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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버스의 위기 ③] 수도권 첫 ‘마을버스 공영제’ 화성시 가보니…승객도, 기사도 웃었다

마을버스위기가로3ⓒ일러스트 신지현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서울시 마을버스 역시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승객이 급감하면서 재정 적자를 호소하는 업체가 큰 폭으로 증가했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마을버스 업계도, 교통 전문가도 "이전부터 곪았던 문제가 이번에 터진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마을버스 어려움의 원인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요. 보다 근본적인 대안은 없을까요. 민중의소리는 '마을버스의 위기' 기획을 통해 그 원인과 대안을 함께 고민해보려 합니다.

■취재 남소연·조한무, 사진 김철수, 일러스트레이션 신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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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버스의 위기 ②] ‘적자→찔끔 지원’ 계속되는 땜질 처방, 진짜 대안은 없을까
[마을버스의 위기 ③] 수도권 첫 ‘버스 공영제’ 화성시 가보니…승객도, 기사도 웃었다

경기도 화성시는 도심 지역과 작은 마을이 한데 모여있는 도농복합도시다. 시내에서 차를 타고 2, 30분 가다 보면 어느새 논밭이 나오고 또 조금 달리면 금세 도로 풍경이 바뀐다. 그만큼 시 곳곳에는 작은 농촌 마을이 분포해있다. 활초리도 그중 한 곳이다.

활초리 주민인 이모씨(85세)는 일주일에 두 세 번씩 시내에서 장을 보고 돌아온다. 그때마다 그의 발이 되주는 건 H50-3번 마을버스뿐이다. 시내에서 활초리로 들어가려면 비포장도로를 지나고, 공원묘지를 지나고, 그러고도 더 깊숙이 들어가야만 비로소 마을에 다다를 수 있다. 외진 곳이라 승객이라곤 이씨와 같은 동네 어르신 한두 명 정도다. 그래도 마을버스는 달린다. 자가용이 없는 이곳 주민들에게는 이 버스가 유일한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이씨가 내린 정류소에는 H50-3번 배차 시간을 안내해주는 공지문이 붙어있었다. 다르게 얘기하면 그만큼 마을버스의 배차 간격이 짧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을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아서 불편하겠다는 말에 이 씨는 손을 휘저으며 부인했다.

"그래도 공영제가 되면서 버스 다니는 시간이 길어졌어."

이씨는 정류장 의자에 걸터앉더니 장장 10여분 간 마을버스 공영제에 대한 열변을 토해냈다. 공영제 전후의 차이를 가장 여실히 느꼈던 탓이다. 그는 민간업체가 마을버스를 운영할 때는 수익성만 따지는 버스 운영을 해왔다고 토로했다. 이 버스는 마을과 초·중·고등학교를 연결해주는 노선이기도 했는데 승객이 적어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하루 운행 횟수를 지나치게 축소했다고 한다. 게다가 오후 5시만 되면 더 이상 운행을 안 했다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이 씨는 이렇게 되물었다.

"이전에는 버스 수입이 없다고 운행을 줄이고, 업체들 편의에 의해서만 이 버스가 다녔단 말이야. 그런데 마을버스가 대체 누구를 위해 달리냐는 것이지, 우리 같은 서민들을 위해 달리는 거 아닌가. 사실 이래야 정상인 거지."

화성시 마을버스 중 화성도시공사가 운영하는 공영 버스. 번호 앞에 'H'로 표기돼 있는 버스는 공영제로 운영되는 노선이거나 시의 재정이 투입되는 노선을 의미한다.ⓒ민중의소리

화성시에서는 어떻게, 왜 버스 공영제를 실시했나
"어차피 재정 투입된다면 시에서 주도권 갖는 게 나아"

화성시의 대중교통 정책은 지난해 수도권에서 최초로 버스 공영제를 실시하면서 대전환을 맞이하는 중이다. 공영제란 민영제와 달리 시가 직접 노선권과 노선계획권, 운영권 등을 모두 확보하고 있는 제도다. 쉽게 말해 버스 운영의 주도권을 지자체가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화성시를 비롯한 일부 지자체에서는 매 선거마다 '버스 공영제' 공약이 빠지지 않고 나오고 있지만 현실이 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논의가 무르익고, 제도 전환을 목전에 두고서도 좌절되기 일쑤였다.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나 예산 부담이었다. 그러나 화성시는 이를 실행으로 옮겨냈다. 시는 지난해 2월 산하 공기업인 화성도시공사에 버스 운영권을 위탁해 같은 해 11월부터 공영버스를 운영 중이다.

모든 버스가 공영제로 운영되는 건 아니다. 화성도시공사에서 주민들의 편의에 맞는 새 노선을 신설하거나 기존 민간 업체에서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납한 노선을 사들여 공영버스를 운영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지난해에는 총 45대(마을버스 15대, 시내버스 30대)의 공영버스가 투입됐고, 올해 하반기에는 여기에 더해 45대가 더 추가될 예정이다. 목표는 2025년까지 공영버스 335대를 운영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민영제인 버스가 70% 정도고, 나머지 30%는 공영제로 채우게 된다.

화성시는 어떻게 공영제를 실시하게 된 걸까. 물론 화성시만의 지리적, 사회적 특징을 빼놓고 설명할 순 없다. 화성시는 서울시보다 면적은 넓지만 사람이 모여 있는 도심 지역과 그렇지 않은 비도심 지역이 이어져 있어 대중교통이 활성화하지 못했다.

경기도 내 비슷한 규모의 다른 도시들과 비교해봤을 때 화성시가 대중교통 수송분담률 중 버스가 차지하는 비율(버스 수송분담률)이 월등히 낮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수원시의 버스 수송분담률이 35%, 부천시 역시 34%인 반면 화성시는 이보다 10%p가량 낮은 22%에 그쳤다. 이 분담률을 끌어 올리기 위해서는 대중교통 확충 등의 정책 집행이 필요한데 이 때 가장 효과적인 버스 운영 체계가 공영제라는 분석이 나왔다.

교통취약 지역에 사는 시민들의 이동권을 보장해야 하는 필요성이 커진 것도 공영제 도입의 이유 중 하나였다. 민영제에서는 시민의 요구와 편의에 맞춘 노선 설계도 쉽지 않다. 매년 민간 운수업체에 투입되는 재정지원 규모는 증가했으나 시민들에게 돌아가는 편익은 이에 미치지 못하는 문제가 반복됐다. 화성시는 이 같은 문제를 교통 복지 차원에서 풀어보려 했고 그 해답으로 버스 공영제를 택했다.

버스 공영제 정책의 실무를 담당해 온 화성시 대중교통혁신추진단 박일양 버스운영팀장은 "준공영제와 공영제 중 어느 것이 맞는지 등을 포함해 대중교통 전반적인 부분을 진단하는 용역 연구를 진행했다"며 "어차피 재정을 투입하고, 그 규모를 더 늘려야 한다면 아예 시에서 버스 노선 주도권을 잡는 게 더 타당하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예산은 얼마나 들었을까. 2020년 버스 공영제에 투입된 예산은 인건비, 차량구입비 등을 포함해 총 94억원이었고, 올해는 189억원 가량이 투입될 예정이다. 지난해 예산이 적은 이유는 화성시가 2020년 11월부터 버스 공영제를 실시해, 연말까지 두 달가량의 예산만 집계한 것이기 때문이다.

당초 시의회에서도 일부 재정에 대한 우려가 나왔었다고 한다. 굳이 이 예산을 투입할 바에 민간업체에 지원해주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냐는 반론도 나왔다. 그러나 시는 달리 판단했다. 버스 운영권을 시가 갖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교통정책 전체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결국 공영제 시행에 있어서 중요했던 건 시가 버스운영을 책임지고, 그 정책을 설계해 나가겠다는 의지였다. 공영제의 경우 민영제를 실시했을 때보다 주민들의 편의에 맞는 노선 설계가 수월해지고, 더 안전한 버스 운행도 가능해진다. 버스기사들의 인건비나 근무 형태도 적정 수준 이상을 보장해줄 수 있다.

단순히 민영제와 공영제에 들어가는 예산을 놓고 어느 제도가 더 좋은지 판단할 수는 없다. 대중교통에 있어 효율성이나 수익성이란 가치가 절대적인 평가 기준이 되어서도 안 된다. 박 팀장은 단순히 숫자로 비교되는 예산보다 공영제를 도입한 후 나타나게 된 중요한 변화들에 집중하는 게 더 가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영제처럼 운송업체에 적자 나는 것을 보전해주는 식으로 돈만 메꾸면 깨진 항아리에 물 붓는 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버스 운영의) 주도권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공영제로 가는 게 맞죠. 민간업체가 버스를 운영하고 우리는 재정지원만 하는 민영제의 경우, 시민들 요구에 맞는 노선을 설계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현실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으니까요."

화성시 버스 정류장에 부착된 노선 변경 안내표. 민간 운수업체가 운영한 노선이 공영제로 바뀌면서 운행 횟수가 늘어났다. 하루 10번 운행했던 50-1번은 공영제로 전환된 후 하루 12번으로 늘어났고, 50-4번도 하루 11번에서 13번으로 운행 횟수가 늘어났다.ⓒ민중의소리

공영제 실시 후 가장 큰 변화는?
버스 이용 승객들도 만족 "더 안전하고 친절해져"
민영제 버스서는 '미친듯이 밟았다'는 버스기사들
공영버스서는 최우선으로 '안전' 고려할 수 있게 돼

공영제 실시 후 가장 달라진 점은 역시나 시민 중심의 대중교통 정책을 펼칠 수 있다는 데 있다. 활초리의 경우처럼 수익성에 밀려 하루 서너 번만 오가던 교통취약지역에도 시민의 요구를 반영해 증차할 수 있게 됐다. 버스 기사들의 근무 환경도 개선할 수 있다는 점 역시 큰 장점 중 하나다.

공영제를 실시한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시민들은 이미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일주일에 3번 정도 공영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온다는 최금순(86세)씨도 "민간업체에서 운영할 때는 주말에는 많이 운영하지 않아 불편했는데, 지금은 주말에도 평일과 운행하는 횟수가 같아 너무 좋다"고 말했다.

남양리에서 거주 중인 장모씨(60세)는 "공영제로 바뀌면서 버스기사님들이 이전보다 더 친절해지셨다. 정차할 때도 급하게 하지 않으시고 조심히 운전해주신다는 점이 좋다"고 설명했다.

마을버스 기사들의 만족도도 높아졌다. 민간업체의 경우 버스 운행 시간과 휴식 시간을 촉박하게 정해두는 경우가 많았다는 게 공통된 평가였다. 하루에 16시간에서 20시간 가까이 일하고 다음날 쉬는 격일제 구조는 기사들을 더욱 지치게 만들었다. 안전한 운행이나 친절한 응대는 기대하기 어려운 악순환의 연속인 셈이다. 그러나 공영제 버스의 경우 운행시간과 휴식시간을 여유있게 보장해주고 하루 8시간 근무하는 2교대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화성도시공사 소속 김모씨(35세)는 "민간업체에서 일할 때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미친듯이 밟아야만 제시간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만약 내가 빨리 가지 않으면 휴게시간을 다 날리고, 종점에 오자마자 다시 나가야 한다"며 "그런데 공영제에서는 운행시간이 예정보다 길어지더라도 휴게시간이 넉넉하니까 쉬다 나갈 수는 있게 됐다"고 말했다.

다른 기사의 평가도 비슷했다. 이모씨(40대)도 "민영제하에서는 한시가 급해서 신호 위반을 했어야 했다. 그야말로 목숨 걸고 달린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안전하게 (시민) 한분 한분 모셔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적지 않은 예산이 투입되긴 하지만 공영제는 버스를 이용하는 주민도,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도 모두 만족하는 정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마을버스 공영제는 전남 신안군에서 최초로 시행된 뒤 여러 지자체에서도 정책 대안 중 하나로 검토하거나 시행 중이다. 세종시도 공영제로 운영 중이며, 화성시에 이어 경기도 광주시에서도 오는 5월부터 마을버스 공영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경기도 화성시 마을버스 중 화성도시공사가 운영 중인 공영버스(H50-3번)가 정류장에 도착한 모습. 한 시민이 마을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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