 빼고, 저녁 식사 30분과 아침 식사 30분을 뺍니다. 하지만, 응급상황에 대비하다 보면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어요”라고 토로했다.

교회에서 노인학교 봉사 10년…
그때 인연으로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

힘겨운 업무고, 아직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지만, 어르신들을 돌보는 꼭 필요한 일을 한다는 자부심이 그를 버티게 한다. 이런 자부심으로 요양보호사로 일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되어 간다. 그가 요양보호사로 일하게 된 계기는 교회에서 노인학교 봉사를 하면서다. “제가 교회에 다니는데, 10년 정도 노인학교에서 봉사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어르신들을 돌봤어요.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봉사를 못 하지만, 꽤 오랫동안 빠지지 않고 했어요. 그런데, 주변에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다면서 따보지 않겠냐고 해서 다른 일을 하는 와중이었지만, 학원에 3개월 정도 다니고, 자격증을 따게 됐어요.”

당시 그는 보험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보험회사에서 일하기 전엔 한증막에서 지압을 배워 10년을 일했다. 지하에서 오래 일하면서 몸이 안 좋아져 그만두고, 보험회사 일을 했다. 한증막에서 일하기 전에도 여러 일을 해왔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딴 뒤 보험회사 일이 힘들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요양보호사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요양보호사 자료사진.ⓒ민중의소리

“처음 일한 곳은 구립한남요양원이예요. 구립한남요양원에서 2년 4개월을 일했어요. 그 뒤에 그만두고, 실업급여를 5개월 받고, 아시는 분이 재가요양센터를 차리면서 봐달라고 해서 6개월 정도 일했어요. 그리고, 2016년 8월 25일부터 구립중구노인요양센터에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이제 만으로 5년이 조금 지났네요.”

“변을 벽에 바르는 건 보통이에요.
시도 때도 없이 욕하는 어르신도 있고,
수시로 머리도 뜯겨요.
성희롱도 많이 당하구요.
입에 담기도 힘든 음담패설에,
엉덩이와 가슴을 만지려는
경우도 있어요.“

어르신들을 상대하는 건 힘이 많이 든다. ‘긴 병에 효자 없다’지만, 특히 치매는 노인들의 삶은 물론 자녀들의 삶까지 힘들게 한다. 그는 “치매 어르신들이 집에 계시면 형제간의 우애도 상하고, 부부 갈등이 심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런 치매 어르신들을 돌보는 건 요양보호사들에게도 곤혹스러운 일이다. 그럴 때마다 ‘전에는 돈 안 받고 봉사도 했는데’라며 기쁘게 일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변을 벽에 바르는 건 보통이에요. 시도 때도 없이 욕하는 어르신도 있고, 수시로 머리도 뜯겨요. 성희롱도 많이 당하구요. 입에 담기도 힘든 음담패설에, 엉덩이와 가슴을 만지려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치매 증상인 경우가 많아서 대응도 못 하는 경우가 많아요. 학원에선 ‘무시해라, 참아라’라고 배웠지만, 현실로 직접 겪으면 정말 힘들어요. 저는 이런 일을 하는 이들은 희생 또는 사랑과 봉사 정신이 없으면 못 한다고 생각해요. 그에 따른 보수가 있어서 일하는 것이긴 하지만, 봉사한다는 마음이 없으면 견디기 힘들거든요.”

그래도, 어르신들과 보호자들이 요양보호사들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해주고, 이것저것 챙겨주며 친근한 마음을 전할 때 보람을 느낀다. 그런 보람이 10년 가까이 그를 요양보호사로 일하게 한 원동력이 됐다. 그런 그에게도 힘겨웠던 시간이 있었다. 지난 2019년 11월 갑자기 함께 일하던 동료 3명이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갑자기 12월에 계약 해지 통보를 했어요.
3명을 평가를 통해 잘랐다는데
어떤 기준으로 평가를 했냐는
질문엔 답이 없었어요.”

구립중구노인요양센터는 2019년 11월 27일 ‘2019년 직원 근무평정 결과에 따른 처우에 대한 사항 알림’이란 제목의 공고문을 요양센터에 붙였다. 공고문은 △근무평점 100~90점 이상 달성자(5명)의 경우 성과급 지급 △60점 초과 70점 이하 달성자(5명)의 경우 ‘서비스&친절교육’ 실시 △60점 이하 달성자(3명)의 경우 계약종료라고 밝히고 있었다.

지난 2019년 부당해고 철회 선전전에 나선 김명임 분회장(사진 왼쪽 두번째)과 조합원ⓒ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

“갑자기 12월에 계약 해지 통보를 했어요. 3명을 평가를 통해 잘랐다는데 어떤 기준으로 평가를 했냐는 질문엔 답이 없었어요. 누구는 성과급을 주고, 누구는 교육을 받고, 누구는 해고를 당했는데 솔직히 하는 일은 별 차이가 없었거든요. 심지어 일하는 동안에도 이게 잘못됐다고 지적받지도 않았어요.”

김명임 요양보호사를 비롯한 동료들은 어르신들을 위해 일한다는 마음으로 버텨왔던 지난 시간이 송두리째 부정되는 것처럼 느꼈다. 계약 해지 통보를 받은 3명뿐 아니라 모두에게 부당해고는 자신이 당한 일처럼 받아들여 졌고, 이를 계기로 노동조합을 만들어 부당해고에 맞섰다. 그리고, 그 중심엔 분회장을 맡아 조직을 이끈 김명임 요양보호사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분회장을 맡게 된 계기를 “정의감 때문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를 ‘노동자 열전’ 주인공으로 소개해준 노우정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 위원장은 “김명임 분회장은 분회가 만들어질 당시 해고 당사자도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때 동료가 당한 부당한 해고를 자신의 일처럼 가슴 아파했어요”라며 칭찬했다.

“중앙 조직의 도움도 받고,
동료들과 힘을 모아서
분회 설립을 준비했고,
해고가 돼도 그만이라는 각오로
분회장을 맡았어요.”

“3명을 자르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속이 너무 상했어요. 남편들은 정년으로 퇴직하고, 집안을 위해 일하는 분들이 많은데, 하루아침에 나오지 말라고 하다니 남의 일 같지 않았어요. 그리고, 제가 불의를 못 참는 성격이에요. 노조가 생기기 전에도 제가 직접 집회 안내 등을 보고 전국요양보호사노동조합에서 하는 집회도 가고, 인터넷 밴드에 가입해서 소식도 듣고 했었거든요. 중앙 조직의 도움도 받고, 동료들과 힘을 모아서 분회 설립을 준비했고, 해고가 되도 그만이라는 각오로 분회장을 맡았어요.”

분회를 결성한 뒤 이들은 본격적인 부당해고 저지 투쟁에 들어갔다. 부당해고를 알리는 피켓을 들고 요양원 앞에서 선전전을 이어갔다.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해 법적 대응에도 나섰다. 월정사요양원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들의 천막농성 현장 등 다른 투쟁 현장에 지지방문을 하며 연대의 소중함도 깨달았다. 특히 월정사요양원 요양보호사들을 만나 몇 명 되지 않는 인원이지만, 당당하게 맞서서 투쟁하는 모습을 보고 힘을 얻었다고 한다.

지난 2019년 부당해고 철회 선전전에 나선 김명임 분회장(사진 오른쪽)과 조합원ⓒ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

“당시에 우리는 28명 요양보호사 가운데 14명 정도가 가입했거든요. 더 적은 인원으로도 싸우는 이들을 보면서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혹시 탄압에 흔들리고, 조합원 숫자가 더 줄더라도 기죽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엄청 많이 싸웠어요. 요양원 앞에서 눈이 와도, 비가 와도 피켓을 들고 계속 싸웠어요.”

기죽지 않고 싸우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부당해고 심판 과정에서 사측이 보인 태도는 견디기 힘들었다. 믿고 일해왔던 지난 시간을 부정당하는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고 한다. 해고 사유와 평가 기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동안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사측은 노동위원회 부당해고 심판 과정에서 불성실, 어르신들에 반말 사용 등을 해고사유라고 주장했다.

“2020년 6월에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어요.
당시 기분은 정말 날아갈 것 같았어요.
함께 모여서 싸우니
승리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어르신들을 대하다 보면 ‘오늘 밥 잘 먹네’ 등 예의에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친근하게 말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친근한 표현을 사측에선 ‘반말’이라고 주장하며 해고사유라고 주장한 거에요.”

어르신들과 가까워지고, 가족처럼 지내려던 요양보호사들의 바람은 그렇게 사측에 의해 해고받아 마땅한 범죄처럼 낙인이 찍혀버린 것이다. 하지만, 노동위에선 이런 사측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조합원들이 함께 싸운 결과 노동위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받고 3명의 해고자들은 복직할 수 있었다.

“2020년 6월에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어요. 당시 기분은 정말 날아갈 것 같았어요. 함께 모여서 싸우니 승리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지금도 인터뷰 하면서 그때를 생각하니 다시 설레네요. 그때 깨달았어요. 가만히 있으면 권리를 지킬 수 없다는 걸.”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로 한 김명임 분회장과 조합원들은 그동안 당연한 것처럼 여겨왔던 노동환경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동안 어르신들을 위해 일하는 요양보호사들의 인권은 무시되기 일쑤였다. 노동자에게 당연하게 주어진 권리인 연차조차 마음대로 쓰지 못했다. 관리자들은 마치 군대 후임병 다루듯이 요양보호사들을 몰아세웠다. 그렇게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그동안은 아무 말 못 한 채 참아야만 했다. 하지만, 노조가 만들어지면서 모든 게 변했다. 사측과 단체협상을 통해 당당히 주장할 수 있고, 노동자들이 뭉치면서 사측도 더는 함부로 그들을 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항상 감염 위험에 노출돼 있어요.
코로나19뿐 아니라 폐결핵 등
다른 질병에 걸릴 위험도 많아요.
구립중구요양센터에서 5년 일하는 동안
옴에 두 번이나 걸렸어요.”

“예전에 잘못된 일이 열 번 일어났다면 지금은 한두 번 정도로 많이 줄어들었어요. 일하는 분위기도 훨씬 부드러워졌고, 연차도 마음껏 쓸 수 있게 됐어요. 상여금도 10만 원 추가됐어요.”

지난 6월 요양노동자 위험수당 지급을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선 김명임 분회장ⓒ김명임 분회장 제공

많은 부분을 바꿨지만, 여전히 개선할 부분도 많다. 특히 임금과 관련해선 미흡한 부분이 많다. 사측에선 요양보호사들의 임금을 줄이기 위해 법적인 허점을 최대한 악용하고 있다. 앞서 소개했듯이 야간근무 15시간 가운데 휴식 등을 이유로 5시간을 빼는 것은 물론 요양보호사들의 근무를 줄여서 임금을 줄이기까지 한다.

“요양보호사들의 근무일수를 줄이고, 오프(휴일)를 많이 넣어요. 인원이 충분해서 오프가 늘어나는 게 아니다 보니 3명이 할 일을 2명이 하는 상황이 일어나게 돼요. 요양보호사들의 노동은 가중되지만, 사람은 적게 쓰니까 사측에 이익이 되는 거죠.”

이뿐만 아니라, 최근엔 코로나19 때문에 일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코로나19 검사를 매주 해야 했지만, 근무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해 개인 시간을 쪼개서 검사를 받아야 했다. 요양원 내부를 수시로 알콜로 소독해야 해서 일도 늘어났다. 그나마 최근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나선 2주에 한 번으로 검사가 줄어들면서 상황이 조금은 나아졌다.

아울러 요양원에서 어르신들을 돌보다 보면 코로나19 감염 위험에도 노출되는 경우가 많지만, 관련한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전국요양서비스노조가 나서 지난 6월 서울과 전국 7대 광역시에서 동시다발 기자회견을 열고, 상시적 위험수당이 지급과 요양보호사 처우 개선을 위한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을 요구했지만, 이들의 호소는 외면당했다.

“항상 감염 위험에 노출돼 있어요. 코로나19뿐 아니라 폐결핵 등 다른 질병에 걸릴 위험도 많아요. 구립중구요양센터에서 5년 일하는 동안 옴에 두 번이나 걸렸어요. 더구나 요양원에 있는 어르신 중엔 요양병원에 가야 할 정도로 상태가 나쁜 분들도 있는데, 공실을 줄이려고 그냥 있기도 하거든요.”

7월 단체협약 통해 임금인상
“시간당 급여 100원 인상에 합의했어요.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그래도 그동안 최저임금만 받아왔던
우리에겐 의미가 큰 임금인상이에요.”

분회에 맞선 사측의 대응까지 만만치는 않은 상황이어서 김명임 분회장을 비롯해 조합원들은 늘 긴장의 연속이다. 사측에선 노조 가입자와 비가입자를 차별하며 노동자들의 분열을 유도하고 있다고 김명임 분회장은 말했다. 정기적으로 이뤄지는 우수사원 시상에서 조합원들은 제외된다. 정년퇴직 등으로 조합원이 줄어드는 상황이 우려도 되지만, 더욱 단결하며 조직을 지켜나간다는 각오로 김명임 분회장은 일하고 있다. 노우정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 위원장은 “김명임 분회장은 노조를 만들어 부당한 해고를 막고 단체협약과 임금협약을 통해 조합원들의 이해와 요구를 모으고 투쟁하고 모범적으로 조직하시는 분”이라고 칭찬했다.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 서울지부 조합원들이 지난 9월 9일 서울시청 앞에서 장기요양보호서비스 질 향상을 위한 요양기관 대상 관리·감독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엔 김명임 분회장(사진 제일 왼쪽)도 함께했다.ⓒ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 서울지부

노우정 위원장의 칭찬처럼 조합원의 이해와 노력을 모아낸 그의 노력 덕분에 지난 7월 단체협약에선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 수 있었다. “시간당 급여 100원 인상에 합의했어요.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그래도 그동안 최저임금만 받아왔던 우리에겐 의미가 큰 임금인상이에요. 그리고, 오프를 줄이고, 인원도 늘리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도 받아냈어요.”

모범적으로 투쟁하고, 모범적으로 조직하며 활동해온 김명임 분회장은 내년 6월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연다.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일을 그만두기엔 그는 너무 젊기에 요양보호사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생각이다.

“’아줌마’라고 부르는 호칭을
‘선생님’, 혹은 ‘보호사’로 바꿔야 합니다.
그렇게 존중받으며 일할 때
제대로 된 돌봄 노동이
이뤄질 수 있거든요.
이 점을 꼭 명심해줬으면 합니다.”

“5년은 더 일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런데 그만둬야 한다니 너무 아쉬워요. 퇴직 이후에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준비를 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해요. 재가 요양보호사로 뛰는 것도 고민 중이에요.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늦은 나이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일본처럼 고령화된 사회에선 건강한 노인이 몸이 불편한 노인의 돌봄노동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도 그렇게 변해야 하지 않을까요.”

앞으로도 요양보호사로서, 건강이 허락하는 한 자신이 노인이 된 뒤에도 꾸준히 일하고 싶다는 그는 이런 바람을 전했다. 앞서 소개했던 요양보호사 공익광고에서 강조했듯이 노년의 삶을 돌보는 전문가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노동자로 생각해달라는 것이다.

“요양보호사를 모르는 이들은 여전히 식모 또는 가정부 취급하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재가 요양보호사들이 심각해요. 내 말 안 들으면 잘린다면서 어르신들이나 보호자들이 요양보호사들을 함부로 대하기도 해요. 어르신들이나 보호자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교육, 공익광고 등 노력이 필요해요. 그러기 위해선 ‘아줌마’라고 부르는 호칭을 ‘선생님’, 혹은 ‘보호사’로 바꿔야 합니다. 그렇게 존중받으며 일할 때 제대로 된 돌봄 노동이 이뤄질 수 있거든요. 이 점을 꼭 명심해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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