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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버스의 위기 ①] 우리 동네 구석구석 누비는 마을버스가 멈춰서고 있다

ⓒ일러스트 신지현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서울시 마을버스 역시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승객이 급감하면서 재정 적자를 호소하는 업체가 큰 폭으로 증가했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마을버스 업계도, 교통 전문가도 "이전부터 곪았던 문제가 이번에 터진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마을버스 어려움의 원인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요. 보다 근본적인 대안은 없을까요. 민중의소리는 '마을버스의 위기' 기획을 통해 그 원인과 대안을 함께 고민해보려 합니다.

■취재 남소연·조한무, 사진 김철수, 일러스트레이션 신지현

[마을버스의 위기 ①] 우리 동네 구석구석 누비는 마을버스가 멈춰서고 있다
[마을버스의 위기 ②] ‘적자→찔끔 지원’ 계속되는 땜질 처방, 진짜 대안은 없을까
[마을버스의 위기 ③] 수도권 첫 ‘버스 공영제’ 화성시 가보니…승객도, 기사도 웃었다

서울시 은평구 신사동 237번지 일대. '산새마을'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봉산 자락에 위치해 있어 경사가 심한 곳이다. 한 번에 오르내리기 힘든 곳이라 골목 중간중간에는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르는 주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동네와 시내를 연결해주는 유일한 대중교통수단은 은평 10번 마을버스뿐이다. 마트나 병원, 약국, 은행을 가기 위해서는 가파른 언덕을 지나가야 하는데 고령인 주민들이 많아 마을버스가 없다면 가까운 거리도 다니기 쉽지 않다.

19일 서울 은평구 신사동에서 은평 10번 마을버스에 승객이 타고 있다. 2021.03.19ⓒ김철수 기자

이곳에서 46년째 거주 중인 한모씨(69세)는 마을버스가 생기기 전 언덕 밑에 있는 동네 약국을 갈 때도 택시를 타고 다녔다. 무릎이 아파 평지를 걷기도 쉽지 않은 그에게 동네 입구의 비탈길은 큰 장애물처럼 느껴졌다. 한씨는 "언덕길이라 걸어 다니기 너무 힘든 동네다. 마을버스를 타야만 겨우 시내로 나갈 수 있을 정도"라고 혀를 내둘렀다.

산새마을에는 한씨와 같은 주민들이 많다. 가까운 지하철역과 시내버스 정류장도 모두 경사로 밑에 있어 마을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그나마 편하게 다닐 수 있다. 산새마을 주민들의 일상은 은평 10번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최근 산새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이러다 마을버스가 없어지는 게 아니냐'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 답답한 마음에 버스기사에게 "은평 10번은 사라져서는 안 된다"고 하소연하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대체 우리 동네의 마을버스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서울 은평구 신사동에서 은평 10번 마을버스가 종점에 주차한 가운데 버스 앞에 현수막이 걸려 있다. 2021.03.19ⓒ김철수 기자

코로나19 장기화로 30%가량 줄어든 승객
달릴수록 적자, 운행 중단까지 검토하는 업체도
서울시도, 자치구도 속수무책

비단 은평 10번 버스만의 얘기가 아니다. 서울시 온 동네를 누비는 마을버스 앞면에 걸려 있는 현수막은 현재 마을버스가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시민의 발' 마을버스는 더 이상 운행이 어렵습니다", "마을버스 달릴수록 손해보니 더 이상 운행 못 합니다". 이는 곧 누군가의 이동 권리가 제대로 보장받을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서울시에서 하루 평균 마을버스를 이용하는 시민은 117만명(2019년 기준)에 달한다.

몇 달 새 마을버스 정류장에는 '감축 운행 안내' 공지문이 붙은 곳이 부쩍 늘어났다. 10분을 기다리면 오던 마을버스가 20분, 30분을 기다려야 오는 상황이 되자 주민들은 불편을 넘어 불안감을 호소한다.

코로나19 여파로 이동하는 인구가 줄어들면서 마을버스를 이용하는 승객도 큰 폭으로 감소했다. 적자인 마을버스 업체가 늘어났고 마을버스 운영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서울시 집계에 따르면 코로나19가 본격화된 2020년 한 해 마을버스 이용객은 전년 대비 약 27%(115백만명) 줄어들었다. 달릴 수록 적자인 상황이라며 최악의 경우 운행 중단까지 검토하고 있는 곳도 생겨났다.

19일 서울 종로구 명륜3가 명륜길에서 종로08번 마을버스에 몸이 불편하신 어르신이 탑승을 하고 있다. 2021.03.19ⓒ김철수 기자

현재 서울시에서는 총 139개 마을버스 업체가 250개의 노선을 운행 중이다. 준공영제로 운영되는 시내버스는 시가 예산으로 운영비를 전액 지원해주지만, 마을버스는 준공영제에서 배제되면서 지금까지 민영제로 남아 있다.

대신 마을버스 역시 공적인 성격이 크기에 서울시로부터 일정한 재정보조금을 지원받고 있다. 매년 1일 1대 기준의 운송원가를 정하고 이 운송원가보다 낮은 적자 업체에 대해서는 일정 금액을 보전해주는 식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적자 업체가 급증하면서 지원 예산은 일찌감치 바닥을 드러냈다. 서울시는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고, 운송원가를 당초 금액보다 10% 줄여 지원했으나 이마저도 어려워지자 각 자치구에 재정 일부를 부담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자치구에서는 마을버스 지원의 근거가 될 조례를 갖추지 않은 곳이 대부분인 데다가 재정 부담을 이유로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까지 서대문구와 강남구, 강동구가 지원금을 지급했지만 재난지원금 명목의 일회성 지원에 불과했다는 게 마을버스 업계 측 설명이다.

폐선 막으려 '운행 감축'으로 버티는 마을버스 업계
마을버스 기사 월급도 30~50만원 가량 줄어
사태 장기화되자 임금 체불 문제도 대두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워진 마을버스 업체는 결국 배차 횟수를 줄이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곧 마을버스 기사들의 임금도 줄어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앞서 소개한 은평 10번 마을버스의 경우 평일을 기준으로 4대를 운행했지만 코로나 확산 이후 2대까지 줄어들었다. 주민들의 거센 항의로 다시 3대까지 늘어났지만, 밤 9시 이후에는 그마저도 한 대가 빠진다고 한다. 주말에는 1대만 운영한다.

은평 10번 마을버스 기사 문철호 씨는 "코로나19 이전만 하더라도 꼬박꼬박 월급이 들어왔는데, 요즘에는 한 달 임금을 다 못 받는 상황이다. 월급을 두 번에 나눠서 받고 있다"고 말했다. 문 씨는 "손님이 절반 이상으로 줄었고, 낮에는 거의 빈 차로 다닌다. 회사도 계속 적자인 상황"이라며 "월급만 따져봐도 3, 40만원이 줄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명륜3가 일대와 혜화역, 종로5가역 등을 순환하는 종로 08번 마을버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다른 노선에 비해 많이 감축하진 않은 편이라고 하는데도 11대에서 8대로 줄여서 운행 중이다.

해당 노선을 운영 중인 와룡운수 이승재 대표는 "우리는 다른 곳에 비해서는 자주 다니는 편이다. 마을버스에 오르기도 힘들 정도로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주로 이용하는 노선이라 더 자주 다니면 좋겠지만 적자가 계속되고 있어 힘든 상황"이라며 "코로나19 이후에 직원들 월급을 주느라 3억 5천만원을 대출받았지만 지금도 대출이 더 필요할 정도"라고 말했다.

종로 08번 마을버스 기사들은 "월급 삭감도 삭감이지만 봉급 자체를 제때 못 받으니까 너무 힘들다"며 "생활을 이어가기가 힘든 상황이다. 아마 회사마다 다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전체 마을버스 노선 중 운행 횟수를 줄인 곳은 70%(175개)에 달한다. 평균 17%에서 많게는 30%까지 감축 운행한다.

서울 종로구 명륜3가 명륜길에서 종로08번 마을버스가 운행을 하고 있다. 2021.03.19ⓒ김철수 기자

마을버스 기사들은 3월 초부터 청와대, 서울시청, 시의회, 각 자치구청을 돌며 사태 해결을 위한 일인시위에 나섰다. 그러나 뚜렷한 해답을 주는 곳은 없었다.

서울·경인지역마을버스노동조합 정재수 사무국장은 "작년 말부터 전체적으로 마을버스 기사들의 임금이 4, 50만원씩 삭감됐다"며 "최소한의 임금이 보장되지 못하는 상황에다가 체불까지 생기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정 사무국장은 현재 상황에 대해 "서울시는 각 자치구에 떠 넘기고, 자치구는 '우리는 예산도 없고 권한도 없는데 왜 우리가 책임져야 하냐'면서 나 몰라라 하는 것"이라며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해고는 안 된다'는 절박한 마음에 마을버스 기사들이 자체적으로 일을 나누는 등 고통 분담에 나섰지만 역부족이다. 서울특별시 마을버스 운송사업조합에 따르면 지금까지 해고된 마을버스 기사는 70여명으로 늘어났다.

정부와 지자체가 예산 부담을 이유로 손을 놓고 있는 사이 마을버스 업계는 파산 직전의 상황에 다다랐다. 그 여파는 마을버스 기사들과 시민들에게 오롯이 이어지는 형국이다.

마을버스 업체는 국회에서 논의 중인 손실보상법 대상에 마을버스도 포함돼야 한다고 요구하지만 국회 상황은 녹록지 않다. 국회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손실보상법은 더불어민주당 송갑석 의원이 대표 발의한 '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다. 해당 법안의 적용 대상은 정부의 영업 제한 조치 등으로 인해 피해를 본 소상공인으로 한정돼 있어 마을버스가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장기적으로는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임금 삭감 및 체불 등으로 고통받는 마을버스 기사들은 직접적인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촉구한다. 지금까지 마을버스 기사는 정부의 맞춤형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돼 있었기 때문이다. 택시기사는 지원 대상에 포함되면서 마을버스 기사들이 배제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서울시와 25개 자치구는 지난 22일 '위기극복 재난지원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긴급 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마을버스 업체 1개당 1천만원의 재난지원금을 지원하고, 마을버스 기사에게도 1인당 50만원의 피해지원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서울 종로구 명륜3가 명륜길에서 종로08번 마을버스 종점에 버스들이 출발 대기를 하고 있다. 2021.03.19ⓒ김철수 기자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보상과 함께
마을버스 어려움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 분석 필요
"재정적자 보전을 넘어 공공성 확대 고민해야" 요구도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를 보전해주기만 하면 해결되는 일일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코로나19는 서울시 마을버스 제도의 허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게 업계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예기치 못한 재난 상황으로 마을버스가 직격탄을 맞은 것은 사실이지만 마을버스의 위기는 일찌감치 예고돼 있었단 것이다.

최근 5년간 서울시의 마을버스 업체 재정지원 추이를 보면 ▲2015년 54개(76억) ▲2016년 47개(75억) ▲2017년 55개(88억) ▲2018년 60개(138억) ▲2019년 78개(182억)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코로나19 상황과 상관 없이 지원 대상과 금액은 갈수록 늘어가는 추세였다.

이 때문에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는 그것대로 보상해 주되 이와 별도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하고, 현재의 마을버스 운영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방안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려면 현재의 마을버스의 구조적인 문제부터 파악해야 한다. 마을버스 업체와 버스기사들은 2004년 민영제인 마을버스가 통합환승제에 참여했음에도 그에 따른 손실을 전부 보상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용 요금도 수년째 동결되고 있다는 점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현재 마을버스 요금은 교통카드를 기준으로 일반은 900원인데 이 요금은 2016년 이후 그대로다. 요금은 멈춰있고, 적자는 계속 이어지니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언젠가는 요금 인상 논의를 해야 할 수도 있다. 다만 현재의 마을버스 운영제도 자체는 과연 문제가 없느냐에 대한 고민 역시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관점부터 바꿔야 한다. '적자인 마을버스 업체를 어떻게 지원해줄 것이냐'에서 '현재와 같은 방식의 재정지원이 과연 지속 가능한 것일까'로.

19일 서울 종로구 명륜3가 명륜길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종로08번 마을버스가 손님을 태우고 있다. 2021.03.19ⓒ김철수 기자

김상철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위원장은 "서울의 마을버스의 가장 큰 구조적 문제 중 하나는 지나치게 작은 노선이 난립해 있다는 게 문제"라고 진단했다. 시에서 적자 업체에 한해 보전을 해주기 때문에 적자 노선만 운영하는 소수 업체가 너무 난립해 있다는 설명이다. 김 위원장은 "이런 구조로는 재정 지원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새로운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 위원장이 제안한 대안은 마을버스 제도 개편이다. 서울시가 민영제라는 이유로 업체의 적자만 보전해주는 역할에서 그칠 게 아니라 마을버스의 공공성을 높이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공공재정이 투입돼야 한다면 시가 마을버스 운영의 주체가 되어 종합적인 교통 정책을 설계하고, 더 적극적으로 시민들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그는 "마을버스는 결국 지하철역이나 주요 버스 환승역과 집을 연결하는 굉장히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그렇게 본다면 서울시 전체 교통망 체제 내에서 마을버스 노선도 종합적으로 설계해야 한다"며 "마을버스를 실제로 지역 주민의 발로 만들기 위해서는 단지 재정 적자를 공공이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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