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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물방울 그리고 천상의 미각

많은 사람이 새로운 길을 모색합니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이던, 우연한 기회가 주어졌든 도전은 가슴 뛰는 일입니다. 민중의소리 평생교육원 ‘이산아카데미’는 새로운 직업의 길을 개척한 ‘꾼’들을 찾아 그들의 밥벌이와 가치를 묻습니다. 동영상 강좌가 깊이 있는 인문학적 지식을 전한다면, 페이퍼 특강에선 독자에게 정보와 영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을 전할 계획입니다. 직업의 세계에선 때론 구체적인 기술보다 좋은 관점이 필요하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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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태양과 빗방울의 세례를 받고 태어난 디오니소스(바쿠스 Bacchus)는 인류에게 ‘신의 물방울’, 와인을 선물했다. 이후 와인은 숱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풍부하고 정교하게 발전했다. 단순히 취하는 것 이상의 풍취와 향을 주었기에 독립적인 문화를 구축했다.

옛날 선비의 주법도 근사했나 보다. 유배지에서 정약용은 둘째가 주당 酒黨이라는 정보를 듣자 바로 편지로 훈계했다. “술은 무릇 입술에 적시는 것이지, 입술과 혀조차 거치지 않고 소가 물 처먹듯 위장에 들이 부어 곯아떨어지는 자가 무슨 술맛을 알겠느냐? 술의 정취는 살짝 취하는 데 있다.” 와인을 즐기는 이들이 충분히 공감할 이야기다.

신의물방울
신의물방울ⓒ만화 신의물방울 표지

국내에선 1990년대만 해도 포도주 하면 ‘진로 포도주’였다. 그 달달함을 와인 본연의 향취로 알다가 제대로 된 와인을 맛보고 당황한 이들이 많았다. 아마도 와인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은 『신의 물방울』 때문이 아니었을까? 2014년 완결된 『신의 물방울』(44권)은 국내에서만 200만 부 이상이 팔렸으니까. 국내 최고의 소믈리에, 오형우 교수를 만났다. 어느 날 호기심만으로 와인을 파기 시작해 35세의 나이에 국내 최정상급 소믈리에가 되었다. 여전히 삼겹살에 소주를 즐기며, 마트에서 산 6,900원짜리 와인 한 병이면 행복하다는 그는, 와인을 상류층의 고급문화로 고립시키는 모든 허세를 반대한다고 했다. 이번 호에도 성공이 아닌 일 자체를 사랑한 이의 이야기다. 와인에 대한 열정으로 ‘버텨온’ 오형우가 말하는 소믈리에의 세계를 전한다.

금영재 많은 직업 중 왜 와인이었습니까?
오형우 전공은 신문방송학과입니다. 처음엔 방송인이 되려 했죠. 친구들 사이에선 소주와 맥주를 즐겨 먹던 소문난 주당이었습니다. 아마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해할 텐데요, 늘 마시던 술이 갑자기 지겨울 때가 있잖아요? 친구와 새로운 술을 찾아 대형매장에 들렀는데 그곳에 진열된 수천 종의 와인을 보고 무척 놀랐습니다. 도대체 와인에 무슨 매력이 있어 이렇게 다양한 디자인과 복잡한 품종이 생산되는지. 국내의 소주와 맥주는 종류가 뻔했잖아요? 1만 원대의 와인을 사 들고 와서 친구와 마셨습니다. 맛없어 못 먹겠더라고요. 더 궁금해졌습니다. 이 맛없는 걸 사람들이 찾는 데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와인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학생 신분이었기 때문에 돈이 없어 책은 못 사고 도서관에서 읽었습니다. 필요한 책은 도서관에 구매요청 했죠. 레스토랑 알바도 했습니다. 와인은 음식과의 궁합이 중요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하나씩 배웠죠.

소믈리에 오형우
소믈리에 오형우ⓒ오형우

금영재 남들이 취업 준비할 때 교수님은 레스토랑 알바 했군요. 막막했을 것 같은데요? 국내에서 와인 쪽으로 길이 많지 않았을 것 같은데.
오형우 친구들이 하나둘 취업하니까 압박이 심했습니다. 부모님께 넌지시 와인 이야기를 꺼내니 한마디로 정리하시죠. “너 웨이터 만들려고 대학 보낸 거 아니다.” 잘해야 ‘물장사’고 심하게는 ‘보이’로 인식하셨어요. 당장 와인을 고집하면 설득이 안 될 것 같았어요. 국내 와인 대회가 별로 없을 때인데, 최상급 호텔 주관으로 와인 스페셜리스트(2009)가 열렸어요. 이 대회를 목표로 준비했죠. 좋은 성적을 거두면 부모님도 수긍하실 것 같았어요. 내가 어느 정도 수준이 몰랐기에 확신할 순 없었지만, 그냥 거기서 1등 했어요. 스물일곱 살이었죠.

금영재 와인 경연대회는 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나요?
오형우 네, 이론 실기 모두 합니다. 와인 맛만 보고 생산국은 물론 제조 지방, 품종, 제작년도까지 맞춰야 해요. 와인 종류만 수만 종이죠. 처음엔 분위기 적응이 어려웠습니다. 200이 넘는 응시자가 몰렸는데, 서로들 아는 사이더라고요. 필기시험이 끝나자 모두 유명 소믈리에 곁으로 가서 그 분의 답과 맞춰보는 그런 분위기죠. 당시만 해도 전 ‘듣보잡’이니까 괜히 주눅 드는 그런 분위기랄까요? 듣보잡이 1등 하니까 시선이 달라졌어요. 저도 자신감이 생겨요. 그 전엔 내가 어느 정도인지 몰랐으니까.

금영재 독학으로 출전한 첫 대회에서 1등이라…. 명망 있는 와인 전문가들이 경합한 대회에서요. 고급 와인을 많이 마셔보지 못했을 텐데, 혹시 본인도 몰랐던 절대 미감을 발견하신 건가요?
오형우 (웃음) 예전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전혀 그런 것 없다고 말씀드렸어요. 겸손한 척하려 한 게 아니고 정말로요. 어떤 소믈리에는 기사를 보니까 짜고 매운 음식을 피하면서 미각을 철저히 관리한다고 하는데, 전 그런 거 없거든요. 여전히 소주와 삼겹살을 즐기고 찌개도 잘 먹습니다. 첫 대회 출전하기 전에 일하던 레스토랑 세프님과 직원들이 십시일반 백만 원을 모아줬어요. 이 돈으로 필수적인 와인 맛이라도 보라는 거였죠. 이후에도 와인 대회에 계속 출전했는데 대부분 3등 안에는 들었어요. 대회엔 국내 최고급 레스토랑 출신의 소믈리에들이 도전해요. 그분들이 저보다 훨씬 많은 와인을 경험했겠죠. 난 돈도 없고 독학해야 했으니까요. 내 경력이나 조건만을 생각하면 대회출전 못 해요. 지금은 생각해요. 남들보다 더 예민한 감각을 가진 것 같긴 해요. 물론 자신만의 노력과 집중력은 필수죠.

금영재 소믈리에라는 직업의 실제 현장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후회한 적은 없습니까?
오형우 우리나라는 아직 소믈리에에 대한 처우나 인식이 미약해요. 정확히는 소믈리에라는 직업군에 대한 개념 정립이 없어요. 큰 대회에서 우승하자 고급호텔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많았어요. 가슴이 뛰었죠. 하지만 얼마 못 가 나왔습니다. 음식 궁합에 걸맞은 적절한 와인과 디저트 등을 추천하는 사람이 소믈리에인데, 제가 생각했던 역할과는 차이가 많았어요. 물론 제가 부족해서 그랬겠지만 저에게 완벽한 권한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순 없었습니다. 호텔에서 나와 다시 예전에 일하던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이후엔 레스토랑을 다니며 더 배웠어요. 와인만 공부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음식을 알아야 하거든요. 너무 힘들어서 당장 생활비를 위해 와인 숍에서 와인을 판매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제가 공부했던 와인 지식을 활용할 수 없어서 돈을 벌어도 보람을 못 느꼈어요. 그러던 차에 전임교육 연락이 와서 와인 교육에 전념했습니다. 돈을 많이 받는 건 아니지만, 행복했습니다.

이 길, 후회한 적 많죠. 동료들도 하나둘 떠났어요. 서구에선 적어도 소믈리에 양성과 사회적 처우가 체계적이죠. 경력과 능력에 걸맞은 급여를 줍니다. 소믈리에는 고객이 최고의 식사를 할 수 있도록 곁에서 호흡을 함께 하며 와인과 음식, 디저트 등을 추천하며 설명합니다. 적절한 시점에 접근해 보좌하지만, 부담은 주지 않는 최고의 서비스맨입니다. 당연히 그 역할과 가치를 인정하죠. 하지만 국내에선 이런 체계적인 처우 수준이 정립된 것도 없고 웨이터와 차이를 두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끔찍한 박봉이죠. 제가 버틸 수 있었던 건 큰 대회의 수상 상금이었어요. 첫 대회 때 상금으로 5백만 원을 받았는데… 어려웠을 때였지만 전 와인으로 딴 상금은 오직 와인 공부를 위해 쓰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돈으로 와인 아카데미를 다녔고, 책을 살 수 있었어요. 지금과 달리 당시 와인 아카데미 수업료가 상당히 비쌌거든요. 자격증을 따려도 응시료가 너무 비싸 경제적으로 어려웠어요.

독일에서 열리는 국제 세계 와인 전시회엔 4천 개 이상의 업체가 출품하고 시음을 하게 합니다. 저 역시 의뢰를 받아 갑니다. 3일 연속 문 열자마자 머금고 뱉는 과정을 반복하죠. 와인의 산도가 높아 이가 시려요. 입안도 헐죠. 그럴 때마다 스스로 그래요. “넌 어쩔 수 없이 와인 맨이다.” 천직인가 하는 생각을 하죠. 와인과는 애증의 관계입니다. 와인을 사랑하지 않으면 오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소믈리에 오형우
소믈리에 오형우ⓒ오형우

금영재 요즘은 청소년들이 소믈리에는 물론, 바리스타, 바텐더에도 관심이 많은 거로 알고 있습니다. 좋은 소믈리에가 되기 위해 꼭 대학을 하는 겁니까?
오형우 소믈리에에 대한 환상이 있어요. 특히 젊은이들이 그래요. 화려한 고급 레스토랑에서 멋진 복장으로 일하는 전문가 집단이니까요. 그런데 정말 와인과 고객 응대를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초기 박봉을 감수하고, 꽤 오랜 시간 고객의 뒤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보며 서 있어야 하는 일입니다.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아예 하지 못할 때도 있어요. 소믈리에가 와인과 음식 이야기를 못하면 조바심이 나죠.

꼭 대학에 갈 필요는 없습니다. 적어도 지금은 대학이 현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엔 와인을 배우러 프랑스로 유학을 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지금은 국내에서도 충분히 높은 수준의 와인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와인전문교육기관에도 훌륭한 해외 프로그램이 들어와 있어요. 비행기 삯과 체류 비용, 수업료 등을 고려해서 어느 쪽이 본인에게 유리한지 신중하게 따져보는 것이 좋습니다. '유학을 가야 좋은 소믈리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말고 유학을 갈 수 없음에 좌절할 필요도 없습니다. 전 대학에 가지 않고도 좋은 소믈리에가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습니다.

와인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으면, 이론공부는 물론이고 좋은 레스토랑에서 일하라고 권하고 싶어요. 와인과 음식은 함께 가거든요. 와인을 권하기 위해선 그 음식을 알아야 해요. 해당 음식이 나온 지방의 와인이나 향, 산도, 당도, 무거움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검증된 와인 아카데미에서 배우면 좋습니다. 개인적으론 향香에 대한 수련을 강조하고 싶어요. 냄새를 맡고 변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약재시장, 꽃 시장은 물론이고요, 채소 냄새도 맡아야 합니다. 영화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를 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거기엔 향에 대한 인류의 원초적인 열망이 담겨있어요. 수련의 기본은 향에 대한 느낌입니다.

금영재 전 아직 와인 맛을 모르겠습니다. 명절선물로 받은 와인도 막상 잔에 따라 마시면 좌절하거든요. 다 못 먹고 버릴 때도 있습니다. 교수님은 언제 처음 와인이 정말 맛있다고 느꼈습니까?
오형우 보통 터닝 포인트라고 하죠? 제 인생의 와인은 릿지, 몬테벨로 (Ridge Monte Bello)라고 미국산입니다. 스탠퍼드 대 과학자 몇이 산타크루즈 별장의 늙은 카베르네 포도나무를 이용해 와인을 담았는데 그 향과 맛이 엄청났어요. 최고의 장인 폴 드래퍼가 동참해 세계적인 와인으로 만들었어요. 우연한 발견이 명품 와인을 탄생시켰죠. 정말 맛있습니다.

와인의 적敵 은 고급 이미지입니다. 와인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죠. 고급 레스토랑에서 돈 좀 있는 사람들이 즐기는 문화라는 인식이 문제라고 봅니다. 내가 각종 서적으로 공부할 때 온라인 와인 동호회에 가입한 적이 있었어요. 와인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고 싶었거든요. 전 크게 실망하고 바로 나와 버렸어요.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보다 고급와인을 마실 수 있는 재력을 과시하려는 사람이 더 많더군요. 오늘 500만 원짜리 명품 와인을 마셨다거나 뭐 그런 졸부문화죠. 더 놀랐던 건 그 와인은 그 자리에서 바로 따서 마시면 안 되는 와인이었거든요. 와인에 대한 그릇된 정보와 과시욕, 소위 명품 문화가 와인을 죽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파리의 심판’(Judgment of Paris)이라고, 와인계에 큰 충격을 준 스토리가 있습니다. 와인 하면 프랑스라고 알려져 있잖아요? 콧대도 무지하게 높죠. 1976년, 한 프랑스인이 미국에서 좋은 와인 몇 종을 가지고 프랑스 와인과 경합을 붙였어요.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는데, 놀랍게도 레드, 화이트 와인 모두 캘리포니아 와인이 우승했습니다. 10위 안의 6개가 모두 미국 와인이었죠. 이게 기사로 알려지면서 와인계의 판도가 서서히 바뀌게 됩니다. 이 대회 레드와인 부문에서 5위를 한 게 앞서 말씀드린 몬테벨로 와인(샤토 몬텔리나)이구요. 30주년 파리의 심판대회에선 1등을 합니다. 『와인 미라클』이 바로 이 스토리를 담은 영화죠.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와인은 실제 맛과 그 풍취로 즐겨야지, 가격이나 인지도, 과거의 명성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좋은 와인은 그 맛과 여운이 오래 남습니다. 자신에게 맞고 음식과 궁합이 좋은 와인이 좋은 와인입니다.

만화 신의물방울 디켄팅 장면
만화 신의물방울 디켄팅 장면ⓒ신의물방울 장면

금영재 만화 『신의 물방울』을 꽤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와인에 대한 정보가 꽉 차 있죠. 그런데 그 특유의 과장이랄까? 와인 향을 맡는데 천상의 선율에 꽃밭이 펼쳐지는…. 정말 좋은 와인을 접하면 그렇게 됩니까? 아니면 세계적인 소믈리에만이 느끼는 그 경지인가요?
오형우 아무래도 만화니까 표현이 과장되죠. 그런데 ‘신의 물방울’은 와인에 대한 표현이나 세부적인 해설이 굉장히 정확하고 적합해요. 저도 공부를 하면서 다시 이 책을 보는데, 새로 깨닫는 부분도 많아요. 그만큼 양질의 정보가 들어있죠. ‘신의 물방울’이 와인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죠. 저 역시 재미나게 보았습니다.

금영재 드라마 ‘신의 물방울’에서 디켄팅(Decanting) 하는 장면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와인 먹을 때 꼭 그걸 해야 합니까? 그리고 와인을 머금고 공기를 호로로 빨아들이며 먹는 친구가 있어 제가 늘 ‘요사스럽게도 먹는다.’고 구박하곤 합니다만.
오형우 디켄팅이 좀 신비화되었죠. (웃음) 신의 물방울이 사람들 여럿 버려놨다고 소믈리에들끼리 이야기하곤 합니다. 디켄터은 원래 예쁜 병에 와인을 옮겨 담기 위해 고안되었는데 주로 오래된 와인의 침전물을 걸러 내는 데 씁니다. 레드 와인의 경우 최대한 작은 디켄터를 이용해 필터링하는 거죠. 빈티지가 어린 와인(제조된 지 얼마 안 되는 와인)의 경우 공기접촉을 통해 죽어있던 향과 불필요한 잡냄새를 제거하는데 이때 디켄터에 담아 공기접촉을 시키기도 하고, 와인 병마개만 딴 채로도 해요. 와인 용어로는 브리딩(Breathing)이라고 합니다. 와인은 종류에 따라 브리딩을 해야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있죠. 그런데 고객 중에선 가끔 브리딩을 하면 더 산화되어 맛이 떨어지는데도 디켄터로 작업을 해달라 요청하곤 하죠. 마치 디켄터를 다루지 않으면 소믈리에 자격이 없다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해입니다. 반대로 반드시 브리딩을 해야 와인이 살아나는 어린 와인이 있죠. 필요하면 몇 시간 전에 해야 하는 와인도 있는데, 이걸 안 하고 그 자리에서 고급 와인이라고 시켜 먹어버리면 진가를 느낄 수 없습니다. 신의 물방울에선 이걸 ‘유아살해’라고까지 극단적으로 말해요.

금영재 와인의 당도와 알코올 도수는 어떻게 조절하는 겁니까? 포도의 품종이나 지방의 차이인가요?
오형우 와인의 알코올은 포도의 당분이 발효되어 생기는 것입니다. 포도의 당분이 모두 발효되기 전에 발효를 중단시키면 단 맛이 남지만 알코올은 낮은 와인이 됩니다. 끝까지 발효하면 단맛은 없고 알코올은 높은 와인이 되는 것이죠. 그 밖에 생산지의 기후나 양조 방법에 따라서 당도와 알코올은 다양하게 변화합니다.

금영재 교수님이 평소 즐기는 와인은 뭡니까? 실수 없이 와인을 고를 수 있는 팁을 알려 주세요.
오형우 전 마트에서 산 6,900원 짜리 칠레 와인을 즐깁니다.
G7 샤르도네 (G7 Chardonnay)라고, 좋은 와인입니다. 미국 남부나 남미 쪽 와인이 좋습니다. 프랑스와는 달리 기후가 일관되기 때문에 해마다 생산되는 와인의 품질이 모두 좋습니다. 가성비 좋고 무엇보다 친절합니다. 유럽 와인이 생산지, 그것도 일반인이 알 수 없는 지방의 이름과 생산연도만 표기하는 거만함이 남아있다면, 미국이나 남미 쪽 와인은 생산연도, 생산국, 생산지, 당도, 음식과의 궁합 모두 적혀있습니다. 가령 1만 원 선에서 유럽 와인을 고른다면 선택지가 별로 없지만, 비유럽 와인(뉴월드 와인) 쪽에선 좋은 와인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술을 좀 세게 먹는 편인데, 칠레나 호주 와인이 좀 강한 편이죠. 5만 원 이하의 좋은 와인을 찾는다면 뉴월드 와인이 좋습니다. 마트에 가면 판촉원이 와인 추천을 많이 합니다. 물론 그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지만, 참고만 하는 것이 좋죠.

여성들이 와인을 처음 접하면 주로 달달한 모스까토 다스띠 (Moscato d'Asti)를 즐기는데, 디저트가 아닌 음식과 함께 먹을 땐 적절한 와인은 아닙니다. 달아서 부담스럽죠. 와인을 즐기려면 우선 자신의 입맛과 취향을 알아야 하는데, 용기 내서 먹어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자신만의 와인을 찾습니다. 와인에 대한 간단한 지식만 있어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와인은 향香입니다. 술잔을 보면 소주잔은 작고 와인 잔은 크잖아요? 그리고 소주잔은 가득 따르고 와인 잔엔 절반 이하로 따릅니다. 소주가 이미 완성되어 고정된 술이라면, 와인은 아름다운 향을 머금은 살아있는 술이죠. 그래서 소주잔은 완전 개방형이고 와인 잔은 향을 모을 수 있도록 고안되었어요. 그래서 약간만 따르고 나머지 공간은 향을 위해 비워둔 겁니다. 소주는 원 샷을 많이 하지만 와인은 돌리면서(스월링) 공기와 만나 향이 피워 오르는 걸 느끼는 게 백미입니다.

레드 와인은 온도가 낮아지면 더 떫어져요. 차갑게 보관하면 맛이 없어요. 오히려 상온에서 온도가 올라가면 죽어있던 향이 화려하게 피어오릅니다. 큰 잔을 이용하는 이유죠. 화이트 와인은 낮은 온도에서 먹어야 해요. 온도가 오르면 신선한 산미가 떨어지기 시작해요. 그래서 온도를 유지하려면 잔도 작아야 합니다.

소믈리에 오형우
소믈리에 오형우ⓒ오형우

금영재 와인 입문자들이 보면 좋은 책을 권해주신다면?
오형우 독학하느라 이리저리 검색하고 책도 많이 찾아봤는데, 국내에 소개된 와인 관련 서적이 오역도 많고, 틀린 정보가 많습니다. 그래서 지금 책을 내려하는데, 매해 정보를 갱신해야 하는데 이것이 어렵더군요. 와인 입문서로는 만화 『한 손에 잡히는 와인』이 꽤 괜찮습니다. 중급자 이상은 김준철 선생의 『와인』을 권합니다. 정확도와 같은 신뢰도 면에선 최고의 서적입니다.

금영재 소믈리에도 일정한 단계를 인증하는 경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고의 경지가 마스터 소믈리에라고 알고 있는데요?
오형우 소믈리에의 최고 경지는 ‘마스터 소믈리에’, 그리고 ‘마스터 오브 와인’ 코스가 있어요. 마스터 소믈리에는 50년 전통의 최고 과정으로 전 세계에서 230여 명밖에 없습니다. 프랑스와 미국을 제외하면, 한 나라에 한 명 있을까 말까하죠. 마스터 소믈리에는 그냥 시험 보는 것이 아니라 단계에 따라 밟아가는 코스 웍이 있는데 전 레벨 인증서를 모두 따려면 꽤 오랜 세월이 필요해요. 합격률이 5%니까 세계적 수준이죠. 한국인으론 김경문 씨가 작년에 마스터 소믈리에가 됐습니다. 영어는 기본이고 와인 맛만 보고 와인 품종은 물론, 주요 정보를 줄줄 읊을 수 있어야 해요. 저 역시 이 과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멀지않은 장래에 반드시 마스터 소믈리에가 되고 싶습니다.

금영재 교수님은 지금 대학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학원에서도 젊은이들을 많이 만난다고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소믈리에 어드바이저라고 해야죠? 미래에는 뭘 하고 싶습니까?
오형우 네, 아무래도 소믈리에라는 말이 더 친숙하니 어디 가서 소개할 땐 그냥 소믈리에라고 합니다. 지금은 소믈리에를 대상으로 교육하니 소믈리에 어드바이저가 정확한 표현입니다. 지금은 학생들을 가르치며 큰 만족감을 얻고 있습니다. 와인 따는 법도 모르는 친구, 새로운 꿈을 꾸는 친구들을 이끌어 대학생 와인 소믈리에 경연대회에서 1등도 할 수 있도록 돕고 좋은 레스토랑에 취직을 시킬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제 소박한 꿈은 레스토랑을 차리는 겁니다. 업자의 이익을 위해서 와인을 권하는 게 아니라 오직 좋은 음식과 좋은 와인의 최고의 궁합을 만들어 내는 레스토랑이요.

오형우 프로필

소믈리에의 길을 꿈꾸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오형우 교수의 이력 프로필을 그대로 옮깁니다.

수상
2015 세계 소믈리에 대회 국가대표 선발전 1위, 세계 소믈리에 대회 한국대표 출전
2015 국가대표 소믈리에 대회 2위
2015 소믈리에 오브 더 이어 어드바이저 부문 1위
2014 테스코 파이니스트 와인앰버서더 선발대회 1위
2012 국가대표 소믈리에 대회 1위
2012 세계 사케소믈리에 대회 한국대표출전 Semi-Finalist
2012 대한민국 사케 소믈리에 챔피언쉽 최우수상
2011 국가대표 소믈리에 대회 Finalist
2010 국가대표 전통주 소믈리에 대회 1위
2010 남아공대사관 주회 남아공 소믈리에 월드컵 대회 2위
2009 쉐라톤워커힐&와인리뷰주관 와인 스페셜리스트 선발대회 1위

학력사항
경희대학교 관광대학원 와인·소믈리에학 석사

경력사항
現 플레이팅 컴퍼니 소믈리에
現 WSApdp 와인 아카데미 외부강사
現 한국 국제소믈리에협회 이사
前 서울호텔관광전문학교 관광식음료과 교수
前 와인21.com 객원기자
2010, 2013~2017년 코리아 와인챌린지 심사위원
2015~2016 베를린 와인 트로피 심사위원
2013~2016 아시아 와인트로피 심사위원
2013, 2015~2106 우리술 품평회 심사위원
2015, 2017 대한민국 주류대상 심사위원

자격사항
Court of Master Sommelier, Certified Sommelier
프랑스 와인 전문가 FWS(French Wine Scholar) Certificated
WSET Advanced Certificated
CIVB 보르도 와인 마스터코스 Certificated
BIVB 부르고뉴 와인 마스터코스 Certificated
스페인 와인 강사 인증서 취득
A+Australian Wine Level 1 & Level 2 Certificated
CSW(미국 와인 전문가 자격) Certificated
CSS(미국 증류주 전문가 자격) Certificated
(사)한국 국제 소믈리에 협회 마스터 소믈리에 자격증
한국 전통주 소믈리에 협회 전통주 소믈리에 자격증
일본 국가공인 기키자케시(사케 소믈리에) 자격증
(사)한국 커피 전문가 협회 바리스타 자격증
한국수자원공사 워터 소믈리에 자격증
한국산업인력공단 조주 기능사 자격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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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재 이산아카데미 기획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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