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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세계는 군사법원 폐지 추세… 한국군은 한사코 ‘안 된다’

독일 등 군사법원 폐지한 국가도 ‘군 기강’ 문제 없어... 전문가, “국내 주둔군 형태에 군사법원 불필요”

육군훈련소의 장병들(자료사진)ⓒ뉴시스

최근 ‘성폭력 피해 여중사 사망사건’ 이후 우리나라도 이제는 군사법원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군사법원 폐지나 개혁에 관한 논의가 있었지만, 유독 우리나라 상황은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2004년 참여정부 시절에 ‘평시 군사법원 폐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파격적인 군 사법제도 개혁안이 나왔지만, ‘군 지휘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후 2014년 ‘윤 일병 사건’으로 다시 군 사법제도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사단급에 설치된 보통군사법원을 군단급으로 이양하는 용두사미에 그쳤다.

하지만 외국은 ‘인권’을 강화하는 측면으로 아예 군사법원을 폐지하거나, 유지해도 ‘군 지휘관’의 개입을 차단해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 군이 ‘군 기강과 지휘권 확립’ 등을 이유로 군사법원 폐지에 반대하고 있지만, 군사법원을 폐지한 나라에서 군의 기강이 무너졌다는 소리는 없다.

‘인권’ 내세우는 미국의 표리부동, ‘군 지휘권’ 강조해 모순

군 지휘관의 권한 유지를 위해 군사법원 제도를 가장 강력하게 시행하는 국가가 미국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그만큼 해외 주둔 미군이 많다는 것이다. 즉 미국 역사에 전쟁이 없는 시기는 거의 없었다는 말이 있듯이, 미군은 항상 전시 상태에 준해야 한다는 명분이다.

미국도 나름대로 민주적 절차를 강조하기 위해 군검사는 법무참모의 지시만 받을 뿐, 지휘관의 영향력 행사가 밝혀지면 재판 무효 또는 지휘관을 형사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있지만,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군내 성폭력 등 심각한 범죄 사건이 비일비재하다. 미 국방부가 산하 기구로 ‘성폭력 예방대응국(SAPRO)’을 두고 있지만, 형식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근 여군을 성폭행한 후 살해하는 사건까지 발생해 비난 여론이 비등하자, 사건 처리 권한을 군 지휘관에서 전문 검사로 이양하는 법안까지 논의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해외 주둔이나 파병도 거의 하지 않는 한국이 군사법원 제도는 인권보장이 취약한 미국의 제도를 원용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미국은 ‘군 지휘관’의 권한 강화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오히려 빈번하게 발생하는 군 범죄로 인해 군의 기강이 무너지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영국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군 지휘관의 권한 유지를 위해 군사법원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영국은 나름 개혁을 진행 중이다. 2심부터 민간인에 의한 재판이 도입되고 군수사권이나 군검찰권이 지휘관으로부터 분리돼 지휘관의 개입 여지를 상당 부분 차단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법률가의 자격이 있는 군검찰국 장교가 기소 업무를 담당해 군검찰 조직은 군 내부의 명령체계와 독립되어 있다. 또 2심부터 민간인에 의한 재판을 도입하고 사법부의 판결이나 결정을 군 지휘관이 수정하는 행위는 인권 침해라고 판시하는 등 인권 보장을 위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주요 외국의 군 사법제도 정리 표ⓒ해당 문서 캡처

나치 악몽 겪은 독일, 군사법원부터 폐지... 줄줄이 없애는 외국

독일은 엄격한 권력 분립으로 군 인권 보장에 있어서 선진적인 모델로 평가된다. 나치의 악몽을 경험하고 2차 세계대전 종료와 함께 평시 군사법원을 완전히 폐지했다. 군 관련 범죄에 대한 수사 및 기소는 일반 검사가 담당하고 별도의 군검찰 조직도 없다.

군의 징계 절차도 소속 군 지휘관과는 지휘 체계가 다른 법관 자격이 있는 ‘군징계 법무관’이 담당할 만큼 엄격한 권력 분립을 유지한다. 전시에 군사법원을 설치할 수 있지만, 이 또한 국방부 소속이 아니라 법무부 산하에 두어 독립성을 보장한다. 군 지휘관의 입장을 반영할 수 있는 수단도 법률가를 통해서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민주적인 절차를 유지해 오히려 군의 지휘권은 더욱 안정적으로 굳건히 유지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군사법원의 폐지가 군의 지휘권을 무너뜨릴 것이라면서 반대하는 우리나라 군 지휘부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모델이다.

독일 육군 공수부대 장병ⓒ독일 국방부

프랑스도 별도의 군사법원이 없고 전시에만 특별군사법원을 임시로 설치할 수 있다. 민간 법원에 37개소의 특별부를 설치해 군형법을 위반한 군인에 대한 재판을 담당한다. 따라서 군검찰 조직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고 일반 검사가 군 관련 범죄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담당한다.

벨기에도 2004년에 군사법원을 폐지했다. 군검찰은 대검찰청에 속한 독립기관으로 운영되며 고등검찰청장의 지휘를 받는다. 덴마크도 1991년에 군사법원을 폐지했다. 국방부 장관 소속으로 특별군검찰청을 설치해 상급 지휘관과의 협의를 거쳐 군검찰관이 기소를 결정한다.

대만도 지난 2013년 군부대 가혹행위로 인한 사망 사건을 계기로 평시에 군사법원 및 군검찰 운영을 전면 폐지하고 관련 업무를 전부 민간법원 및 검찰로 이관했다. 군 교도소 시설도 폐쇄하고 과거 군 의문사 사건을 전면 재조사하는 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군부 쿠데타를 경험한 터키도 군사법원을 완전히 폐지했다. 터키는 지난 2016년 군부 일부가 쿠데타를 실행해 실패한 직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판사 및 군법무관을 해임하고 군사법원 폐지를 포함한 개헌안이 국민투표를 통과해 폐지됐다.

이 밖에도 강한 군대를 내세우는 이스라엘도 군 지휘관은 수사 및 기소에 관여할 수 없고 군검사는 군법무감에만 소속돼 독립성을 보장한다. 군 관련 수사나 재판에 관련 지휘관의 관여나 감경이 불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외국은 아예 군사법원을 폐지하거나, 최소한 군 사법체계가 ‘군 지휘관’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군 기강 확립?’ 개혁안에 사사건건 반대한 ‘군 지휘부’ 책임론

최근 발생한 ‘성폭력 피해 여중사 사망사건’의 근본적인 책임은 군 사법제도 개혁을 사사건건 반대한 ‘군 지휘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 지휘부’는 2004년 군사법원 폐지안이 나오자 ‘군의 특수성’을 무시했다면서 강력히 반발해 무산시켰다.

또 이를 반영해 ‘군검찰 조직 독립안’이 나오자 이번에는 ‘지휘권 보장’을 빌미로 반대해 막았다. 결국, 알맹이가 다 빠진 군 사법 개혁안이 나왔지만, 이마저도 17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국방부는 지난해 군 항소심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하고 보통군사법원을 국방부 소속 5개 지역 군사법원으로 통합하며 군검찰부를 참모총장 직속의 각 군 검찰단으로 통합하는 개혁안을 내놨다. 하지만 이 역시 본질적인 개혁과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방부 관계자는 ‘군 사법제도 개혁의 미비로 여중사 사망사건이 터졌는데, 기존 개혁안이 미미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현재 민관군 합동위원회가 구성돼 그 부분의 권고안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안다”면서 말을 아꼈다.

군의 또 다른 관계자는 ‘군사법원 폐지 등 강력한 개혁이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군의 입장에서도 생각을 해 주면 좋겠다. 군도 나름 개혁안을 마련한 것으로 안다”며 기존 안을 고수할 입장임을 암시했다.

이에 관해 군인권센터 김형남 사무국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해외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반드시 군사법원이나 군검찰 조직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라면서 “우리도 사회적 논의를 통해서 이런 기구를 전부 민간으로 이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사무국장은 “특히, 우리나라는 침략전쟁도 하지 않고 파병도 극소수이며 대부분이 국내 주둔군 형태라 군사법원이 특수형태 법원으로 존재할 필요가 없다”면서 “군은 기강을 이유로 사법권을 주장하지만, 그것은 기강을 확립할 법률로도 충분한 관계로 굳이 예산을 사용하면서 군사법원을 유지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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