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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준형 “국익 위해서라면 미국과도 불편한 시간 있을 수 있다”

국립외교원장이 제시하는 대미·대중 외교의 올바른 방향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이 2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 원장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6.02ⓒ김철수 기자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은 최근 펴낸 자신의 저서 ‘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에서 과거 미국과의 종속적 관계에서 벗어나 우리가 주도적으로 실용적 협력 관계를 설정해야 하는 당위성을 설명했다. 김 원장은 이러한 인식에 기초해 최근 있었던 한미정상회담의 내용과 결과를 미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출발점이라고 봤다. 또한 보수진영 공세 도구로 쓰이는 ‘친중’ 프레임은 오히려 국익에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최근 민중의소리와 인터뷰에서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과거와 달리) 실질적인 내용이 있는 전략동맹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제 출발점인 것 같다”며 “미국이 정말로 우리를 필요로 한다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그런 부분에서 최고의 성과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지금까지의 한미동맹이 군사·안보 위주로 국한된 수혜적 관계였다면,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상호 동등한 관계에서 호혜적 파트너십을 맺어나가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실제 이번 회담에서는 한반도 문제 관련 안보 영역뿐 아니라 글로벌 백신 파트너십,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기후 문제 등 경제·환경 영역으로 논의가 확대됐다. 쿼드(미국·인도·일본·호주 등 4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비공식 안보회의체)나 대만 문제 등 중국이 민감한 국제 현안과 관련해서도 한중 관계의 특수성이 상당 부분 고려되는 등 미국 일방주의적 메시지가 빠졌다. 공동성명의 소제목 역시 ‘1장 한미동맹의 새로운 장을 열며’, ‘2장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포괄적 협력’으로, 관계의 재정립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김 원장은 “미국이 단순히 우리를 ‘쿼드’로 끌어들이기 위해 ‘연루’의 개념으로 우리를 대접해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랬다면 미사여구로 점철됐겠지만, 실질적 협력들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고, 이는 곧 우리의 실질적인 위상을 반영해준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한미 공동성명에서 다룬 분야가 광범위해진 결과를 두고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모두 동일한 평가를 내놓은 것에 주목했다.

그는 “신기한 건 진보와 보수 모두 둘 다 미국으로 넘어갔다고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진보 쪽에서는 ‘미국에 너무 많이 내줬다’고 하고, 보수 쪽에서는 ‘만시지탄이지만 이제야 미국을 선택했다’고 한다”면서 “둘 다 틀렸다고 생각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김 원장은 보수진영의 친미 만능주의와 관련해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 어느 쪽으로든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미국하고도 의견이 다를 수 있고, 국익을 위해서는 미국과도 불편한 시간과 불편한 협상을 통해서 우리 걸 찾아야 된다”고 강조했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이 2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 원장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6.02ⓒ김철수 기자

진보진영의 대미종속 강화 비판에 대해서는 “그렇게 될 수 있는 타당성은 있다”면서도 “그런 견해는 현재 한미 관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피해의식에 따른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에 대해 (일정 부분) 미국 편을 들어줬다고 해서 지금부터 ‘반중 전선’에 동참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이 새로운 파트너십의 기틀을 마련한 만큼, 김 원장은 향후 철저히 우리의 국익에 기초해 미국과의 관계를 설정해 나가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 합의가 우리의 위상을 강화시키고,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갈 수 있을지, 그렇지 않고 실질적인 ‘연루’가 돼서 다시 미국의 영향력에 빠질지, 그건 앞으로 우리한테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과도 갈등이 충분히 생길 수 있다. 미국과의 갈등을 이상해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며 “오랜 동맹 관계의 역사 속에서 그런 이견들을 조정해나갈 수 있는 능력들이 생겼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더라도 충분히 해결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미동맹 근간으로 하되 한중 관계 손상하지 않는다’는 건 중요한 원칙”

김 원장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빨리 편을 정해야 된다는 식의 이야기들은 굉장히 무책임하고 성급한 주장”이라며, 한미동맹이 한중 관계를 손상하는 방향으로 가서 국익이 침해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김 원장은 “우리가 어떤 쪽을 선택하기로 결심한다고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한중 관계를 손상하는 방식으로 가서 중국으로부터 받게 될 압박이나 제재를 우리가 견딜 수 있겠느냐”며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하되, 한중관계를 손상하지 않는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대원칙 하에서 우리가 이번에 공동성명에 신장 위구르나 홍콩 문제 등 한중 관계를 손상할 범위의 것들을 포함시키는 것을 막았다”며 “대신 대만해협이라는 전체적인 안전에 관한 원칙론을 밝히면서 중국과의 관계를 손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미국 손을 들어준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패권경쟁 속에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립 외교로 국익 손실을 최소화했다는 평가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한미 공동성명에 대한 우려 표명을 한 데 대해서는 “중국도 우리가 일본에 비해 훨씬 더 중립을 지키려고 했다는 부분을 안다”며 “그래서 상당히 절제된 비판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이 2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 원장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6.02ⓒ김철수 기자

결국 앞으로도 한미동맹과 한중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유지라는 두 가치가 양립할 수 있을지가 대미·대중 외교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 원장은 “양립이 가능하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김 원장은 “EU는 물론, 인도와 호주도 반중으로 돌아서고 있어서 중국이 과거와 달리 혼자 코너에 몰리고 있다”며 “그렇다 보니 오히려 한국이 중립만 유지해줘도 중국 입장에서는 상당히 고마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보수진영의 ‘친중’ 프레임을 이용한 공세는 결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자제를 당부하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는 “국내 정치적으로 진영논리가 통하니 진보정부가 들어섰을 때 ‘친중’ ‘친북’ 프레임이 심하게 작동한다”며 “그 결과 미국과 중국이 우리를 배타적으로 끌고 가려는 힘보다 내부에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정치적 논리가 더 크게 작동하게 돼서 국익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그 예로 ‘쿼드’ 문제를 들었다. 그는 “미국 입장에서는 당연히 우리가 쿼드에 들어오면 좋지만, 공식적으로는 우리한테 ‘한국 입장을 이해한다’고 말한다”며 “그런데 국내 여론이 오히려 ‘쿼드에 가입해야 된다’고 말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김 원장은 “미국으로서는 자기들이 해야 할 압력을 한국 보수신문이 다 해주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이런 국내 여론은 우리한테 득이 안 된다. 언론들이 자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동맹’은 ‘적이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 한미동맹이 다른 분야로 깊어지는 건 좋지 않아”

김 원장은 기존 한미동맹의 근간은 유지하더라도, 군사·안보 동맹 외에 다른 분야로까지 ‘동맹’의 개념을 확대 해석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원장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난 건, 미국이 기술협력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미국은 과거 소련과의 냉전 체제에서 모든 자본주의 진영이 소련을 적으로 돌리는 것과 같은 대립을 우리에게 원하지 않는다”고 전제했다.

이어 “그래서 ‘기술’이나 ‘경제’, ‘문화’에다가 ‘동맹’이라는 용어를 붙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동맹’이라는 용어는 다른 쪽을 배제하고 적으로 만드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미 관계가 깊어지는 건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한미동맹이 다른 분야로까지 깊어지는 건 거꾸로 적을 더 확실히 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좋은 건 아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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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훈 기자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