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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싸움의 내막] 택배기사 과로사에 침묵하던 조선일보, 노조 때리기만

편집자주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 소장 사망 사건 이후 택배노조에 대한 악의적인 언론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대리점 소장과 노동자를 싸움 붙이는 격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속 택배기사의 과로사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결집력을 높이고 있는 택배노조는 보수언론에 의해 어느새 ‘조폭’이 되어 있다. 문제 해결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택배사 대신 부담을 떠안고 있는 대리점은 택배노조라는 ‘조폭’의 피해자로만 왜곡돼 비춰지고 있다. 이처럼 ‘갑’은 쏙 빠지고 ‘을’들만 전쟁터에 내몰린 현실을 다각도로 접근해 본질을 파헤친다.

무법천지 택배현장에 노조가 결성된 이후
중간에 끼인 ‘대리점’, 알고 보면 대리점도 ‘을’
③ 택배기사 과로사에 침묵하던 조선일보, 노조 때리기만

조선일보 기사 갈무리ⓒ조선일보 온라인 지면 갈무리

“도저히 억울해서 못 살겠습니다.” 진경호 전국택배노동조합 위원장이 최근 택배노조에 관한 조선일보 기사를 보고 한 말이다. 참다못한 택배노조는 지난 10일 조선일보가 허위·왜곡 보도를 하고 있다며 관련 기사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필요시 고소·고발 등 법적 조치도 할 예정이다.

택배노조가 언론중재위에 제소한 조선일보 기사는 9월 7일자 〈작업대 올라 가슴킥…택배노조 간부, 비노조원 이렇게 대했다〉와 9월 8일자 〈[단독]‘가슴킥’ 택배노조 간부, 집회 때 ‘대타 인건비’도 대리점주에 떠넘겨〉이다. 이들은 처음에 〈[단독] 비노조원에 헥토파스칼 킥 날린 OOO(실명) 택배노조 부위원장〉, 〈‘가슴킥’ 택배노조 간부, 대리점주들에 상납금 받아왔다〉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각각 보도됐다가 몇 시간 뒤 수정된 것이었다.

첫 번째 보도는 8초짜리 영상을 바탕으로 한 보도였다. 택배노조 간부가 비조합원인 택배기사를 폭행했다는 내용이다. 두 번째 보도는 같은 택배노조 간부가 다른 지역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자기 대신 일할 택배기사 비용을 대리점주에게 ‘상납’ 받았다는 내용이다.

이를 두고 택배노조는 앞뒤 맥락을 무시한 “명백한 허위보도이자 가짜뉴스”라며 반발했다. 이런 조선일보 기사는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택배노동자의 과로사 문제에는 외면하던 조선일보의 태도와 크게 대비된다는 점에서 ‘악의적 택배노조 죽이기’라는 비판도 나온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10번째 되자 보도한 조선일보, 그것도 사측 대변”

조선일보 기사를 언중위에 제소한 강민욱 교육선전국장은 지난해 조선일보의 보도 행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택배노동자가 10번째로 돌아가셨을 때 조선일보가 처음으로 과로사 기사를 썼습니다. 그것도 사측 입장을 대변하면서요.”

그의 말처럼 지난해 조선일보가 지면을 통해 택배노동자 과로사 문제를 다룬 건 그해 10번째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인 10월 19일에 쓴 기사가 처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택배기사 10명째 숨져…커지는 ‘과로사 논란’〉이 그것이다.

당시 조선일보는 “한진택배에서 근무한 30대 노동자 김 모 씨가 지난 12일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사인은 과로로 보인다”는 전국택배연대노조(통합 전 택배노조)의 발표 내용을 보도했다. 당시 택배노조는 김 씨가 많게는 하루 400여개 물건을 배달했고 심야까지 업무를 강요당했다고 밝혔다. 택배노조의 주장대로라면 김씨는 10번째 과로사 택배기사가 된다고 조선일보는 설명했다.

이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원청’ 택배사의 반론을 함께 실었다. “사안별로 검토한 결과 사인을 무조건 과로사라고 확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택배사의 입장을 전달한 것이다. 과로사 여부가 개인 나이, 건강 상태 등에 따라 상대적인 경우가 많아 책임 소재를 따지기 어렵다는 내용의 한 전문가 의견도 실었다. 택배기사들이 하루가 멀다고 죽어가고 있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조가 파업이 아닌 회사와 협의해 ‘적정선’을 찾아야 한다는 애매모호한 의견도 더해졌다.

2020년 택배노동자 8번째 사망사고까지 택배노동자 사망 후 일주일간 보도량. 괄호 안은 온라인판 보도량. 사진 기사 제외.ⓒ민주언론시민연합

당시 조선일보를 비롯한 주요 일간지의 택배기사 과로사 관련 보도를 분석했던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보고서를 통해 “(조선일보의 택배노동자 과로사 첫 보도는 노사) 양측 주장을 검증이나 추가 취재 없이 전달한 기사”였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가 발표한 택배기사 주 평균 노동시간이 71.3시간이라는 조사 결과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른 과로사 인정 기준(주 60시간)을 명백히 넘어서고 있다는 점 등에서 10번째 사망자는 과로사로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인데, 조선일보는 이를 고려하지 않고 보도했다는 지적이다. 또한 원청 택배사인 한진택배 측 입장을 전달한 조선일보의 보도는, 그 택배사 입장에 사실과 다른 점이 있는 걸 지적한 다른 일간지의 보도와 차이가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택배노조에 따르면 10번째 택배노동자 사망 사건이 벌어진 뒤에도 그해 남은 두 달 사이 무려 6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 끝에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조선일보는 택배노동자 과로사 문제를 따지기보다는 사실상 침묵했다. 잇따른 택배노동자 과로사에 지난해 8월 출범한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가 택배사, 고용노동부와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정부가 택배기사 과로사 방지 대책을 발표한 것만 정보 전달성으로 다룰 뿐이었다.

대리점주와 택배노조 ‘을들의 전쟁’ 과장·왜곡 보도

이처럼 택배노동자의 목소리를 외면하던 조선일보가 느닷없이 올해 8월부터 택배노조를 집중타깃 삼아 공격하고 있다. 계기는 택배노조의 ‘갑질’을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김포의 어느 대리점주의 사망 사건이었다. 올해 8월 31일 〈“너희 때문에…” 택배 대리점주, 민노총 원망하며 극단 선택〉이라는 제목의 온라인판 기사가 시작이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인 9월 1일자 지면에 〈대리점 소장들 “민노총 너희들이 바라던 게 이거냐”〉, 〈민노총은 배송거부… 소장이 직접 배달 나서자, 채팅창에 욕설 도배>, 〈민노총 “죽이고 싶다” “XX벙어리”…택배 대리점주에 두달간 폭언〉 등 제목의 민주노총 비판 기사가 여러 꼭지로 실린 것도 모자라 사설까지 나왔다. 노조를 ‘조폭’ 등에 비유하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이처럼 대리점주와 택배노조 간 갈등을 과장하는 보도가 연일 쏟아졌다. 그 과정에서 일부 보도는 심한 왜곡과 허위사실로 언중위에까지 가게 된 것이었다.

택배노조는 9월 7일자 〈작업대 올라 가슴킥…택배노조 간부, 비노조원 이렇게 대했다〉라는 조선일보 기사에서 영상 속에서 폭행을 당한 비조합원 택배기사가 먼저 택배상자를 택배노조 간부에게 던지는 등 폭력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등의 맥락이 빠진 채 택배노조 간부의 폭력성만 부각됐다며 억울해했다.

9월 8일자 〈[단독]‘가슴킥’ 택배노조 간부, 집회 때 ‘대타 인건비’도 대리점주에 떠넘겨〉라는 기사를 두고는 오히려 당사자인 대리점주들이 나서 보도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택배노조가 전했다. 진 위원장은 이 기사의 제목에서 ‘상납금’이라는 표현이 슬그머니 빠진 것을 두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는 것의 반증”이라고 꼬집었다.

전국택배노동조합(위원장 진경호)은 지난 10일 일부 보수언론에서의 허위왜곡보도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고 밝혔다.ⓒ전국택배노조

이들 기사를 언중위에 제소한 강민욱 택배노조 교육선전국장은 민중의소리와 전화통화에서 “(택배노동자가) 한두 번 쓰러진 것도 아니고 계속 쓰러졌다면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해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것에는 너무 안이한 게 아닌가 싶었다”며 “이번에는 완전히 판이한 모습을 보면서 너무 화가 났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평상시에 택배노동자의 근로환경이나 처우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가, 심지어 과로사가 그렇게 연이어 발생할 때도 (문제) 개선을 촉구하거나 사회적으로 알리거나 하는 것이 전혀 없다가, 지금 이런 (대리점과 노조 갈등만 부각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과연 언론인가”라고 비판했다.

박채린 민언련 정책모니터링팀 활동가는 “조선일보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보도 자체가 대리점주 쪽 입장 외에는 거의 없는 것 같다”며 “지금 대리점주와 택배노조 얘기가 서로 상충하는 게 많기 때문에 노조 쪽의 얘기도 듣고 판단할 기회가 있어야 하는데 택배노조를 악마화해 보도가 나오고 있어 어떤 게 사실인지 확인할 수 있는 기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박 활동가는 “예를 들어 택배노조 조합원들이 (사망한 대리점주가 운영하던) ‘대리점을 먹자’고 했다는 보도가 있는데, 택배노조 쪽에서는 노조 조합원들이 대리점주가 될 수 없는 구조로 인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대리점을 누구에게 맡길 건지 선정하는 건 택배사인데, 그 택배사가 노조 조합원에게 대리점을 맡기지 않을 거라는 건 거의 확실하지 않나”라며 “구조적인 걸 취재해보면 노조가 그렇게 말했다고 바로 기사를 쓸 수 없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을 보면) 노조와 대리점주의 입장을 같이 듣고 판단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기사에서 대리점주의 입장을 대표하는 단체로 종종 등장하는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연합회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CJ택배 대리점주 54% “택배노조에게 폭언·폭행·집단 괴롭힘 당했다”〉, 〈CJ택배 대리점연합회 “택배노조 부산지부 기사, 年7000만원 수령”〉 등의 기사에서 볼 수 있듯이 택배대리점연합회가 발표하는 자료나 입장을 언론이 그대로 받아쓰고 있는 상황이다.

CJ대한통운의 한 대리점 소장은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택배사에 문제 개선 요구를) 백날 해도 의미가 없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대부분 대리점연합회에서 오케이를 한 거라서 (우리가) 말을 해도 전혀 먹히지 않는다”며 “이번 사회적 합의에서 택배비 170원 인상을 결정했는데 이건 회사에서 남겨 먹지 말고 다 풀어야 하는 거다. 그런데 풀지 않는다. 거기에 도장을 찍혀준 게 대리점연합회”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리점연합회는 대리점을 위한 조직인지 아니면 회사에 잘 보이려고 하는 조직인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하며 “대리점연합회에 가입한 대리점이 대체 어딘지 알고 싶다. CJ대한통운에만 2천 개에 달하는 대리점이 있는데 과반도 가입하지 않은 거로 안다”고 지적했다.

지난 6월 1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서 전국택배노동조합 소속 우체국 택배 노동자들이 사회적 합의 이행을 촉구하는 상경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김철수 기자

‘노조 죽이기’ 노골적 의도?

이러한 보도 행태의 이면에는 ‘노조 죽이기’라는 노골적인 의도가 깔린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온다.

전국택배노조는 지난해 12월 두 개의 택배노조(택배연대노조+택배노조)가 통합하면서 탄생했다. 현재 7천 명에 달하는 조합원이 있는 큰 노조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조합원 수는 지금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그림자 노동’을 하고 있던 택배기사들이 비대면 시대에서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적 지지를 받게 된 것도 택배노조가 급속도로 성장한 배경이 됐다. 노동조합 자체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던 여론마저도 과로사를 막기 위한 택배노조의 파업만큼은 압도적으로 지지할 정도였다.

그러자 조선일보에선 택배노조에 ‘강성노조’, ‘귀족노조’ 프레임을 씌우고 택배노조 간부에게 ‘주사파’라는 철 지난 색깔론을 제기하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 이후에 발생한 대리점주 사망 사건은 택배노조를 악마화하는 보도가 쏟아지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로 인해 택배노조의 설립 취지나 택배노동자가 처한 현실은 가려졌다.

박채린 활동가는 “일부 보도는 택배노동자가 노동자로서 가져야 할 권리를 제한해야 한다고 한다. 또 문재인 정부가 ‘친노조’라서 이런 (대리점주에 노조가 갑질을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한다”며 “하지만 사실관계가 맞지 않고 한쪽으로 많이 치우친 보도인 것 같다”고 비판했다.

박 활동가는 “택배와 관련해 사회적으로 대두된 본질적인 문제는 택배노동자의 간접고용 문제 등 복합적인 것”이라며 “이런 택배노동자외 대리점주, 그리고 원청 사이의 갈등이 왜 생기는지 구조적인 문제를 들여다봐야 하는데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기사가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노조를 악마화하고 있고 나쁘게 보도록 유도하는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고 과언이 아닌 상태가 됐다”고 지적했다.

진경호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택배노동자들이 단결해 노조를 만들어 택배 현장에 개입하기 전까지, 택배 현장은 원청과 대리점 소장의 갑질이 판치는 ‘무법천지’였고, 원청과 대리점에 종속된 구조에서 대다수의 갑질은 원청과 대리점 소장에 의해 발생해왔다”며 “그러나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속담처럼, 조선일보에 원청과 대리점 소장에 의한 구조적 갑질은 보이지 않고, 이에 맞서 투쟁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택배노동자들의 폭언과 폭력만 눈에 보이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러한 조선일보의 보도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꾸고, 진실을 왜곡하며, 택배현장의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며 “우리는 조선일보의 악의적이고 무책임한 택배노조 죽이기를 강력 규탄하며, 이를 즉시 중단하고, 가짜뉴스와 왜곡보도에 대해 사죄할 것을 요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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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현 기자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