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소픽

[사람 살리는 노동교육③] 노동교육 정착 위해, 교육감부터 민주노총까지 나섰다

취재 : 최지현·강석영 기자

사회에 막 첫발을 내디딘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최소한의 법적 권리를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알더라도 주장할 수 있는 훈련이 전혀 돼 있지 않은 상태로 안전하지 않은 일터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산재사고까지 잇따르면서 학교에서부터 제대로 된 노동인권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요구가 커집니다. 이에 학교 노동인권교육의 현황과 내실화를 위한 대안을 3편의 기사로 소개합니다.

① 전태일 50년 뒤, 학생들은 노동을 제대로 배우고 있을까
② 학교의 정치화? 실제 교실에선…
③ 노동교육 정착 위해, 교육감부터 민주노총까지 나섰다

“2시간 내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근로기준법이라는 게 있다는 정도 밖에는요. 외부강사가 와서 행정보고상 ‘2시간 다 했다’고 하더라도, 실제 학생들에게 얼마나 전파됐을지는 미지수예요. 그래서 통상 교과 수업 시간에 교사가 직접 해야 하는데 아직 많이 미약해요. 그런 교사는 정말 몇 명 없어요.”

오랫동안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에 앞장서 온 이천제일고등학교 장윤호 교사가 전한 학교 교육 현장 분위기다. 서울시교육청을 비롯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중 13곳에서 노동인권교육 활성화를 위한 조례를 제정하는 등 적극 나서고 있지만 ‘연간 2시간’ 정도 노동인권교육을 하는 데 불과한 수준이다.

그마저도 현장에선 교사들이 노동인권교육을 따로 준비하기에 벅차 부랴부랴 시간을 보내는 게 다반사다. ‘노동인권 교육 전문’인 외부강사로 오더라도 근로기준법 하나 가르치면 시간이 다 간다. 입시 전쟁을 치르고 있는 학생들에겐 이마저도 벅차다. 그렇게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고 있는 청소년과 청년은 안전하지 못한 일자리에 그대로 노출되는 사각지대에 갇히는 현실이다.

이에 학교에서의 노동인권교육을 실질화하기 위한 움직임이 전방위적으로 일고 있다.

민주노총,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 특성화고등학생 권리 연합회 등 162개 단체는 지난 4월 12일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학교부터 노동교육 운동본부 발족 기자회견을 열었다.ⓒ노동과세계

학생들과 노동인권의 핵심고리는 교사

이를 위한 핵심고리는 ‘교사’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외부강사 중심의 노동인권교육의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학교 교육의 핵심주체인 교사들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최근 3년 이내 노동인권교육 실시 여부’에 대해 응답한 교사의 53.9%가 ‘실시했다’고 답했으며 48.1%가 ‘실시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실시하지 못한 이유는 ‘정규 교과과정과 연계가 어려워서’(1순위), ‘마땅히 지도할 교재나 콘텐츠가 없어서’(2순위), ‘법령상 필수교육이 너무 많아서’(3순위) 순으로 나타났다.

전명훈 서울시교육청 노동인권전문관은 “사범대나 교대에서는 (국어·영어·수학 등) 자기 교과에 대한 교육을 받지만 노동인권에 대한 교육은 받아본 적은 없을 것”이라며 “교사들도 노동인권교육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보지만 본인들조차 제대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기에는 부담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교용노동교육원이 올해 1월 발간한 ‘노동인권교육 실태조사와 교육 활성화 방안 연구’에 따르면 교육부는 교원을 대상으로 하는 노동인권교육의 정책 방향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교원들의 ‘자격연수 필수 교육’ 내용을 살펴보면, 아동과 장애인, 성평등, 성희롱과 관련된 내용이 있을 뿐이다. 청소년 노동인권교육과 관련된 건 직업계고 교원을 대상으로 한 중앙교육연수원의 교육과정, 전체 교원을 대상으로 한 고용노동연수원의 교육과정이 있는 정도다.

이에 각 시도교육청이 노동인권교육 활성화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노동인권 직무연수’ 등 교사를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을 추진하거나 학습지도자료 등 콘텐츠를 직접 개발해 보급하는 식이다.

다만 교사를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의 경우 체계적인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만큼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기도교육연구원은 지난해 5월 발간한 ‘민주시민교육으로서 노동인권교육에 대한 비판적 고찰’ 연구자료에서 “우리 교육의 현실로 인해 교사들 스스로 노동인권교육을 받았던 경험이 거의 부재하고 무엇보다 스스로가 노동자라는 인식 자체가 없는 상황에서 단기간의 연수로 노동인권교육 교원이 양성되기를 바라기는 쉽지 않다”며 보다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 구축을 주문했다.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교과서ⓒ경기도교육청 블로그

교과서 만들기, 교육과정 연계 지도자료 등 콘텐츠 개발하는 교육청

노동인권 교과서를 교육청의 ‘인정교과서’로 채택하고 선택과목 수업시간 등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이는 짧은 노동교육 역사로 보면 크게 진일보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광주광역시의 ‘노동인권’ 교과서가 있다. 광주시교육청은 고등학교급 ‘노동인권’ 인정교과서를 발간했으며, 현재 교육부의 부처 간 협업교과서 사업으로 중학교급의 인정교과서 개발 작업이 진행중에 있다. ‘노동’이란 타이틀이 공식적으로 들어간 교과서는 처음이라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기도교육청이 제작한 ‘민주시민’ 교과서에도 노동에 관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들 교과서는 교육과정과 연계되어 보조교재로 활용되거나 선택교과의 교과서로 활용되고 있다. 광주의 ‘노동인권’ 교과서는 지난해부터 관내 3~4개 학교에서 이 교과서를 활용한 선택교과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의 ‘민주시민’ 교과서는 전국 11개 시·도 교육청이 활용하는 등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콘텐츠는 교사들에게 ‘수업시간에 공식적으로 노동인권교육을 해도 된다’는 긍정적인 시그널을 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윤호 교사는 “노동인권교육을 부담스러워하던 선생님들도 조례가 생기고 교과서가 생기면 (하지 말라는) 항의가 들어와도 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긴다”며 “학습자료도 많이 만들고 있지만, 교과서는 급 자체가 다르다”고 말했다.

다만, 노동에 관한 교육 내용이 교과서로만 한정되고, 담당 교사의 업무로만 한정된다는 점에서 교과서 활용에 대한 반론도 나온다. 법·제도적인 내용으로 한정된 교육에서 벗어나 노동인권 감수성 등 광의적 의미의 교육이 이뤄지는 추세인데 교과서를 활용하게 되면 내용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과서를 직접 활용하는 선택과목으로 노동인권교육이 채택되기 어려운 현실적인 구조도 지적된다.

전 전문관은 “인정교과서를 좋은 취지로 잘 만들었지만 일선 학교에서 많이 사용되진 않고 있다. 지금의 교육과정이 너무 빡빡해서 시수를 조정하기도 힘들고, 현장에서 누가 수업할 것인가에 대한 어려움도 있다”며 “학교에서 선택받지 못하는 구조인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인권교과 시간을 확보하려면 다른 교과 시간을 빼야 하는데, 어떤 교과 시간을 뺄 것인지를 두고 입장이 갈려 결정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해서 하고 있는 법적교육이 이미 많다. 학교폭력 교육, 성교육, 보건교육, 경제교육, 인성교육 등 이런 것들이 다 창체 시간에 이뤄지다 보니 정작 창의적 체험활동을 취지대로 하지 못할 정도”라며 “노동인권교육도 중요하지만 학교 입장에선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교육이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은 비교과 시간으로 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 등 4가지를 목표로 한다.

전 전문관은 “그런 구조에서 노동인권교육을 확대하기엔 한계가 있다”며 “학교 현장에 부담이 되기도 하고 선생님들에게 부담되기도 한다”며 “그런 부담이 노동인권교육에 대한 반감으로 작용될 수 있다는 게 의무화시 고민되는 지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비록 선택과목이라고 할지라도 직업계고의 노동인권 교과는 필요하겠다는 건 어느 정도 합의가 되고 있는 것 같다. 교육부가 지금 고교학점제를 직업계고에 시범적용하고 있다”며 “긍정적인 변화”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교과를 따로 개설하지 않고 기존 교육과정과 연계해 노동인권을 교육하는 방식도 추진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서울시교육청이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17개 시·도교육청 중 최초로 교사들이 교과 교육과정과 연계해 수업할 수 있도록 ‘노동인권 지도자료’를 직접 개발하고 보급하고 있다. 여러 과목의 교사들이 자기 수업 시간에 부담 없이 노동인권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교육과정 재구성’이라고도 불린다.

전 전문관은 “교육과정과 연계한 노동인권교육의 장점은 교사들이 부담 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미술 시간에도 할 수 있고 음악 시간에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중학교 지도자료를 보면 ‘한국의 이주노동자’에 관한 내용은 도덕교과 수업에서 다룰 수도 있고 확장해서 사회교과나 국어교과 수업에서도 다룰 수 있다”며 “이 내용을 그대로 가져가서 수업할 수 있고 교사가 자기 수업에 맞춰 재구성할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서울시교육청이 개발한 교육과정 연계 노동인권지도자료ⓒ민중의소리

교육헌법 성격의 국가교육과정 총론 개정이 필요한 이유

전문가들은 노동인권교육을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중앙정부에서 ‘총론’을 먼저 정해야 현장 혼란도 줄어들 것이라는 얘기다.

한국고용노동교육원은 ‘노동인권교육 실태조사와 교육 활성화 방안 연구’를 통해 “청소년 노동인권교육 관련해 시급히 보완돼야 할 점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교육의 시행 및 주관 부처가 다양하고 이로부터 중복 또는 소홀해지는 문제점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밝혔다. 부처 간 또는 중앙과 지역 간 컨트롤타워가 없다 보니 교육의 격차까지 생긴다는 것이다.

한국고용노동교육원은 “궁극적으로는 교사가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의 주체로 자리 잡는 것이 바람직하나, 교육부 교육과정에 확고한 체계가 자리 잡지 못하고 있으며 교육청별로 이러한 교육과정을 설치·운영하기에는 지역별 편차도 존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전 전문관은 “교육부가 먼저 노동인권교육 정책을 수립했으면 중앙부처 중심으로 정리됐을 텐데, 그보다는 노동교육을 선도적으로 시도했던 일부 교육청이 자기 지역 상황에 맞춰서 교육계획이나 정책을 수립하고 있어 (지역 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한계 지점이 있다”고 말했다.

중앙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은 국가교육과정 총론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교육 현장에서 총론은 ‘헌법’과도 같다. 이에 내년에 개정될 국가교육과정 총론에 ‘노동’이 반영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22 개정 국가교육과정’은 2022년 총론이 고시되고 2025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되는 것이다.

전국 교육감이 모인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도 올해 초 ‘2022 개정 국가교육과정’에  노동교육 관련 요소를 균형 있게 반영할 것을 교육부에 공식 요구했다. 총론에 노동교육 관련 요소를 넣고 각론에서 범교과 학습주제에 ‘노동의 가치’에 대한 비중을 강화하자는 서울시교육청의 제안에 전국의 교육감들이 동의한 것이다. 청소년 대상 노동인권교육 강화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한 만큼 이번 국가교육과정 개정에 관심이 쏠린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3월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노동인권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노동부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게 관련 법령과 정책을 개선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특히 교육과학기술부에는 중·고등학교 교과과정에도 노동인권교육을 필수과정으로 포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019년에 발표된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15~19세 청소년 329만4천 명 중 일하는 청소년은 21만3천명에 달하지만 법정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거나(63.7%) 주 48시간 이상 노동하는(18.5%) 등 노동인권의 최저지대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데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인권위의 권고는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반영되지 않았고,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 내걸게 됐다. 전 전문관은 “이번 정부에서는 노동인권 교육이 국정과제로 포함돼있고, 전국시도교육청들도 교육감의 대부분 공약 사항이 노동인권교육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국가교육개정 시기에 맞춰 요구하기 좋은 타이밍”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최근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 ‘총론 반영은 적절하지 않다. 다만 각계 의견을 수렴해서 반영을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 교사는 “문재인 정부가 노동존중사회를 만들겠다고 한다면 ‘노동’을 총론에 집어넣는 게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모든 시민사회단체를 비롯해 각계각층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교육과정 총론에 ‘노동’을 반영하기 위해 162개 각계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학교부터 노동교육 운동본부’를 구성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단은 지난 5월 최교진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회장을 만나 국가교육과정에 노동교육을 반영하기 위한 방안을 함께 찾자는 뜻을 모으기도 했다. 운동본부는 “이번에 개정되는 교육과정에 노동교육이 반영되지 않으면 다음 교육과정 개정까지 10년을 기다려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가 임기 내 공약을 이행해줄 것을 요구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3월 18일 오후 부산 영도놀이마루에서 열린 제77회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개학 후 첫 대면 총회에서는 코로나19 학교 방역을 비롯한 교육계 주요 현안이 논의됐다.ⓒ뉴시스

법제정을 통해 노동인권교육을 제도화하는 방법도 있다.

21대 국회에선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과 이수진 의원(비례대표)이 각각 ‘노동인권교육 활성화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이들 법안에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노동인권교육의 활성화를 위한 시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는 내용과 고용노동부 장관이 초·중등교육법에 따른 학교 교육과정에 노동인권교육에 관한 내용을 포함될 수 있도록 교육부 장관에게 요청할 수 있으며, 요청을 받은 교육부장관은 이를 반영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 공통적으로 담겼다.

이수진 의원은 “학교와 사회에서 노동인권교육이 활성화된다면, 우리사회에 더 건강한 노동환경이 조성될 것”이라며 “노동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고 이를 바탕으로 한 노사 상생의 문화가 뿌리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관련기사

민중의소리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후원회원이 되어주세요.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정기후원은 모든 기자들에게, 일시후원은 해당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최지현 기자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